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N id=.EC.99.B8.EA.B5.AD.EC.97.90.EC.84.9C.EC.9D.98_.ED.8F.89.EA.B0.80 class=mw-headline>외국에서의 평가</SPAN> <P><A title=1999년 href="/wiki/1999%EB%85%84"><FONT color=#0645ad>1999년</FONT></A> <A title=8월 href="/wiki/8%EC%9B%94"><FONT color=#0645ad>8월</FONT></A>에는 미국 시사주간지 <A title="타임 (잡지)" href="/wiki/%ED%83%80%EC%9E%84_(%EC%9E%A1%EC%A7%80)"><FONT color=#0645ad>타임</FONT></A>이 선정한 「20세기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있던 인물 20인」에 오르기도 하였다. 타임은 박정희에 대해 “비록 독재적 성향을 가졌지만 한국의 최장수 대통령으로 집권하면서 경제적 약체 국가를 산업강국으로 변모시켰다고 ” 평가했다. 타임이 선정한 인물들 중에는 인도의 <A class=mw-redirect title="마하트마 간디" href="/wiki/%EB%A7%88%ED%95%98%ED%8A%B8%EB%A7%88_%EA%B0%84%EB%94%94"><FONT color=#0645ad>마하트마 간디</FONT></A>와 <A class=mw-redirect title=타고르 href="/wiki/%ED%83%80%EA%B3%A0%EB%A5%B4"><FONT color=#0645ad>타고르</FONT></A>, 중국의 <A title=마오쩌둥 href="/wiki/%EB%A7%88%EC%98%A4%EC%A9%8C%EB%91%A5"><FONT color=#0645ad>마오쩌둥</FONT></A>과 <A title=쑨원 href="/wiki/%EC%91%A8%EC%9B%90"><FONT color=#0645ad>쑨원</FONT></A>, 일본의 <A class=mw-redirect title=히로히토 href="/wiki/%ED%9E%88%EB%A1%9C%ED%9E%88%ED%86%A0"><FONT color=#0645ad>히로히토</FONT></A>와 <A title="모리타 아키오" href="/wiki/%EB%AA%A8%EB%A6%AC%ED%83%80_%EC%95%84%ED%82%A4%EC%98%A4"><FONT color=#0645ad>모리타 아키오</FONT></A>, 싱가포르의 <A title=리콴유 href="/wiki/%EB%A6%AC%EC%BD%B4%EC%9C%A0"><FONT color=#0645ad>리콴유</FONT></A>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 밖에도 베트남의 <A class=mw-redirect title=호치민 href="/wiki/%ED%98%B8%EC%B9%98%EB%AF%BC"><FONT color=#0645ad>호치민</FONT></A>과 <A title="티베트 독립운동" href="/wiki/%ED%8B%B0%EB%B2%A0%ED%8A%B8_%EB%8F%85%EB%A6%BD%EC%9A%B4%EB%8F%99"><FONT color=#0645ad>티베트 독립운동</FONT></A>의 정신적 지도자 <A title="달라이 라마" href="/wiki/%EB%8B%AC%EB%9D%BC%EC%9D%B4_%EB%9D%BC%EB%A7%88"><FONT color=#0645ad>달라이 라마</FONT></A>가 선정되었다.<SUP id=cite_ref-250 class=reference><a target="_blank" href="#cite_note-250"><FONT color=#0645ad>[251]</FONT></A></SUP></P> <P>싱가포르에서는 <A title=리콴유 href="/wiki/%EB%A6%AC%EC%BD%B4%EC%9C%A0"><FONT color=#0645ad>리콴유</FONT></A> 전 <A title=수상 href="/wiki/%EC%88%98%EC%83%81"><FONT color=#0645ad>수상</FONT></A>이 박정희에 대해 "아시아에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한 위대한 세 지도자로 일본의 <A title="요시다 시게루" href="/wiki/%EC%9A%94%EC%8B%9C%EB%8B%A4_%EC%8B%9C%EA%B2%8C%EB%A3%A8"><FONT color=#0645ad>요시다 시게루</FONT></A>와 중국의 <A title=덩샤오핑 href="/wiki/%EB%8D%A9%EC%83%A4%EC%98%A4%ED%95%91"><FONT color=#0645ad>덩샤오핑</FONT></A> 그리고 한국의 박정희를 꼽고 싶다, 오직 일에만 집중하고 평가는 훗날의 역사에 맡겼던 지도자"라고 평가하며 그를 극찬하였으며<SUP id=cite_ref-251 class=reference><a target="_blank" href="#cite_note-251"><FONT color=#0645ad>[252]</FONT></A></SUP> <A title=독일 href="/wiki/%EB%8F%85%EC%9D%BC"><FONT color=#0645ad>독일</FONT></A> 정부 국정교과서에서는 박정희를 "강력한 손으로 남한을 농업 국가에서 공업 능력을 가진 국가로 이끌어낸 지도자"로 평가하며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에 대해 타 국가들의 경제성장 과정과 비교하여 '기적'으로 평가하였다.<SUP id=cite_ref-252 class=reference><a target="_blank" href="#cite_note-252"><FONT color=#0645ad>[253]</FONT></A></SUP></P> <P><A title="마하티르 빈 모하마드" href="/wiki/%EB%A7%88%ED%95%98%ED%8B%B0%EB%A5%B4_%EB%B9%88_%EB%AA%A8%ED%95%98%EB%A7%88%EB%93%9C"><FONT color=#0645ad>마하티르 빈 모하마드</FONT></A> 전 <A title=말레이시아 href="/wiki/%EB%A7%90%EB%A0%88%EC%9D%B4%EC%8B%9C%EC%95%84"><FONT color=#0645ad>말레이시아</FONT></A> 총리는 "박 대통령은 매우 강한 지도자였으며 국부를 증진시킨 훌륭한 지도자"라고 평가하였으며 그가 추진한 ‘동방정책’ 또한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 정책을 벤치마킹한 결과였다고 한다. <A class=mw-redirect title=훈센 href="/wiki/%ED%9B%88%EC%84%BC"><FONT color=#0645ad>훈센</FONT></A> 캄보디아 총리는 2009년 6월, 제주도에서 개최된 한ㆍ<A class=mw-redirect title=아세안 href="/wiki/%EC%95%84%EC%84%B8%EC%95%88"><FONT color=#0645ad>아세안</FONT></A> 특별정상회의에 참석하여 “캄보디아 경제발전을 위해 여러 사례를 연구했는데 박 전 대통령 모델을 가장 많이 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SUP id=cite_ref-253 class=reference><a target="_blank" href="#cite_note-253"><FONT color=#0645ad>[254]</FONT></A></SUP></P> <P><A title=2004년 href="/wiki/2004%EB%85%84"><FONT color=#0645ad>2004년</FONT></A>, <A class=mw-redirect title=북한 href="/wiki/%EB%B6%81%ED%95%9C"><FONT color=#0645ad>북한</FONT></A>의 <A title=김정일 href="/wiki/%EA%B9%80%EC%A0%95%EC%9D%BC"><FONT color=#0645ad>김정일</FONT></A> 국방위원장은 여러 차례에 걸쳐 박정희를 언급하면서 눈길을 끌었다. 김정일 위원장은 KBS 박권상 사장에게 KBS가 제작한 ‘영상 실록’ 가운데 박정희 편을 구해달라고 부탁했으며 박정희에 대해 “박 대통령의 평가는 후세가 할 일이지만 그 시대, 그 환경에서는 유신인지 뭔지 그런 길밖에 없었다. 민주화도 무정부적인 민주화는 좋지 않다”며 박 전 대통령을 높게 평가했고 <A title=2002년 href="/wiki/2002%EB%85%84"><FONT color=#0645ad>2002년</FONT></A>에는 박정희의 딸인 <A title=박근혜 href="/wiki/%EB%B0%95%EA%B7%BC%ED%98%9C"><FONT color=#0645ad>박근혜</FONT></A> 한나라당 의원을 평양에 초청하여 영화 ‘<A title=실미도 href="/wiki/%EC%8B%A4%EB%AF%B8%EB%8F%84"><FONT color=#0645ad>실미도</FONT></A>’의 소재가 된 청와대 습격사건에 대해 사죄하며 “한국을 방문하면 박 대통령 묘소를 찾아가겠습니다. 그것이 예의입니다”라고 말하였다.<SUP id=cite_ref-254 class=reference><a target="_blank" href="#cite_note-254"><FONT color=#0645ad>[255]</FONT></A></SUP></P> <P>에즈라 보겔(Ezra Vogel) 교수는 <A title=조선일보 href="/wiki/%EC%A1%B0%EC%84%A0%EC%9D%BC%EB%B3%B4"><FONT color=#0645ad>조선일보</FONT></A>와의 인터뷰에서 박정희에 대해 각각 "중화학공업 정책 이후 그가 폭력을 사용하고 나라를 경찰국가로 만들었을 때 우리는 매우 화가 났고 흥분했었다. 하지만 동시에, 박정희가 없었더라면 오늘날의 한국도 없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주장하며 동시에 "큰 발전을 이룩한 아시아의 많은 나라에서 그 변화를 가능케 했던 독재적인 리더가 있었다. 1920년대 일본의 <A title="메이지 유신" href="/wiki/%EB%A9%94%EC%9D%B4%EC%A7%80_%EC%9C%A0%EC%8B%A0"><FONT color=#0645ad>메이지 유신</FONT></A>(明治維新)이 그랬고, 대만과 한국이 그랬다. 중국은 덩샤오핑 치하에서 발전을 이뤘다. 모두 독재적이었고, 중앙집권적이었다. 먼저 민주화부터 하라는 미국인들의 충고는 성공하지 못했다."며 개발독재의 불가피성을 지적했다.<SUP id=cite_ref-255 class=reference><a target="_blank" href="#cite_note-255"><FONT color=#0645ad>[256]</FONT></A></SUP></P> <P>기미야 다다시는 박정희를 복잡한 과정이 들어있는 민족주의 사상을 가진 인물로 정리했다. 그는 박정희가 사회주의자인 일부 인물을 경제적으로 미국에서 자립하고 공업화하는 데에 등용했다고 기록했다.<SUP id=cite_ref-256 class=reference><a target="_blank" href="#cite_note-256"><FONT color=#0645ad>[257]</FONT></A></SUP> <A title=2006년 href="/wiki/2006%EB%85%84"><FONT color=#0645ad>2006년</FONT></A>, <A title=후진타오 href="/wiki/%ED%9B%84%EC%A7%84%ED%83%80%EC%98%A4"><FONT color=#0645ad>후진타오</FONT></A> <A title=중화인민공화국 href="/wiki/%EC%A4%91%ED%99%94%EC%9D%B8%EB%AF%BC%EA%B3%B5%ED%99%94%EA%B5%AD"><FONT color=#0645ad>중국</FONT></A> 주석은 당시 중국을 방문한 박근혜 전 대표와 면담하며 “박 대표의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이 주창한 새마을운동을 깊이 공부했다”고 발언하였다. <SUP id=cite_ref-257 class=reference><a target="_blank" href="#cite_note-257"><FONT color=#0645ad>[258]</FONT></A></SUP></P> <P>이밖에도 <A title="블라디미르 푸틴" href="/wiki/%EB%B8%94%EB%9D%BC%EB%94%94%EB%AF%B8%EB%A5%B4_%ED%91%B8%ED%8B%B4"><FONT color=#0645ad>블라디미르 푸틴</FONT></A> 러시아 대통령은 1990년대 초반 <A title="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 href="/wiki/%EC%83%81%ED%8A%B8%ED%8E%98%ED%85%8C%EB%A5%B4%EB%B6%80%EB%A5%B4%ED%81%AC_%EB%8C%80%ED%95%99%EA%B5%90"><FONT color=#0645ad>레닌그라드대</FONT></A> 총장 국제문제 보좌관으로 재직할 당시 국가가 대기업을 키우고 경제발전을 주도했던 한국 경제의 발전 방식에 관심을 보였고 한국 외교관을 통해 “한국어 책이든 외국어 책이든 박정희 전 대통령에 관한 책을 있는 대로 구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하였다.<SUP id=cite_ref-258 class=reference><a target="_blank" href="#cite_note-258"><FONT color=#0645ad>[259]</FONT></A></SUP><SUP id=cite_ref-autogenerated9_235-1 class=reference><a target="_blank" href="#cite_note-autogenerated9-235"><FONT color=#0645ad>[236]</FONT></A></SUP></P> <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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