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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량수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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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량수님의 댓글입니다.
    번호 제목 댓글날짜 추천/비공감 삭제
    4518 왜 의자왕은 경주로 가지 않았나요? [새창] 2014-08-17 11:38:45 2 삭제
    백제의 성왕이 죽고 마지막 전력을 의자왕이 대야성까지만 향하게 한 것은 전력도 전력이지만 관리상의 문제일 가능성도 큽니다. 고구려의 광개토왕이 신라를 직접 통치할 힘이 있는데도 관리가 되는 곳 정도로만 남겨둔 이유기도 하죠. 신라가 통일한 후에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들이 들고 일어났던 것을 생각하면 왜 백제와 고구려가 신라를 무너뜨릴 수 있음에도 안 그랬는지에 대한 근거가 되어주지요. 물론 정확하게 이 때문이라고는 말 못하지만요. ^^;

    그리고 신라가 외세를 끌어들이긴 했지만 사실상 당시 시대 인식을 추측해보면 신라와 고구려, 백제가 같은 민족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고구려에서 말갈인들이 고구려인들의 지배를 받으면서 살 수 있었던 것이나 그들이 다시 고구려 유민들과 발해를 세웠던 것을 생각해보면 말갈인들이나 고구려인들이나 다 같은 고구려인이라는 인식이 강했기에 그렇게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특히 고구려인들이 민족적 의식이 강했다면, 통일된 신라에서 당나라에 항쟁할 때 한 덩어리로 싸웠을 가능성이 높죠.

    반대로 이런 정황에도 불구하고 고구려인과 백제와 신라의 사람들이 하나의 민족적인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는 단서들도 있는데요. 그건 고려가 통일 되었을 때 상황 때문입니다. 고려가 한반도를 다시 통일하고 발해가 멸망하자 고구려의 유민들이었던 발해의 지배층들이 대거 고려에 유입이 되거든요. 물론 고려의 뜻을 이어받은 국가라고 자칭한 덕이긴 하지만 말갈인들이 따로 세력화 되어있고 고구려의 유민들만이 흡수된 것을 보면 지금 시대의 우리들이 모르는 어떤 민족적인 연결고리가 있었을 것이란 추측을 하게 만들지요.

    이상이 왜 고구려와 백제가 신라를 통일해 통치하지 않았는지와 민족적인 개념에 대한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
    4517 장수왕의 남하정책 이후, 우울함이 백제를 덥치다. [새창] 2014-08-16 10:34:12 0 삭제
    잘가다가 마지막 줄에 왠 산동반도와 요서를 지배했다는 이야기 인가요. ㅡㅡ;;;
    4516 유병언 물타기 반박법 [새창] 2014-08-15 17:06:00 0 삭제
    종편이 하루종일 방송하고 몇달 동안 매일 추적을 괜히 하는 것이 아닙니다. ㅡㅡ;;; 유병언의 내연관계와 그의 아들이 도망 중에 힘 없는 목소리로 닭을 시켰다는 것이 특종이 되는 이유가 다 있는 법이지요.
    4515 독립운동세력이 하나로 규합했더라면...... [새창] 2014-08-15 15:33:25 0 삭제
    국가에 대한 개념자체가 달라서 힘들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요. 공산당은 국가의 개념이 자주 독립보다는 소비에트 연방으로써 노동자들을 위한 세계 국가 건설이었고, 반대쪽들은 민족에 의한 자주적 국가였으니 말이에요. ^^;; 일본이 독립운동했던 조선인들 만큼이나 자국내 공산당을 축출하려고 했던 것을 보면 뭐... ^^;;

    그나저나 임시정부가 원래는 공산당세력과 민족주의 세력 모두가 힘을 함쳐서 같이 세웠던 것 아니었나요?
    4514 한국사 11.통일신라와 발해(ver 0.1) [새창] 2014-08-13 12:20:46 0 삭제
    감사합니다. ^^
    4513 저 염씨인데요 [새창] 2014-08-12 00:31:31 0 삭제
    앞서 달린 댓글 이야기처럼 사실상 조선후기에 오면 양반들의 족보를 돈 있는 중인계층들이 사서 자신의 족보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일제 강점시기 등을 거치면서 사실상 소수의 가문을 빼고서는 무의미해졌답니다. ^^;; 염씨 정도라면 이런 혼란에 섞였을 비중이 적을 수도 있지만 그냥 재미삼아서만 알아두세요. 맹신하지는 마시구요.

    참고로 중국에서 오래 전에 건너온 성씨의 경우중 많은 수는 정치적인 위협을 벗어나려고 건너오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왕족들도 있고.. 뭐 그런게지요. ^^
    4512 우리나라 곧 망하겟네여 [새창] 2014-08-11 10:36:39 5 삭제
    조만간... 현대가의 형제의 난을 뒤 잇는 삼성가의 남매의 난이 벌어지는 것인가?? ㅡㅡ;;
    4511 한국사 10.고구려와 백제의 항쟁과 멸망(ver 0.1) [새창] 2014-08-07 12:50:44 0 삭제
    희지개//
    다음 글에 쓸 내용이긴 한데요. ^^; 신라가 당나라의 안동도호부를 평양에서 요동성으로 몰아낸 것이 676년입니다. 그리고 발해가 건국 된 것은 698년이죠. 약 20년 가까이 무슨일이 있었느냐는 질문이신데요. 그 시기에 무슨일이 있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ㅜㅜ 삼국시대의 기록 대부분이 삼국사기에 많이 의존하기 때문인데요. 삼국사가 모든 것을 다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사건들을 기록해놓은 것이고, 또한 당대의 기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후대에 전해진 기록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내용 또한 정확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여하튼 신라와 당나라 사이의 전쟁이후 무슨 일이 있었느냐면, 당나라는 신라와의 전쟁 즘에 측천무후라는 여자 황제가 나타납니다. 원래 황비였던 여자였는데, 황제대신 국정을 돌보다보니 황제자리까기 갔는데요. 여자가 황제가 된 만큼 당나라 자체적으로 꽤 큰 내분이 있었고, 이후에도 이런 저런 큰 사건들이 벌어져서 당나라 국내 정치가 쉽게 안정되지 못합니다. 그러니 자연히 변방에 대한 신경도 쓰지 못하게 되겠지요. 그 와중에 고구려 유민들은 원래 고구려 영토였던 곳에서 산발적으로 부흥운동을 하고 있었지요. 신라로 흡수된 세력은 그 여러 세력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신라가 당나라를 몰아냈어도 고구려 유민들의 상당수는 당나라에 대항해 부흥운동을 하고 있었죠. 그들을 하나로 규합하고 국가로 발전 시킨 것이 대조영이고 그 대조영이 만든 나라가 발해라고 보고 있습니다. 질문을 해주신 20년간의 세월 동안 정확하게는 말 할 수 없지만 고구려 땅에서는 대조영이 여러 고구려 부흥세력을 규합하고 나라의 기틀을 잡아가고 있었고, 신라는 넓어진 영토에 대한 지배체제를 강화하기 위해서 국가를 다지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
    4510 한국사 10.고구려와 백제의 항쟁과 멸망(ver 0.1) [새창] 2014-08-07 10:00:16 0 삭제
    정탁//
    가야는... ㅜㅜ 신라가 엄청나게 성장하던 562년에 멸망하게 됩니다. 자료가 많지 않아서 6번째 글에서 단 몇줄로 마무리를 지었답니다.

    지으니!//
    네 말씀하신 것이 맞습니다. ^^ 글이 길어서 내용을 최대한 압축시키느라 그랬는데, 다음 버전에서는 의자왕의 활약을 살려보도록 하겠습니다.
    4509 [질문] 우리조상들의 애정행각에 대\ [새창] 2014-08-07 00:47:31 0 삭제
    키스 및 성행위를 통해서 애정을 표현하지만 문화적 차이에 의해서 남 앞에서 하느냐 안 하느냐가 갈리겠지요. 유교적 사상이 지배하던 시기에는 애정표현은 죄악시 되다싶이 했습니다. 반면 유교적 사상이 지배적이지 않았던 고려시대에는 그 보다 훨씬 자유로웠지요. 정확하게 어떠했다는 알 수 없지만, 고려시대에 쓰여진 문학작품들을 통해서 대충 예측을 할 뿐입니다.

    확실한 것은 애정표현에 있어서 고려시대가 조선시대보다 훨씬 자유로웠고, 개방적이었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재혼 및 여성의 권리에 있어서도 조선시대보다 고려시대가 개방적인 편이었지요. 조선시대도 초기에는 여성에 대해 그리고 애정행위에 대해 제한하는 것이 적었던 반면 중기를 지나면서 매우 심해진다고 생각하시면 될듯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춘화가 알음알음 나돈다던지 이런 저런 사건들을 통해 불거지는 성과 관련된 일화를 보면, 안하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을 뿐임을 짐작케 합니다. 그 엄격한 시대에도 동성간의 사랑 이야기가 나올 정도니 ^^;;

    키스는 인류 공통적인 애정 표현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합니다. ^^
    4508 일본 교수의 임진왜란 분석.jpg [새창] 2014-08-05 14:30:39 88 삭제
    이건... 음... 히데요시에 대한 자료들을 전적으로 신뢰할 때 나올 수 있는 이야기구요. 당시 동북아시아 판세와 상황을 생각해본다면, 히데요시가 명나라와 교역을 하기 위해서 조선을 침략하고 조선이 자신의 밑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조선에 아무리 기괴한 왕이 있었어도 분열된 일본에게 통신사를 보내면서 명나라 문물을 전해주던 나라입니다. 물론 조선에서 일본을 왜구라고 부르면서 낮춰보긴 했지만, 조선에서도 일본이 자신의 영향권 아래서 통제되는 국가라고 생각하지 못하듯이 일본도 조선을 자신의 영향권 아래서 움직이는 국가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저 교수가 말하고 있는 생각도 뒷받침할 만한 자료가 있으니까 나왔겠지요.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문제기는 한데요. 제 생각에는 저 교수가 봤던 자료들이 히데요시가 허세스러움을 표현하기 위해 작성된 것들을 그대로 믿고 있다는 생각이드네요. 국내에서 히데요시의 침략 원인으로 일본 통일 이후 국내의 남아도는 전력들의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부로 표출했다는 이야기가 지금으로써는 가장 타당한 추측인 것같습니다. 명나라로 진출하겠다는 것은 그저 조선을 침략하기 위한 변명 또는 대외적인 명분일 뿐이구요.
    4507 산케이, 朴 사라진 7시간, 사생활 상대는 정윤회? [새창] 2014-08-05 11:09:05 28 삭제
    정부가 종편들 데리고 유병언과 그의 자식들의 불륜놀이 보도하는 것과 똑같은 수준으로 일본 신문한테 당하고 있네요. ㅡㅡ;;; 자기가 뿌린 씨앗은 자기가 거둔다고 스스로의 허물을 감추기 위해서 과하게 유병헌데리고 종편으로 놀더니만...
    4506 한국사 9.늦게 발전했지만 마지막까지 남았던 신라(ver 0.1) [새창] 2014-08-04 23:22:12 0 삭제
    다탄연탄//

    불려지는 것은 금관가야나 본가야 모두 맞는 말로 알고 있습니다. 참고로 삼국사기에는 금관국이라고 쓰여있습니다. ^^
    4505 한국사 9.늦게 발전했지만 마지막까지 남았던 신라(ver 0.1) [새창] 2014-08-04 23:17:05 1 삭제
    여명을보며//

    삼국사기에 의하면 개국으로 변경하고 나서 진흥왕 29년에 태창으로 바꾸고, 진흥왕 33년에 홍제로 바꿈니다. 여기서는 0.1 버전이기도하고 참고하는 책인 한국사통론에서 크게 중요한 것으로 여기지 않아서인지 적혀있지 않네요. ^^; 그래서 일단 빼고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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