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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humorbest_77804
    작성자 : 환단고기
    추천 : 49
    조회수 : 1769
    IP : 24.205.***.80
    댓글 : 0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5/01/06 17:45:44
    원글작성시간 : 2004/12/07 13:43:37
    http://todayhumor.com/?humorbest_77804 모바일
    한국의 역사는 한국인이 알아야 하는것이다.
    출처 한배달 - http://cafe.daum.net/hanbaedal

    치우학회 박정학 회장님 글 신동아 11월호 투고내용



    (본문내용)


    동북공정은 패권주의의 시현이다  
    신동아 11월호에 투고했던 내용을 올립니다. 

    동북공정은 일반적으로 평가하듯이 만주가 목적이 아니고,
    바로 수천년 동안 중국이 누려온 것으로 이야기하는 중화주의라고 하는 
    크다란 패권주의를 다시 만들어가는 길이라고 생각하며,

    그 다음 목표는, 
    따라서 당연히 동아시아 문화, 종족의 뿌리겪이 되는 치우라고 생각해봤습니다. 

    그리고 공동연구를 통해 지역이 하나되는 길로 가자고 제의했습니다. 



    (학술) 동아시아 고대사의 열쇠 '치우천왕' 논쟁 


    ("치우를 잃으면 고조선 역사도 사라진다") 


    ● '붉은악마'와 함께 부활한 치우는 역사인가 신화인가 
    ● 동아시아판 트로이 전쟁 '탁록대전' 
    ● 염·황·치의 자손임을 강조하는 중국의 속내 
    ● 치우는 동아시아 공동의 조상이다 

    박정학/ 치우학회 회장 [email protected] 



    중국이 지난해부터 5년에 걸쳐 200억 위안(약 3조원)을 투입해 
    고구려를 그들의 역사 속으로 편입시키는 
    '동북공정(東北工程)'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라고 한다. 

    중국 공산당을 대변하는 '광명일보'는 
    아예 '고구려는 중국 역사의 일부분'이라고 못박았다
    (자세한 내용은 '신동아' 9월호 '중국은 왜 고구려사를 삼키려 하는가' 참조). 

    이 소식을 접한 한국인들은 
    왜 갑자 기 중국이 남의 나라 역사를 훔쳐가려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다. 
    단순히 중국의 국경문제나 동북지역 소수민족의 동요를 차단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며, 
    따라서 고구려사 왜곡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 속에는 중화사상이라고 하는 오래된 중국의 패권주의 역사가 자리잡고 있다. 


    고구려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한 동북공정의 다음 목표는 
    치우천왕(蚩尤天王)이 될 것이다. 


    치우를 중국 역사로 편입함으로써 
    기자조선, 위만조선, 한사군(이 부분은 이미 그들의 역사가 됐다)을 포함한 
    고조선 전체의 역사를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치우천왕의 존재는 2002년 월드컵 대회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붉은 악마'의 상징물로 활용된 귀면(鬼面)의 주인공이 바로 치우천왕이다. 

    B.C. 28∼26세기에 존재했던 치우는 
    금속을 제련하여 무기를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각종 전투에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해 황제 헌원을 위협했다. 

    그래서 훗날 사람들은 전쟁신/군신/수호신으로 그를 받들었다. 




    (치우천왕은 누구인가 ?) 


    치우에 대한 기록은 '사기'를 비롯해 40여종의 중국 사서에 등장하지만 
    불행하게도 한국의 정사에는 남아있지 않다. 

    다만 '환단고기'나 '규원사화'처럼 위서僞書)로 치부되는 책에 자세히 기록돼 있을 뿐이다. 
    먼저 '사기'를 비롯한 중국 역사서에 나오는 치우 관련 기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치우는 구려의 임금이었으며, 고대 천자의 이름이다. 
    ▲ 구리 머리에 철 이마(銅頭鐵額)를 하고 모래를 먹었으며, 
    금속을 제련해서 다섯 가지 병기를 만들었다
    (청동기 유적 발굴로 입증되고 있음). 
    ▲ 난을 일으키기 좋아하고 난폭하여 황제에 굽히지 않다가 결국 잡혀 죽었다. 
    ▲ 그의 묘는 산동성 수장현에 있고, 매년 10월에 제사를 올리는데 붉은 연기가 솟아올랐다. 
    ▲ 군(軍)의 우두머리는 모두 그에게 제사를 올렸는데, 
    특히 유방은 통일을 위한 마지막 풍패전투에 나가기 전에 
    치우사당에 참배하고 승리한 후 서안에 그의 사당을 짓고 높이 받들었다. 


    한국의 사서에 나오는 치우에 대한 기록으로는 
    '
    삼국사기'와 '동사강목'에는 
    '치우기'라는 혜성이 나타났다는 내용이 유일하며, 

    '연려실기술' '대동야승' '청장관전서' 등에도 중국의 기록을 인용해 놓았을 뿐이다. 

    '성호사설'에는 
    우리의 민속을 설명하면서 치우를 수호신으로 모시고 
    제사(이순신의 '난중일기'에도 치우사당에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세 차례 나온다)를 지냈다는 내용이 약간 언급돼 있다. 


    그러나 

    '환단고기'와 '규원사화'에는 

    치우천왕이 배달나라 14대 임금(재위 109년, B.C. 2707∼2599)이며 
    황제와 치우가 패권다툼을 벌이게 된 경위, 

    치우가 만들었다는 무기의 종류와 전투방법, 

    10년간 73회나 치렀다는 주요전투의 내용, 
    염제 휘하의 한 군장이었다가 난을 평정하는 과정에서 염제로 등극하는 과정, 
    쇠를 캐어 제련하는 과정 등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지금까지의 기록을 종합해 보면 
    치우는 바로 '고구려'의 전신인 '구려(九黎=九麗·九夷·句麗)의 임금이었으며, 
    치우가 수도를 청구로 옮겼다고 했으니 
    구려의 영역은 태백산 신단수가 있었던 만주지역에서 청구가 있는 산동반도까지 이어졌다. 

    기마족의 이동 폭이 넓는 것을 인정하면 이해가 된다. 


    오늘날 중국역사학자들은 
    상고시대 동북아시아는 화하족(華夏族 또는 漢族), 동이족(東夷族), 묘만족(苗蠻族) 등 
    3개의 부족집단이 있었다고 본다. 


    분포지역을 보면 

    화하족은 

    섬서(陝西)성 황토고원을 발상지로 
    황하 양안을 따라 중국의 서방과 중부 일부지역을 포함했고, 
    황제가 대표적 인물이었다. 


    동이족은

    산동(山東)성 남부를 기점으로 
    산동성 북부와 하북(河北)성, 만주지역, 한반도, 일본까지 이르고, 
    서쪽으로는 하남(河南)성 동부, 남쪽으로는 안휘(安徽)성 중부에 이르며, 
    동으로는 바다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 거주했는데, 

    동이족을 대표하는 인물로는 
    소호/태호/염제/치우 등이 있다. 



    묘만족은 
    호북(湖北)성과 호남(湖南)성을 중심으로 거주하였는데, 
    삼묘/구려/형만/요족 등 30여 개의 지파가 있으며 치우는 그들의 공통 조상이다. 

    여기서 치우는 
    동이의 대표적 인물이면서 묘족의 조상이기도 하니, 
    구려가 동이의 부락이었다가 남쪽으로 이동하여 묘족연맹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트로이전쟁 못지 않은 탁록대전) 


    치우 시기에 이르러, 
    동이 연맹(고을사회로 볼 때)을 다스리던 
    염제(왕호, 사람이름이 아니라 여러 명의 염제가 있음) 유망이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여 기강이 문란해지면서, 

    같은 동이연맹 군장의 아들이던 황제 등이 제위를 탐하므로 
    이를 바로잡기 위해 구려족 임금인 치우가 일어나는데, 
    어리석은 염제 유망이 제위를 찬탈하려는 줄 알고 황제와 손을 잡고 치우와 대적한다
    (이에 앞서 염제는 황제와의 싸움에서 졌다). 


    하지만 
    황염동맹은 치우에게 대패하고, 
    치우는 공상에서 동이족연맹의 임금인 염제가 되니 마지막 염제였다. 

    같은 동이족 연맹의 일원이던 
    치우와 황제 헌원은 10년 간 73회나 싸웠으나 
    황제는 늘 패했고, 

    그러면 여성들에게 쫓아가 도움을 청하여 그 군대를 이끌고 다시 도전했다가 
    또 패하곤 했다. 

    여기서 여성의 도움을 받았다는 기록을 
    '여성들이 황제를 좋아했다'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지만, 
    당시는 모권사회였으므로 각 부락의 실질 지도자가 여성이었음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 

    치우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무기인 금속무기를 만들어 사용했으며, 
    안개를 일으키고 비와 바람을 부르는 등의 도술을 행했다고 하니 승리는 당연했을 것이다.

    그 후 그들의 마지막 싸움이자 
    동양 역사기록상의 첫 대전인 '탁록대전'이 
    현재의 베이징 서북쪽에 있는 탁록에서 벌어진다. 


    이 대전은 
    기마족이 내려와 농경족과 섞인 동이족 가운데서 부계사회를 지향하는 
    기마족 문화의 치우와 모계사회 지향의 농경문화의 황제간의 충돌로서, 
    김상일 교수는 동쪽의 정신문화와 서쪽의 물질문화의 충돌이라고 설명한다. 


    이 전쟁으로 중국에서는 치우가 죽었다고 하고, 
    우리쪽 기록에 따르면 치우군의 부장인 치우비가 죽었다고 한다. 

    그러나 
    전투 치우는 묘족의 시조가 됐고, 
    무덤이 산동반도 서남쪽에 있으며, 
    군지도자들이 제사지내는 군신으로 추앙받았다는 기록 등으로 보아 
    탁록에서 죽지는 않았다는 이야기도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최근 

    탁록중화삼조문화연구회(탁鹿中華文化硏究會)는 
    탁록지역에서 4개의 치우무덤을 찾아내고, 
    그 중 한 개가 진짜 치우무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치우가 탁록에서 죽었다는 기록을 뒷받침하려는 의도다. 


    그러나 
    산동성에서는 '한서'의 기록을 인정하여 
    지역 내에 있는 3개의 무덤 중 문상현 남왕진의 무덤을 진짜 무덤으로 보고 
    작년부터 복원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어쨌든 탁록전투로 인해 
    동북아시아의 동·서 문명의 특성이 구분되어 뚜렷하게 다른 문화집단이 형성되었으며, 
    그 두 문화집단(모권·물질 : 부권·정신)의 갈등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순임금이 부권사회를 지향하다가 
    자기 딸들에게 독살 당한다는 금문학자들의 주장을 보더라도 
    역사적으로 모권과 부권의 경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다. 



    (치우에 집착하는 중국)


    이렇듯 의미가 깊은 치우천왕의 역사지만, 
    그의 활동영역이 대부분 현재의 중국 땅인 데다 
    국내문헌사료의 부족 등을 이유로 국내 학계는 치우 연구를 소홀히 했고, 
    아예 중국의 고대 신화인물이라고 치부하고 있다. 

    반면 중국 측은 몇 년 전부터 
    "치우는 묘족의 선조일 뿐 아니라 황제, 염제와 더불어 
    중화민족 역사의 3대 인문시조(人文始祖)"라고 주장하고 
    치우 복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치우가 중국의 조상이라면 
    그가 다스린 '구려'와 그 후신인 고구려는 자연스럽게 중국 역사에 편입되고, 
    치우의 영역과 법통을 이어받은 고조선 역사마저 중국에 귀속될 것이다. 


    전통적으로 중국인들은 
    삼황오제(三皇五帝)를 신화적 존재로 보았고, 
    하우(夏禹)부터 실존 역사로 취급했다. 


    황제의 자손인 하우를 그들의 조상으로 받들면서 
    스스로를 화하족(華夏族 또는 漢族)이라 불렀다. 

    그 외에 
    염제의 후손인 동이족과, 치우의 후손인 묘만(苗蠻)족은 오랑캐라며 야만족 취급을 했다.


    1997년 4월 호남성 이안링현(炎陵縣)에 있는 염제 신농의 능을 찾아갔다가 
    높은 산 위에 '염황지자손(炎黃之子孫)'이라는 큰 간판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보았다. 

    중국인들이 
    황제의 자손(子孫)일뿐 아니라 염제의 자손이기도 하다는 것을 강조한 문구였다. 


    그동안 중국에서는 
    유적유물의 발굴작업이 진행될수록 황하문명을 비롯해 
    선진(先秦) 문명의 주인공이 그동안 오랑캐라 비하하던 동이족임이 드러나고 있었다. 

    한자를 비롯해 
    우수하다고 알려진 많은 중국문화가 한족의 문화가 아니라는 연구도 속속 나옴에 따라 
    황제의 자손인 것만 강조해서는 앞뒤가 맞지 않아 
    더 이상 정통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상태가 된 것이다. 



    여기에 1988년 덩샤오핑(鄧小平)이 
    '염황자손(炎黃子孫)'이라는 휘호(揮毫)를 앞세워 '소수민족 끌어안기'를 강조함에 따라, 

    중국 내에서는 
    동이족의 시조 염제(炎帝 神農)를 자기들의 시조에 포함시키려는 운동이 벌어졌다. 

    정치적 목적의 '동화정책'에 따라 한 민족이 두 조상을 갖게 된 것이다. 


    1999년 6월 필자는 
    '한배달' 치우학회 회원들과 함께 동이족의 역사현장을 답사하기 위해 
    산동반도와 탁록지역을 찾았다. 

    북경의 서북쪽에 있는 탁록에는 
    탁록중화삼조문화연구회(탁鹿中華三祖文化硏究會)가 주축이 되어 
    1995년에 세운 귀근원(歸根苑)이라는 사원이 있고, 

    그 가운데 
    '삼조당(三祖堂)'에 염제·황제·치우제 세 사람의 좌상을 안치하고 참배를 하고 있었다. 

    이미 치우가 중국의 역사에 편입되었음을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치우를 
    '난폭하고 난을 일으키기 좋아하는' 야만족으로 취급하고, 
    염제와 황제의 가장 큰 업적이 치우의 정벌이라 자랑하던 중국인들이 
    이제 치우를 황제·염제와 같은 반열에 올려 

    스스로 '염·황·치('炎·黃·蚩)의 자손'이라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조상이 셋이 된 이상 황제의 자손이라는 화하족만으로는 이를 설명할 수 없으므로 
    화하족(황제의 후손)과 
    동이족(염제의 후손) 및 
    묘족(치우의 후손)을 합쳐 

    '중화족'이라는 새로운 민족 명칭을 만들어냈다. 


    '중국은 한족(漢族)과 55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라는 말도 옛말이 되었고, 

    이로써 중국은 
    동이의 역사, 묘족의 역사를 모두 '중화족'의 역사에 포함시킬 수 있는 근거를 갖게 됐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중국에서 '염·황·치' 삼조를 모시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기 시작하여, 
    93년 10월 '탁록중화삼조문화연구회' 임장화(任昌和) 회장이 
    '염·황·치 삼조문화의 관점'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공식화되기에 이른다. 


    이어 
    탁록삼황삼조문화학술토론회가 열리고, 
    95년에 귀근원을 만들면서 삼조문화가 전국적으로 퍼져나갔으며, 후속 연구도 활발했다. 


    한마디로 정부의 지원 아래 대대적인 치우 끌어안기 사업이 진행된 것이다. 

    2001년 산동반도의 치우무덤을 찾았을 때 주민들 대부분이 그 위치조차 알지 못했으나,
    2002년 봄 명지대학 진태하 교수 일행이 그곳을 다시 찾았을 때는 
    산동성의 치우 무덤을 복원 중이었다. 

    또 
    호남성 화현현에 치우의 동상을 세우고 1993년부터 '간추절(走干秋節)' 행사를 개시하여 
    묘족의 독특한 문화전통을 살리면서 
    경제발전의 중요한 창구로 사용하기도 하고, 
    세계 치우학술대회를 열어 치우에 대한 연구범위를 세계로 확대하고 있다. 


    이는 
    치우와 관련한 문화의 흔적이 
    미국 오대호지방과 
    남아메리카, 
    유럽 및 북구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중국학자 왕대유의 주장에 따른 것이다. 


    이처럼 중국인들은 
    1980년대까지 자신들의 조상인 황제에 대항했다 해서 미워하던 치우를 
    공동조상으로 받들면서 세계적인 공인을 얻고자 노력하고 있다. 



    (치우 무덤과 유적복원 활발)


    2001년 
    옌벤대학에서의 치우학술대회에서 

    중국측으로서는 유일하게 치우에 대해 발표한 짜오위다(趙育大)씨는 

    "치우의 문화가 한족의 문화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황제와 치우 중 누가 정통이고 누가 비정통이라는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우리와 비슷한 주장을 하기도 했으나, 

    "중화민족은 황염동맹을 핵심으로 한다" 
    "'치우는 묘족의 시조"라고만 하고 동이족의 수장이었음은 간과'했다. 




    또 
    "중화문명사에서 전환적인 의미를 띄는 인문시조"라고 하여 
    당시 동서문명충돌론이 아니라 중화문화라고 하는 문화집단만을 강조했다. 


    한편 
    "치우가 탁록에서 죽었으므로 그 무덤도 당연히 탁록에 있어야 한다"면서 
    산동성에 있다는 '한서'의 기록을 무시하는 등 
    치우라는 걸출한 인물을 인정하면서도 
    중화문화라고 하는 카테고리 속에서만 보려고 해 
    '동서 문화충돌론'을 발표했던 한신대 김상일 교수와 상당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김 교수는 
    "두 문화집단이 있어 충돌이 생기는 것이므로 중화문화 하나만 강조해서는 안 된다"며 
    중화주의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리고 
    필자가 "공동시조로서 함께 연구하자"고 제안해 앞으로 연구 교류하기로 합의했다. 

    이 학술대회를 통해 
    옌벤대학의 교수들에게 '치우는 우리 조상'이라는 점을 알려줌으로써 
    "우리도 연구를 시작하겠다"는 반응을 얻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정부가 과연 조선족에게 그런 연구를 허락할지 미지수다. 


    이렇게 
    중국이 치우에 집착하는 이유에 대해 단순하게 
    소수민족을 끌어안는 동화정책의 일환이며, 
    한반도의 남북통일시 생길 수 있는 국경문제에 대비하고, 
    문화유적의 관광자원화를 통한 경제발전을 추구하는 실리적 목적이라고 짐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고구려는 물론 
    고조선을 포함하는 동이·묘족과 관련된 모든 역사를 
    하나의 중국사로 끌어가려는 논리로서, 
    패권주의인 중화사상의 부활을 예고하는 것이라 하겠다. 



    (삶 깊숙이 자리잡은 치우의 흔적)

    이처럼 중국이 일방적으로 치우 연구를 진행하면서 
    모든 치우의 후예들을 '중국인화' 하는 것을 경계하려면 
    국내에서도 치우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사실 치우를 한(漢)족의 시조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이미 '중화족' 속에 포함된 동이와 묘족의 조상인 것은 분명하다. 

    즉 
    치우는 우리의 조상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조상이기도 한 것이다. 

    결국 누가 더 많은 연구를 하고 어느 지역에 그 흔적이 원형대로 많이 남아 있느냐, 
    또 그 유산을 누가 더 현대화하느냐에 따라 

    치우의 역사가 중국의 것이 되거나 우리의 것이 될 수 있고, 
    또는 둘 다의 것이 될 수도 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치우에 대한 정서와 평가는 일반 대중과 학계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지난 월드컵 이후 국민들은 치우를 당연히 우리 역사로 인식하고 있는 반면, 
    학계는 '치우가 우리의 조상이라는 것을 뒷받침해줄 실증적 자료가 없다'며 
    여전히 '중국 고대의 신화적 인물'로 보고 있다.


    앞서 밝혔듯이 
    그나마 치우에 대한 기록이 있는 책들은 모두 위서(僞書)로 취급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일상생활 곳곳에서 치우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장승의 모습으로, 
    혹은 주요 건물 입구에 서있는 해치(또는 해태, 사천왕)의 모습으로 
    치우는 우리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친밀한 홍소로, 
    나쁜 마음을 품은 사람에게는 무서운 포효로 보이는 표정을 통해 
    악귀로부터 마을의 재액을 막아주고 있는 것이다. 

    또 
    기와집 치미나 
    막새기와(귀면와)에 위치하여 
    집을 화재와 재액으로부터 보호해주고, 

    동짓날에는 붉은 빛 팥죽이 되어 병마와 액운을 막아준다. 

    또한 
    단오절 적령부(赤靈符)라는 붉은 부적을 통해 개인과 집안을 보호해주기도 하고, 
    군사들의 방패와 무기와 군기(軍旗), 투구 등에 새겨져 
    승리를 일궈내는 군신으로 작용을 하며, 
    잡귀를 막아주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붉은 도깨비로 항상 우리 곁에 머물렀다. 


    도깨비 연구가 조자용 박사나 윤열규씨에 의하면 
    도깨비는 중국과 일본에도 있지만 
    한국의 도깨비만이 소뿔이나 자신감에 넘치는 홍소 등 치우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소뿔 투구를 쓰고 경기를 하는 치우희, 
    고구려 벽화에서는 각저희라고 했던 씨름은 
    현재 우리 민속의 대표적인 놀이가 되어 있으며, 
    소뿔 대신 황소를 상으로 주고 있다. 



    (상고사 연구는 어디로)


    사실 한국 상고사 연구자들은 
    정사로 인정할 만한 단군 이전의 민족사 기술이 거의 없어 발을 구른다. 

    단군도 신화적인 인물로밖에는 취급할 수 없는 상황이니 
    그 이전의 역사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고 있는 한민족, 배달민족이라는 말의 출처가 
    바로 '환단고기'라는 것이다. 


    책 자체는 위서로 의심받고 있지만 
    이 책에서만 볼 수 있는 한민족, 배달민족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인류학의 보편적인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1만년 전후 중석기 내지 신석기 시대가 되면서 
    떠돌이 생활을 마감하고 정착생활을 시작하는데, 

    이때는 작은 부락 부락단위로 생활했기 때문에 
    부락사회, 또는 마을사회(단국대 윤내현 교수의 주장) 시대라 한다. 


    그러다 
    약 6000년을 전후하여 인구가 급격히 늘면서 식량이 부족해지자 전쟁이 일어나고 
    자기 보호를 위해 서로 연맹을 시도한 부락연맹사회, 또는 고을사회(윤내현)가 형성된다. 

    그 후 
    청동기가 사용되기 시작한 4500년 전후 고대국가가 탄생했다. 
    기록이 있는 것은 바로 국가사회부터다. 
    그 이전의 역사는 창세신화를 비롯한 다양한 신화와 전설의 형태로 전해졌다. 


    그렇다면 
    우리 역사에도 고조선이라는 국가 이전에 마을이나 고을사회 단계가 있었을 것이며, 
    이와 관련한 신화나 전설이 구전이나 무가(巫歌) 형태, 또는 야사로 남아 전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학계는 
    단군 이전 시대를 역사화 하는 데 관심이 없었으며 
    아예 역사에서 지워버림으로써 그 속에 포함된 치우의 역사도 당연히 함께 없어지고 말았다. 


    중국 역사책에 
    '치우가 동이족이며, 구려의 임금'이라고 적혀있는 만큼, 
    만약 그 때를 우리의 고을사회 역사로 해석해 

    '환단고기'나 '규원사화'의 내용으로 이를 보완한다면 
    훌륭한 단군 이전사가 만들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도도 해보지 않고 우리 스스로 한민족의 역사를 한반도 안으로 가져왔다. 


    예를 들어 
    만주지역에 있던 요/금/원/청은 고조선과 고구려의 영토에서 일어났으며, 
    중국 고대사에서 동이로 분류되던 민족이 세운 나라들이다. 


    따라서 

    우리 겨레의 역사에 포함시킬 수도 있으나 
    우리는 말갈, 여진, 만주족이라며 오랑캐로 몰았고 우리의 역사에서 제외시켰다. 
    대신 중국은 "지배를 받았지만 문화로 흡수했다"는 논리로 
    자국 역사에 포함시키고 있다. 

    대조영이 세운 나라 또한 처음에는 '진'이었으나, 
    당나라가 멋대로 '발해국왕'에 봉하자 나라 이름도 발해로 바꾸었고, 
    지금도 우리가 스스로 부른 이름 '진'보다는 '발해'라고 부르고 있으니, 
    중국은 이를 근거로 '발해가 당의 지방정권'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 실린 지도를 보면 
    난하 동쪽, 청천강 이북까지만 고조선 영역으로 표시하고, 
    그 남쪽을 삼한이라고 해놓았다. 

    그리고 
    많은 국내 학자들이 한민족의 형성을 신라통일이나 고려의 재통일 이후로 보고 있다. 

    바로 '광명일보'의 주장처럼 
    '고씨 고려(고구려)와 왕씨 고려는 다르므로 
    고구려는 중국, 고려는 삼한의 후예인 한민족'이라는 
    주장이 나올 수 있는 빌미를 우리 스스로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고조선이 자기들의 역사라고 주장할 날도 멀지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또 국내 학자들은 
    한반도 밖의 한민족 청동기 문화를 인정하지 않는다. 

    신용하 교수 등 일부 학자들이 
    고조선 영토로 거론하기도 하는 산동반도와 만주 라오녕성의 경우 
    B.C. 25세기까지의 청동기 유물이 나오고 있으나 우리의 문화로 인정받지 못했다. 

    북한이 주장하는 
    대동강 유역의 B.C.30세기 청동기 유물이나, 
    양수리에서 출토된 B.C. 24세기 청동기 시대 유물들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이렇듯 
    민족의 형성기라고도 볼 수 있는 우리의 청동기 시기가 B.C. 10세기 설에 묶여 있으니, 
    그 이전 인물인 치우는 물론 
    단군조차 당연히 역사적 인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 중국 학자가 
    "한자는 한(漢)족의 언어체계와 맞지 않으므로 
    한족이 만든 글자가 아니라, 동이족의 글자다"
    라고 주장을 해도 

    동이족의 핵심이라는 우리나라에서는 
    한자는 중국글자라며, 우리 겨레의 글자일 가능성조차 무시해버린다. 


    이처럼 
    우리 사학계가 만주를 포기하는 동안 
    국민들은 의분에 젖어 백두산 관광길에 올라 '만주는 우리땅!' 이라는 
    현수막을 걸어놓고 애국가를 부르는 등 
    대책 없이 중국 측을 자극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중국정부가 
    한국의 국무총리에게 항의서신을 보내는 등의 해프닝이 발생하는 것도, 
    알고 보면 한국 고대사에 대한 논리적, 학문적 연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치우에 대한 연구는 재야에서 진행되고 있다. 
    겨레얼 바로찾기 운동단체인 사단법인 한배달은 
    99년부터 중국의 치우 연구 현황을 파악하는 한편, 
    그 해 12월말 치우학회를 설립해 국내외 치우 관련 사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2000년과 2001년에는 
    한국과 중국(옌볜대학)에서 각각 치우학술대회를 열고, 
    치우자료집과 학회지를 발간하기도 했다. 

    경기대 법정대 고준환 교수가 '치우천황'이라는 책을, 
    소설가 이우혁이 '치우천왕기'라는 소설을 발표했지만, 
    학계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했다. 


    (우리 스스로 포기한 역사)


    2001년 옌볜대학에서 열린 
    제2회 치우학술대회(주제 '고대동아시아 종족과 한민족')에서 확인한 바는 
    옌볜대학을 비롯한 중국내 조선족들에게 
    고구려 이전 역사연구가 금기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동이족. 묘만족, 화하족을 합쳐 '중화족'이라고 하면서도 
    우리 민족이 세운 나라임이 분명하고 선후를 이은 관계인 
    고구려, 발해에 대해서도 고구려족, 발해족 등 
    나라마다 민족의 이름을 붙여 같은 민족임을 부정하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소수민족을 우대한다고 하지만 
    결국 소수민족을 더욱 작은 단위로 나누어 자체연대나 단결의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보였다. 

    이런 큰 그림 속에서 
    고구려사를 중국 역사에 포함시키는 '동북공정'이 계획되고 진행되는 것이다. 


    2003년 봄 
    동북아 경제포럼이 열린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이 지역은 본래 아시아인들이 살던 곳이지만 지금은 백인들이 주인이다. 
    1860년대 러시아가 부동항을 얻기 위해 극동함대를 앞세워 
    백인들을 이곳에 이주시키고 
    대신 아시아인(특히 고려인들)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시킨 결과다. 


    블라디보스토크 역사관은 1860년 이전의 역사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불과 150년 만에 
    인구의 구성과 역사의 주도세력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확연히 보여주었다. 
    미국 역시 200여 년 만에 원주민인 인디언의 역사는 사라졌다. 


    이렇게 지역의 역사와 종족의 역사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서술자의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만약 
    '만주지역과 산동반도 지역이 수천 년 전에도 중국 땅이었고, 한족이 거주하고 있었다'는 
    오랜 고정관념을 버리면 우리 고대사는 다시 쓰여져야 할 것이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사람의 시각에서 쓰면 
    처음부터 자신들의 영역이었던 것처럼 쓰거나, 그 이전의 역사는 빼버릴 가능성이 높다. 


    마치 미국과 블라디보스톡의 역사에서 원주민들의 역사가 지워진 것과 같다. 
    반대로 과거 거주했던 종족(원주민)의 시각에서 쓰면 
    미국은 인디언의 역사, 블라디보스토크는 발해인들의 역사가 될 것이다. 



    (주도권 싸움 대신 공동연구를)


    현실적으로 보면 둘 다 옳다. 
    그리고 둘 다 사실이다. 
    그러나 이 둘이 조화돼야 완전해진다. 

    양국의 공통 조상인 치우 문화라는 공통점이 
    한국과 중국이 연대를 쉽고 강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치우의 역사가 종족간 다툼의 빌미가 아니라 협력과 화합의 근거가 돼야 한다. 

    치우의 종족적인 계보로 따지면 
    중국의 만주-산동반도-남서지역, 한반도, 일본, 대만, 동남아 지역까지 
    동이와 묘족의 거주영역이 모두 해당한다. 

    그들이 각자의 관점에서 치우를 연구하고 발전시키며, 
    상호 교류를 통해 문화의 공통점을 찾아낸다면 
    아시아 공동체를 만드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다. 


    고구려도 마찬가지다. 
    만주지역은 배달나라 시대를 빼더라도 
    고조선-고구려-진(발해)까지 약 3300년 동안 한민족이 나라를 세우고 거주했던 지역이다. 

    그러니 
    여기서 '지배층은 고구려족, 피지배층은 말갈족'이었다고 이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 
    어떻게 3300여 년 동안 하나의 집단을 이루고 살면서 민족이 다를 수 있겠는가. 

    말갈, 여진, 몽골, 만주족은 
    한민족 내지 배달민족(중국에서는 동이족)의 지류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우리와 일본의 조상이기도 하고 
    중국 동이족이나 묘족의 조상이기도 한 치우천왕. 

    각자가 자기 민족의 선조로 기록하고 있고, 양쪽이 다 옳다면 결론은 이렇다. 


    당시 동아시아에 큰 문화집단이 있었고, 
    그 지도자가 치우와 황제였으며, 
    그들 간에 충돌이 있어 그로 인해 각자의 문화 독창성이 더 강화되거나 
    상호교류를 통해 새로운 문화가 싹트기도 했을 것이다. 


    김상일 교수는 이를 동서문화의 충돌로 보았다. 
    종족의 이동과 문화의 이동도 있었을 것이다. 
    그 과정을 추적하여 동아시아의 상고사를 재정립하는 것이 
    오늘날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남겨진 과제다. 


    중국이나 중화만이 중심이어서도 안 되며, 한민족만이 중심이라고 해서도 안 된다. 
    각국이 보유한 역사기록과 전설, 신화, 민속 자료들을 최대한 수집하여, 
    너와 나를 버리고 양쪽의 공통 조상, '우리'의 조상인 치우를 연구하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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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펌입니다..www.coo2.net에서 퍼왔습니다..(역사에만 관심이 있는터라..)이런 글들을 보면

    중국인들이 한국인들보다 한국역사를 더 잘아는것 같더군요..단순한 '짱꼴라','짱깨'들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지식을 쌓아서 그들의 동북공정에 대응해 줍시다.

    ps.55개의 추천이 필요한 글로 가셔서 읽어보시고(펌글이 아닌 최초의 자작글..;;)생각해주시고
    추천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umorbest&no=72419&page=1&keyfield=name&keyword=환단&sb=1

    주소입니다.
    환단고기의 꼬릿말입니다
    제 꼬릿말입니다..길지만 읽어주시고 신중히 생각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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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대부분의 사람은 모를지 몰라도 일본과 중국이 합작해서
    한국 역사 개박살 내는거 장난 아닙니다.
    중국이 고구려, 발해를 따먹은 것은 오래 전이며 거의일본도 고구려와 발해를 한국의 역사로 인정 안합니다. 일본은 발해가 일본에게
    조공을 했으니 일본의 신하국가라고 하더군요(털썩)
    백제는 한반도보다 중국과 일본에 엄청난 땅을 소유한 거대한 해상국가입니다.백제의 땅은 중국50%, 한반도 10%, 왜의 40%인데(지도 보셨나요?
    전 기절하는줄 알았습니다. 정말 거짓말이 아니라 고구려의 만주벌판이 초라할 정도입니다.)지금 백제를 중국과 백제의 역사로
    나누어먹고 있습니다.(한반도에 소유한 땅이 가장 작아서)
    온달과 평강공주는 중국의 아름다운 옛날이야기가 되겠고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은 중국의 통일전쟁으로 기록되겠네요. 고구려와 한핏줄인 백제도 중국역사가 되겠네요. 계백장군, 의자왕과 삼천궁녀와 더불어.. 고구려, 백제, 신라는 엄연한 한민족이며, 언어도 같아서 통역관을 쓰지 않고 직접 대화를 했다고 합니다.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해 안의 일본섬으로 되어 세계에 알려진지 오래입니다.
    일본 내에서 가야가 이미 일본의 속국으로 된것은 다 아시죠?
    독도는 일본땅, 일본은 우리땅이니 괜찮다 이런 헛소리 할때 이미 독도와 울릉도는
    일본에 넘어가고 없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뚜렷히 나와있고 자세히 설명까지 되있는 한국 최고의 과학자 상호군 장영실의 걸작 측우기와 세계최초 금속활자물
    무구정광대다라니경도 중국 문화재라고 주장하고요.
    노무현 대통령 취임하고부터 계속 역사연구에 대해 전폭적인 지원과 따로 역사연구부서를
    만들기를 계속 염원했는데 독도문제와 고구려 문제 보고 있으니까 정말 실망스럽네요.
    노통의 독도대응
    내 아내를 남이 자기 아내라고 우긴다고 그 아내가 남의 아내가 됩니까?

    노통의 고구려대응
    내 할아버지를 남이 자기 할아버지라고 우긴다고 그 할아버지가 남의 할아버지가 됩니까?
    .
    ..
    네, 그래서 지금 남의 아내가 되고 남의 할아버지가 되고 있습니다.
    어제부터 고구려역사가 중국역사로 베이징대학교에서 가르쳐진다는데
    노무현대통령은 오늘부터 여름휴가 떠난다는군요....제기랄.
    친일파 때려잡는 것도 좋지만 독도와 고구려 관리도 해야하는 것 아닙니까?결국 이렇게까지 온게 성질나고 분합니다. 왜 대통령은 관심이 없죠?
    지금 주도권잡느라 역사는 내팽개치고 뭐하는 짓입니까? 친일파 빨랑 다 때려잡고 역사좀 지켜주세요. 지금 너무너무 가슴이 답답하네요.
    북한을 믿었는데 중국에게 찍소리도 못하더군요. 역시, 북한은 중국 쫄따구야..김정일, 실망했다. 중국이 북한을 따먹을 준비는 다 되어 있는것 같습니다.남북분단은 러시아와 미국이 나누어 먹다가 생긴것인데 중국이 북한을 먹으려 발광합니다.

    제 꿈이라면,,,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웹싸이트가 하나씩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고구려'라고 치면 싸이트가 하나만 뜹니다.
    '대한민국 공식지정 고구려 홈페이지'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가면 한국자료(삼국사기,삼국유사등등)과 일본자료, 중국자료(삼국지 위지동이전 등등)가 방대하게 있고(때놈, 쪽발이들 찍소리 못하게...토론할때 이 사이트만 있으면 자료는 끝장날 정로로...), 나중에 인지도가 높아지면 인기투표도 하고...
    1)광개토대왕 2)평강공주(-_-;) 3)을파소 4)온달.5)삼천궁녀1호 6)삼천궁녀2호.........
    3005)삼천궁녀3000호......신라,고조선,백제등등도 이렇게..
    (우리나라 인물 많습니다.삼국지? 우습습니다.)
    '고구려'라고 쳤을때, 잡다하고 도움 안되는 수십개가 아닌,
    정말 고구려를 대표하는 것이 하나만 존재하는것이 제 꿈입니다.
    너무 허황된 꿈일까요?
    중국과 일본의 경우, 수많은 역사가들이 달라붙어 엄청난 조작자료를
    만들고, 그것들을 체계적으로 실제 역사와 교묘하게 묶어서
    반박 불가능한 엄청난 이론을 만듭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정부의 지원도 거의 받지 못하고 그저 몇명의 학자가 죽어라고 개인의 재산을 털어 자료를 모으기 때문에 겨우 사진 몇점, 글 몇개 정도에 그치며 일본, 중국 학자가 반박하면 변명할 수 있는 자료도 없다고 합니다.
    인터넷에서 '다케시마'를 쳤을때 나오는 정보는 '독도'를 쳤을때 나오는 정보의 수십, 수백배라고 합니다. 중국의 반일감정이 심한데도 불구하고 중국은 임나일본부설을 인정하고 일본해표기를 하죠. 솔직히 '동해'는 한국의 입장만 반영한 것이지만 '일본해'또한 일본의 입장만 반영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에 '동해/일본해'로 병행표기하도록 해야 하고, '독도'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우리 땅으로 찾아야 합니다.(현재 공동수역입니다.)

    애국가에 '일본해와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이란 구절이 생기기를
    원하시는 분은 아무도 안계시겠죠? 정부가 도와주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이제껏 국회 앞에서 시위해도 들어준 적 거의 없죠.
    수많은 네티즌 여러분들만 있으면 됩니다.
    우리가 정부에게 바라봤자 바뀌는 것은 없다는 것을 수십년동안 느낀 우리가 아닙니까?
    이제 능동적으로 우리가 나라를 바꿉시다. 그것이 바로 짱깨들과 쪽발이, 양키놈들보다 우리가 위대하다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충분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나라 네티즌은 세계최고입니다.
    이제까지의 분쟁은 대부분 이런식이죠.
    중국.일본 허위사실 발표-> 한국네티즌 분노-> 새로고침 공격(-_-;)->
    한국네티즌 분노를 간직한채 활동 끝냄-> 중국,일본 다시 자료모음->다시 새로고침 공격...
    이런식으로는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은 중국,일본의 속국이 될 뿐입니다.
    이렇게 바꿉시다.

    중국.일본 허위사실 발표-> 한국네티즌 분노-> 자료 백만개 모음->한국네티즌 분노를 간직한채 자료 천만개 모음-> 중국,일본 다시 자료모음.-> 한국의 방대한 자료에 중국,일본 압도당함-> 중국: 고구려 인정,
    단군 고조선 인정, 치우천왕 인정, 일본: 백제의 자손임을 인정,
    독도 인정, 동해 인정,임나일본부설 허위 인정.정신대 사죄 ....대한민국 만세!!!

    우리나라 인터넷 유저들은 세계 최고이며, 우리나라처럼 인터넷이 대중화된 곳은 세계에서도 찾기 힘듭니다. 짱개놈들, 솔직히 인구 16억이면 뭐합니까? 컴퓨터도 몇대 없습니다.
    아시아 컵때 투표에서 짱개놈들이 한국 건드렸다가 박살나는거 보셨지 않습니까!!
    이제 헛된 힘 소모가 아닌, 진정한 실력 발휘를 해야 할 것입니다.
    일본국민들, 80% 이상이 다케시마라는 단어도 모릅니다.
    우리나라? 독도는 우리땅 노래 못부르시는 분 있습니까?
    저는 현재 역사연구자는 아닙니다. 반대 때리셔도 좋습니다. 우리나라의 역사가 일어선다면 반대가 문제겠습니까?)
    한국이 과연 수천년동안 중국의 속국일까요?치우천왕의 용맹을
    모르십니까?수나라는 무리하게 고구려를 공격하다가 멸망했고,당태종
    이세민은 죽을때까지 고구려를 공격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유언으로 '다시는 고구려를 치지 말아라'라고 했습니다.
    '안시성 싸움'은 제갈량의 공격을 막은 '학소'보다 몇십배 대단한 전투입니다.
    광개토대왕은 3만의 철갑기병으로 전연, 후연의 30만 대군을 쓸어버린, 제갈량, 주유를 붙여놔도 비교할 수 없는 천재 전략가이자 위대한 군주입니다.(적벽대전은 24만 vs 6만입니다.)
    해동성국 발해는 당나라와 수많은 전투를 치르며 대등하게 싸웠고, 해상왕 장보고는 동아시아를 휘어잡은 엄청나게 위대한 사람입니다..
    서희장군의 뛰어난 외교, 우리나라 3대 대첩중 하나인(이제 2대 대첩이 될지도 모르겠네요..)강감찬 장군의 살수대첩으로 송-거란-고려는 똑같은 세력을 갖추었고, 고려 사신이 송나라에서 오만하게 군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판관 포청천'에도 비슷한 상황이 방영된 적도 있었죠.
    세계역사상 최강대국(중국도 망했고 유럽의 수많은 나라도 망했습니다)이었던 몽고에 맞서서 고려는 수도를 섬으로 옮기기까지 하면서 싸웠고, 삼별초는 강화도, 진도, 제주도까지 밀려나면서 싸웠습니다. 또한, 몽고의 말기에 고려는 반원(반몽고)정책을 펼쳤고 원나라에 복종했던 모든것을 폐기하고 원의 통치기관을 공격하여 북쪽의 땅을 수복했습니다.
    세종대왕 시대, 조선의 드림팀이죠.
    청백리 황희-맹사성 정치, 장영실-이천 과학, 박연-음악, 김종서 북방정벌,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 그리고 한글창제..
    임진왜란의 수많은 영웅들, 홍의장군 곽재우, 충무공 이순신(곧 방영-많은시청바랍니다 -_-ㅋ)
    조선시대 한국의 수많은 문학에서도 청나라는 '땅만 넓을 뿐 미개한 야만인'으로 나와있습니다. 청나라에 사신으로 간 '홍순학'이 쓴 기행가사인 '연행가'에서도 청나라인을 '야만인'으로 묘사하고 그들이 말하는 것을 '지저귄다'라고 적었고, '박제가', '박지원'등의 수필에서도 조선사람들의 청나라에 대한 인식은 '땅이 넓어 힘이 셀 뿐, 미개한 국가이며 그들의 문물은 저급하여 가치가 없다'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선에서는 여러차례 청나라와 전쟁을 하자는 주장도 나왔습니다.(효종의 재위기간에 준비가 활발했지만, 그가 죽고 청나라가 너무 강해져서 결국 포기합니다.)
    한국의 역사는 절대 부끄럽지 않고, 지금도 부끄러운 나라가 아닙니다.
    한국은 열정적인 국민들이 이끌어가는 나라이기 때문에, 그래서 더 아름답습니다.
    우리 모두가 힘을 모읍시다!!
    한민족의 역사는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우리가 지킵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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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전쟁에서 진다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될까?
    왜곡된 고구려 역사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게 될 경우, 한민족은 ‘뿌리 없는’ 민족으로 전락하게 된다. 고조선사 및 발해사도 중국사로 넘어가게 된다. 반만년 역사가 순식간에 2~3천년의 역사로 반토막 나는 셈이다.

    역사 강역은 만주와 연해주를 아우르는 광활한 지역에서 대동강 또는 한강 이남으로 축소된다. 한반도 북부 지역의 역사마저도 빼앗기는 것이다. 한반도 북부 지역이 중국사 강역으로 넘어 가게 되면, 북한 붕괴 후 중국이 북한 지역에 대한 연고권을 주장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한민족의 역사적 우월성과 자부심에도 큰 타격이다. 대륙을 경영하던 강인한 민족이 아니라 한반도 남부에서 주변 강대국의 기대 짧은 역사를 이어 온 열등민족으로 전락하게 된다. 학계에서는 “한국사를 통째로 흔들고 우리 민족의 존재 근거 자체를 없애버리는 무서운 작업”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왜 고구려를 ‘중국 지방정부’라고 우기는 것일까? 그 배경과 우리의 대응책을 알아본다.
    ● 끝없는 역사왜곡
    중국은 4월 20일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고구려’ 부분을 빼버리고 신라 백제도 ‘국가 형성’ 대신 ‘정권 출현’으로 격을 낮췄다. 8월 5일엔 1948년 8월 15일 한국 정부 수립 이전 역사를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통째로 없앴다. 신화통신 등 관영언론도 지난달 ‘고구려는 중국 지방정부’라고 일제히 보도했다.
    ● 중국의 속셈
    고구려는 한반도 북부와 중국 동북지방을 무대로 발전한 고대국가로 고려가 그 역사를 계승했다.
    최광식 고려대 교수는 “중국은 고조선, 고구려, 발해 역사까지 중국역사로 보고 있다”면서 “한국 역사를 2000년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보는 데다 한강 이남으로 제한하기 때문에 일본 교과서 왜곡보다 심각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남북(南北) 통일 후 조선족 100만명이 살고 있는 간도를 한국에 돌려달라는 영토 분쟁을 막기 위해 역사를 왜곡한다고 지적했다.
    서울 쌍문초교 남암순 교장선생님은 “강대국의 힘을 앞세워 ‘아시아의 중심(中心)이 중국’이란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라면서 “초등학교에서 바른 역사교육이 계속돼야 하며 어린이들도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을 키울 것”을 당부했다.
    ● 역사 왜곡의 시작 ‘동북공정’
    중국은 2002년부터 5년 계획의 ‘동북공정’을 추진 중이다. 그 핵심이 ‘고구려사가 중국사에 포함된다’는 것.
    동북이란 중국 랴오닝 지린 헤이룽장성 등 동북 3성을 가리키며 공정은 작업이란 뜻. 동북지방의 역사, 민족문제를 연구하는 국가연구사업이다.
    ● 우리의 자세
    전문가들은 초중고교에서 국사교육이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경기 의정부시 칠봉초교 6학년 김예선양은 “중국이 고구려를 자신의 지방정부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생떼’인 것 같아요. 많은 유적들이 있으니 증명할 자료를 모아 진실을 밝혀야 해요”라고 말했다.

    일본의 역사왜곡과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의 공통점과 차이점
    일단 두 나라의 공통점은 국익 때문에 역사를 왜곡한다는데 있죠? 그런데 두 나라
    의 현실 때문에 차이가 생깁니다.
    예를 든다면 독도에 대한 일본의 왜곡은 독도가 가지는 지정학적인 이익 때문이며
    독도 주변의 해양자원과 주변 국가를 효율적으로 감시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지
    요. 거기다가 일본은 현재 다른 나라들과 영토분쟁을 하고 있습니다.러시아와는 사할린 부근의 북방 4개도 분쟁을.. 중국과는 조어도 분쟁을 하고 있는데 독도 분쟁을 이 것과 연동하고 있죠. 그래서 그들은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역사왜곡을 하는 중입니다.
    다른 형태의 역사왜곡은 빈약한 국가의 시초를 위장하고 우리 나라에 대한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 고의로 우리를 그들의 손 아래에 두는 고대사 왜곡이 있습니다.
    중국의 경우는 일본과는 다르게 나타납니다. 여기서 말씀드리는 것이 차이점이 될 수 있는데요. 중국은 다민족 국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과의 교역이 늘어나고 경제적인 발전이 이뤄지는 동북 3성이 한국과 연결되어 있다면 소수민족으로 존재하는 조선족에 대한 효율적인 통제가 점차 힘들어지며 일본과 중국의 협약에 의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간도가 중국에 넘어간지라 민감한 문제로 나타나고 있는 현실에 따라 고구려사를 왜곡하여 한국과의 연동성을 끊고 조선족을 그들의 통제 하에 두려는 소수민족 억제책이자 티벳, 서장자치구, 그 외의 소수민족들의 독립운동을 제어하려는 계획의 일환입니다. 지금도 그들은 대부분의 군대를 이용하여 무력으로 진압하는 중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간도를 되찾는다든가 고구려사의 인정을 국제적으로 받는다면 그들의 논리가 깨어지고 소수민족을 통제할 수 없거든요. 그래서 그들은 터무니없는 궤변이라는 소리를 감수하면서도 고구려사를 왜곡하는 중입니다. 공통점은 각각의 국가 모두 자국의 이익을 위해 왜곡한다는 거지만.. 차이점은 중국의 경우 국경선의 유지와 소수민족의 통제에 큰 목적을 둔 반면 일본은 타국과의 영토분쟁에 연동하는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의 핵심내용과 우리의 반박
    고구려 종족은 고대 중국 소수민족의 하나
    -우리 민족은 漢족문화권과는 구별되는 동방문화권을 이룩한 별개의 민족
    중국정사에서도 고구려 건국 주체 세력을 예맥족으로 기술. 예맥족은 한민족 구성종족

    고구려는 중국 영토 내에서 건국됐고 시종일과 중국 영역 내에서 존재. 고구려 건국 지는 漢군현에 속함
    -고구려의 성장으로 漢군현이 퇴출됐을 뿐만 아니라 군현과의 전쟁을 통해 성장

    고구려는 중국에 조공을 바치던 속국
    -조공은 외교형식에 불과 광개토대왕비에 나타나는 천하관은 고구려의 독자성을 보여주는 증거. 백제, 신라, 왜도 조공관계였음에도 고구려만 중국 지방정권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

    수. 당과의 전쟁은 중국 국내의 통일전쟁
    -고구려의 수. 당 전쟁은 대외 전쟁

    고구려 유민은 중국에 귀속됐음
    -자진해 신라로 내려온 고구려 유민을 주목해야 함. 신라의 일통삼한의식이나, 발해의 고구려 의식. 고려는 국호에서부터 고구려 계승 의식을 표방. ‘삼국사기’, ‘삼국유사’에서 보듯이 고구려데 대한 역사의식은 고려만 가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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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역사문제때문에 말이참많은데..

    대응하기엔 너무늦었다고봅니다..

    컴퓨터정리하다가..나온글인데..

    전부사실입니다






    당신은 알고 있는가?

    월드컵이 과연 한국에 도움이 되고 있는지를...

    월드컵이 열리는 이유가 무었인가?
    과연 축구만을 위한 것인가? 그만큼 나라 홍보가
    되고 관광객이 많이 와서 울나라 관광유치가
    되야 하는 것이 아닌가?

    당신은 알고 있는가?
    월드컵이 시작되고 지금 이시점에서 한국에
    얼만큼 도움이 되고 있는지를...
    관광객은 평소의 1.4%밖에 늘지 않았고
    나머지 관광객은 다 일본에 가있다..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가? 일본은 4억을 투자해
    40억을 벌고 우리는 10억을 투자해 11억을
    번다고 한다.. 이 얼마나 어이없는일인가?

    당신은 알고 있는가?
    일본이 과연 어떤 나라인지를...
    일본은 그 수많은 방송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미국이 경기할때 그 한 방송사에서도
    중계를 해 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가?...

    당신은 알고 있는가?
    한국의 제주도 서귀포 경기장에서 경기를 할때
    호주방송에서는 두번이나 일본의 서귀포
    구장에서 경기가 열린다고 방송을 했던 사실을..
    그리고 전혀 시정이나 사과방송을 하지 않은
    사실을.. 그리고 한국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사실을... 이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가?

    당신을 알고 있는가?
    세계유명지도사이트의 대부분이 독도와 제주도가
    일본땅이라고 명시되어 있는 사실을..
    그리고 지금까지도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이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가?

    당신은 알고 있는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의 작가 김진명씨가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대한 소설을 쓰고 결국
    하나의 사실을 밝힌것을? 보통 사람들은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전말을 잘못 알고 있다.
    오판된 사실은 일본의 낭인집단인 사무라이가
    명성황후를 시해한 뒤 시간(죽인뒤에 시체를
    강간하는 것)이 되었다고 알고 있다. 이 자체도
    어이없는 일이지만.. 사실 김진명씨가 일본의
    국회 도서관에서 입수한 \"에도 보고서\"에서
    밝혀진 사실은... 시간이 아닌 강간이었다고
    한다. 우선 고종을 무릎꿇히고 대원군을 가둔뒤
    명성황후를 찾아칼로 찌르고 난뒤.. 아직
    죽지도 않은 명성황후를 돌아가면서 강간을 한후. 불에 태워 죽인것
    을.... 사실 김진명씨는
    한일월드컵이 열리는 시점에서 이런것을 발표
    하지 않고 월드컵의 열기가 식은 뒤 발표할
    생각이었으나 전주 월요일에 일본천황은 일본도
    핵무기를 가질 생각이라고 발표한후 격분해
    이 글을 밝혔다. 그런데. 아주 안타까운 사실은
    우리나라가 폴란드에 이긴 다음날 발표하였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어느 신문사도 단한줄의 기사
    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과연48년만에 첫승을
    거둔것이 중요하겠는가 107년만에 밝혀진 명성
    황후 시해사건의 내용이 중요하겠는가?
    이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가?

    당신은 알고 있는가?
    미국에서 일제시대 위안부 문제에 대해 대법원
    에서 재판을 열려고 할때 우리나라부터가
    괜찮다고 안해도 괜찮다고 한 사실을?
    이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가?

    당신은 알고 있는가?
    일본이 얼마나 사악한 나라인지를....
    정상회담에서 우리나라는 위안부 문제를 가지고
    나오면 일본사람들은 쥐꼬리만도 못한 영수증을 가지고 나와서 강제로
    한적이 없고 한국여자들이 돈이 없어 돈벌러 위안부를 자청한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얼마나 어이없는 일인가?
    또 우리가 강제징집을 가지고 나오면
    일본사람들은 역시 쥐꼬리만도 못한 월급명세표를 가지고 나와 강제로
    징집하지 않고 한국남자
    들이 돈을 벌기위해 자청해 군에 입대해 전쟁에
    나간 거라고 주장한다..
    이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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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의 한 커뮤니티에서 퍼왔습니다... 섬뜩한글

    중국의 고구려 역사왜곡이 국내언론의 관심을 받기 전인 작년에,
    나는 리앙 첸 교수의 라는 과목을 수강한 적이 있었다.
    학사과목이긴 했지만, 유학중이던 당시 한국과는 전혀 다른 중국의 만주
    역사관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사실상 중국의 정치역사학의 중심이자
    가장 보수적인 동시에 중앙정부의 학술지원의 방향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북경대였기 때문에 호기심이 동해 수강한 것이다.
    리앙 친은 정부의 학술 고문을 지내고 있는 저명한 정치학과 교수로,
    역사학 석학위도 가지고 있고, 현재 중국학계의 고구려 역사왜곡을
    주도하고 있는 교수다. 당시 그 과목의 수강 인원은 약 30명정도였는데
    한국인은 나 혼자였다.

    아마 학기 중간쯤인가? 일제의 만주국 건설에 대한 부분을 다루면서,
    마침 만주사에 대한 한국과 중국 정부의 시각차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었다.
    리앙 첸 교수는 그때 한국과 중국의 만주 역사관의 차이를 이야기하며,
    "이것은 과거가 아닌 미래에 관한 문제이며, 만주가 아닌 북한에 관한 문제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 매우 충격적인 이야기를 했다. 아마 그는 한국인인
    내가 그 과목을 수강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 했다.

    사실 과거에 만주에 어떤 나라가 있었든, 현재 만주지역이 중국의 영토임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부분이다. 중국으로서 만주 변방 영토의 역사를
    자국 역사로 편입시키는 데는 그러므로 어떤 실익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도
    할 수 있는데, 현재 중국학계에서 보여지는 만주 역사관의 대대적 재규정의
    움직임은, 향후 발생할 북한 영토의 주권 문제를 고려한 정부의 개입으로
    야기된 것이라는 것이다.

    리앙 친은 북한은 길어야 10년 이상 존속할 수 없을 것이며,
    아마 군부 내의 쿠데타가 일어날 것이 거의 확실해보인다고 말했다.
    또한 현재의 김정일 라인을 제외한 군 수뇌부의 인물들이 모두 친중파인데다
    쿠데타의 중심에 누가 있건, 반란 주도세력은 남한의 군사적 움직임에대항해
    독립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중국의 군사력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국정부에서는 이 상황에서 혁명세력 정권을 인정하고 군사적인 지원을
    하면서, 북한지역을 북방 자치성들과 군사 연방화하고, 장기적으로는 북한 지역을
    중국의 지방정권화하는 가능성을 심각히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 중국 정부로서 가장 부담되는 것은 남한과의 영토 분쟁이다.
    상황 발생시 북한에 대한 남한 측과의 영토 분쟁은 거의 피할 수 없는 것인데,
    북한과 남한의 역사적 동일성이 너무 커서 영토분쟁에 대한 국제
    여론을 기대할 수도 없을 뿐 더러, 국제재판에 회부될 경우 거의
    확실히 중국이 패소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 정부는 향후 가능한 북한에 대한 사실적 군사 지배를
    국제재판에서의 승리로 이끌 장기적인 전략을 구상중이라고 한다.
    국제 재판에서 영토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영토임을 주장하는 국가가
    다음 세가지를 입증해야 한다.

    1. 영토의 사실적 점유
    2. 영토의 역사적 점유
    3. 영토 점유의 계속성과 정당성

    1번같은 경우, 쿠데타 후 군사적 지원과 군사연방화를 통해 북한에
    대한 중국의 사실적 점유는 충족될 수 있다. 그리고 국제재판
    회부 이전까지 30년 정도 이 연방을 물리적으로 유지할 경우
    영토의 사실적 점유는 국제 사법상 인정 가능한 요건으로 성립한다.

    3번 같은 경우, 정당성에 관해서는 북한 혁명정부를 통해
    북한 영토를 인수 받으며 만족될 수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2번 영토의 역사적 점유와 3번 영토점유의 계속성이다.
    중국은 북한 지역을 역사적으로 점유한 례가 없고, 그러므로 당연히
    영토 점유의 계속성을 주장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이 북한이 자국 영토임을 주장할 수 있는 방법은?

    그렇다. 만주지역에 세워진 조선족 국가들을 자국 역사에 편입함으로써,
    영토의 역사적 점유를 충족시키고, 그것을 사실상의 점유와 연관시켜
    계속적 점유까지 충족시키는 것이다. 리앙 첸은 현재 중앙정부는
    그러한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학계에 대한 지원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만주 역사는 과거 사실의 문제가 아닌 미래의
    이익의 문제다. 너희는 그것을 학술적으로 접근할 필요도 없고,
    한국과 논리적인 토론에 말려들어가서도 안된다. 이것은 정치의
    문제이고 너희는 정치를 배우고 있음을 명심해라"고 말했다...

    첸교수의 마지막 한마디가 잊혀지지 않는다.
    너희가 관심을 갖고 열심히 한다면, 30년후 중국 땅은 남한 바로 위까지
    더 넓어져 있을 거라고....

    당시는 첸 교수가 미쳤다고 생각했지만, 현재 중국학계의 움직임을
    보면 그때 그가 말한 것이 사실임을 의심할 수가 없다.
    왜 국내 언론에선 이런 이야기가 다뤄지지 않는지, 중국의
    국가기밀을 정부 학술고문인 교수아래 수강하던 내가 우연히
    들은 건지, 요즘 뉴스를 보다보면 정말 심란하다...



    살짝 다른 얘기긴 합니다만 지금 고3부터 적용된다는 7차 교육과정에서
    국사를 사회과목에 통합시켜서 선택해 공부하게 하는 거 정말 맘에 안들어요
    국사가 분량도 많고 어려워서 26%만이 공부한다는데 말도 안되는 얘기 아닙니까
    자국의 역사공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곧 그나라.
    우리나라 역사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데 훗날 이런 분쟁이 또 일어나면
    그땐 어떻게 반박할런지.. 걱정됩니다 진짜..

    --------------------------------------------------------------------------------

    퍼온글들입니다..읽으면서 정말 뭐라 표현할수없는 감정이 들끓더군요..

    우리 네티즌들이 "독도는 일본땅,일본은 우리땅", "짱깨놈들은 뭘해도 딸린다니까.."라는 헛소리하고 있을때,

    고구려,발해,간도땅 중국으로 넘어가고 없습니다..

    동해,독도,울릉도 일본땅으로 넘어가고 없습니다..

    인터넷에서 무의미하게 키보드만 두들기지말고 우리들,우리모두 이런 글들을

    다른사이트에다 올립시다..그리고 조금만 관심을 가지자구요..대한민국과 그 역사는

    대한민국국민것인데..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살아봅시다..

    이제그만 잠시 열광하고 바로 식어버리는 한심한 냄비정신을 버리고..

    조금만이라도,하루에 1번,2번이라도 생각해보고 관심가져주면서

    살아봅시다..

    정말!!조금만이라도,하루에 1번,2번이라도 생각해보고 관심가져주면서

    살아봅시다..



    <bgsound src="http://cyclone7ss3.hihome.com/asf/boom04.a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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