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물의 야기 법관' 문건에 6년간 누적으로 30여명의 판사 이름이 올라간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중 상당수는 이름이 중복 거론된 것으로 파악됐다. 문제 법관을 선정한 뒤 매년 이들의 동태를 살피며 집중관리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안태근 전 검사장이 과거 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하고 인사 불이익을 준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된 가운데 판사들을 부당 사찰하고 인사 불이익을 줬다는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 여부가 주목된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는 지난 2012년부터 2017년까지 6년간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문건을 작성해 사법행정 및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 판사들의 명단을 관리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 문건에는 당시 법원행정처가 사법행정 반대 등의 이유로 주목한 판사들이 15명 내외 적힌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물의 야기 법관'으로 분류돼 지난 6년간 문건에 반복해서 언급되는 등 30여차례 이름이 적힌 것으로 확인됐다.
한번 미운털이 박히면 물의 법관 명단에 반복적으로 이름이 올라갔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한 해에 최소 2명부터 많게는 12명까지 이름이 기재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에 이 같은 내용을 적시했다.
검찰이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 압수수색 등을 통해 확보한 이 문건에는 음주운전을 하거나 법정 내 폭언을 하는 등 물의를 일으키거나 비위가 있는 판사들이 적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당시 사법행정이나 정부정책에 비판적이거나 '양승태 사법부'에 반대되는 하급심 판결을 내린 판사들이 포함된 것이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이른바 '튀는' 목소리를 낸 판사들이 사법행정에 부담이 된다는 판단 하에 '문제 법관'으로 분류해 문건에 올리거나 인사 조치까지 실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구속 이후 계속된 수사 과정에서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관련 증거 등을 새롭게 확인하고 이를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 청구서에 포함했다. 상고법원 등에 반대하는 판사들을 부당 사찰하고 인사 불이익을 줬다는 혐의다.
특히 검찰은 이 과정에서 양 전 대법원장이 문건을 보고 받고 특정 판사들을 최선호 법원에서 배제하도록 하는 등 인사조치안에 직접 'V'자를 표시하거나 결재한 사실도 확인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2011년 9월 취임해 6년의 임기를 마치고 지난 2017년 퇴임했다. 검찰은 관련자 진술 등을 토대로 재임 시절 이 같은 문건이 작성된 배경에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가 있었다고 보고 있다.
그에 따라 검찰은 이날 열린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이 같은 내용을 강조하며 같은 시각 선고된 안 전 검사장의 판결을 사례로 든 것으로 전해졌다.
안 전 검사장의 서 검사에 대한 인사 불이익 조치와 비교해봤을 때 양 전 대법원장은 그보다 더 장기간에 걸쳐 조직적·구체적으로 인사 불이익 조치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법원은 이날 서 검사를 성추행하고 인사 불이익을 준 혐의로 기소된 안 전 검사장에게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안 전 검사장이 2015년 8월 법무부 검찰국장으로서 권한을 남용해 인사담당 검사에게 원칙과 기준에 반해 서 검사 인사를 하도록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며 유죄로 인정한 것이다. 서 검사가 당시 통영지청으로 배치된 것이 인사 기준이 생긴 2010년 이래 이례적이라는 판단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안 전 검사장과 같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를 받고 있다. 전직 사법부 수장으로서 법원행정처에서 근무한 판사들에게 다른 판사들의 동향을 수집하고 이를 관리하는 문건을 만들게 하는 등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