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face="바탕" size="3"> "... 그러니까 인마야, 진작에 네가 나한테 말이라도 했으면 내가, 어? 고객센터 전화해서 중단이라도 안 해 놓냐? 물건 그거 사고 처리 된 게 얼마라고? 오만 사천원?"</font> <div><font face="바탕" size="3"><br></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 소장은 운전대를 잡은 때부터 벌써 코 앞에 서울엘 다 온 때까지도 여적 통화중였다. 김은 운전 중에 통화를 하는 것 보담도, 저러다 단속에나 걸리지 않을까 걱정이었다.</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br></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 "그래. 어, 어. 그게 사고 접수받고 이십사시간 내 정상적으로 발송했다, 그렇게 말하면 통장에서 돈이 안 빠져 나간다꼬. 아니, 나중에 사정따라 돈이 나가도 일단 시간은 벌 수 있다 그 말이지, 어? 한 삼주든 오주든 간에. 그 셰 고객이 와서 물건 찾아가믄 찾아갔다 연락하고... 그으래, 없던 일로 하면 됐던 건데... 인마야, 말을 해야지."</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br></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 높낮이 심한 사투리 억양으로도 사근사근 할 얘기 다 하는 것도 소장이 가진 재주라면 재주다 싶었다. 딴에는, 예서 제서도 항상 을이라는 업에서 나름 십 몇년인가를 소장으로 있었다는 게 이런 처세 덕인가도 싶다. 그러면서도 김은 머리를 갸우뚱했다.</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br></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 '그냥 돌려달라면 안 되나?'</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br></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 슬쩍 조수석이며 옆자릴 보니, 다른 사람들은 꾸벅대며 졸고 있거나 핸드폰을 만지작 댈 뿐이었다. 워낙에 피로에 찌든 탓도 있겠지만 아마, 그냥저냥 이런 일이 흔해빠져 그런가보다 하는 맘도 있겠지 싶다. 낮에 이놈저놈 흰소리에 몇 번이고 작업이 지체되는 걸 본 뒤라, 김은 그렇게 넘겨짚어 보았다.</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br></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 "아니, 알아, 안다꼬. 아는데, 일이 그래 되나? 고객이 물건 받고도 따로 연락은 안할 거 아이냐. 그냥 받으면 끝인데. 걔네는 그렇게 생각을 안한다꼬. 사고 접수되고 이십 사시간이면 그냥 무조건 저, 뭐야, 망실비로 통장에서 빼가 뻐린다니까. 아이, 나중에 받았다고 다 증명해도 안 돌려줘. 빼갈 땐 그렇게 빼가도 저얼대 안 돌려줘. 그러니까 문자온 걸 잘 확인해야 돼. 이번에야 뭐 그거 침대 시트? 옷? 그게 오만 얼마니까 그렇지 이번 추석 땐 동민이 그, 한우세트 사십 얼마인가 사고라고 변상하라고... 그래, 동민인 나한테 바로 달려 와가 돈 빼는 거 일단 정지시키고 송장 확인해보니까 배송 했더만. 저가 시켜놓고, 어디 맡기라하고는 딴 데 갔다온거를 고기가 상했네 어쩌네 하면서... 그으래- 어. 그래서 그거는 봐라, 우리는 배송 제대로 했다, 그렇게 일단 시간 벌고 따로 얘기를 하면 되는데, 어. 그래... 어, 그렇다니까 그러니까 바빠도 문자를 꼭 다 확인해야 돼. 안 그러면 그냥 이런 식으로 갑질당하는 거야, 어. 그 새끼들이 그렇게 갑질을 한다니까, 그래."</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br></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 전화 건너편 앳된 목소리는 이제는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그냥 소장이 '네가 맞다. 그 새끼들 나쁜 새끼.'하고 얘길 들어준 것으로도 화는 풀린 모양였다. 어쨌든 내일 새벽에도 저 양반은 또 탑차에다 물건을 잔뜩 싣고 저녁까지 일을 해야 할 텐데, 그래 어쩔텐가. 어데 하소연할 데나 있어서, 억울하단 얘길 들어나주고 같이 욕해줄 사람 있는 게 또 어디일까, 요즘 같은 세상에.</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br></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 "그래, 일단은. 내가 고객센터에 다시 전화를 해 볼게. 송장이랑 뭐 얘기해서... 너무 기대는 하지 말고... 뭐 방법이 있나, 우리 같은 사람들이. 변호사를 쓸 거야 집에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는 사람 다시 찾아가서 수령증 써달라 이러면서... 무슨무슨 진상 소리나 들을 거야, 응? 당장도 너나 나나 내일 일을 안 할 수가 없는데, 어? 먹고 살아야지. 이 따위로 어이없게 갑질을 당해도 뭐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게, 그런 기다. 돈 빼가기 전에 시간이나 벌어 놓고 얘길해야지, 그런 거 밖에 없다니까? 응, 응. 그래. 다음부턴 뭔 문자를 받든 뭐, 사고처리 되었습니다, 클레임이 왔습니다 뭐가 오든 문자를 받으면 무조건 나한테 전화를... 그래, 바쁜 거 아는데, 야, 내 그걸 모르겠냐. 좉같아도 물건 뜨다 문자 오면 그냥 내려놓고 확인해야지. 어쩔 수가 없어요, 어쩔 수가. 그래, 응, 응. 일단 오늘은 그냥 푹 쉬고. 어. 알았어. 내가 내일 그 쪽이랑 통화하고 다시 얘기해줄게. 응, 그래. 어, 쉬어라. 낼 아침에 보자."</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 "현철이예요?"</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 "어, 저번 달에 그거. 터미널 와서 물건 찾아갔다는 그기, 또."</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br></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 마냥 핸드폰만 만지작대며 딴청이더니, 소장이 통화를 끝내자마자 재호 씨가 불쑥 물어온다. 또박또박 표준어를 하긴 하는 재호 씨인데, 이럴 때는 사투리 억양이 툭 불거졌다. 경상도인가 강원도인가 아리까리는 했는데, 생각해보니 함경도인가 양강도인가 하는 쪽 억양인가 싶기도 했다.</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br></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 "우리는 그냥 맨날 이런 식으로 당하는 거야. 무식해서 당하는 것도 아니고, 당하는 줄 몰라서 당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먹고 살라꼬."</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br></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 재호 씨는 고갤 한 번 끄덕하더니 들리지도 않게 뭐라 한 번 궁시렁대고는, 다시 핸드폰 화면에 코를 박았다.</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br></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 "잠깐 잠깐, 이 분 여기서 내려주는 게 나을 걸요?"</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br></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 금방 졸고 있더니, 어느 새 일어난 형준 씨가 툭 말을 꺼냈다. 김은 셋이 끼어 앉은 제 옆의, 아침에 같이 온 양반을 쳐다봤다. 이 사람은 벌써 침까지 흘리는 게, 제 안방이었다.</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br></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 "암사 갔다가 고덕 갔다가 하는 것보다 여기서 버스 타는 게 나을 거예요. 수유리라는데."</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 "그래?"</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br></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 팔뚝을 두 세 번을 쳐도 안경 쓴 남자는 정신을 못 차렸다. 김까지 나서서 남자의 어깰 흔들며 '아저씨, 아저씨!' 소릴 지른 다음에야 남자가 눈을 떴다. 그러고는 대충 얘길 듣더니,</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br></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 "아, 그러네요. 여기서 바로 가는 버스 타고 갈게요, 저는."</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br></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 하고 제 짐을 주섬주섬 챙겼다. 바닥에 라이터를 떨구길래, 김은 발치를 더듬어 그걸 주워다 남자의 손에 들려줬다.</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br></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 "감사합니다."</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br></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 마침 뒤에서 버스가 오고 있었다.</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br></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 "오늘 수고했어요, 응?"</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 "수고하셨습니다. 들어가세요."</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 "네, 네. 얼른 가요, 얼른 가."</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 "아, 네."</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br></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 어지간히 피곤한가도 싶었다. 저 양반 내일도 나올 수 있으려나?</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br></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 "탔어? 탔어요?"</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br></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 남자의 허둥대는 양에 낄낄대던 재호 씨가 물어왔다. 형준 씨가 뿌연 뒷유리 너머를 이리저리 보고는,</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br></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 "어, 탔어."</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br></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 하고 알려주었다.</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br></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 "집에는 잘 가야 할텐데."</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br></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 소장이 허허, 하고 차는 다시 굴러갔다. 출근할 때처럼, 차 안은 다시 침묵이라 김은 가만히 차창 밖을 내다볼 수 있었다. 가로등과 여적 도로에 파다한 차들과 그 차 안에 있을 사람들의 그림자가 지나갔다. 잠깐을 그리 멍하니 있었던 것 같은데, 문득 지나는 표지판을 보니 벌써 강변북로였다.</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br></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 "저, 친구는 어디 천호나 어디 내려주면 되나?"</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 "그냥 고덕에 내리시는 게 나을 걸요? 앉아서 가요, 역 차이도 없는데."</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 "아, 네. 그냥 가시는 길에 고덕에 내려주세요."</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 "응, 응. 그래."</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br></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 형준 씨가 참견을 해주길래, 김은 고갤 끄덕끄덕했다. 이대로면 시간이 아주 늦지는 않으니, 정말 천호에서라면 집까지 서서 가야지 싶었다. 월요일인데 다행스럽게도, 강변북로가 많이 막히질 않았다. 잘하면 열 시 전에는 집에도 닿겠다 싶었다. 김은 그런 생각을 하고 또, 옆 방 학생이 세탁기에 제 옷들을 좀 빼 놨으면 오늘은 빨래라도 할 수 있겠지, 하며 기분이 좋아졌다. 애도 아니고 다 큰 어른이면서 김은, 들뜬 마음에 하나 둘 하며 한강에 반짝대는 불빛들의 개수를 세 보았다. 흰소리 없이 일당을 하나도 깎이지 않고 받은 것도 좋았다. 여튼 오늘은, 여러모로 운이 좋은 날이었다.</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br></font></div> <div><font face="바탕" size="3"> 김은 빙그레 웃어보았다.</font></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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