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
이 사람을 한때 偶象으로 한지 않은 우리시절 사람이 있을까요?
나만의 偶象이 아닌 우리시대의 전설이었던 사람,, 김민기
통기타를 처음 만지고 난후,
누구나 부르는 노래는 김민기의 노래였습니다.
가수가 누구였던지, 그 노래의 주인공은 김민기 였습니다.
장소가 어디였던지, 그 노래의 주인공은 김민기 였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식의 뒷풀이에서도,
신입생 환영회의 뒷풀이에서도,
몇몇 친구들의 치기어린 술판에서도,
사랑하는 연인들이 손을 잡고 학교뒤 오솔길을 걸을때에도,
우리는 모두 모두 김민기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빌어먹을 박정희의 유신시절, 전두환의 5공시절,
목소리를 망가지게 했다느니,
손가락을 못쓰게 만들었다느니,
별의별 흉흉한 소문을 다 듣게 했던 우리 시대의 전설 김민기.
시대를 앞서가는 것이 죄인가요?
그당시, 김민기에 대한 탄압을 보면서 지금의 386들은
우리 모두가 탄압받는 공동체 의식을 같이 느끼곤 했답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비소츠키.
아메리카의 밥딜런,
한국의 김민기.
저는 밥딜런을 좋아합니다.
또한, 양키들이 그를 얼마나 좋아하고 아끼는지 잘알고 있습니다.
저는 블라디미르 비소츠키를 좋아합니다.
또, 노스키들이 그를 얼마나 추앙하고 존경하는지 잘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다뎀벼의 思考...
김민기는 비소츠키 보다 10배는 위대하다고 생각합니다.
김민기는 밥딜런 보다 10배는 위대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조그만 땅, 한반도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는 세상의 상징이 되었을 지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음악과 시에,,,
우리는 자랑스러워 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 해야 합니다.
이글을 쓰는 지금 이순간, 저의 偶象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다,
그만 우리시대 전설에 대해,
감히 이러쿵 저러쿵 얘기하는 건방진 통신꾼이 될까 심히 두렵습니다.
1978년 "공장의 불빛", 이 작품하나로 김민기는 신화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학창시절, 김지하의 "오적"을 책상밑으로 돌려 읽었다는 그가,
그것을 능가하는 아니 초월하는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이,
시대의 아이러니 아닙니까.
김지하는 변하고 변하고 또 변하였는지 모르겠으나,
김민기는 그대로 그대로 또 그대로이니까요.....
김민기의 "공장의 불빛"에 대한, 음악평론가 강헌의 말을 잠깐 인용하며
저의 두서없는 김민기 偶象論은 이쯤에서 끝맺도록 하겠습니다.
"서두의 짧은 편지 내레이션을 제외하면 음악적 연관성으로만
긴밀하게 엮어진 이 믿을 수 없는 작품을 단순히 70년대의
대표적인 노조 탄압사태의 하나인 동일방직사건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의 진정한 속살은 다시 트로트와 영합한 주류 대중음악의
매너리즘과 대학가요제라는 `관제'딱지가 붙은 대학의 노래문화의
지형도를 근본적으로 전복하는 음악 질서 그 자체의 `얼터너티브'
정신에 있다.그리고 이 문제제기는 바로 80년대의 진실을 운반하고자
했던 모든 가객들이 극복하지 않으면 안되는이정표가 된다.
어둡고 초라한 악절의 집요한 반복으로 구성된 <교대>,
주로 군대사회에서 구전되는 선율을 빌려 노동자 간의 미묘한 대립점을
탁월하게 형상화한 <야근>, 동요적 순력성과 제련된 언어 감각이 결합된
<공장의 불빛>, 레시터티브 스타일을 말 그대로 한국적으로 풀어낸
<음모>, 진양조의 민요적 감수성을 현대적으로 재창울 해낸
<도어라 가자>, 그리고 익히 알려진 <이 세상 어딘가에>.
이 다양한 스타일을 한 줄로 꿰뚫는 핵심은 우리말 속에 있는
선율과 리듬의 법칙이다.
그의 노래가 서정적이거나 익살적일 때조차도,
부르는 입에 착착 감겨드는 것은 바로 그와 같은 이 작곡가의
유일무이한 원칙 때문이다. 이것은 그럴 듯한 선율을 만들어 놓고 역시
그럴 듯한 노래말을 붙여 해결하려는 안이한 작곡 기법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세계이며 또한 그것은 우리가 중심지 대중음악의 무의식적 지배
사슬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첫번째 필요충분조건이기도 한 것이다.
이 작품이 태어난 지 17년이 흘렀건만 공식적으로는 아직 `리바이벌'도
'리메이크'도 되지 못했다. 1993년 그의 노래들이 4장의 음반으로
묶일때도 이 역사적인 "노래굿"은 제외되었다.
다만 이 노래굿의 맨 마지막장을 장식하는 <이 세상 어딘가에>가 1990년
김민기가 주관한 `겨레의 노래'에 송창식과 조경옥, 그리고 노찾사의
목소리로 담겨 있을 뿐이다. 이 작품의 후속 사건은 1984년 어린이용
뮤지컬 <사랑의 빛> 이라는 제목으로 착수되었다가 1995년 가을에
이르러서야 록 오페라 <개똥이> 로 마침내 완성되었다.
그는 그의 뒤에 오는 이들에게 가장 많은 숙제를 남긴,
그러나 여전히 그 숙제를 지치지 않고 풀고 있는,
우리 대중음악사의 반디인 것이다." - 한겨레신문 95년10월27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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