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호남이 고향인 여징어입니다.<br><br>아빠는 원래 정치 성향이 안 그랬는데,<br>지지해도 변하는 게 없다는 걸 깨닫고 무력해지셨던 것 같습니다.<br>대선 때도 박통령의 선거사무실 같은 곳에서 아주 열심이시더니,<br>취임식 때는 5시간 거리를 버스까지 대절해 올라왔더라구요.<br>(저는 국회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서 일했습니다. 처음엔 몰랐는데 '나 취임식 갔다 내려간다~' 전화 한 통 왔어요...)<br>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한순간에 변하나... 했지만<br>별 도리가 없었지요.<br><br>그러다 얼마 전 고향에 내려가서<br>아빠랑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습니다.<br>정치 얘기는 되도록 안 하려고 하는 편이에요.<br>(올 초에 제가 세월호 팔찌를 차고 있으니 <br>'이제 그것 좀 하지 말고 그만좀 해라. 놔 줘라.' 하는 겁니다.<br>제가 아는 누구보다 공감능력이 뛰어난 아빠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화가 났어요.<br>'놔 줘? 왜 놔 줘야 하는데?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의혹들이<br>이렇게나 많은데. 난 절대 안 잊어버릴 거야.' 했더니<br>뭐가 그렇게 의심스럽냐더군요.<br>해상 교신, 해경의 태도, 여왕님의 7시간 등을 얘기하니까<br>가만히 듣고 있던 아빠가<br>'너 무슨 빨갱이 찌라시를 보길래 그런 소리를 하냐'고 하더군요.<br>그 때 생각했죠. 아... 아빠랑은 되도록 이런 얘기를 하지 말자...)<br><br>어쨌든 다시 돌아와서, 아빠랑 술을 마시는데<br>제가 원래 일하다가 아예 다른 직종으로 이직하고 싶어서<br>이번에 대학원을 가거든요.<br>아빠가 '거기 나오면 돈 많이 버냐, 안정적이냐' 하는 겁니다.<br>그래서 제가 '요즘 정규직 안 뽑아. 대학원 나오고도 비정규 계약직이야.' 했죠.<br>거기서 그칠 걸 입이 근질거려서 '아빠가 좋아하는 박근혜가 추진하는 노동개혁법 통과되면 난 그냥 평생 계약직으로 살 지도 몰라' 했어요.<br>아빠가 잘 모르면 그런 말 하지 말라더군요. 아무 말 말았어요.<br><br>한참 술만 먹던 아빠가 갑자기 묻습니다.<br>한상균 어떻게 생각하냬요 ㅋㅋㅋ 웃겼어요 사상검증인가 ㅋㅋㅋ<br>저는 '나 집회 엄청 열심히 다니는 거 아빤 모르지' 했습니다.<br>대학 시절부터 웬만하면 집회는 안 빠지려고 해요.<br>근데 나가서도 집에서 전화 오면 구호 소리 같은 거 듣고 걱정할까 봐 안 받거나 문자 보내거나 그랬었거든요.<br>그런 거 처음 들은 아빠는 당황한 표정이더니<br>'거기 나가서 oo이가 주장하는 건 뭔데' 하십니다.<br>저는 '국정교과서 반대, 노동개혁법 반대, 세월호 진상조사, 백남기 선생님에 대한 사과'라고 말했어요.<br>아빠는 한숨을 쉬며 '박근혜가 하는 건 다 마음에 안 드는구나' 하더니<br>이내 '그런 곳 가서 여러 경험을 해보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되지' 하고 말더군요.<br>그날은 그렇게 서로 아무말 않고 잠들었네요.<br><br>그러다 다음 날, 밥을 먹고 집에서 뒹굴거리는데<br>아빠가 갑자기 부르더니 '너 종북이냐?' 하십니다.<br>저는 너무 황당해서 그게 무슨 말이냐고 했더니<br>'아니 집회도 꼬박꼬박 다 나간다고 하고...' 하면서 말끝을 흐립니다.<br><br>저 진짜 종북이니 빨갱이니 하는 말 어처구니가 없고 무식해 보여서 너무너무너무너무 싫어하거든요.<br>찌질이들이 논리적으로 반박 못하겠으면 '종북', '빨갱이' 그러잖아요.<br><br>'나도 북한 엄청 싫거든! 김정은 싫거든!!!'<br>애처럼 쏘아붙이고 나니까 기분이 이상하대요.<br>종북 소리를 아빠한테 들으니까... 뭐랄까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어요.<br>아빠랑 나는 이제 너무 다르구나... 우린 서로를 이해하기 힘들겠구나... 공허하고 허탈하고...<br><br>일주일이 다 되어가는 이야기인데 오늘 오유에서 집회 이야기들 보고 있자니 또 마음이 이상해서 써 봅니다. 복잡하네요.<br><br>글이 길어져 버렸네요.<br>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