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일본이 미군에 패전하고 미군은 대한민국에 점령군으로 들어와 정부를 세운다. 이른바 미군정 체제다.
당시 미국과 소련은 이념대립이 극에 달했고 각각 남한과 북한을 차지하며 미군은 남한에 이승만을, 소련은 김일성이를 세워 남북을 대립시켰다.
당시 소련과 중국의 지원으로 북한은 나름대로 질서가 잡히고 경제상황도 견딜만 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6.25 때 남북 군사력의 차이만 보더라도 그 차이는 확연히 드러난다.
그러나 남한의 상황은 북한보다 훨씬 처참했다고 한다. 그랫던 것이 80년대 들어서 역전되었다고 노무현의 연설에서 들었다.
그 처참했던 시절에 미군과 이승만이 벌인 남한에서의 양민학살들, 그로인해 우리들 부모들과 할아버지들이 지금도 겪고 있는 정신적 병폐, 그 트라우마의 이야기다.
여러 자료들과 수많은 저서들이 이미 나와 있지만 아직도 그 시절의 양민학살의 규모를 다 알수는 없을만큼 광범위하게 자행되었다고 한다.
오랜 일제를 견디고 이 땅에 미군이 들어오자 남한의 국민들은 미군을 해방군으로 여기며 환영했다. 그러나 분명한건 미군은 점령군이었고 남한에 미군정부를 세웠다. 그리고 김구를 비롯한 독립투쟁 민족지도자들의 입국을 막았으며 이승만과 친일세력을 이 땅에 권력으로 세운다.
독립운동 민족지도자들에 대한 탄압과 암살이 빈번하게 자행되었고 그에 따라 국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해 제주도를 비롯한 곳곳에서 반정부 투쟁이 속출했고 국민들도 신탁통치 반대운동 등 미군과 이승만 정권에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 시기에, 오랜 기간에 걸쳐 미군과 이승만 정권에 의해 대규모 양민학살이 시작된 것이다. 북한의 지령을 받고 공산정권을 세우려 한다는 논리를 만들었고, 친일경찰들과 친일군인들을 앞세워
빨갱이를 소탕한다는 명분이 만들어졌다.
미군의 지원을 등에 업은 젤린스키가 우크라 동부 주민들에 무차별 포격을 하고 학살했다는 사실은 우리 언론에 잘 나오질 않지만 사실이라고 알려져 있다. 항상 그렇듯이 이승만의 역할은 지금의 젤린스키와 별 차이가 없다.
그 당시 죽어간 양민들은 공산당이 뭔지, 민주주의가 뭔지 알지도 못하는 못배우고 궁핍하고 힘없는 양민들이 대다수였다. 그저 이제 미군에 의해 이 나라가 해방되었음에도 친일파들이 여전히 득세하고 민족지도자들이 탄압받는 현실에 분노했을 뿐이었다.
무차별 양민학살이 현실화 됐고 빨갱이로 지목당하면 재판도 없이 마구잡이로 총살당하는 시절이 오랜기간 이어졌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너도 나도 앞다투어 자신이 빨갱이가 아님을 증명해야 했다. 그래서 경찰이나 군인들이 나타나면 앞다투어 외친다.
빨갱이를 소탕하자! 빨갱이를 때려잡자!
살기 위해 그들과 같이 양민학살에 동참했고, 살기 위해 이웃들을 고발했고, 살기 위해 자신마저 살인귀가 되어야 했던 시절이 오랜기간 이어졌다.
지금의 노인들은 그 시절을 견디며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그 시절에 자신들이 했던 일들은 옳은 일이었다고 스스로를 확신시킨 영혼들이다.
살기 위해 했던 것이 잘못은 분명 아니다. 부귀와 권세를 위해 저질렀던 매국노들과 분명 구분되어야 마땅하다.
노인들은 방송에서 북한 이야기만 슬쩍 나와도 경기를 일으키듯 빨갱이타령을 한다.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이것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그것이 김일성의 오판이었고 미.소의 농간이었음을 모르는 다수의 노인들이 반복해서 어리석은 투표를 하고, 지금은 박그네 정권때보다 더 깊은 수렁이 우리나라의 앞에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