제2의 도가니 ´불길´ 대한민국이 강간의 왕국인가
영화 ´도가니´ 후폭풍으로 강릉 등서 묻혔던 사건들 속속 드러나
네티즌들 "성폭력에 관대한 나라 창피" 전문가들 "법 개정" 촉구
김소정 기자 (2011.09.29 12:08:32)
영화 ‘도가니’로 광주 인화학교의 성폭력 사건이 재수사 선상에 오르면서 그동안 묻혔던 제2, 제3의 '도가니'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도가니’ 사건에 대한 경찰의 재조사가 이뤄지면서 이참에 성폭력범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받고 있다.
제2, 제3의 도가니 무대는 강릉과 경북이다. 이번에도 본인이 직접 하소연조차 할 수 없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 사건이었다.
지난 2007년 9월 강릉의 한 평생교육학교에 다니던 지적장애를 가진 김모 양(당시 15세)는 아침 일찍 등교해 교실 청소를 하던 중 변을 당했다. 이 학교 교사 이모 씨(36)는 김 양을 다른 교실로 끌고가 출입문을 잠근 뒤 성폭행했고, 같은 해 11월 학교에서, 2009년 4월과 5월엔 각각 김 양의 집과 교사의 집에서도 성폭행이 이어졌다.
이 씨의 범행은 성폭행 현장을 목격한 이 씨의 아내가 작년 7월 가정폭력상담소를 찾아 상담을 하면서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법원은 이 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고, 피해자 김 양은 최근까지도 전문기관에서 심리치료를 받아야 했다.
경북에서도 한 복지시설 이사장이 이 시설에서 생활하던 장애여성을 지속적으로 성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이사장 김모 씨(58)는 지체장애 1급인 장애여성(22)을 2009년 2월부터 1년반여 동안 자기방에서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됐다. 당시 특수학교에 재학 중이던 이 장애여성이 작년 4월 담임선생에게 이 사실을 말해 사건이 밝혀졌다.
하지만 법원은 “피해여성의 진술이 왜곡될 가능성은 낮으나 전체적으로 신빙성이 떨어지고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검찰이 항소를 포기해 가해자의 처벌은 이뤄지지 않았다.
인화학교의 경우에도 성폭력 관련자 6명 가운데 4명은 실형선고를 받았지만, 2명은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인화학교에서 성범죄를 저지른 당사자인 교장은 1심에서 징역5년이던 것이 항소심에서 징역2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으로 풀려났고, 이어 집유로 1명이 더 석방된 사실도 이번에 새롭게 부각됐다.
◇ 영화 ´도가니´ 속 실제사건 가해자들의 변호를 맡았던 문정현 변호사가 최근 비난여론과 관련 직접 해명했다(사진 영화 ´도가니´ 중 한 장면). ⓒ CJ엔터테인먼트
게다가 인화학교 성폭력대책위는 당시 국가인권위가 가해자 6명, 피해자 9명으로 인정했던 것과 달리 가해자 10명에 피해자 12명 정도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광주 인화학교에서 발생한 성폭력 범죄는 2000년부터 5년에 걸쳐 일어났지만 2005년 한 학부모가 장애인단체와 상담하기 전까지는 외부에 이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다. 게다가 이번 논란 속에 인화학교에서 학생끼리의 성폭행도 있었다는 새로운 주장도 제기됐다.
인화학교 성폭력대책위는 “인화학교와 같은 재단의 복지시설, 인화원에서 15세 남학생이 또래 여학생 2명을 성폭행하거나 추행했다는 신고를 지난해 7월 접수했다. 심지어 성폭행이 지난해 장애인 체전 숙소에서까지 이어졌다”면서 “당시 학교 측에는 물론 시교육청에도 보고가 됐지만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광주 청각장애인 특수학교인 인화학교의 사례를 보듯이 우선 복지시설의 폐쇄적 운영이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복지시설과 특수학교 시스템, 교사와 장애학생의 관계 등을 감안하면 아직 드러나지 않은 사건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 장애인 보호를 위한 법·제도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현재 사회복지사업법에 복지법인을 감시·견제할 장치가 전무하다. 게다가 장애인 성폭력을 가중처벌하지 않는 한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고통은 치유할 방법이 없다.
사실상 말 못하고 듣지 못하거나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에 대해 처벌조차 이뤄지지 않았던 사실이 폭로되자 사람들은 분노를 뛰어넘어 법 개정 등을 촉구하는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인터넷에는 성폭력 사건 재조사 요구 청원에 이어 ‘아동 성범죄 공소시효 폐지 100만 서명’ 페이지도 현재 운영 중이다.
인터넷에서 ID 한미* 씨는 위 사건 판결에 대해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니 이해가 안된다. 임신이라도 해서 유전자 검사해서 친부인 게 밝혀져야 증거가 되나”라며 “일반 여성한테도 쉬운데 장애가 있는 여성에겐 얼마나 쉬울까”라며 분노했다.
또 김혜* 씨는 “아동 성폭행에 대한 특별법 만들어라. 처벌 수위는 적어도 징역 10년 이상에 5000만원 이상 벌금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진* 씨는 “성폭력범들에게 관대한 우리나라 법이 더 문제다”라고 했으며, 김봉* 씨는 “법으로 해봤자 길어야 5년이다. 저런 ××는 신상을 공개하고 사회에서 매장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인화학교 성폭력대책위는 “시설내 범죄행위가 있었을 때 재단의 직접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장애인 시설이나 특수학교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해 그 운영에 있어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복지사업법 개정 요구는 지난 노무현 정부 때 처음 제기됐다가 당시 사회복지재단들의 심한 반발로 무산됐다.[데일리안 = 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