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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http://requiem-on-water.tumblr.com/
BGM 출처 : https://youtu.be/4TA_PqIS1WM?list=PLh_SXExNPOYDqeHnCqZLwWXmaJRgxCeve
김명인, 집
새집들에 둘러싸이면서
하루가 다르게 내 사는 집이 낡아간다
이태 전 태풍에는 기와 몇 장 이 빠지더니
작년 겨울 허리 꺾인 안테나
아직도 굴뚝에 매달린 채다
자주자주 이사해야 한재산 불어난다고
낯익히던 이웃들 하나 둘
아파트며 빌라로 죄다 떠나갔지만
이십 년도 넘게 나는
언덕길 막바지 이 집을 버텨왔다
지상의 집이란
빈부에 젖어 살이 우는 동안만 집인 것을
집을 치장하거나 수리하는
그 쏠쏠한 재미조차 접어버리고서도
먼 여행 중에는 집의 안부가 궁금해져
수도 없이 전화를 넣거나 일정을 앞당기곤 했다
언젠가는 또 비워주고 떠날
허름한 집 한 채
아이들 끌고 이 문간 저 문간 기웃대면서
안채의 불빛 실루엣에도 축축해지던
시퍼런 가장의
뻐꾸기 둥지 뒤지던 세월도 있었다
박남준, 먼 강물의 편지
여기까지 왔구나
다시 들녘에 눈 내리고
옛날이었는데
저 눈발처럼 늙어가겠다고
그랬었는데
강을 건넜다는 것을 안다
되돌릴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 길에 눈 내리고 궂은 비 뿌리지 않았을까
한해가 저물고 이루는 황혼의 나날
내 사랑도 그렇게 흘러갔다는 것을 안다
안녕 내 사랑, 부디 잘 있어라
김종길, 설날 아침에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險難)하고 각박(刻薄)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정채봉, 오늘
꽃밭을 그냥 지나쳐 왔네
새소리에 무심히 응대하지 않았네
밤하늘의 별들을 세어보지 않았네
친구의 신발을 챙겨주지 못했네
곁에 계시는 하느님을 잊은 시간이 있었네
오늘도 내가 나를 슬프게 했네
전윤호, 사직서 쓰는 아침
상기 본인은 일신상의 사정으로 인하여
이처럼 화창한 아침
사직코자 하오니
그간 볶아댄 정을 생각하여
재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머슴도 감정이 있어
걸핏하면 자해를 하고
산 채 잡혀먹기 싫은 심정에
마지막엔 사직서를 쓰는 법
오늘 오후부터는
배가 고프더라도
내 맘대로 떠들고
가고픈 곳으로 가려 하오니
평소처럼
돌대가리 같은 놈이라 생각하시고
뒤통수를 치진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죄송합니다. 댓글 작성은 회원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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