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font size="3">전남 해남에 사시던 공점엽 할머니께서 오늘(5월 17일) 오후 5:10에 운명하셨습니다. </font></p> <p><font size="3"><br>할머니는 1920년 전남 무안에서 태어나셨고, 16세 되던 1935년에 직업을 소개해 준다는 말에 속아서 끌려가 해성-상해-하얼빈 등지에서 24세가 되던 1943년 무렵까지 일본군‘위안부’ 로 모질고 고통스런 삶을 사셨습니다. 1945년 해남으로 귀국하여 47년, 결혼을 하였지만 남편은 결혼 8년 만에 사망하고,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홀로 키우며 살아오셨습니다. </font></p> <p><font size="3"><br>할머니는 2002년부터 정대협 활동에 참여하시기 시작하여 금강산 인권캠프와 제주도 인권캠프 등에 함께 참석하여 “이런 세상도 있었소.” 하시며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셨습니다. 기나긴 농사 일로 인해 허리가 거의 90도로 굽어 잘 펴지지도 않는 몸으로 금강산을 오르던 할머니 모습, 제주 4.3학살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숨 짓던 할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font></p> <p><font size="3"><br>2년 동안 병상생활을 하시면서도 늘 희망을 잃지 않고 해남지역에서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공점엽 할머니와 함께 하는 해남나비] 회원들이 찾아가면 구수한 말씀으로 “보고 또 봐도 그립고 보고잪소” 하시며 회원들의 발길을 붙잡기도 하셨습니다. 그렇게 할머니는 사람들의 마음에 애잔한 정을 나눠 주셨습니다. <br>그런데 두 달 전부터 병환이 악화되셨고, 긴 투병생활 끝에 할머니는 결국 오늘 97세의 연세로 우리와 긴 이별로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font></p> <p><font size="3"><br>할머니 가시는 그 길, 딸이어서 차별도 없는 세상, 성폭력 피해도, 전쟁의 공포도 없는 그런 세상이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남은 유가족들에게도 위로를 전합니다.</font></p> <p><font size="3"><br>할머니 빈소는 해남중앙장례식장이며, 할머니 장례관련해서는 상조회사 태양상조와 사단법인 나눔과나눔에서 후원해 주십니다.</font></p> <p><font size="3"><br></font></p> <p><font size="3">사진을 사용하실 경우, 사진 출처 :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로 표시해주세요.</font></p> <p><font size="3"><br></font></p> <p><font size="3"></font></p> <div style="text-align:left;"><font size="3"><img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605/146348944545041ad5539b4a23a23277afb5d14b0f__mn674844__w465__h466__f64863__Ym201605.png" width="465" height="466" alt="할머니.PNG" style="border:none;" filesize="64863"></font></div><font size="3"><br></font> <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