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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readers_36528
    작성자 : 15번지
    추천 : 1
    조회수 : 241
    IP : 121.181.***.94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21/12/09 09:24:59
    http://todayhumor.com/?readers_36528 모바일
    마왕의 목을 벤 다음날 - 2.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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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충직함과 신앙심으로 단단히 무장한 갈라반이라지만, 그는 아직 경험이 적은 소년병이었다. 간밤에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던 사건 앞에서 갈라반의 영혼은 깨진 유리처럼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이어지지 못했다. 그를 움직이는 건 오랜 시간 임무를 반복하여 몸에 밴 습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의 본능이 말을 내몰았다. 마을로 들어서기 위해 내달렸을 때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였다. 입에서는 단내가 올라오고 눈은 깊게 팼지만, 갈라반은 그런 걸 전혀 느끼지 못했다. 말을 달리면 달릴수록 악랄한 마귀에게 기력을 빨리는 듯한 극심한 공허함이 차오를 뿐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명령에 길든 갈라반의 육체는 결국 갈라반을 소속부대로 복귀시켰다. 비록 탈수증상을 보이긴 했지만, 다행히 그의 혀가 굳지 않았고, 영혼이 목소리는 쥐고 있었기에 갈라반은 무사히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다.

     

    , 용사가, 용사가 탄생했습니다. 산골 마을 벨드라인의 사냥꾼 아리안의 아기로 태어났습니다. 현장에서 원인불명의 화재가 있었던 걸 직접 목격했습니다. , , 태어난, 아기는 남자아이였습니다.”

     

    물론, 이런 보고 역시 몸에 밴 습관 덕분에 할 수 있었던 말이었다. 사실 갈라반이 상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따로 있었다.

     

    신이, 테누아스님이, 드디어 거대한 운명의 수레바퀴를 굴리셨습니다! 다이아라 반도의 모든 인간이, 아니, 모든 생명이 이제 그 바퀴의 움직임에 휩쓸려 들어갈 겁니다!’

     

    다행히 파편처럼 흩어진 정신 덕에 갈라반은 그 말을 아낄 수 있었고, 상관은 아직 갈라반을 쓸만한 병사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유성우가 폭우처럼 쏟아지는 날에 불구덩이 속에서 태어나는 아기가 용사로 성장하여 부활한 마왕의 목을 베게 된다.’

     

    까마득한 전설로만 취급될 법한 예언이 밤새 현실로 다가와 버렸다. 당장 현장을 목격한 갈라반은 반쯤 혼이 나가버렸지만, 보고를 받은 직속상관은 매우 침착했다. 그 역시도 뼛속까지 군인이었기에, 임무를 수행하는 태도에 어떤 군더더기도 없었다. 재빨리 메모하여 궁전으로 전서구를 띄우는 그의 모습에서는 오히려 어떤 활력마저 엿보였다.

     

    유성우가 떨어지던 날, 원인불명의 화재 발생. 불기둥 속에서 태어난 아기 확인됨. 작전명령대로 신병 확보를 위해 병력 출동함. 목적지는 벨드리안.’

     

    그는 전서구를 날려 보내자마자 투구와 검을 챙겨 막사를 빠져나왔다. 새벽의 햇살이 그의 투구 위로 내려앉아 그의 위용을 더욱 빛나게 했다. 곧장 그의 걸음이 닿는 대로 병사들이 차례로 다가와 그의 등 뒤로 늘어섰다.

     

    보좌관, 일급 명령이다. 갈라반을 제외하고 가장 빠르고, 가장 참을성이 좋은 녀석들로 열두 명을 차출하여 지금 당장 출동 준비를 시켜라. 내가 직접 선두에서 말을 달리며 지휘한다. 나머지는 모두 전투태세를 갖추고 대기한다. 이곳의 지휘권은 내가 복귀할 때까지 부대장이 대신한다.”

     

    테오나 왕국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마왕, 그 마왕의 목을 벨 전설 속의 용사가 태어났다. 아니, 전설 속의 용사로 추정되는 생명체가 태어났다. 그의 임무는 단순하다. 전설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작업을 해주는 거다.

    바로, 문제의 신생아를 확보하여 궁전으로 보내는 일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아기의 아버지인 아리안은 부인의 시체 옆에서 숨죽여 오열하고 있었다. 아기는 맞은편 집 부인의 돌봄 속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고, 늙은 산파는 제 속으로 가른 산모의 배, 시체가 된 산모의 배를 뭉툭한 바늘로 다시 꿰매었다.

     

    아리안, 그녀의 선택이었어요. 모두가 들었잖아요. 그녀의 죽음을 존중해 주세요. 보세요, 아기는 건강해요. 당신과 그녀를 쏙 빼닮았고요.”

     

    출산을 돕던 마을의 아낙들이 아리안을 위로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이미 마을 사람들 모두에게 간밤의 신비한 사건은 논란거리도 아니었다. 그런 마법 같은 일이 영문 모를 환상적인 무엇이라면, 소중한 이웃이 숨을 거둔 건 생생한 현실이었다. 놀라움보단 슬픔의 무게가 훨씬 압도적이었던 거다. 게다가 마을에서 가장 덩치가 크고, 힘이 센 남자, 아리안의 어깨가 무너져내리지 않았는가? 새벽이 걷히기 전까지 누구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생명의 숨소리를 내뿜으며 살아남으려는 의지를 요란하게 드러내는 건 아리안의 아기뿐이었다.

     

    그 시각, 막사 침실에 몸을 눕힌 갈라반은 소란스러움에 쉽게 잠들 수가 없었다. 갑작스러운 출동 준비로 인한 소란도 소란이었지만, 갈라반의 머릿속에서 유리처럼 갈라졌던 정신들이 다시 하나로 붙기 위해 들끓기 시작했던 것이다.

     

    , 테누아스님이시여. 그건 분명 신만이 내뿜을 수 있었던 불길이었습니다. 저는 단 한 번도 그런 불길을 본 적이 없습니다.’

     

    현장을 직접 목격한 갈라반은 그 아기가 틀림없는 용사일 거라고 이미 완전히 확신하고 있었다. 바로 눈앞에서 전설이 현실이 되는 기묘한 현장을 목격했으니 당연한 결과다. 그래서 그의 두려움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한 속도로 그를 삼키고 있었다. 전설의 용사가 탄생했다는 건 곧 마왕이 세상에 나타나 멸망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일 또한 곧 일어날 것이란 말과 같았다. 갈라반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마왕이란 존재가 당장 바로 옆에 누워있는 것 같은 공포감에 휩싸였다.

     

    신이시여, 이제 얼마나 많은 목숨이 불타 없어지게 되는 겁니까? 저는 그 시간 동안 무엇을 준비해야 합니까? 아니, 저는 그 광란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긴 합니까? 위대하신 테누아스님이시여, 지금까지 살면서 당신의 계획이 이토록 궁금한 적이 없었습니다.’

     

    갈라반은 누운 채로 두 손을 맞잡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한 마음으로. 아니, 살면서 단 한 번도 품어보지 않았던 마음으로 신을 찾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둠으로 가득했던 마음이 서서히 가라앉고 갈라졌던 정신도 자리를 잡아갔다. 그러자 피곤이 온몸으로 스며들어 발가락 하나조차 움찔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어지러운 모든 것을 몰아내는 잠이 드디어 갈라반에게도 찾아온 거다. 그리고 바로 그때, 잠의 수렁으로 미끄러지기 직전, 갈라반은 여러 의문을 쏘아 올렸다. 물론, 갈라반 본인은 이미 그런 물음들조차 꿈의 단편인 줄 알았지만 말이다.

     

    용사는 이제 막 태어났는데, 마왕도 그럼 부활을 한 걸까? 부활한 마왕은 어떻게 되는 걸까? 본능적으로 용사의 탄생을 눈치챘을까? 전설의 용사라고는 하지만, 용사가 마왕의 목을 베기 위해선 적어도 칼을 두 손으로 들어 일격에 베어낼 만큼 용사의 완력과 민첩함이 무르익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한 시간이 얼마나 필요할까? 그러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실전 경험이 필요할까? 그럼, 그 긴 시간 동안 마왕이 우리 인간들을 사냥하고 다니는 건가?’

     

    갈라반이 겨우 잠들었을 무렵, 이미 아리안의 아기는 두 번이나 잠에서 깼고, 두 번이나 밥을 먹었다. 모든 신생아들이 그런 것처럼 젖을 달라고 우는 울음 외에는 숨소리만 조용히 냈고, 눈조차 뜨지 않은 채 잠만 청했다. 반면, 아리안은 모든 게 급해졌다. 아내가 살아 있었다면 다른 걱정 없이 바로 젖을 물리면 그만이었지만, 아내는 이미 싸늘한 주검으로 곁에 남아 있다. 젖을 물려줄 어미가 없다는 건 신생아에게 치명적인 위험이었다.

    초유부터 제대로 먹이는 건 둘째치더라도 당장 마을에 젖을 내어줄 아낙도 없었다.

     

    당장 동냥젖을 해야 할 판이지만, 이 외딴곳은 젖을 내어줄 수 있는 아낙조차 없지. 그러니 당장에는 자네가 해야 해. 그러니까 정신을 똑바로 차려!”

     

    늙은 산파는 아리안을 향해 날카롭게 쇠 긁는 소리를 연거푸 쏟아부었다.

     

    우선은 젖소의 젖이라도 끓여서 먹여. 당장은 좀 위험하더라도 어쩔 수가 없어. 끓인 소의 젖을 여기 숟가락 끝에 적셔서 한 방울씩! 한 방울씩 아기가 직접 빨아 먹을 수 있게 해주라고. 이건 아주 중요해. 미련한 멍청이야! 알아먹겠어? 당장 사람의 젖이 아니더라도 아기가 직접 빨아먹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그 버릇을 잊지 않게 해줘야 해. 이건 아주 중요해. 그러고 나서 정신을 차리거든 당장 아랫마을로 내려가서 젖동냥을 해봐. 그게 아니라면, 여기서 미음을 만들어 아기에게 먹여야 해. 그런데 그러기엔 아직 아기가 어려도 너무 어려. 알겠어? 반년도 되지 않은 아기는 장기가 자리 잡기 전이라 어미 젖이 아니면 위험하다고!”

     

    아리안은 그제야 눈물을 닦고 자리에서 일어설 수 있었다. 아기를 위해서는 슬퍼할 틈도 없었다. 다시 일어선 거구의 사나이, 그러나 어깨가 이전보다 왜소해진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 잘 알겠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나를 닮았다면, 당장 젖소의 젖을 먹여도 괜찮을 겁니다. 반드시 건강할 겁니다. , 그렇고 말고요.”

     

    어쩌면 마왕의 목을 벨 전설의 용사로 태어났을지도 모를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어미의 죽음으로 위기에 내몰렸다. 그런 사실을 알 턱이 없는 아리안은 모든 부모가 그렇듯이 자신의 아이를 위해 생을 갈아 넣기로 다짐했다.

     

    일단 당장 젖소의 젖을 짜오겠습니다. 그리고는 곧장 아랫마을과 그 옆, 아니, 이 일대의 모든 마을을 직접 돌아보고 오겠습니다. 젖을 나눠줄 아낙들이 있는 동네가 있다면, 이제 사냥은 접고 이사해서 그 마을에서 살 겁니다. 그래야, 일단 아기가 자랄 수 있겠죠. 그러니까 하루만 더 애써주세요. 죄송합니다. 염치없는 부탁이란 걸 잘 알지만, 당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여기에 계신 분들 뿐입니다.”

     

    아리안의 말에 늙은 산파도, 도움을 주기 위해 찾아온 맞은편 집 부인도, 모두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리고 아내는, 아내의 시신은 제가 돌아오기 전까지 그대로 두세요. 장례는 제가 돌아온 이후에 제 손으로 직접 치를 겁니다.”

     

    말을 마친 아리안은 아기를 돌아봤다. 아기는 자신의 운명이 어디로 굴러갈지 전혀 모른 채 주먹을 꼭 쥔 자세로 잠들어 있었다. 아리안은 아기가 잠들어서 자신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기를 향해 미소를 보냈다. 그걸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의지를 굳힌 아리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현관으로 몸을 돌렸다.

    그렇지만 뜻밖에도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젖소의 젖도 아니었고, 젖동냥을 도와줄 아낙도, 미음 거리를 가져다준 이웃도 아니었다.

    아리안보다 먼저 현관문을 두드린 건 궁정 소속의 군인들이었다.

     

    실례하겠소. 나는 테오나 왕국의 교황청 소속 성기사 군의 제2사단 리베어 부대 대대장 하후현이라 하오.”

     

    ? , 그럼, 군인? 군인이란 말입니까?”

     

    아리안은 얼떨떨하기만 했다. 살면서 군인들과 말을 섞어본 일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기껏해야 도시를 지키는 수문장과 이야기를 하거나 훈련 중 낙오하여 길을 잃은 병사가 길을 물어보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데 갑자기 높은 계급의 군인, 그것도 이민족 출신으로 보이는 이국적인 생김새의 군인이 당당하게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으니 놀라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할 일이었다.

     

    그렇소. 군인이며, 동시에 자애로우신 테누아스님을 섬기는 성직자요. 설마 산골이라고 교황청 직속의 성기사를 모르진 않겠지?”

     

    아니, 우리 집은 기사님처럼 고귀하신 분이 찾아올 일이 전혀 없는 누추한 곳이라서 그렇습니다. 대체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우리 가족은 작은 죄조차 지은 적이 없고, 나라를 위해 대단한 일을 한 적도 없습니다.”

     

    아리안은 배움은 짧았지만, 평생을 사냥터를 누비며 살아온 사나이였다. 그의 육감은 종종 그가 배움으로 익힌 것들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려주곤 했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그랬다. 하우현이라는 군인은 아리안보다 머리 하나가 더 작았지만 엄청난 위압감을 풍겼다. 결정적으로 그의 두 손은 점잖게 허리 뒤로 향해 있었지만, 그가 감추지 않고 내뿜고 있는 살기는 그의 허리춤에 찬 칼을 향하고 있었다.

     

    하하하, 너무 경계하진 마시오. 우린 신을 섬기는 몸, 까닭 없이 민간인에게 위해를 끼칠 일은 없소. 그보단 안으로 들어가 앉아서 이야기하고 싶소만?”

     

    죄송하지만, 갓난아기가 방금 막 태어나서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간밤에 태어난 아기라 아직 아무런 정리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앉을 의자 정도는 있을 테지?”

     

    검은 머리의 하후현은 아리안을 향해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어 보였다. 덕분에 전쟁터에서 얻은 왼쪽 눈썹 옆의 흉터도 같이 찡그려져서 오히려 다소 기괴한 인상이 되었지만, 아리안은 그런 건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흉터라면 본인도 사냥터에서 지겹도록 얻은 훈장들이었다.

    간밤의 소동으로 뒤집힌 테이블을 뒤로 둔 채 둘은 의자에 걸터앉았다. 집안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아기와 함께 시신 옆 구석진 곳으로 모여 가림막을 쳤다.

     

    길게 말하지는 않겠소. 우리의 내일을 위해 댁의 아이를 궁으로 데려가겠소. 모두 다 테오나 왕국을 위해서요.”

     

    ? 저 아기가 간밤에 태어난 신생아라는 건 알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아니, 그전에 뭔가 잘못 알고 계신 것 아닌가요? 이런 산골 마을의 아기를 왜 궁에서 필요로 합니까?”

     

    아리안의 얼굴이 일순간 험상궂게 구겨졌다. 그의 뺨과 턱 밑에 길게 패인 흉터가 따라서 구겨져 악을 부르는 형상처럼 기괴해 보였다.

     

    우선 내 앞에서 섣불리 감정을 드러내서 좋을 건 없을 것이오. 화는 거두라는 거지. 내가 신의 말씀을 섬기는 자라서 민간인을 먼저 해하는 일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신의 말씀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협조하지 않는 민간인에게까지 관대할 이유도 없거든.

    자네의 아들은 어쩌면, 아니, 지금으로 봐선 거의 명백히, 장차 용사가 될 위대한 운명이오. 그렇게 될 운명을 처음부터 짊어지고 태어났다는 말이지. 그리고 나는 아마 자네도 이 사실을 이미 눈치챘을 거라고 믿고 있고.”

     

    , 용사요? 운명? 그걸 제가 이미 알고 있다고요? 아니, 하하하핫! , 죄송합니다! , 그렇지만하하하, 뭔가 크게 착각하고 계시는군요. 운명의 용사가 이런 산골 마을에서 태어난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그것도 저처럼 못 배운 사냥꾼의 자식으로요? 제가 세상 물정을 잘 모르긴 합니다만, 눈치라는 것도 있고, 사람의 운이라는 것도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잘못 아셨습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보시는 것처럼 제 가족은 가난합니다. 가진 거라곤 제 몸뚱이 하나뿐이죠. 나라에서 제게 바랄 게 있다면, 제 자식이 아니라 제 몸뚱이로 해낼 노역이 필요한 거겠죠. 그런 거라면, 이렇게 직접 찾아오실 필요 없이 예전처럼 시종을 시켜 명령서 하나만 보내도 되셨을 텐데요?”

     

    아리안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참느라 목덜미까지 빨갛게 물이 들었다. 반면, 하우현은 시골 촌놈에게 무시를 당했다는 수치심에 귓등까지 붉게 물이 들었다. 당장 그의 말투에서 아리안에 대한 존중이 바로 사라졌다.

     

    자네가 지난 가뭄 때 수로를 연결하는 노역에 임해준 건 여기에 오기 전에 조사하여 이미 잘 알고 있어. 그 부분은 나라를 대신해 내가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하지.

    그런데 정말 그런 시시한 노역이나 한 번 더 부려 먹자고 사단의 대대장씩이나 되는 이 몸이 직접 찾아오는 일이 있겠는가? 행여라도 테누아스님의 이름에 오점이 남을까 지금까지 조심했지만, 사실 자네의 동의 같은 건 처음부터 필요 없었다네. 왕국의 존망이 걸린 문제니까. 지금까지는 자네가 아기의 부모라서 거기에 걸맞은 예의를 차려준 것일 뿐이야.”

     

    아리안의 동공이 벌어졌다. 하우현의 눈은 날카롭게 찢어졌다.

     

    자네가 자네 입으로 세상 물정을 잘 모른다고 했지만, 떠도는 소문이나 전설마저 모르지는 않을 거야. 아니, 다이아라 반도의 사람이라면, 이 전설을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유성우가 폭우처럼 쏟아지는 날에 불구덩이 속에서 태어나는 아기가 용사로 성장하여 부활한 마왕의 목을 베게 된다.’

     

    그렇잖아? 우리 모두 어릴 적부터 들었던 이야기고, 사내아이라면 누구나 장난감 칼을 치켜들고 용사 흉내를 내면서 놀았으니까.

    시치미 떼도 소용없다네. 이미 어제 나의 부하가 이곳에서 불기둥이 솟아오른 걸 목격했으니까.”

     

    아리안은 거세게 고개를 내저었다.

     

    맞습니다. 불기둥이 솟아오른 건 맞지만, 그건 단순한 사고였습니다. 솥단지에서 끓는 물이 넘쳐서 생긴 사고였다고요! 그리고 전 유성우 따위는 보지도 못했습니다.”

     

    가림막 뒤에서 여인들이 야단스럽게 발을 굴리는 소리가 들렸다. 곁눈질로 잠시였지만, 하후현은 분명 그 모습을 정확히 눈에 담아두었다.

     

    원래 유성우라는 게 종일 떨어지진 않지. 그리고 보통 걸어둔 솥단지에서 끓는 물이 넘치면 불이 바로 꺼져버리는 법이잖아. 그게 바로 자연의 순리니까. 거꾸로 불기둥이 솟아오르다니? 게다가 모두가 놀랄 정도로 치솟은 불기둥이었다고 하는데, 누구 하나 다친 사람이 없다고 하고. 이래도 부정할 텐가?”

     

    아리안은 그제야 간밤의 사고가 떠올랐다. 정말 유성우가 쏟아졌던가? 그런 건 기억에 전혀 없었지만, 등 뒤에서 뜨거운 열기가 한순간 솟아올랐던 건 분명했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스스로가 생각해도 너무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너무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해. 나 역시도 명령대로 행하는 거니까. 그리고 자네 말대로 용사의 운명이 아닐 수도 있어. 그러니 확인을 위해서 일단 데려가는 거야.”

     

    확인? 그럼, 그 확인은 누가, 어떻게 하는 겁니까? 확인하고 아니라면 다시 돌려보내 주시는 겁니까? 반대로 맞는다고 하면요? 정말, 정말 용사의 운명이라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하후현의 마음은 다시 조금씩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반면, 아리안은 더욱 조급해졌다. 고개를 들어 올린 불안은 금세 분노로 바뀌었다.

     

    진정하시오. 왕국 역사상 유례없었던 일이오. 그러니 나도 궁으로 들어간 이후는 잘 알지 못할 수밖에. 그저 그 확인이란 건 교황님이 직접 하실 거란 사실밖에는 확실한 게 없소.

    물론, 기대와 달리 용사가 아니라고 하면 돌려보내 주실 테지. 그런데 정말 전설 속 운명을 짊어지고 태어난 거라면글쎄, 훈련을 받지 않을까? 상식적으로 갓난아기가 젖병을 들고 마왕을 무력화시킬 수는 없을 테니까.”

     

    아리안은 결심을 굳힌 듯 주먹을 불끈 쥐고 하후현을 노려보았다. 하후현이 처음 등장할 때부터 살기를 숨기지 않은 것처럼, 아리안도 가두어뒀던 살기를 있는 그대로 표출했다.

     

    거부합니다. 제 아내는 아기를 낳다가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신이 아직 저 가림막 뒤에 그대로 있습니다. 그런 아내의 시신 앞에서 아이를 그냥 내주라고요? 어림도 없습니다.

    기사님이 훌륭한 군인, 대단한 기사라는 건 현관 문턱을 넘을 때부터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허리춤의 그 칼보다 제 두 주먹이 느리다는 게 아닙니다. 의심이 든다면, 직접 확인해 보셔도 좋습니다. 저는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 이 집밖에 열두 명의 병사들이 둘러싸고 있단 사실도 알고 있나? 이미 나 하나를 물리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거야. 다시 말하지만, 국가 흥망성쇠가 걸린 문제니까.

    , 마지막 기회다. 지금이라도 물러나서 아이만 조용히 데리고 오면 된다. 그럼, 누구도 다치지 않겠지. 그렇지만, 반항한다면 망설임 없이 베어버릴 테다. 지금 내 고민은 이미 어떻게 칼을 휘둘러 너보다 빨리 움직이느냐 따위가 아니라는 거야. 그것보단 궁까지 안전하게 아기를 데려가기 위해 저 가림막 뒤의 여인들도 데려갈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가 진짜 고민이지.”

     

    아리안은 하후현의 이야기를 더 듣지 않았다. 직접 내뱉은 말대로 곧장 주먹을 휘둘렀고, 그의 말처럼 그의 주먹은 하후현의 검보다 빠르고 정확했다. 다만, 하후현 역시 최전방을 누빈 군인답게 아리안의 주먹을 고스란히 받아주진 않았다. 주먹의 궤적을 따라 몸을 돌려 충격을 줄이면서 그 원심력을 그대로 이용해 아리안의 가슴팍에 얕지도, 깊지도 않은, 일격을 남겼다.

     

    크아아악!”

     

    이쯤 하도록 하지. 나는 명예로운 군인이자 신의 말씀을 섬기는 자. 불필요한 살생은 하지 않는다. 교황님의 확인 후, 정말 용사가 될 운명이 아니라면, 내가 직접 아이를 데리고 돌아오마.

    거기, 가림막 뒤의 여인들은 나와 동행해 줘야겠소. 앞으로 나오시오.”

     

    그 와중에도 아기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곧 눈을 뜨고 젖을 찾게 되더라도 아직은 어미와 아비의 존재조차 모를 터였다. 그저 본능적인 의지로만 똘똘 뭉쳐진 젖먹이.

    하후현은 피에 젖은 검을 닦아 검집에 넣으며 평소처럼 높고 명확한 목소리로 명령을 남겼다.

     

    부대 차렷! 우린 궁으로 향한다. 아기와 여인들을 태울 수레를 구해와라. 오늘 밤은 쉬지 않고 행군한다!”

    출처 http://novel.naver.com/challenge/detail?novelId=1032652&volumeNo=3
    15번지의 꼬릿말입니다
    오늘도 복 짓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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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12/09 18:04:56  112.171.***.130  윤인석  72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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