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글<br><br> 문재인 전 대표와 ‘법무법인 부산’에서 함께 일한 김외숙 변호사가 2012년 7월 23일에 <대한변협신문>에 기고한 ‘부산신사의 품격’이란 글의 일부분입니다. <br><br> 당시 기고한 글에는 ‘신사M'으로 나왔지만 이후 필자의 허락을 받아 문재인 의원 블로그에 실리면서 ’신사 문재인‘으로 실명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br><br><b> 신사 문재인: 인간에 대한 예의</b><br><br> 내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부산에 와서 변호사를 시작하게 된 건 순전히 문재인 변호사 때문이었다. 1990년대 초반, 부산·경남지역에서 노동, 인권사건은 문 변호사가 도맡고 있었다. 혼자 잘 먹고 잘살기 위해 고시공부를 한 건 아니라고, 나름대로 정의감에 충만해 있던 예비 법조인들에게 그는 훌륭한 역할 모델로 이름나 있었다. <br><br> 노동변호사가 되고 싶다며 불쑥 찾아간 나를, 그는 흔쾌히 맞아 주었다. 체력이 약해 비실거리지나 않을지, 출산이나 육아로 업무에 지장을 주진 않을지 등등 여자라서 일시키기에 불편할까 따지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때까지 사회경험이라 할 만한 것이 없었던 나는 문 변호사의 그런 태도가 누구에게서나 볼 수 있는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 <br><br> 그러나 변호사를 시작하고 온갖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나는 사람에 대해 그런 태도를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서서히 알아갔다. <br><br> 나만 해도 변호사로서 조금 꾀가 나기 시작하자 사람을 가려 판단하고, 지레 선입견으로 말을 자르고, 유불리를 따졌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변호사의 제한된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지혜라 여겼다.<br><br> 하지만 문 변호사는 달랐다. 내가 보기엔 반복되는 쓸데없는 이야기, 순전히 억지뿐인 이야기를 늘어놓는 당사자에게도 그는 그렇게밖에 못하는 상대방의 마음을 먼저 읽을 줄 알았다. <br><br> 그래서인지 가족들에게서도 외면당한 사람, 의지할 데 없는 사람, 절망에 빠져 죽음까지 생각하는 사람들이 유난히 그를 찾았다. 돈 받고 남의 일 해주는 변호사지만 그렇게 신뢰와 의지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를 통해 보았다. <br><br> 수년 전의 일이다. 우리 사무실에는 아주 질기고 질긴 사건이 하나 있었다. 사건이 그렇게 되는 데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사건 본래의 성격이 그렇거나, 아니면 당사자가 독특하거나. 후자의 경우에 해당하는 사건이었고 당연히 문 변호사를 보고 찾아온 의뢰인이었다. <br><br> 그녀는 도무지 청구취지에 담길 수 없는 내용을 주문했고, 한 가지를 설득시키고 나면 다른 요구사항을 들고 나오는 식이었다. 그녀의 주치의들과 법원 근처의 웬만한 법률사무소들도 이미 두 손을 든 상태였다. <br><br> 그녀는 때를 가리지 않고 찾아왔고, 불쑥 나타나 오랜 면담으로 업무를 중단시키고도 돌아서면 다시 할 말이 생각나는지 전화로 문 변호사와의 통화를 요구했다. <br><br> 직원들은 그녀의 성화에 전화를 바꿔주지 않을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문 변호사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러나 문 변호사는 그 흔한 “법정 갔다고 그래”라는 핑계도 대지 않았다. 가끔 얼굴을 찌푸리며 담배를 찾을지언정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호소를 끈덕지게 듣고 있었다. <br><br>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짜증스러운 상황에서조차 그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지 않았다. 결국에는 문 변호사의 한결같은 태도가 세상에 모든 원통한 일을 혼자 당한 듯이 응어리진 그녀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녀뿐만 아니라 우리 사무실 식구들까지도 스스로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였다. <br><br> 신사의 품격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데 있고 그 예의는 타인에 대한 이해와 존중에서 나오는 것임을 오늘도 되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