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팡이가 있는 교실-
우리 반에는 곰팡이가 있습니다.
"곰팡이는 있는 게 아니라 피는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리 반에 있는 곰팡이는 피었다기보다는 있다라고 부르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왜냐면 지금 제 옆자리에 곰팡이가 엎드려 있기 때문입니다.
제 옆자리에 있는 A는 초등학교 1학년 때 까지만 해도 곰팡이라고 불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학년이 되고 얼마 안 된 어느 날, 수업 시간에 곰팡이에 대한 것을 배웠는데 반 친구 중 한 명이 A의 얼굴을 향해 손가락질하면서 한 말 때문에 그 다음 날 부터 A는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렸고, 곰팡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A의 얼굴에는 큰 얼룩 같은 점이 있는데 반 아이들 모두가 그것을 보고 곰팡이라고 하는 것을 보니 그것은 점이 아니라 곰팡이였나 봅니다.
2학년으로 올라와서 어느 순간부터 여자애들은 여자애들끼리 놀고 남자애들은 남자애들끼리 노는 것이 우리 반에서 유행처럼 번졌지만, 같은 아파트단지에 살아서 어릴 적부터 소꿉친구인 저와 A는 계속 같이 놀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제 여자애들하고만 놀아야 할 것 같습니다.
2학년이 되어 친해진 소영이가 제게 A랑 같이 놀면 곰팡이가 옮는다고 옆에 가지도 말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A 옆에 아예 가지 않는 것은 너무하다고 소영이에게 말했지만
"A와 놀면 너도 곰팡이가 되니까 너랑 안 놀 거야, 그리고 다른 여자애들도 모두 나처럼 생각해!" 라는 대답만 돌아왔습니다.
A에게는 미안하지만 저는 이제 A와 같이 학교에 가거나 같이 놀지 못할 것 같습니다.
곰팡이가 옮아서 제가 곰팡이가 되면 반 친구들이 놀아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은 저와 A는 유치원 때부터 매일같이 놀았는데 아직 저에게 곰팡이가 옮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쉬는 시간에 곰팡이가 자기 책상 위에 그려진 그림을 지우개로 지우고 있습니다.
곰팡이는 그림을 열심히 지웠지만, 호빵맨에 나오는 세균맨은 전혀 미소를 읽지 않았습니다.
아마 세균맨은 잘 지워지지 않는 펜이나 매직 같은 것으로 그려진 모양입니다.
사실 요 며칠 반 아이들의 장난이 조금 심한 것 같아 저는 매일 담임선생님께 검사받아야 하는 일기에 A와 반 친구들의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선생님은 제 일기에 친구들끼리는 장난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빨간펜으로 적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반 친구들이 A에게 하는 장난을 제가 너무 진지하게 바라본 것이라고 깨달았습니다.
등교하자마자 B가 곰팡이에게 무언가 뿌리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B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우리 집에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엄마가 주로 여름에 모기나 벌레 같은 것을 잡을 때 사용하는 에프킬라(살충제)였습니다.
B가 “박멸이다, 박멸!!" 이라고 외치면서 곰팡이에게 계속 살충제를 뿌리고 있었을 때 제 머릿속에 갑자기 떠오른 것은 곰팡이가 곤충과 동물 중 어느 쪽에 속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살충제에서 나오는 액체가 얼굴과 옷에 뿌려져도 곰팡이는 가만히 있었지만, 저는 눈이 따갑고, 재채기가 나오려고 했습니다.
그때, 소영이가 저에게 화장실에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갔습니다.
쉬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화장실까지 빠르게 뛰어가서 볼일을 다 마치고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졸졸 흐르는 물에 손을 씻고 있을 때 갑자기 울린 수업종 소리를 듣고는 소영이가 “먼저 갈게!" 하고 말하며 화장실을 나갔습니다.
저는 얼른 손을 씻고 화장실을 나섰지만, 이미 교실로 돌아갔는지 복도에 소영이가 없었습니다.
제가 복도를 뛰듯이 걸으며 교실로 향하고 있었을 때 제 두 눈에 곰팡이가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잘 보이지 않던 곰팡이의 얼굴이 저와 가까워 졌을 때 저는 곰팡이와 눈을 마주쳤습니다.
저는 곰팡이를 뒤로 한 채 교실로 돌아왔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각자의 자리에 앉아, 교과서를 책상 위에 둔 채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얼른 다른 아이들처럼 자리에 앉고나서 교과서를 책상 위에 올려두고는 선생님을 기다렸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선생님이 오지 않아서 저는 제 바로 옆에 있는 빈 자리에 잠시 눈길을 돌렸습니다.
주인 없는 빈 책상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세균맨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것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생각난 것은 곰팡이는 곤충이 아니라 어쩌면 동물일지도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조금 전 복도에서 마주친 곰팡이의 두 눈처럼 슬픈 눈을 하고있는 곤충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교 후, 집에 도착한 A가 아무도 없어서 조용한 거실을 지나서 화장실 문을 열었을 때 거울 속에 곰팡이가 보였다.
거울을 보며 A는 오늘 B가 학교에서 자신에게 살포한 살충제는 별 효과가 없는 것이었나 보다 라고 생각하고 있다.
내일은 B가 잘 안 죽는 곰팡이를 완전히 죽여버리기 위해 BB탄 권총을 가져온다고 했다.
발사된 총알을 맞으면 이번에야말로 곰팡이가 죽어 없어질까? 하는 생각을 하던 A는 문득 언젠가 TV에서 봤던 총에 맞은 남자가 하얀 와이셔츠를 핏빛으로 물들이며 서서히 죽어가는 영화 속 장면을 떠올린다.
B가 내일 가져올 권총은 영화와 달리 가짜 총이겠지만, 역시나 총에 맞는 것은 아플 것 같다는 생각이 A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총 맞고 죽은 남자의 모습을 지워간다.
A는 살면서 처음으로 병원에 가면 곰팡이를 치료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A는 두개의 의문을 만들었다.
‘지금 아픈 곳이 없는데 병원에 가도 되나?’
‘내일 B에게 총에 맞고 나면 아플 것이 분명하니까 그때 병원을 가야하는 거 아닌가?’
A는 결국 병원에는 가지 않기로 했다.
병원에는 가지 않기로 한 A 였지만, 내일이 오기 전까지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얼굴에 핀 곰팡이에 연고라도 발라보자는 생각이 든 A는 엄마가 주로 의약품을 보관하는 찬장의 문을 열어보았다.
문을 열자 연고와 파스 등이 들어 있는 작은 구급상자가 곧바로 보였지만 A의 시선은 구석에 놓인 분무기 형태의 사물에 고정되어 있다.
잠시 그것을 바라보다가 A는 분무기를 자신의 곁으로 가져와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때 A의 어린이용 스마트폰이 울렸다.
오늘도 좀 늦을 거라는 바쁜 엄마의 메시지를 뒤로한 채 A는 다시 분무기 형태의 사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작은 글씨와 어려운 단어들로 이뤄져 있어서 A는 분무기 뒷면에 붙어있는 라벨을 읽다가 포기했다.
A는 분무기 앞면으로 눈을 돌렸다.
의사 가운을 입고 있는 하마가 '따봉'을 의미하는 제스쳐를 오른손을 뻗어 만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하마 의사의 위에는 ‘곰팡이 제거제’ 라는 글씨가 크게 적혀 있었다.
곰팡이 제거라는 글씨를 보자마자 A의 가슴이 조금 콩닥거렸다.
분무기를 쥐고 허공에 분사해 보자 투명한 액체가 안개처럼 퍼졌다.
분무기의 방향을 자신의 얼굴에 고정한 A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분사하기 시작했다.
투명한 안개가 A의 얼굴에 붙었지만, A는 한 번의 분사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끊임없이 자신의 얼굴을 향해 분사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많은 양의 액체가 A의 얼굴에 붙어서 비 오듯 흘러내리고 있었다.
A는 곧 곰팡이가 사라지면 내일 총을 맞지 않아도 되고, 잃어버렸던 자신의 이름도 다시 찾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A는 자신의 얼굴에 핀 곰팡이가 사라지면 오늘 복도에서 마주친 소꿉친구 혜진이도 더이상 자신을 벌레 보듯 보지 않고, 예전처럼 다정하게 바라봐 주겠지? 라고 생각했다.
A의 입가에 미소가 슬금슬금 피어났다.
A의 얼굴에 붙어있던 액체가 거의 말라 갈 때까지도 A의 미소는 지속되었지만 A의 두 눈에는 작은 핏방울이 맺혔다.
핏방울은 점점 커지다가 마침내 터지더니 사정없이 흘러내렸다.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