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r></div> <div>며칠 전 동료 경제학자들과 함께 점심 회동을 했습니다.<br>그 날 대화의 주된 내용 중 하나가 최근 들어 교수들의 '몸 사리기'가 부쩍 더 심해졌다는 것이었습니다.<br>교수들이 스스로 몸 사리기를 할 이유는 없는 것이고 보면, 결국 외부적 요인에 의해 그렇게 된 것이라고 보아야 하겠지요.<br><br>사실 교수들의 몸 사리기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MB정부 때부터였습니다.<br>MB정부는 교묘한 '채찍과 당근 전략'으로 교수들의 몸 사리기를 유도했습니다.<br>교수들이 입을 다물고 있어야 자기네들 마음대로 국정을 주무를 수 있기 때문이란 걸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요.<br>내가 환경경제학회의 기조연설을 통해 지적하려 했던 것이 바로 그런 정책이 빚은 불행한 결과였습니다.<br><br>솔직히 말해 MB정부 시절 나는 대놓고 그들을 비판했지만 이렇다할 불이익을 받지는 않았습니다.<br>내가 정부나 기업들로부터 어떤 이익을 받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애당초 끊을 것 그 자체가 없었던 게 주요 원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br>그러나 무언가 잃을 것을 갖고 있던 사람에게는 철저하게 그것을 박탈함으로써 입을 다물게 만들었던 것이 사실입니다.<br><br>그 점심 자리에 참석한 한 교수는 MB정부 시절 멋 모르고 시국선언에 서명했다가 당했던 온갖 불이익을 낱낱이 얘기해 주더군요.<br>그 불이익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밝히면 그 교수의 신원이 노출될까봐 하지 못하겠지만, 심지어는 연구비 신청한 것까지도 잘렸다고 그때를 회상했습니다.<br>자신이 왜 그런 불이익을 당해야 하느냐고 항의했을 때 돌아온 대답은 몇 년 동안은 참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답니다. <br><br>그 시절의 웃기는 에피소드 하나가 있는데, 내가 가기 싫은데도 억지로 한 달에 한 번씩 가야 했던 정부의 어떤 위원직을 임기 이전에 잘린 것입니다.<br>원래 그 위원직은 임기가 3년인데 2년만에 나를 자르더군요,<br>임기 만료 전에 나를 고의로 잘랐다는 것은 사무국 직원의 사과 전화로 분명히 밝혀졌습니다.<br>나는 어차피 가기 싫었던 회의에 나가지 않게 만들어준 데 감사한 마음이었지만, 내가 그런 사소한 직책을 맡는 것조차 용납 못하는 그 쩨쩨함에 기가 막히더군요. <br><br>그 대신 정권에 아부하는 교수들에게는 자리도 주고 연구비도 마구잡이로 뿌렸습니다.<br>그 시절 지조를 버리고 아부의 길을 선택한 많은 지식인들이 이런저런 자리를 차지하고 떵떵거리는 걸 여러분들은 잘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br><br>이런 채찍과 당근의 구조하에서 입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지요.<br>누가 뭐라하지 않아도 교수들은 자기검열 모드로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br>그 이전의 정부도 그런 일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MB정부처럼 그 정도가 심하지는 않았습니다.<br>MB정부 때 비판다운 비판을 한 교수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br>이제 와서 여론조사 해보면 MB정부가 가장 잘못을 많이 저지른 정부라는 평가가 나오는데, 왜 그때는 아무도 그런 말을 못했을까요?<br><br>그런데 이와 같은 분위기가 MB정부에서 끝난 게 아니고 현 정부에서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br>그날 점심을 함께한 한 교수는 요즈음 들어 교수들의 지적 자유에 대한 구속이 매우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개탄하더군요.<br>평소 비판성향이 별로 강하지도 않은 사람인데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면 상황이 어느 정도인지 능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br><br>내가 듣기로 청와대의 관점에서 볼 때 불편한 칼럼을 쓴 교수는 바로 항의전화를 받는다고 합니다.<br>그가 평소 청와대에 호의적인 글을 많이 썼다 하더라도 그건 상관이 없고, 비판적인 글을 하나라도 쓰면 바로 반응이 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br>이런 분위기에서 자기 생각대로 글을 쓰기는 어려운 게 사실 아닙니까?<br><br>최근 대학에서 선출된 국립대 총장을 교육부가 인준을 해주지 않아 여러 대학에서 총장공백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사실도 현 정부하에서 정부가 대학의 자율을 옥죄고 있는 좋은 사례로 들 수 있습니다.<br>총장까지도 자기 입맛에 맞는 인사로 앉히려 하니 자연히 모두가 그쪽 눈치를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br>이전의 어느 정부에서도 이처럼 노골적으로 대학을 통제하려 들지 않았습니다.<br><br>예전에 학교를 떠난 제자들이 오랫만에 나를 만나면 꼭 던지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br>1980년대에는 정부에 대한 비판을 그리 많이 하지 않던 내가 어떤 이유로 최근에는 비판을 많이 하느냐는 물음입니다.<br><br>그때 내가 반 농담 반 진담으로 하는 대답이 있습니다.<br> "그때는 내가 뭐라 하지 않아도 모두가 독재정권을 비판하고 있었으니 내가 구태여 거기 끼어들 필요가 없었지.<br>그런데 MB정부, 박근혜 정부에서는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으니까 나라도 입을 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야."<br><br>오늘날과 같은 자기검열의 시대에 나라도 입을 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드는 건 정말로 사실입니다.<br>이 점에서 보면 우리 사회는 10년 전으로 후퇴했다는 느낌이 듭니다.<br>지식인의 활발한 사회비판이 민주질서의 근간임을 생각할 때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도 <br>10년 이상 후퇴한 셈입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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