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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9 11:2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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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독립영화 감독입니다.
지금까지 소규모 영화를 세 편 제작했고 모두 흥하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좋은 평점을 얻었죠.
저는 네 번째 영화의 주제로 마약을 골랐습니다. 흡입하면 놀라운 환각이 느껴짐과 동시에 예술성과 집중력이 엄청나게 향상되는, 쉽게 말해 누구나 천재가 되는 마약에 대한 이야기였지요.
흥미롭고 자극적인 소재라서 마음에 쏙 들었고 곧바로 시놉시스와 시나리오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치명적인 문제점이 밝혀졌어요. 마약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마약에 대한 묘사를 구체적으로 하지 못한다는 거였죠.
어떻게든 마약에 취한 상태를 상상해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상상해도 이해할 수 없었어요. 애초에 마약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최대한 그럴듯하게 꾸며보긴 했지만 시나리오는 어설프고 난잡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핵심이 빠져있었어요.
마약에 대한 글이나 영상을 봐도 뜬구름잡는건 마찬가지였습니다. ‘풍선을 타고 하늘을 나는 기분’, ‘뭐든지 할 수 있을것 같다’ 정도의 내용으로 뭘 알 수 있을까요? 곰곰히 생각해본 결과 마약은 말이나 글로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 있다는 결론에 닿았습니다.
그래서 마약 비슷한 물질들을 직접 구해 먹어봤습니다. 각성제인 카페인 알약을 구해 치사량의 절반 가까이 먹어보기도 하고 수면제도 먹어봤어요. 본드도 빨아보고 환각 부작용이 있는 의약품이나 환각 성분이 있다는 버섯까지 찾아서 먹어봤습니다. 다 실패했어요. 효과는 애매했고 하마터면 죽을뻔 했습니다.
결국 마지막의 마지막에서야 진짜 마약에 도전했습니다. 효과는 놀라웠어요. 지금껏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기분. 그렇구나! 이래서 사람들이 마약을 하는구나! 이제 저는 영화를 만들 준비가 되었습니다. 아니, 영화가 아닌 무엇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경찰관은 한참 조서를 쓰다가 손을 멈추고 감독에게 말했다.
“이유는 그게 답니까? 그래서 마약은 어디서 구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