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저는 강원도 양구라는 곳에서 군생활을 했습니다.</P> <P>국토 정중앙, 한반도의 배꼽이라 불리기도 하는데...</P> <P>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고, 지역 전체가 펀치볼 지역이라 </P> <P>보온/냉동(?) 효과가 끝내주기 때문에 여름에는 정말 오지게 덥고 겨울엔 오지게 추운 곳입니다.</P> <P>민간인 출입 통제구역도 많고 양구군 자체가 군사도시이기 때문에</P> <P>부대 주위엔 민가도 없었죠; </P> <P>때문에 타 부대에서 가끔 몰래 먹곤 했다는 피자나 치킨, 술 등은 저희에게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죠.</P> <P>사실 대한민국에 양구라는 곳이 있다는 것도 사단 훈련소에 가서 알았습니다;;; ㅎㅎㅎ</P> <P> </P> <P>저는 양구 노도부대라는 곳에서 군복무를 했습니다.</P> <P>파로호와 소양호로 둘러쌓여 있고 위로는 북한이 있는 곳이죠.</P> <P>양구대교가 생기기 전에 배를 타야 부대로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하더군요.</P> <P>그 최악의 접근성 때문에 몇 년 전, 패밀리가 떴다 2에서 군 창단 이후 63년동안 </P> <P>단 한번도 위문공연이 없었던 부대로 소개되기도 했죠.</P> <P>그 방송을 찍었던 곳이 바로 저희 대대였습니다.</P> <P>(그 방송은 진짜 재미없었는데 너무 반가워서 3번이나 다시 봤어요 ㅎㅎㅎ)</P> <P> </P> <P>어쨌든, 저는 기관총 보직 1112를 받고 그 곳으로 배치되었습니다.</P> <P>그런데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자대 배치 후, 2주일만에 소대가 바뀌고</P> <P>3달 만에 중대 본부로 차출되고, 후엔 연대 본부로 차출당할 뻔 하기도 했습니다.</P> <P>열심히 안하는데 열심히 하는 것 처럼 보이는 걸 잘 했거든요 ㅎㅎㅎㅎ</P> <P>아뭏든 중대 본부에서 저는 보급병 임무를 맡게 되었습니다.</P> <P>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보급병이라는게 </P> <P>일이 많을 때는 일주일 밤을 꼬박 새워야 할 정도로 일이 많고</P> <P>일이 없을 때는 하루에 한 시간만 일하면 할 게 없을 때도 있습니다.</P> <P>그런데 중대의 보급을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 탓에 </P> <P>짬이 조금만 차면 말단 간부와 맞먹는 파워를 가지기도 하는 보직입니다.</P> <P>특유의 노가다 정신으로 중대 작업병으로도 활약하기 때문에 </P> <P>짬이 안되도 마음대로 작업 인원을 각 소대에서 차출할 수 있기도 합니다.</P> <P>(물론 훈련과 교육에 지장 없는 선입니다.)</P> <P>보직 특성 상, 연대 본부 각종 보급 담당자, 대대 취사병과 뜨거운 친목을 다지기도 하죠.</P> <P> </P> <P>시작은 일병 시절이었습니다.</P> <P>양구는 지역 특서상 군인이 없으면 도시 자체가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합니다.</P> <P>지자체 행사 역시 마찬가집니다.</P> <P>깡촌 두메산골이라 양구 체육공원에서 지자체 행사를 하게 되면 관람객과 참여인원이 없습니다.</P> <P>댄스 대회하면 참가팀이 한 팀이라 공연 하듯 하고 바로 1등. 뭐 이런 개념이죠.</P> <P>몇 억, 몇 십억씩 들여서 행사를 하는데 관람객이 없으면 공무원 입장에선 정말 낭패입니다.</P> <P>양구에선 이 관람객을 채우기 위해 군인을 동원합니다.</P> <P>각종 대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P> <P>대회 이름은 분명 "양구 군민 #$!%$#^ 댄스 대회"인데</P> <P>정작 가보면 각 대대 장기 자랑 시간, </P> <P>"양구 군민 @#%$!#$@ 노래 자랑"은 "전군 노래 자랑"으로 바뀌기 일수였죠.</P> <P>그리고 일단 행사가 계획되면 읍내에 포스터가 붙기도 전에 각 부대로 관련 내용이 전달되죠.</P> <P>사단장 : "어이 연대장. 이번에 양구군에서 댄스 대회 한단다."</P> <P>연대장 : "대대장 집합! 한 달 뒤 17연대, 32연대가 댄스대회 나온단다!!!" </P> <P>대대장 : "중대장 집합해!!!! 우리 대대에서 상 못타면 연대장이 우리 죽인단다!!!"</P> <P>중대장 : "소대장 집합!!! 현 시간 부로 댄스준비태세에 돌입한다! 실제 상황이다!"</P> <P>소대장 : "일병부터 상병까지 한 보 앞으로."</P> <P>병사 : "....휴가증 줍니까?"</P> <P> </P> <P>뭐... 이런 상황입니다.</P> <P>때문에 분명 지자체에서 진행하는 댄스 대회인데 </P> <P>정작 상품을 보면 </P> <P>1등 : 현금 20만원 + 막걸리 한 말 + 소주 2 짝(+휴가증), </P> <P>2등 : 현금 10만원 + 막걸리 한 말(+휴가증), </P> <P>3등 : 막걸리 한 말 (+휴가증)</P> <P>..... 군인을 위한 상품이죠 ㅎㅎㅎㅎ</P> <P> </P> <P>아뭏든, 저희 중대 역시 그 댄스 대회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P> <P>참가인원은 내무실에서 그냥 멍때리고 있던 1소대 일병과 상병들이었습니다.</P> <P>그런데 그 인원 중에 과거 비보이로 활약하던 사람이 있었던거죠.</P> <P>그 날로 중대장은 1소대 작업 인원 차출 금지를 선언했고,</P> <P>그 인원들은 매일 밤낮을 중대 치장창고에서 댄스혼을 불태우기 시작했습니다.</P> <P>옆에 서있기만해도 손이 데일 것 같은 열정이었습니다.</P> <P> </P> <P>그리고 결전의 그 날.</P> <P>저는 창고에서 도대체 왜 있는지,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르는 흰색 커텐을 꺼내서 1소대에게 건네줬고</P> <P>대회에 참가안하는 1소대 이등병, 병장들은 유성 매직과 청 테이프로 현수막을 만들었습니다.</P> <P>"댄스도 전군 최고!! 17연대 까부수자!!!" </P> <P>....뭐, 이런 선동적인 구호였던 걸로 기억납니다...</P> <P> </P> <P>(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P> <P> </P> <P>저희 1소대는 1등을 했습니다.</P> <P>매우 기분이 좋았던 저희 중대장은 대대장과 해맑게 웃으며 </P> <P>참가 인원 전원에서 휴가증을 발사했습니다.</P> <P>1소대는 이미 상품으로 나온 막걸리 한 말을 다 마시고 잔뜩 취해있었죠.</P> <P>그 업된 분위기에 상품으로 나온 20만원을 중대 운영비로 쓰려고 했던 행보관님도</P> <P>그 금액을 1소대 회식비로 사용하는 걸 허락했습니다.</P> <P> </P> <P>문제는 상품으로 나온 소주 두 박스이였습니다.</P> <P> </P> <P>사실 그 때, 저희 중대장과 소대장들, 행보관은 </P> <P>포스터에 매우 작게 써있던 소주 두 박스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죠.</P> <P>대회에 참가했던 1소대 인원들은 그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P> <P>군인의 특성상 어짜피 그 상품은 자기들이 못 먹는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죠.</P> <P> </P> <P>그 소주 두 박스는 제가 수령했습니다.</P> <P>원래는 소주를 수령받자 말자 행보관님께 보고해서 어떻게 처분할지 결정해야 하죠.</P> <P>그런데 욕심이 생기더군요.</P> <P>어짜피 아무도 이 존재를 모르고, 밤에 육공을 타고 읍내까지 왔으니 </P> <P>복귀할 때 다시 육공에 싣고 부대로 들어가면 나 혼자 다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죠.</P> <P>나쁜 생각을 먹었던 저는 판초 우의로 소주 두 박스를 덮어서 </P> <P>육공에 몰래 실었습니다.</P> <P>그리고 부대에 도착하자 마자, 소주 두 박스를 들고 </P> <P>급하게 창고 정리할 게 있다고 중대 창고로 향했습니다.</P> <P>다들 아시겠지만 중대가 보유한 창고는 모두 보급병이 관리하며, </P> <P>보급병이나 행보관, 중대장의 허락이 있어야 창고에 출입가능하기 때문에 개인 물건 짱박기는 최고죠.</P> <P>또 중대 창고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나무 박스와 탄 박스가 천장까지 가득 쌓여 있어서 </P> <P>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중대장도 모르고 행보관도 모르고 오직 보급병만 알고 있습니다.</P> <P>소주 두 박스 짱박는 건 일도 아니죠.</P> <P> </P> <P>저는 그 날 밤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P> <P>소주 두 박스를 짱박았다는 기대감, 설렘, 두려움 등이 가득 쌓여 있었죠.</P> <P>그 후로 약 보름동안 저는 계속 마음 조리고 있었습니다.</P> <P>누가 그 소주 두 박스 어디로 갔는지 묻지 않을까?</P> <P>혹시 병사들끼리 이야기하다가 소주 이야기가 나오고 </P> <P>우연히 지나가던 중대장이 듣고 중대장이 행보관님에게 말하고 행보관님은 나를 취조하고</P> <P>나는 고진 고문에 못 이겨 결국 자백하고, 소주는 중대원들이 나눠먹고 나는 영창가고...</P> <P>밤마다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P> <P>천운으로 약 보름동안 소주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습니다.</P> <P>그런데도 저는 도무지 무서워서 약 한 달동안 그 소주에 손을 댈 수 없었습니다.</P> <P> </P> <P>역시 시간은 용기를 주더군요.</P> <P>어느 날, 점심을 먹고 작업하러 간다고 말하고 홀로 중대 창고로 향했습니다.</P> <P>일이 없을 땐 짱 박히는게 일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신경쓰지 않더군요. </P> <P>그 곳에서 혹시 누가 볼까 재빨리 소주 한병을 꺼내서 나발을 불었죠.</P> <P>뜨뜻한 온도의 소주였지만 정말 그 맛은.....</P> <P>오랜만에 소주 한 병을 원샷해서 인지 엄청난 취기가 몰려 오더군요.</P> <P>저는 기분이 좋아서 혼자 중대 창고에서 늄침대를 펴놓고 누워서 노래를 부르다 잠들었습니다.</P> <P>천만 다행으로 6시 전에 일어나서 연병장 구보 좀 하고 술 깨서 무사히 내무실로 들어갈 수 있었죠.</P> <P> </P> <P>그 후, 저의 수통엔 물 대신 언제나 소주가 있었습니다.</P> <P>중대의 모든 물자와 소주 두 짝을 가진 남자라는 사실은 군번이 한 달 차이나던 우리 분대장에게만 말했습니다.</P> <P>그 후, 우리 분대장은 소주가 먹고 싶을 때면 아침부터 내 눈치를 보곤 했습니다.</P> <P> </P> <P>훈련 나가서 캐온 야생 더덕을 물에 씻어서 맛다시에 찍어서 소주와 함께... 크......</P> <P>시원한 중대 창고에서 조그만 버너로 라면에 소세지, 만두 넣고 부대찌게처럼 끓여서 소주 한 잔... ㅋㅋㅋㅋ</P> <P>이도 저거 없으면 육개장 뿌셔서 맛스타랑 같이 소주 한 잔... ㅋㅋㅋㅋㅋㅋ</P> <P>뽕나무에서 오디 열매 잔뜩 따서 오디주 담그고... 더덕주 담그고... 산도라지주 담그고.... ㅋㅋㅋㅋㅋ</P> <P> </P> <P>나중엔 대가리가 돌아서 취침 점호 끝나고 침상에 누워 있으면,</P> <P>분대장 : "아... 오늘 정말 힘들었다..."</P> <P>나 : "고생하셨습니다."</P> <P>분대장 : "그... 야... 음... 너... 술 있냐?"</P> <P>나 : (피식)</P> <P>이러고 둘이서 내무실 구석에서 소주를 마시기도 했죠.</P> <P>그런데 이런 상황이 되면 내 입에서 "수~"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P> <P>자던 신병도 잠에서 깨고, 내무실 열 몇병이 누운 상태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P> <P>매우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보곤 했죠.</P> <P>저는 "야 전부 천장으로 시선 두고 입 벌려"</P> <P>그럼 전원이 침상에서 입을 벌리고 누워 있고 </P> <P>저는 신이 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듯 한 모금 씩 소주를 부워줬습니다.</P> <P>일병이 하사하는 소주를 먹기 위해 병장이 얌전하게 입을 벌리고 누워있는 기적이 행해지는 순간이죠.</P> <P>근데 이게 딱 한 모금이라도 그 좁은 내무실에서 </P> <P>열 몇명이 동시에 술을 먹으면 술냄새가 많이 나거든요.</P> <P>그럼 전부 다시 일어나서 양치질을 하고 바닥에 물파스를 뿌려두고 잠을 잤습니다.</P> <P>사실상 모두 공범인거죠.</P> <P> </P> <P>술이 있으니 군생활이 정말 즐겁더군요 ㅎㅎㅎ</P> <P> </P> <P>사람이 참 간사한게 상황이 이쯤되니 욕심이 생기더군요.</P> <P>술만 있으면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고 마음대로 꺼내 마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거죠.</P> <P> </P> <P>이 때 부터 저의 군생활은 본격적인 음주의 세계로 빠져들게 됩니다...</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