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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readers_4809
    작성자 : PF*any
    추천 : 3
    조회수 : 323
    IP : 110.47.***.76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12/12/02 08:48:04
    http://todayhumor.com/?readers_4809 모바일
    [오유과거]산문] 눈 속에서 기다림은 느리게 간다.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있었다. 그녀는 버스정류장에 오는 모든 버스를 보냈다. 기다리는 사람은 아마도 남자친구이리라. 그렇지 않으면 저렇게 기쁜 얼굴을 하고 있을 수가 없을 것이다. 곧 그녀가 그의 우산 속에서 그와 함께 걷는 모습이 내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함께할 시간을 위해 우산도 없이 눈을 맞는 그녀를 위해 내가 해 줄 것은 없다. 처음으로 눈다운 눈이 내리는 날이었다. 아침 해에 진창이 되어버린 되도 용서할 수 있을 그런 눈이었다. 그녀도 그래서 눈을 맞고 있는지도 몰랐다. 유리문 너머로 나도 함께 그를 기다려본다.

    방학이 되자마자 나는 꽃 속에 갇혔다. 큰아버지는 자신의 딸들 보다 내 손재주를 더 신뢰했다. 가끔씩 나에게 화원을 물려준다는 말은 농담만은 아닐 것이다. 아니면 더 딸들 손에서 안전해지는 금고 때문일지도 모른다. 20평 남짓한 작은 꽃집으로 큰아버지는 사촌들을 대학까지 보냈다. 내가 들어와 있는 동안에 큰아버지의 얼굴을 볼 수도 없을 정도로 바쁘시다. 이 작은 곳 어디에서 그 많은 화환들이 나오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반면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주문을 받거나 가끔씩 오는 손님을 맞이하는 일 뿐이었다. 특히 이런 궂은 날에는 돈을 받는 게 죄송하기만 했다.

    네가 다녀가면 힘들어 하던 녀석도 다시 일어서더라. 다래나 다리에게 맡기면 팔 꽃이 없어서 망해.”

    내가 거절하려 했을 때 큰아버지께서 한 말이었다. 다 들으라고 한 말이었지만 사촌들은 기분나빠하는 기색이 없었다. 도리어 나에게 시집 갈 비용은 내가 만들어 주어야 한다며 농담을 걸어오기도 했다. 사촌들은 큰아버지와 다른, 각자 나름의 길을 걷고 있었다.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리본을 조금 잘라 책을 묶어본다. 꽃을 팔면서도 리본을 묶는 일은 별로 없다. 대게 화원으로 찾아오는 손님은 선물보다는 자신이 키우기 위해 오는 사람들 이었다. 누군가 꽃다발을 산다면 선물할 사람이 돋보이도록 만들 자신이 있었다. 그 사람이 그녀를 기다리게 하는 그 일지라도. 그녀의 머리위의 눈은 망울져 있었다. 흰 모자를 쓴 것처럼 그녀는 아직 따뜻해 보인다. 흰 눈 아래 그녀의 머리카락이 선명하다.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어 화원을 둘러보았다. 잎과 줄기 어딘가에 상처가 난 곳이 없나 살펴본다. 춥지는 않은지, 물이 많은 것은 아닌지 살펴보지만 오늘따라 화원 안은 평온하다. 그렇게 하릴없이 둘러보고 있는데 사촌동생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심심하지? 내가 놀러가 줄까?”

    선심 쓰겠다는 투였다. 하지만 사촌의 목적은 뻔하였다.

    돈필요하구나?”

    돈은 됐고 치킨이나 사줘라. 맥주도 있으면 좋고. 주문해놔. 먼저 먹고 있지 말고.”

    내가 가게를 맡을 때면 이런 요구가 많았다. 큰아버지도 이정도의 지출은 눈감아주셨다. 사촌이 좋아하는 치킨 집을 찾아 전화를 건다. 언젠가 사촌이 후라이드가 맛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곳이었다. 맥주 1000cc와 후라이드 한 마리를 말했다. 치킨 집에선 날씨가 좋지 않아 늦을 수 있다고 양해를 구했다. 나는 늦어도 좋으니 조심히 오라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창밖을 보니 눈은 같은 모습으로 내리고 있었다. 늦을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가로수는 흰 눈 아래서 검게 변색되어갔다. 그 모습은 안쓰러웠다. 차가 지나갈 때마다 가지위의 눈은 툭툭 털어지지만 충분치 않다. 차라리 바람이 불었으면, 그래서 모두 털어버렸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사촌이 왔지만 아직 치킨은 오지 않았다. 사촌은 오자마자 춥다 며 전기히터를 찾았다. 히터 가까이 있는 화분들을 옮기고 사촌 앞에 앉았다.

    누나는 안 왔어?”

    언니는 귀찮대. 싫다는 사람 억지로 먹일 수는 없잖아? 나 혼자 왔지.”

    나는 집에 있을 사촌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나는 전화를 받자마자 춥다는 말 단 한마디 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내 얼굴을 보고 사촌은 화원이 무너져라 웃어댔다. 얼마지나지 않아 치킨이 왔다. 배달원 옆으로 그녀가 보였다. 그녀 어깨의 눈이 조금 무너져 내렸다. 나는 들어와 치킨을 사촌에게 쥐어줬다.

    집에 가서 먹어. 막상 도착하니까 별로 먹고 싶지가 않다.”

    ? 언니 생각 안 해줘도 돼. 그러지 않아도 잘 먹고 잘 살 사람이야.”

    사촌이 이해가 되지 않는단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책을 묶었던 리본을 풀었다. 그 리본으로 이제 떨어지는 꽃 한 송이를 묶어 치킨 봉투 속에 넣었다.

    정말 생각이 없어서 그래. 그리고 이거 가져가라.”

    미심쩍어 하는 사촌을 문밖으로 밀었다. 그녀는 아직도 그를 기다리고 있는데, 나에게 사람이 오는 모습을 보여 줄 수 없었다. 그녀가 쓸쓸해질까 걱정이 되었다. 그녀는 아직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빗자루를 찾았다. 거리의 눈은 발이 들어갈 만큼 쌓여있었다. 치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문을 나설 수가 없었다. 나는 큰아버지가 믿고 있는 것만큼 성실하지 못한 인간이었다. 게으르고 마음의 소리에 쉽게 굴복해 버리는 그런 나약한 인간일 뿐이었다. 화원 안은 따뜻했다. 찬바람을 마주하는 게 무서웠다. 빗자루를 내려놓고 다시 꽃들을 둘러본다. 이 애들은 한 번도 눈을 맞은 적 없었다. 한때 눈은 맞아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이제는 그렇지 못하다. 눈이 오면 우산을 먼저 찾게 되었다. 머리에 맺힐, 그래서 얼굴에 흘러내릴 눈을 반기지 못했다. 옷 속으로 스며들어 얼어버릴지도 모르는 눈을, 그대로 맞으며 기다리는 그녀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오지 않는다. 꽃 몇 송이를 골라본다. 그가 그녀에게 미안하다면 그는 이곳을 찾아야 한다. 자주색 히아신스는 보이지 않는다. 그녀에게 주기 위해서는 이제부터라도 키워야 할지도 모른다. 자주 히아신스 대신에 사랑이 붙은 것을 찾아 포장지 위에 올려두었다. 그가 사랑만 말한다고 해도 그녀는 용서해 줄지도 모른다. 리본을 묶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밖에 그 여자 누구야? 애인? 모른 척 하기는, 내가 그 여자 한 두 번 본 것도 아닌데. 언니도 알고 있던데 뭘. 신성한 일터에서 연애놀음 하면 쓰시나. 여자 친구 때문에 동생을 문밖으로 밀어버리다니. 숨길 애인도 있어서 좋겠수다. 근데 그러면 안 되지. 문밖에 여자 친구를 세워두다니. 남들이 한다고 차도남 컨셉하지마. 여자는 무슨 죄야.

     

    문을 열었다. 내 머리위에도 눈이 쌓인다. 찬바람은 불지 않는다.

    기다리기 지루하셨죠?”

    오늘은 조용히 눈이 쌓이는 날이다. 눈이 바람에 날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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