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시원하게 쏟아지라고 그렇게 빌었건만, 막상 비가 오니 불편하기 그지 없다는 투덜거림.</div> <div>어제는 오락가락 하는 빗방울에 기분 역시 오락가락하는 하루를 보냈다.</div> <div> </div> <div>습함을 참다 못해 막내는 집 앞 영화관이라도 가자고 제안했고,</div> <div>내키진 않지만 막내를 따라 영화관에 향했다.</div> <div>우리는 인X이드 X웃이라는 영화를 보기로 했다. 의외로 평일이라 사람이 많지 않은 상영관이었다.</div> <div> </div> <div>막내: 이거 짱 재밌대.</div> <div>나: 알았으니까, 팝콘 먹어.</div> <div> </div> <div>그렇게 영화를 보고 (사실 이게 중요한 건 아닌데) 여린 마음에 울컥하는 막내를 데리고 햄버거를 사서 집으로 향했다.</div> <div> </div> <div>막내: 나나의 머리 속에는 까칠이만 사나봐.</div> <div>나: 넌 주기억이 멍청함이야?</div> <div> </div> <div>쓸데 없는, 시덥잖은 대화를 나누며 골목으로 향하는데, 집 앞에 어린 여자아이가 앉아 있었다.</div> <div>일곱살? 그쯤 되는 양갈래 머리를 하고 화려한 핀을 꼽은 아이가 시야에 가까워졌다.</div> <div>막내는 집앞에 앉아 있는, 늦은 시각에 혼자 있는 아이가 걱정스러웠는지 오지랖을 발동시켰다.</div> <div> </div> <div>막내: 음, 안녕? 너 혼자야?</div> <div>아이: (쳐다보고 만다)</div> <div>막내: 엄마는? 엄마는 없어?</div> <div>나: 그냥 가.</div> <div>막내: 혼자있으면 위험하잖아. 세상이 험해. (아이에게) 엄마 어딨니?</div> <div>아이: 아저씨 나 납치하려고 그러죠?</div> <div> </div> <div>당돌한 아이의 목소리에 우리는 벙 쪘다. 진짜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서있었는데, 막내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div> <div> </div> <div>막내: 어... 어... 그게... 아니고...</div> <div>아이: 할머니! 여기 이상한 아저씨 있어!</div> <div> </div> <div>'뭐여?'라는 목소리와 함께 파리채를 든 윗집 아줌마가 골목 끝에서 튀어나왔다.</div> <div>그리고 우리를 보고는 늘 그렇듯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div> <div> </div> <div>아줌마: 어이구, 아가씨랑 동생 들어가나보네.</div> <div>나: 아... 네...</div> <div>막내: 저 납치 아니고요... 얘 누구예요?</div> <div>아줌마: 걔 내 손녀딸. 처음 보나?</div> <div>나: 아... 네...</div> <div>아줌마: 으응 우리 딸램이 지금 출장을 가서 내가 며칠 봐주기로 했거든.</div> <div> </div> <div>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할머니에게 달려갔다. 우리를 경계하면서 보는 아이에게 윗집 아주머니는</div> <div> </div> <div>아줌마: 그때 그 삼촌 기억나? 젤리 삼촌.</div> <div>아이: 엉.</div> <div>아줌마: 그 삼촌 동생들이야.</div> <div>아이: 아- </div> <div> </div> <div>그리곤 여전히 경계하는 눈초리로 보던 아이는 아줌마와 함께 새초롬 하게 등을 돌려 골목끝 아주머니들의 수다 장소로 향했다.</div> <div>그렇게 집에 들어왔다. 햄버거도 먹고, 집도 좀 치우다가 보니</div> <div>작은오빠가 귀가했고, 곧 이어 큰오빠도 집나간 비둘기마냥 온화하게 돌아왔다.</div> <div> </div> <div>막내: (갑자기) 윗집 아줌마 손녀딸 있다? 다들 알고 있어? </div> <div>큰오빠: 모르는데.</div> <div>작은오빠: 나 알아. 걔 저번에 한 번 봤어. 귀엽지?</div> <div>막내: 귀엽고 뭐고... 애가 좀...</div> <div>작은오빠: 왜 똑똑하고 귀엽잖아.</div> <div>나: 쟤보고 아저씨라고 해서 저러는거야. 젤리삼촌이 그대?</div> <div>작은오빠: 내가 사줬었거든.</div> <div> </div> <div>그러고 오늘 오전, 작은오빠랑 같이 마트에 가려고 나가는데, 집 앞에서 아이와 아줌마가 서계셨다.</div> <div> </div> <div>작은오빠: 안녕하세요. </div> <div>아줌마: 어, 그래. 어디 가?</div> <div>작은오빠: 마트요. (아이에게) 안녕! 삼촌 기억해?</div> <div> </div> <div>작은오빠의 인사에 부끄러운듯 아이는 자신의 할머니 뒤로 숨어버렸다.</div> <div>순간적으로, 쟤 지금 여자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었다.</div> <div>작은오빠는 그게 재미있는지 일부러 더 가까이 가서 인사를 했고, 아이는 마지못해 작은 소리로 인사를 했다.</div> <div> </div> <div>작은오빠: 삼촌이 저번에 번쩍 해줬던거 기억해? 삼촌 좋다고 했잖아.</div> <div>아이: 삼촌 근데 막...(뭔가 말하려다가 막힘) 아, 엄마가 멀리 출장갔어요. 외국에.</div> <div>작은오빠: 그랬구나. 잘 왔어.</div> <div>아이: (보고, 다시 숨는다)</div> <div>작은오빠: 뭐야, 나랑 결혼한다며. </div> <div>아이: 아니, 그게 아니고...</div> <div>작은오빠: 마음 변했어?</div> <div>아이: ...아니... 아... 할머니...</div> <div>아줌마: 하하, 아니 애는 왜 놀리고 그런대?</div> <div>작은오빠: 흐흐. 귀여워서 그렇죠. 저희 갈게요. 다음에 또 봐. 안녕!</div> <div> </div> <div>그렇게 우리는 뒤 돌아서는데, 아이와 아줌마의 목소리가 들렸다.</div> <div> </div> <div>아줌마: 저 삼촌이 좋아?</div> <div>아이: 으응.</div> <div>아줌마: XX아 남자는 저렇게 생기면 안돼 별로야. 저렇게 생긴 남자는 바람둥이야.</div> <div> </div> <div>작은오빠의 코에서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을 들었고,</div> <div>오늘 오후 큰오빠와 나, 막내는 저렇게 생긴 남자에 대해서 엄마에게 떠들고 있다.</div> <div>엄마는 저렇게 생겼지만 나쁘지 않다며 위로했고, 저렇게 생긴 남자는 위로하지 말라고 썽을 냈다.</div> <div> </div> <div>나는 큰오빠, 저렇게 생긴 남자,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우리는 넷이고,</div> <div>서로의 시간을 함께 공유하며 그렇게 저렇게 살고있다.</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