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주검에 입히는 옷, 壽衣(수의).
할머니들이 종종 수의를 사러 혹은 만들기 위한 옷감을 사러,
시장을 배회하는 것을 봅니다.
자신의 주검에 입힐 옷인데 무에 그리 정성을 쏟으시는지,
힘없는 손끝으로 삼베 옷감을 만졌다 놓았다 하는 그 분들을 보고 있노라면,
얼마 안있어 곧 늙을 자신들의 모습을 그리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대학교 동기중에 한정애라는 여자 친구가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컨데, 아마 가장 친한 친구였지 않나 싶습니다.
집이 근처에 위치한 까닭으로 왕래가 잦았고,
왠만한 고민은 모두다 털어놓곤 했던 친구지요.
사실 나이도 저보다 2살이 위였어요. 고등학교때 2년을 쉬었다나 어쨌다나.
정애의 어머니가 저를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아니 귀여워 해주셨다는 표현이 더 적당하겠네요.
과년한 딸이 12시 넘어 남자친구랍시고 데려와서,
방에 틀어박혀 음악을 듣고 있으면 어느 부모가 약간의 걱정이라도 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저에게는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시더군요.
성격도 털털하시고 통이 크신게, 전형적인 여장부였습니다.
아마도 일찍 남편을 잃은 환경도 한몫 했으리라 봅니다.
어머니의 영향인지 정애도 별명이 레드소냐였죠.
아버지 없어도, 언제나 씩씩한 레드소냐 한정애.
...... 그런데 정애 어머니가 암에 걸렸습니다.
병 증세를 너무 늦게 알아가지고 손쓸틈도 없이 말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저는 아주 나중에 그 사실을 알았었지요. 정애나 정애 어머니 두사람다
매일같이 뻔질거리게 드나드는 저에게 부담을 안주려고 얘기를 안했던 겁니다.
어느날이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빌려주었던 Camel의 음반을 찾으러
정애 집으로 밤 10시쯤 갔었지요.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했습니다.
집에 슬픔이 가득찬 것이 고요와 적막으로 둘러쌓여 있더군요.
방문을 빼꼼히 열고 정애를 찾았습니다.
방 한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더군요. 고개를 푹 숙이고 말이죠.
제가 들어서서 정애야~ 하고 불렀더니, 갑자기 큰소리로 울더군요.
그 씩씩한 우리의 레드소냐가 그렇게 큰소리로 우는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무슨일이냐고 물었더니, 아무 말을 안하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냥
큰방쪽을 얼굴로 가르키더군요.
영문을 모른체 정애의 어머니가 계실 큰방문을 사알짝 열어보았습니다.
어머니가 나를 보시더니 환하게 웃으시더군요. 기경이 완니.. 들어와..
난생 처음보는 무명인지 삼벤지 모를 옷을 쓰다듬고 계시더군요.
버선도 있고, 이불 천같은 것도 있고 말이죠.
씨익 웃으면서 물었습니다. 뭐냐고요.
그때 처음 壽衣(수의)를 알았습니다.
자신이 죽고나서 입을 옷이라는 壽衣(수의)를 말이죠.
정애의 어머니는 당신의 죽음을 준비하기위해 그날 壽衣(수의)를 사온것입니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 슬며시 불편?몸으로, 부산 진시장까지 가서
누우런 壽衣(수의) 한벌을 사오신 겁니다.
인제 2달이나 살까... 끝말을 흐리면서 나한테 말씀을 하는데,
머리속이 노오래 지더군요.
제 자신 의식이 있고 난후 제 주위에서 죽음을 느낀경우는 처음이었으니까요.
정애는 건넌방에서 계속 울음을 흘렸고,
늦은 시간 여자친구의 집을 찾은 어눌한 남자친구는 몸둘바를 몰랐습니다.
어머니.. 담담히 자신이 몹쓸병임을 말씀하시고, 희미하게 웃으시는데,
저도 목구멍에서 갑자기 욱~ 하고 무엇이 올라오더군요.
주춤 주춤 하며 정애의 집에서 나왔습니다.
이상한 생각이 머리를 휘감더군요. 젊은날 남편을 여의고,
딸하나와 아들 두명을 평생 키우면서 살아온 여인의 죽음의 뒤안길에,,,
壽衣(수의)를 정리하는 정애의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정호승의 시 壽衣(수의)...를 보면서 떠올린 한정애와 그녀의 어머니..
지금 한정애는 영국에서 공부를 하고있습니다.
특유의 씩씩함으로 아마 멀지 않은날,
당당한 여교수의 모습으로 제 앞에 나타날것으로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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