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font size="6">치바대학교 여의사 살인사건<br /><br /></font><font size="2"><b>【사건개요】</b><br /></font></div><br /> <div></div><font size="2"><br /> <div>1983년 1월 7일 새벽 치바시 중앙구의 길위에서 여성이 사망해있는것을 신문배달원이 발견, 면허증등으로 부터 근처에 사는</div> <div>치바대학교 의학부 병리학 연구원 a코(25세)로 판명되었다. 동월 22일 피해여성의 남편인 치바대 부속 병원 수련의 s(당시25세)가 </div> <div>체포되었고, 이후 최고심에서 유죄가 확정된 직후 구치소내에서 자살 했다.<br /><br />S<br /><b>【빨간 자국】</b><br /></div><br /> <div>1983년 1월 7일 오전 5시 45분경 치바대 의학부 병리학 연구원 a코씨(25세)가 치바시 중앙구 가쓰라기의 자택근처에서 사망해있는것을</div> <div>신문배달원이 발견했다. 엎드린 상태로 쓰러져있는 a코씨의 목에는 끈으로 졸려진 흔적이 있고 옆에 떨어진 지갑에서는 현금이 절취해어있었다. <br /></div><br /> <div>[a코 누가 그런거야...!!]</div> <div> </div> <div>피해자의 남편이며 전 부속병원 수련의 s(당시25세)는 곧 현장에 도착해 시신에 매달려 울었다. </div> <div>s는 그 옆에서 경찰에세 사정청취를 받았고 그에 따르면 전날은 함께 외출하여 10시 반에 귀가, 일단 취침하였으나 익일 오전 2시 반경</div> <div>a코씨가 [공부가 있다]며 혼자서 연구실에외출했다. </div> <div>s는 집에서 10미터 정도까지 배웅하였으며 그 때는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div><br /> <div></div><br /> <div>하지만 용의자로 지목된것은 s였다. </div><br /> <div>시신으로 부터 반항흔이 없었기에 면식범에 의한 범행이라고 판단되었다. 게다가 s는 손바닥에 빨간 긴 자국이 있었다. <br /></div><br /> <div></div><br /> <div>17일 s는 자택의 치실에서 채혈치으로 혈액을 뽑아 자살을 시도 하였고 발견한것은 아키타현에서 온 모친으로 </div> <div>s 는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div> <div>11일에는 2번째의 사정청취가 이루어져 s는 갑자기 자신이 제1발견자임을 고백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div><br /> <div>[그날은 오전 4시경 갑작스레 부인이 걱정이 되어 바깥에 나갔고, 그리고 현장에서 그녀가 쓰러져있는것을 발견했다.</div> <div>맥박과 호흡이 정지상태였다. 윗옷이 가슴까지 올라가 있어 정리해준 후 망연해 하고 있을 때 아베크족이 무언가 이야기를 하면서 </div> <div>가까이 왔다. 쫓아가려고 하자 아베크족은 도망갔다. </div><br /> <div></div><br /> <div>22일 s의 손바닥에서 출혈흔이 a코씨에게서는 교살흔이 전기코드에 의한 것으로 판명되어져 체포되었다. </div> <div>이 후 그는 부인의 죽음에 대하여<strong> [자신이 제1발견자][강간당해서 자살]</strong>등으로 계속 진술을 번복하였다. <br /><br /><br /><b>【행복했던 나날 그리고 파멸】</b><br /></div><br /> <div>s는 1958년 아키타 카와지리쵸에서 태어나 부친은 아키타역 뒤에서 점포도 없는 상인에서 시작해 부동산 중개업자가 되었다. </div> <div>마침 부동산 붐을 타고 사업은 번창하여 아키타 역앞에 호화 주택과 본사 빌딩을 세울정도로 되었다.</div> <div>원래는 미야기현에서 교사였던 아버지는 학교 교장의 딸과 결혼을 하여 장녀를 낳았으나 이혼, 다른 여성과 결혼하여 장남과</div> <div>s를 낳았다. </div><br /> <div></div><br /> <div>s는 아키타교육대부속 초등학교와 중학교 현립(우리나라 도립)아키타고등학교에 진학 후 토치키현에 있는 독쿄(도쿄 아님: 독협)의과대학에 </div> <div>진학했다. 아버지는 s를 의사로 만들기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가정교사를 고용해 공부시켰고, 기부금 4000만엔(4억원 이상)을 넣고 의대에 </div> <div>입학시켰다. s는 고교시절의 친구에세 [ 난 4등이야] 라고 이야기 하고 다녔으나 그것은 기부금의 순위였다고 한다. <br /></div><br /> <div></div><br /> <div>살해당한 a코 상과는 치바현의 큰병원장의 외동딸이었다. </div> <div>가업을 잇기 위해 독쿄의대에 입학한 a코씨는 1학년 7월경에 친구로부터 s를 소개받아 가을무렵에는 진지한 관계로 발전했다. </div> <div>2학년 무렵에는 a코씨가 자신의 집에 s를 데려가 소개시켜주었으며 그녀의 부모도 s를 한눈에 맘에 들어했다. </div> <div>4학년 무렵부터는 s가 a코씨의 맨션으로 이사 동거생활을 시작했다. </div><br /> <div>3월에 시행된 의사국가시험에서 두사람이 함께 합격하였고 a코상의 부친으로 부터 권유받아 치바대학 의과부의 대학원 시험에 응시하였으나 s는 불합격, 4월부터 치바대 부속병원에서 수련의를 시작했다. a코 씨는 대학의 연구원으로서 길을 선택했다. </div><br /> <div>둘은 대학졸업직 후 4월에 약혼, 이전부터 양가에서 협의가 이루어져 s가 데릴사위가 되기로 하였다.</div> <div> a코씨의 아버지는 치바시 중앙구 가쓰라기에 두사람을 위해 집을 지어줬고 승용차(닛산 블루버드)와 매월 20만엔(200만원 이상)의 생활비 지원도 해주었다.<br /></div><br /> <div>10월 10일(사건의 3개월 전 ) 제국 호텔에서 결혼식이 성대히 열렸고 지방신문에서도 다루어지고 유명인사들이 하객으로 참석하였다고 한다.</div> <div>결혼식이 끝난 후 오키나와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br /></div> <div> </div> <div>s는 대학재학중부터 a코씨 이외에 여성수십명과 관계하고 있었다. 게다가 치바에 와서 부터는 소-프 요메(당시 21세/ 유흥업소 종업원을 소-프요메라고 함)와 생활하기도 하고 부인이 집에 없을 때는 집에 초대까지 하였다. </div><br /> <div></div><br /> <div>그녀와는 8월에 헤어졌으나 이후에 데려온 여성은 치바에서 알게된 필리핀댄서로서 (당시 19세)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직후에 교제를 </div> <div>시작했디. s는 그녀가 12월 하순 계약만료로 에히메현의 캬바레로 옮기자 거기까지 만나러 가기도 하였다.</div> <div>에히메현에 연말까지 체류하기도 하였다. s는 캬바레의 경영자에게 200만엔을 낼테니까 그녀를 치바로 데려가게 부탁 하였고</div> <div>그 때 사채업자에게 80만엔을 빌려 부인과 다투기도 하였다. (이 필리핀 여성은 후에 가수 데뷔를 하였다고 한다)</div><br /> <div></div><br /> <div>검찰에 따르면 부인이 방해가 된다고 생각 s는 가스폭발사고로 위장하기 위해 계획을 세워 1983년 1월 5일과 그 익일 주방의 가스를</div> <div>흘러나오게끔하여 a코씨가 전등 스위치를 키면 인화폭발하게 하려고 전구에 금가게 만들었지만 실패하였다. </div><br /> <div></div> <div>1월 6일 a코씨는 병원으로부터 전화로 s가 12월 20일부터 무단결근하고 있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이 일에 대해 추궁하자 필리핀댄서와의</div> <div>일들 그리고 자신을 살해하려고 했던 일들을 알게되었다. a코씨는 [친정에 가겠다]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섰으나 s는 </div> <div>[<strong>장인에게 알려지면 </strong><strong>인간으로서 의사로서 사회로부터 매장당한다</strong>] 라고 생각 전기코드를 들로서 쫓아가 집 앞에서 살해했다. <br /><br /><br /><b>【옥중 자살】</b></div><br /> <div><strong></strong> </div><br /> <div>s는 제1공판에서 기소사실을 부인 제5회 공판에서는 <strong>[강간당한 부인에게 부탁받았다] </strong>라며 청탁 살인을 주장하였고</div> <div>검찰측으로 부터<strong> [바람핀 것을 부인에게 알려지자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게 될까 죽였다</strong>]라는 주장이 대립하였다.</div> <div> </div><br /> <div>1984년 치바지검 s에게 징역 13년(구형 15년)이 선고하였다</div><br /> <div>1990년 3월 13일 최고심에서 상고기각 형이 확정되었다.</div><br /> <div>그리고 9일후 s는 동경구치소 독방에서 바닥(타다미로 되어있음 돗자리같은 형식)에서 실을 뽑아 자살하였다. <br /><br /></div><br /> <div>---------------------- ----------------------- s가 가족에게 남긴 유서 ------------------------ ------------</div><br /> <div align="center">저는 a코의 곁으로 갑니다.</div><br /> <div align="center">모든 분들께 여러가지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div><br /> <div align="center">어머니 .. 절 낳아주고 길려주셔서 감사합니다.</div><br /> <div align="center">제가 다시 태어난다 해도 다시 어머니의 자식이고 싶어요.</div><br /> <div align="center">한번 더 재판을 받고 싶었어요.. <br /></div></font><font size="2"><font color="#660066"><br /> <div><br /></div></font><br /> <div><br />이 자살로 인해 피의자 사망으로 공소기각되어 s는 의사면허도 박탈 당하지 않았다. <br /></div><br /> <div></div><br /> <div>일본원문 출처:http://yabusaka.moo.jp/index.htm</div><br /> <div>번역: 본인<br /></div></fo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