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 style="text-align:left;"><img width="720" height="1006" style="border:;" alt="에이오에이.jpg"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410/14137212057zFdCNLwBF1B.jpg"></div> <div><br>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민족과 함께 해 온 애이오애이 愛以娛愛利 연혁사</div> <div> </div> <div> </div> <div>1314년 (고려 제 27대왕 충숙왕 즉위년) 남경(한양:지금의 서울)에서 결성. 데뷔하여 고려 전역의 남성들과 군인들을 심쿵하게 함. <br>1315년 개성에서 충혜왕(헌효왕) 왕정 탄생 축하공연 <br>1323년 책성입동사태 반대시위 공연: 책성입동이란 당시 원나라 간섭기때 친원파들이 나라를 원나라의 행정구역으로 삼아줄 것을 요청한 사태. <br>1330년 충혜왕 즉위식 축하공연 <br>이후 충혜왕의 폭정속에 여러차례의 수청을 거부하고 두문불출하여 공민왕이 즉위하기 전까지 활동중단 <br>1351년 공민왕 왕전 즉위식 축하공연으로 컴백. <br>1356년 기철 등 친원파들이 숙청된 후 개경의 사찰 흥왕사에서 축하공연. <br>1363년 홍건적의 난 평정과 개경 수복이후 선정전에서 처음으로 축하공연. <br>홍건적의 난 당시 권민아(1293~ )가 의병으로 활동하여 공민왕에게 '추충정난공신 영가군'의 공신책록과 작호를 받음. <br>1367년 당시 집권자 영도첨의 신돈의 초청으로 개태사에서 축하공연. <br>1371년 신돈이 숙청되자 신돈과 친하게 지낸 혐의로 전 멤버들 기소됨. <br>1372년부터 활동정지. <br>1380년 황산대첩 당시 권민아 선생 의병으로 참전. <br>이 후 신진사대부와 신흥무인세력이 등장하자 정몽주, 정도전의 추천으로 다시 활동 재개. <br>특히 군인 이성계의 전폭적 지지를 받음. <br>1392년 7월 조선개국 축하 공연 <br>당시 군인출신 태조이성계가 애이오애이 그림이 그려진 옷을 입고 환호하며 열광하자 <br>72명의 유학자들이 "이젠 하다하다 국왕이 오덕질'이라며 두문동으로 잠적하는 사태가 벌어짐. <br>1394년 한양 천도 축하 공연. 온 천하로 미래로~ <br>1398년 제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활동중단. <br>1401년 태종 이방원이 화해의 손짓을 제의해 이후 삼군도총부 소속이 됨. <br>1418년 세종대왕 즉위식 축하공연 <br>1419년 대마도정벌 당시 영가부원군 권민아 참전. <br>1435년 4군 6진 설치 후 만주 순회공연. 여진족들이 애이오애이를 외치며 열광함. <br>1447년 훈민정음 반포식 축하공연. <br>1450년 문종 즉위식 축하공연. </div> <div>1453년 계유정난이 일어나고 권람, 한명회, 신숙주 등이 애이오애이의 협조와 지지를 구했으나 거절하고 <br>성종이 즉위할때까지 다시 활동중단. <br>1469년 성종 즉위식 축하공연 <br>경국대전,동국통감 편찬 후 축하공연. <br>1494년 연산군 즉위 후 폭정이 시작되고 왕이 애이오애이의 미모를 탐내자 실망하고 다시 활동중단. <br>무오사화,갑자사화 등 사화가 발생하자 선비덕후들에게 응원메시지를 보낸 것을 빌미로 <br>연산군의 탄압이 시작됨. <br>특히 채홍사 수장으로 발탁하려 했으나 제의거절한 것이 연산군이 탄압하게 된 계기. <br>1506년 중종반정 후 중종즉위식 축하공연 <br>1510년 경오년 제포,부산포, 염포 3포에서 왜인들이 애이오애이의 공연을 요구하며 삼포왜란을 일으킴. <br>이때 권민아 선생은 삼포왜란에 참전. <br>군인 272명이 희생당하자 권민아 선생이 눈물흘리며 군인가족을 응원함. <br>이후 애이오애이는 비변사에 소속 됨. <br>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도체찰사 서애 류성룡과 협조하여 임진왜란에 참전. <br>애이오애이는 격동의 역사가 계속되던 흐름 속에 민족의 수난과 애환을 함께 해온 호국아이돌로 인식되어 <br>1604년 호성원종공신, 선무원종공신에 책록됨. <br>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듣보잡 능양군 샛기가 나라를 망친다며 권민아선생은 유유자적. <br>팀은 다시 활동정지. <br>이 와중에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 터져 권민아선생은 또다시 의병으로 참전. </div> <div>남한산성에서 몽진하다가 청나라에 항복한 능양군을 한탄해 하며 다시 활동중단, 칩거생활에 들어감.</div> <div> </div> <div style="text-align:left;"><img width="533" height="800" style="border:;" alt="권민아검.jpg"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410/1413721380wYihSFWJt4xcvza9sW3E.jpg"></div> <div><br>위 사진의 검은 홍건적의 난 시절 때부터 권민아(안동권씨 일세조 태사 권행의 후손.1293~ ) 선생이 줄곧 써오던 검으로 홍건적의 난 당시 공을 세운 최영장군이 지휘관으로 있던 부대를 방문하여 위문공연 한 뒤 최영 장군에게 받은 선물로 알려짐. </div> <div>이 검은 최영장군에게 선물받은 이후로 황산대첩, 대마도정벌, 삼포왜란, 을묘왜란,임진왜란,병자호란,구한말 의병항쟁 등에서 사용됨.<br>애이오애이의 노래 중 단발머리는 19세기 구한말 당시 격동하는 개화 근대기의 물결 속에 이루어진 단발령의 명암을 <br>지적한 노래. </div><b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