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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레테님의 댓글입니다.
    번호 제목 댓글날짜 추천/비공감 삭제
    22 철학게시판을 보고 오유에 가입했습니다 [새창] 2015-05-25 01:46:47 13 삭제
    현대 서양철학으로 넘어오면 워낙 크로스오버가 많이 이루어져서 위에서 제가 언급한 부분과 모순되는 부분이 생기는 점은 인정합니다. 어디까지나 제가 기술한 부분은 학문으로써 철학을 이야기 할 때 서양철학이 가지는 기본조건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 또한 철학 자체의 논리적 정합성까지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최대한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개념들 속에서 세계를 해석하려는 시도를 하지요.(포스터모던니즘 이후에 대해서는 저도 너무 방대해서 잘 모르겠더군요...)
    다만 한 가지 지적할 점은 서양철학의 경우 철학과 삶을 분명히 구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들어 헤겔의 삶과 헤겔의 철학이 동일하지 않으며, 러셀의 삶이 러셀의 철학과 동일할 필요는 없다는 의미 입니다.
    반면 동양의 경우 반드시 철학자의 삶과 철학을 동일해야만 합니다. 공자가 공자의 철학과 반대되는 삶을 살거나 장자가 그의 철학과 반대되는 삶을 산다면 그 사람은 위선자이지 결코 스승을 의미하는 子가 될 수 없습니다. 철학이란 용어를 따라가면 장재의 정몽의 구절인 聖希天(성희천) 賢希聖(현희성) 士希賢(사희현) 에서 착안한 希求哲智에서 기원하는 것입니다. 동양은 전통적으로 수신과 그것에 따른 인격의 경계적 변화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언어에 대해서 기피하는 전통이 있었던 것을 사실입니다. 명가 이후에 중국철학에서 이렇다할 논리학이 크게 힘쓰지 못한 것 또한 이런 측면에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렇하고 해서 논리나 논증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 때 말하는 논리나 논증은 상당부분 개인의 자득이나 내적인 수양 및 깨달음을 동반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순자의 방법론을 차용한 주자의 경우도 객관적 탐구인 격물치지 이후에 수양인 거경궁리의 경공부로 마치는 형태를 보이고 있지요. 이는 서양에는 존재하지 않는 인격의 경계적 구분(막스쉘러는 예외로 둡시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여기까지 오면 논리 및 논증을 중요하지 않게 되지요. 정리하자면 동양철학에 논리 논증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수양적인 측면에서 그 효용성을 잃어버렸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21 철학게시판을 보고 오유에 가입했습니다 [새창] 2015-05-24 23:31:31 21 삭제
    서양철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의미 없는 명제에 불과할 것이고, 동양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충분히 지혜로운 답일 수 있겠네요. 사실 철학이란 학문 자체가 서양의 학문이기 때문에 엄밀성, 증명 가능성, 합리성이 전제된 학문이죠. 적어도 서양 철학에는 인생을 논하기는 어려우니까 말이죠. 위에서 말하는 지혜란 지식을 토대로한 에피스테메로 보기는 힘들지 않을까요? 풍우란이란 철학자가 이런 말을 했죠. '서양철학에는 인생이 없다. 왜냐하면 인생에 관한 것은 종교가 담당하기 때문이다.' 옥캄의 면도날 이후 철학과 종교의 엄격한 구분을 전제로 한 서양의 입장에서는 위의 것은 지혜로 보기 힘들겠죠.
    반면에 본래 철학이란 학문이 없는 오직 실천과 그에 따른 수신과 삶의 태도에 주목한 동양학이라면 저 대답에 고개를 끄득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19 원 게시글이 삭제되었습니다. [새창] 2015-05-24 15:51:51 0 삭제
    뒤에 적힌 날짜는 원글의 작성일과 그 글이 베스트 게시판에 올라온 시간의 차이를 의미합니다.
    EX) 5.24일 작성글이 5월 28일에 베스트에 올라가면 4일<<< 요렇게 뜸
    18 원 게시글이 삭제되었습니다. [새창] 2015-05-16 23:04:47 1 삭제
    한국은 엄밀하게 말해 포스터모더니즘이 없다고 볼 수 있어요. 서구의 모더니즘과 포스터모더니즘의 관계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날 만큼 강력한 저항과 그에 따른 변화를 가져왔는데 비해 한국사회는 여전히 전통적 가치가 지배를 하는 구조기 때문이죠. 혹자는 386세대를 서구의 68운동 세대와 비견하지만 386세대가 선택한 것은 변화보다는 안정이었다는 것을 볼 때 한국은 여전히 보수적를 중요시 여기는 사회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전통적 가치와 서구의 합리적 가치가 공존하는 20세기에 들어서면 이들사이에서 발생되는 혼란이 더욱 심해지는 것을 볼 수가 있죠. 한가지 예로 겉으로는 사회적 정의 혹은 윤리적 공평성을 외치면서 정작 안으로는 혈연,지연, 학연등의 관계성을 강조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그 사람의 덕성 혹은 인품을 중요시 여기는 동양적가치와 공평성을 근본에두는 서양적 가치의 충돌로 볼 수 있습니다. 제3자의 입장에서는 객관성을 유지하면서도 막상 자신과 관계성을 가진 대상에 있어서는 팔이 안으로 굽는 일종의 유가적 태도는 문제의 해결에 있어 혼란을 야기시키게 되는 것이죠.
    예를들면 새누리당의 부도덕성을 비판하면서도 자신이 지지하던 김장훈의 일탈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태도등이 여기에 해당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10~30대는 사회적으로는 동양적 가치를 강요받으며 동시에 학교와 상아탑에서는 사회적 정의를 무비판적으로 암기시키는 현실 속에서 자칫 자신의 주체를 상실한체 부평초 마냥 여기저기에 휩쓸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제가 보기에 한국사회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서로 충돌되어 섞여버린 두 가치를 제 정립하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철학적 안목을 젊은 세대에게 길러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습니다.
    17 원 게시글이 삭제되었습니다. [새창] 2015-05-16 18:31:10 3 삭제
    아이디가 탈퇴네요
    16 안녕하세요 철학전공한 아재가 오유에 인사드립니다. [새창] 2015-05-15 12:00:10 2 삭제
    묻고따블로가// 칸트철학의 경우 워낙 그 범위가 넓고 여러가지 해석의 여지를 두고 있기 때문에 칸트 전공자들 조차도 칸트 3비판서을 모두 전공했다고 쉽게 말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각 비판서가 인식론 / 윤리학/ 미학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위로 올라갈 수록(박사급) 더욱 세욱 적으로 다루는 편이고요. 제가 아는 분 경우에는 15년째 칸트 선험 개념을 연구하시고 있어요(독일 박사학위 소유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2비판서나 3비판서에 관한 질문에서는 잘모르겠다고 답하시더군요.
    15 사실 전 세상에서 두번째로 사진을 잘찍습니다. [새창] 2015-05-14 23:46:26 0 삭제
    괜시리 눈물이 나네요. 정말 가슴이 따뜻해지고 뭉클해지는 사진입니다.!!
    14 고요한 폐허들 [새창] 2014-12-15 11:35:30 2 삭제
    체르노빌 투어 패키지 판매하고 있는 걸로 본 것 같음
    13 원 게시글이 삭제되었습니다. [새창] 2014-09-22 16:03:01 3 삭제
    본문에서 주자학이 이기론을 가볍게 여긴다는 것은 좀 지나친 감이 있는 것 같네요. 이기론은 정이천의 이원론을 주자가 확대한 것으로 1원론적 기철학과 구분되는 주자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은 어떻게 인성론과 우주론의 결합시키는 것에 있었고요.(불교 연기설과 도교의 우주론에 대응하기 위한 논리로써) 이 때문에 주자학이 이기론을 등한시 했다는 것은 주자학의 핵심 자체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조선성리학과 주자학의 가장 큰 차이는 주자학이 우주론에 집중했다면 조선성리학은 이것을 더욱 발전시켜 심성론으로 확장했다는 것입니다. 퇴계의 사단칠정논변부터 인물성동이론에 이르기 까지 주자학에서 간과했던 인간의 감성문제를 심화시켰다는 것이 조선성리학의 가장 큰 특징이자 업적
    이라 할 수 있습니다.
    12 철학 게시판에는 도가를 아시는 분이 계신가 봐요 [새창] 2011-05-04 15:18:06 0 삭제
    철학사에서 도교와 도가는 구분됩니다. 선진시기 처음 도가가 출발 했을 때 이들의 구분은 모호했습니다. 관점에 따라 병가에 포함시키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유는 당시의 도가가 심도있는 철학적 성격 보다 일상 생활 속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처세술에 가까운 논의를 핵심 골자로 한 것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동시에 기존의 주 문화에 반대한 무위의 사상이 민간에게 많은 영향을 미쳐 묵가와 더불이 민중 신앙의 형태로 발전되어 지지요. 분명 당시의 도가에도 철학적 요소가 잠재되어 있었지만 '도가도 비상도'로 알려진 철학적 형태의 도가가 자리한 것은 위진시대 청담사상에 영향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위진시대 전국의 혼란스러움과 동시에 청담과 현학이 떠오르게 되는데 이때 주목 받게 되는 것이 도교의 사상입니다. 위진시대 이전 한대는 동중서에 의해 전체주의적 성격의 유가가 지배하던 시기였습니다. 한의 멸망과 동시에 전체주의 성격에 대한 환멸과 동시에 개인주의 및 출세(세상은 등지고 은둔한다)적 성향의 학문풍조가 당시의 지식인들에게 유행하면서 왕필, 하안으로 대표되는 죽림칠현을 중심으로 노장의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동시에 불교의 유입에 힘 입어 현실적 논의가 아닌 형이상학적이며 철학적인 논의를
    주로 하는 청담이 유행하면서 현재 잘 알려지 철학적 형태의 도가가 형성되게 됩니다. 사료적으로 볼 때도 출토문헌(백서노자)을 통해
    보면 본래 도덕경이 아닌 덕도경이 원전이며 그 내용 또한 왕필집주의 노덕경과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위진시대 도가의 형성과 동시에 민간에서는 도교가 그 형태를 자리하게 됩니다. 도교는 묵가와 혼합되어 매우 종교적인 형태로 나타나
    게 되는데 삼국지의 황건적으 난이나 19세기 태평천국운동과 같은 민중 운동의 배경에는 이들의 영향이 적지 않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크게 황제(黃帝)와 노자를 숭배하며 정치적 성향의 황노학파와 종교적 성격의 오두미교등등으로 나타납니다. 이후 이들은 연단
    술 불노장생술등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도가와 도교는 완전히 성격이 다릅니다. 도가의 핵심 사상을 무위라고 했을 때 도교가 지향하는 불노장생이나 연단
    술은 오히려 무위가 아닌 인위에 가깝습니다. 때문에 도교는 도가에서 파생된 것이기는 하지만 본래 의도와 상반되 성격의 것으로 볼수 있습니다.
    11 수학은 완벽한 학문이다. [새창] 2011-03-25 02:57:45 1 삭제
    수학과 수리철학은 구분해야 되지 않을까요? 플라톤의 아카데미 입구에도 기하학을 모르는자 학문을
    배울 자격이 없다로 적혀 있을 정도로 당시 수학은 무결점의 학문이었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식의 구조상에서 볼 때 완벽하다는 것일 뿐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닙니다. 수학은 어디까지나 약
    속으로 이루어진 연역추론을 기반으로 한 학문입니다. 현실계에 수학과 1:1로 대응되는 대상은 어디
    에도 없죠. 예를 들어 완벽한 형태의 원 이나 사각형은 단지 개념으로만 존재할 뿐 현실에서 구현하
    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숫자의 대응 또한 마찬가지지요. 여기 눈 앞에 귤 하나가 있다고 가정하고
    이것을 1이라 지칭할 때 이것을 벗겨서 10조각이 되면 10이 됩니다. 하지만 귤 그 자체에는 1도 10
    도 내포하고 있지 않죠. 단지 숫자라는 개념을 빌려 그것을 형식화 할 뿐입니다. 플라톤이 기하학
    을 중시 했던 것은 수학으로서의 기하학에 관심을 가졌기 보다 그것의 근원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
    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원 그 자체는 무엇인가? 사각형 그 자체? 혹은 수 그 자체는 무엇인가?
    등등의 근원에 대한 질문이었죠. 왜냐면 수학 만큼 완벽한 연역추론을 바탕으로한 학문 체계는 없기
    때문이죠.
    정리하자면 수학은 약속이며 따라서 논파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 수학의 세계 속에서는 완벽한 논
    리구조를 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논리상에서 가능할 뿐 현실에 적용 했
    을 경우 그 완벽을 보장할 수 없게 됩니다. 피타고라스의 경우에도 결국 종교적인 형태로 발견 했
    죠. 수학의 세계에서는 그것이 완벽할지는 몰라도 현실에서는 오히려 가변적이고 귀납적인 대상을
    수학이라는 틀에 정형화 시키는 허수아비 논증의 오류에 빠져 들 수 밖에 없으니 말이죠.

    10 수학은 완벽한 학문이다. [새창] 2011-03-25 02:57:45 2 삭제
    수학과 수리철학은 구분해야 되지 않을까요? 플라톤의 아카데미 입구에도 기하학을 모르는자 학문을
    배울 자격이 없다로 적혀 있을 정도로 당시 수학은 무결점의 학문이었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식의 구조상에서 볼 때 완벽하다는 것일 뿐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닙니다. 수학은 어디까지나 약
    속으로 이루어진 연역추론을 기반으로 한 학문입니다. 현실계에 수학과 1:1로 대응되는 대상은 어디
    에도 없죠. 예를 들어 완벽한 형태의 원 이나 사각형은 단지 개념으로만 존재할 뿐 현실에서 구현하
    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숫자의 대응 또한 마찬가지지요. 여기 눈 앞에 귤 하나가 있다고 가정하고
    이것을 1이라 지칭할 때 이것을 벗겨서 10조각이 되면 10이 됩니다. 하지만 귤 그 자체에는 1도 10
    도 내포하고 있지 않죠. 단지 숫자라는 개념을 빌려 그것을 형식화 할 뿐입니다. 플라톤이 기하학
    을 중시 했던 것은 수학으로서의 기하학에 관심을 가졌기 보다 그것의 근원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
    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원 그 자체는 무엇인가? 사각형 그 자체? 혹은 수 그 자체는 무엇인가?
    등등의 근원에 대한 질문이었죠. 왜냐면 수학 만큼 완벽한 연역추론을 바탕으로한 학문 체계는 없기
    때문이죠.
    정리하자면 수학은 약속이며 따라서 논파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 수학의 세계 속에서는 완벽한 논
    리구조를 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논리상에서 가능할 뿐 현실에 적용 했
    을 경우 그 완벽을 보장할 수 없게 됩니다. 피타고라스의 경우에도 결국 종교적인 형태로 발견 했
    죠. 수학의 세계에서는 그것이 완벽할지는 몰라도 현실에서는 오히려 가변적이고 귀납적인 대상을
    수학이라는 틀에 정형화 시키는 허수아비 논증의 오류에 빠져 들 수 밖에 없으니 말이죠.

    9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새창] 2011-03-21 22:14:05 0 삭제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것은 물자체가 아닌 현상이지요. 현상은 주관형식에 의해 구조지어진 존재 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직관형식에 따라 시공간 안에 질서지워진 것과 사유형식에 따라 필연적인 것으로 규정된 것만 직관하고 사유하여 인식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인식하는 것은 모두 우리 자신의 직관과 사유형식에 의해 규정된 현상, 즉 주관형식에 따라 존재하는 현상입니다. 마치 꿈에서 본 것이 그 꿈을 꾸는 개인의 마음과 떠나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듯이, 인간이 감각기관을 통해 직관하고 오성을 통해 사유하는 것, 즉 우리의 인식대상이 되는 모든 것은 바로 그렇게 인식하는 인간 자신의 직관형식과 사유형식이 누구에게나 동일하기에 인간은 '하나의 현상세계'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서양 근대철학 참조 창작과 비평사

    말하자면 순수이성은 자연필연성에 대한 지식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것은 결코 인간에게 본래 주어진 형식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모든 인간이 동일한 지식을 가진다고 할 수 있겠죠.

    단. 이것은 어디까지나 과학이나 자연법칙에 관련된 부분입니다. 칸트는 제2비판서에서 자연필연성과 자유(윤리적 행위)의 이율배반성을 언급하며 실천이성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물리적 사건에 대한 지식과 행위에 대한 보편을 또 다른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행동이 도덕적인가의 문제는 뉴턴의
    중력의 법칙과 같이 동일하고 객관적일 수 없기 때문이죠

    마지막으로 제3비판서에 취미판단을 이야기하게 되는데 여기서는 더욱더 행위자의 주관에 치우치게
    됩니다. 때문에 주관적합목적성이라는 일종의 공감의 형식을 빌려 약속적 보편을 이야기 하게 되지요

    결론을 말하자면 제1비판에서 말하는 보편적 진리는 칸트에 따르면 누구나 동일한 형식 아래에서 동
    일한 지식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8 칸트와 소피스트? [새창] 2011-03-14 20:58:33 1 삭제
    서양 근대 철학의 주류를 이야기한다면 인식론입니다. 인식론이란 진리란 무엇이며 그것을 어디에서 근거 되어지는가? 변하지 않는 실체란 존재하는가? 등의 물음에 관한 것이죠. 옥캄 이후 중세의 신학의 시녀도 있던 철학이 신학으로 부터 독립하면서 인간 이성에 대한 활발한 담론이 이어졌고 이들의 관심은 참된 진리를 도출하는 방법과 과정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크게 영국의 경험론과 대륙(프랑스)의 합리론으로 나누어지는데 전자는 경험적이고 귀납적인 탐구를 통해 진리의 근원을 찾아가는 것이고, 후자는 선험적인 본유관념에 기초하여 연역적인 원리에서 진리의 근원을 찾는 방식입니다.

    문제는 이 둘 모두가 종래에 와서는 명백한 그 한계를 나타냈다는 점에 있습니다. 합리론의 경우 결국 신의 전능에 기댈수 뿐이 없게되어 진리의 근원 즉, 본유관념 자체에 대한 증명의 불가능에 빠지게 되고 후자는 탐구와 관찰에 기대어 마지막에는 회의론에 빠지고 말게 됩니다. 칸트는 이 둘을 종합하여 제 3의 인식적 방식을 도출한 인물입니다. 물자체라는 선험적 세계와 인간의 오성 및 12범주를 상정하여 합리론적인 체계를 가져옴과 동시에 외부의 감각자료를 이들이 받아 들여 상상력 혹은 구상력을 통해 종합한다는 경험론적 성격도 합께 취하게 됩니다. 말하자면 합리론의 장점과 경험론의 장점만을 취해서 이 둘을 통합하면서 동시에 제 3의 방법론을 제시한 것입니다.

    소피스트의 경우 보편적 진리를 부정하고 상대주의를 표방한 히랍시대의 지성인들 입니다. 이들과 반
    대의 입장에 있던 소크라테와 플라톤이 보편적 진리인 이데아를 이야기한 것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발
    견 할 수가 있겠죠. 정리하자면 소피스트들에게 있어 절대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상황에 따
    른 적절한 변론을(처세술에 가깝다 할 수도 있겠죠) 최고로 치부한 인물들 입니다.


    칸트는 엄연히 보편적 진리가 있음을 상정합니다. 바로 물자체가 그것이고 순수이성 말미에서 나오
    는 요청적 신이 그러한 것이죠. 때문에 소피스트와는 그 학문적 관점에 완전히 다르다고 볼 수 있습
    니다. 굳이 소피스트와 연결한다면 경험론자들이 더 가깝다 할 수 있겠죠. 굳이 유사점을 이야기한
    다면 순수이성을 요청하는 자유의지를 제외한 나머지 인간의 경향성들이 상대적이라는 점 정도가 아
    닐까 생각이 됩니다. 결국 칸트와 소피스트사이의 접점을 찾는 것은 조금 무리가 아닐까 생각이 드
    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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