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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sisa_829028
    작성자 : 권종상
    추천 : 9
    조회수 : 428
    IP : 50.245.***.27
    댓글 : 4개
    등록시간 : 2017/01/04 06:35:31
    http://todayhumor.com/?sisa_829028 모바일
    시애틀 세월호 1000일 추모 행사를 앞두고
    1월, 처음으로 근무하는 날, 우편물은 빼곡하게 트럭을 채웠습니다. 어젠 아들들과 당구장에 가서 신나게 게임을 즐기다 왔습니다. 다 커 가는 애들을 보는 것이 뿌듯합니다. 지호는 요즘 대학 원서를 넣고 있습니다. 내년 이맘때, 아이가 어디 있을지는 모릅니다. 저는 지금 이 녀석을 위해, 그리고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생각을 평소보다 더 많이 하게 됩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소식을 많이 들었습니다. 새해가 왔다고 서로 나누는 인사 속에는 기쁨도, 기대도, 그리고 그들의 애환도 묻어 있었습니다. 내게 기쁨의 원천이 되는 것도, 애환의 원천이 되는 것도, 내겐 '가족'인 것 같았습니다. 

    돌아오는 일요일, 이곳에서도 세월호 1000일 추모 행사를 갖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 잘 모르는 상태에서 추진하는 행사이다보니 매끄럽지 못한 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 함께 모인 사람들은 다 같은 마음으로 모였었습니다. 이건 아니다. 이래선 안된다. 이런 모습을 다시 볼 수는 없다. 우리나라가 저런 모습이어서는 안 된다. 

    내가 지금 아이들을 보며 뿌듯해할수 있는 것은 우선 내 아이들이 적어도 '안전한 시스템' 안에서 머물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 안에서 아이들이 자라기 때문에 어느정도는 안심하고 있는 겁니다. 미국 와서 제일 저를 놀래켰던 것 중 하나가 스쿨버스가 도로에서 갖는 권리였습니다. 스쿨버스가 스탑 사인을 옆으로 펼치는 순간, 양쪽으로 다니는 모든 차는 정지해야 합니다. 그 버스가 스탑사인을 접을 때까지, 사람들은 다 기다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경찰차나 소방차가 경광등을 켜고 달리면, 즉시 모든 차들은 갓길로 차를 뺍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사실, 스쿨버스가 스탑사인을 폈는데도 지나가 버리거나, 혹은 응급차량의 우선통행권을 방해하면 응분의 댓가가 따릅니다. 장애인 주차 구역에 차를 주차해도 엄청난 과태료가 바로 뒤따릅니다. 즉, 이 시스템은 질서를 잡기 위해 사회적 보복을 확실히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입니다. 법이 공정하게 적용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탄핵 국면이 많은 이들의 공분을 한꺼번에 자아내게 된 배경엔 원칙이 평등하게 적용되지 않았다는 데 대한 분노도 한 몫 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문제는 시스템이 그것을 분명하게 보장해야 한다는 겁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마음 속에 잠재된 특권을 당연하게 여기는 의식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겁니다. 촛불 혁명이 진정하게 혁명으로 완성되려면,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법치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시스템 자체로서 증명해 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박근혜에 대한 탄핵이 이뤄져야 하고, 최순실 정유라와 그 관계된 이들의 재산이 모두 압류되고 이들이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하며, 그것이 김기춘이든 우병우든 간에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그들의 영향력이 얼마가 됐든간에 이들의 잘못이 낱낱히 백일하에 드러나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가 가진 시스템 속에서, 시스템의 운용 자체를 방해하는 것들을 치워내야 합니다. 검찰에게 주어진 말도 안 될 정도의 권력을 그에 맞도록 고치는 일이라던지, 국정원 같은 기구들의 일탈도 아예 못하도록 막아야 합니다. 권력을 남용하는 자나 기관은 응분의 댓가를 받는다는 걸 보여줘야 하며, 재벌에게 주어지는 특혜 같은 것은 더 이상 생각할 수 없는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아이들을 생각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내 아이들과 부대낄 수 있는 권리, 일상 속에서 아이들과 즐거워하고, 다투고, 다독이고, 싸우고, 그 일상을 나눌 수 있는 권리가 시스템으로 보장돼야 합니다. 세월호에 승선해 목숨을 잃은 그 아이들, 그리고 그 가족들을 생각해 봅니다. 아무리 정의가 실현되어 관련자들이 다 처벌받는다 한들, 이들의 가슴 속에 맺힌 응어리가 과연 완전히 풀릴 수 있을까요. 결국은 그 유족들이 말했던 것처럼,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나라"를 만드는 것밖에는 길이 없지 않습니까. 

    오는 일요일, 그러니까 1월 8일 오후 4시, 시애틀의 명소인 개스웍스 파크에서 열리는 세월호 참사 1000일 추모 행사에 시애틀 지역에서 많은 이들이 와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리고 우리도 비록 미국에 있지만, 사람사는 세상, 제대로 시스템이 돌아가는, 평등과 자유, 그리고 복지가 넘치는 우리 나라를 만들기 위해 여기서도 목소리를 함께 모았으면 합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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