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아버지가 돌아가시기전</div> <div>일기장에 회고록 비슷하게 적어놓은</div> <div>긴글에서 그당시 부분만을 옮겨적습니다.</div> <div>옛날분이라 맞춤법의 오류가 있으나</div> <div>수정않고 그대로 옮깁니다.</div> <div>아버지뿐아니라 당시를 살던 젊은이들의</div> <div>고달팠던 삶의 아주 일부분이라도 같이 느껴보았으면</div> <div>하는 의미에서 올리는 글이니 다른 오해는 없으셨으면---</div> <div> </div> <div>------------------------</div> <div> </div> <div>세계2차대전이 벌어져 온세상이 불안한 상태에서</div> <div>학교에서는 공부보다도 군사훈련이 주가 되어 언제든지</div> <div>일선에 나갈 준비를 하고있었다.</div> <div>겨우 중학5학년을 졸업하고 징병으로인해 군에 입대하게</div> <div>되고 일본 마이쓰루라는 해군기지에서 3개월 훈련을 마치고</div> <div>출동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div> <div>중학출신이라해서 소대장으로 임명을 받았고</div> <div>그때 전쟁은 종반에 들어서면서 일본본토까지 미군폭격으로</div> <div>심한 폐허가 되고있었다.</div> <div>사람목숨이 파리목숨보다 더 해푼 그시기에 </div> <div>내조국도 아닌 일본을 위해 죽는다는것이 정말 원통하고</div> <div>분한 일이였다. 그럼으로 살려고 하는 생명을 헛되게 할수없어</div> <div>탈출을 하기로 결심을 했다. </div> <div>그러던중 내소대원 10여명이 먼저 집단탈출한 사건이 발생했고 </div> <div>그관계로 헌병대에 끌려가</div> <div>많은 고문과 인간이하의 기합을 받고 계급장까지 몰수당하고 하급졸병으로</div> <div>강등당하고보니 더이상 기다릴수없었다.</div> <div> </div> <div>밤12시경 높은 담을 뛰어넘어 들로 산으로 무작정 뛰었다.</div> <div>때는 3월이었기에 산에는 소나무만 싱싱하였고 풀들은 시들어 있었다.</div> <div>아침이슬을 흠뻑 맞고보니 몸은 추워서 떨리고 적막과 같은 고요와</div> <div>두려움이 앞을 가린다.</div> <div>장미가시와 명감나무 가시에 찔린데가 아프기 시작했고</div> <div>앞일을 생각하니 애처롭고 막연하기만 했다.</div> <div>마침내 탈출에는 성공한 셈이였다.</div> <div>누구나 신념만 있으면 어떠한 난관도 극복할수있는</div> <div>의지력이 형성된다는 것이다.</div> <div>일본의 협박과 공포속에 수많은 젊은 청년들이 전쟁터에</div> <div>나가 죽어가고있는 현실에서 더이상 기다릴수 없었기에</div> <div>탈출을 했었던 것이다.</div> <div>낮에는 산에서 자고 밤에만 걸어 무작정 남쪽으로만 내려왔다.</div> <div>내가 입대할 당시 교복을 입고갔기에 학생으로 가장하고 여로는</div> <div>계속되었다.</div> <div>몇일동안 먹지못해 아사직전에 한농가에 들렀더니</div> <div>다행이도 우리교포를 만나 배불리 밥을 얻어먹고 돈까지</div> <div>주었기에 다시 길을 떠날수있었다.</div> <div>겨우 나고야라는곳까지 왔으나 배도 고프고 돈도없어 더이상</div> <div>갈수가 없었다.</div> <div>그러다 그곳 군용비행기공장에서 일하면 도리어 안전하다는</div> <div>소식을 듣게되었고 나는 내발로 그곳을 찾아갔다.</div> <div>돈벌겠다고 속아서온 사람들과 강제징용된 사람들이</div> <div>대부분이였다.</div> <div>심한 노동으로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고 매일 미폭격으로 주변이나 </div> <div>시내가 쑥밭이 되고 고향으로 가지도 못하고 죽게될판이였다.</div> <div>그곳 비행기공장에는 수천명의 여학생들이 강제동원되어</div> <div>일하고 있었다. 미폭격으로인해 수맣은 학생들이 희생이 되었고 </div> <div>나역시 여러번 비행기로부터 비오듯 쏘다지는 기관포 세례속에서</div> <div>간신히 살아남기도 했다.</div> <div>우리 노동자들은 매일 시멘트 콘크리트 공사와 방공호 터널파기등</div> <div>중노동의 연속이였다.</div> <div>오늘도 일터에서 중노동을하고 숙소에 돌아와보니</div> <div>내가 비밀리에 고향형님께 보낸편지의 답장이 와있었고</div> <div>거기에는 일본에서 살고 계시다는 사촌누님의 주소도 적혀있었다.</div> <div>반가운 마음에 바로 그곳을 몰래 빠져나와 기차로 누님집으로 달렸다.</div> <div>가는도중 공습경보가 나면서 기차승객들에게 들판으로 피하라는 것이였다.</div> <div>숲속에 엎드려 하늘을 쳐다보니 수백대의 미폭격기가 천지를</div> <div>진동시키면서 날아갔다. 뒤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때 그비행기들이</div> <div>내가 일했던 비행기공장을 완전 폭파시키고 수많은 인명피해가</div> <div>났었다는 것이였다.</div> <div>내가 그날 떠나지 않았으면 나또한 희생물이 되었을것이다.</div> <div>어렵게 도칙한 누님집은 이미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짐을 다 싸놓은</div> <div>상태였다. 보름동안 대기하고 배편을 겨우 구하여</div> <div>구주시 선창가에 왔으나 배가 언제 떠날지 모른다는것이다.</div> <div>구주시내는 폭격에 폐허가 되고 여기저기 굶어서 죽은 사람들이</div> <div>까맣게 썩어있어 코와 입에서 구더기가 보기 흉하게 나돌고 있었다.</div> <div>우리는 그시체들옆에서 3일간 기다림끝에 기적적으로 배에 탈수 있었다.</div> <div> </div> <div>새벽에 부산에 도착하고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달렸다.</div> <div>때는 7월이라 밤에 집에들어가니 온식구들이 뜰평상에 앉아 저녁식사</div> <div>중이였다.깜짝 놀라며 모두들 나를 반겨주었고 내가 죽은줄만</div> <div>알았다는 어머니말씀에 더욱 눈물이 났다.</div> <div>그동안 헌병대와 경찰들이 나를 잡기위해 수차례 다녀갔다는말에</div> <div>고향의 정다움과 포근함을 느끼기도전에 근처 대흥사 북암 동굴로</div> <div>다시 피신을 하였다.</div> <div>피신생활 1개월만에 뜻밖에 우리나라가 해방이 됐다는 라디오</div> <div>방송을 듣고 하산해보니 온거리는 축제의 물결속에 만세소리가</div> <div>천지를 진동시켰다.</div> <div>끝내는 일본이 항복하고 만것이었다.</div> <div>동구밖까지 나와서 나를 기다리며 만세를 부르고있던</div> <div>어머니를 끌어안고 실컷울었다.</div> <div>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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