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24
2018-11-01 12:55:21
2
나는 오늘도 도망쳤다. 1층 거실에는 부모님이 계실게 뻔하므로 창문을 번쩍 열고 난간에 조심스럽게 발을 딛은 다음 미리 준비해둔 사다리를 타고 내려갔다. 들키지 않은걸 확인하고 신나게 나만의 아지트로 달렸다.
“어? 미키, 벌써 나와도 돼? 숙제 다 끝날 때까지 못 나온다면서.”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소라가 물었다.
“쉿. 너무 크게 말하지 마.”
소라는 몰래 빠져나온걸 눈치채고 킥킥 웃었다.
“킥킥. 이르지는 않을거지만 혼나도 모른다. 아, 그쪽 길로 갈거면 하얀 집에는 가까이 가지 마.”
“왜? 무슨 일 있어?”
소라가 얼굴을 가까이 붙이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요즘 그 집에 귀신이 나온다는 말이 있어. 아무도 없는데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더라.”
“귀신? 피아노? 피아노는 잘 친대?”
나는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아니, 정말 못친대.”
“아 그래…”
못 치는구나.
새어나오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어깨가 축 쳐졌다.
어쨌든 조심하라는 소라를 뒤로 하고 나는 하얀 집으로 향했다. 걱정해주는건 고맙지만.
마을 외각의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면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하얀 집이 나온다. 듣기로는 몇 년 전에 음악가 가족이 살았다고 한다. 나는 한 달 전 호기심에 그 집을 기웃거리다가 울타리의 벌어진 틈을 찾았다. 딱 어린 내가 통과할 만큼 작은 구멍이라 나는 비밀의 문이라도 들어가는 것처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울타리를 통과했다.
울타리 너머는 잡초가 무성한 안뜰이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비어있었는지 이름모를 풀들이 내 허리높이까지 자라있었다. 풀숲을 헤쳐 들어가면 집 안으로 통하는 커다란 유리창이 나온다. 사람이 안 온지 몇 년이나 지난 집이지만 처음에 들어갈때는 도둑이 된 것 같아서 얼마나 떨렸던지. 하지만 유리창 안에 보이는 커다란 피아노를 보는 순간 나는 참을 수 없었다.
문은 잠겨있지 않았지만 녹슬어서 조금 뻑뻑하게 열렸다. 나는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눌렀다.
“정말 못 친다고?”
조금 분하고 부끄러웠다. 피아노를 쳐보기 시작한게 몇주도 안됐는데 당연한걸, 선생님도 없이 혼자 배우는건데.
피아노가 깨어나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서 연습 코드를 세 번 완주했다. 손이 풀어진걸 확인하고 먼지가 쌓인 책장에서 초보자용 악보를 꺼내 피아노 보면대에 올려놓았다.
처음에는 단순한 음만 낼 수 있었지만 곧 젓가락 행진곡과 뽀뽀뽀, 작은별 정도의 멜로디는 낼 수있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도전할 곡은 버터플라이 왈츠. 쉬운 곡이지만 후렴 부분에서 아직 손이 꼬였다.
나는 피아노를 못친다. 인정한다. 그래서 아직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언젠가 내 연주만으로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을 수 있게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