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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http://zcierocka.tumblr.com/
BGM 출처 : http://bgmstore.net/view/SzDkk
이윤학, 마을회관, 접는 의자들
누가 건드려도
누구의 체중을 받들어도
엄살이 빠져나온다
누가 남의 엄살 따위를 사랑하겠는가
삐걱거리다 버려질 운명을 타고난
녹슨 접는 의자들을 본다, 나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접는 의자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을 선전하지 않는다
접힌 의자들
칼날이 만든 상처 속에
변치 않는 스펀지를 펼쳐놓고 있다
깨진 창을 찾아드는 햇볕
칠이 벗겨진 곳을
집중 파고드는 녹을
접힌 의자들은 무시하고 있다
누군가를 대신해
아파줄 능력을 가진 사람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몇 십 년, 펴진 채로
대신 엄살을 피우기 위해
얼마나 회의 시간을 기다렸던가
나희덕, 부패의 힘
벌겋게 녹슬어 있는 철문을 보며
나는 안심한다
녹슬 수 있음에 대하여
냄비 속에서 금세 곰팡이가 피어오르는 음식에
나는 안심한다
썩을 수 있음에 대하여
썩을 수 있다는 것은
아직 덜 썩었다는 얘기도 된다
가장 지독한 부패는 썩지 않는 것
부패는
자기 한계에 대한 고백이다
일종의 무릎 꿇음이다
그러나 잠시도 녹슬지 못하고
제대로 썩지도 못한 채
안절부절,
방부제를 삼키는 나여
가장 안심이 안 되는 나여
이재무, 제부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거리 말인가?
대부도와 제부도 사이
그 거리만큼이면 되지 않겠나
손 뻗으면 닿을 듯, 그러나
닿지는 않고, 눈에 삼삼한
사랑하는 사람과의 깊이 말인가?
제부도와 대부도 사이
가득 채운 바다의 깊이 만큼이면 되지 않겠나
그리움 만조로 가득 출렁거리는,
간조 뒤에 오는 상봉의 길 개화처럼 열리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 말인가? 이별 말인가?
하루에 두 번이나 되지 않겠나
아주 섭섭지는 않게 아주 물리지는 않게
자주 서럽고 자주 기쁜 것
그것은 사랑하는 이의 자랑스러운 변덕이라네
이정록, 매미
여름 내내, 매미는
숲속 가득 전기면도기를 돌린다
철망 밖으로 칼을 내밀지 않고도
날을 돌려 푸른 수염을 깎는다
여름의 끝, 된서리가 몇 차례
땅의 살을 그은 뒤에야
면도를 마치고 나무에서 내려온다
그러나 벌써 겨울이다
살점의 마른 잎 위에
하늘은 다시 비누거품을 풀어놓는다
그 첩첩의 눈 속에는, 언제부턴가
흙에 코드를 꽂고 주름주름 충전을 하는 굼벵이들
봄을 향해 언 땅을 흔들고 있다
최승자,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한 숟갈의 밥, 한 방울의 눈물로
무엇을 채울 것인가
밥을 눈물에 말아먹는다 한들
그대가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 해도
혹은 내가 아무리 그대를 사랑한다 해도
나는 오늘의 닭고기를 씹어야 하고
나는 오늘의 눈물을 삼켜야 한다
그러므로 이젠 비유로써 말하지 말자
모든 것은 콘크리트처럼 구체적이고
모든 것은 콘크리트 벽이다
비유가 아니라 주먹이며
주먹의 바스라짐이 있을뿐
이제 이룰 수 없는 것을 또한 이루려 하지 말며
헛되고 헛됨을 다 이루었도다고도 말하지 말며
가거라, 사랑인지 사람인지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죽는 게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살아
기다리는 것이다
다만 무참히 꺾여지기 위하여
그리하여 어느날 사랑이여
내 몸을 분질러다오
내 팔과 다리를 꺾어
네 꽃병에 꽃아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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