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 align="center"><br><font size="2">무대.</font><br>FD(FloorDirector)</div> <div align="center"><br>(보조조명들이 빛을 발하는 무대. <br>관객석에도 그 희미한 빛이 비친다. 관객들이 내는 사소한 웅성거림들. <br>이내 검은색 정장을 입은 왜소한 체격의 한 사내가 무대에 등장하자 주위는 조용해진다. <br>그는 커다란 피에로 가면을 쓰고 있다. <br>그 웃는 얼굴의 한쪽에 걸친 헤드셋을 통해 그가 말하기 시작한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FD </strong><br>(떨리는 목소리로) 아..아.. 마이크테스트 원첵 원첵.. 휴우... 습습후후~<br>아 아 ~ 아.. 안녕하시렵니까? <br>(정적)<br>아 이게 아닌가.. 원래 웃기면서 시작하는 거라던데...  </div> <div align="center"><br>(FD의 피에로 가면이 희번덕거리며 정면을 바라보다 한 곳을 손으로 가리킨다)<br>거어기, 그쪽 뒤에 흰 티셔츠 입은 여자분!<br>그래요 거기 당신! 좀 웃어요. 안 그럼 나같은 가면 씌운다?<br>(발작적인 웃음소리들)<br>그래요, 이제야 좀 낫네. 역시 21세기 유머는 이래야 돼.<br>아, 제 소개를 안 했군요. 전 이제 막 일을 시작한 FD입니다.<br>FD가 뭔지 아시죠 여러분? <br>(관객석의 누군가가 ‘플로우디렉터!’라고 외친다)<br>그래요 오우 예~똑똑하시네. <br>난 그냥 연예인 되려고 이거 하는 건데?<br>(신경질적인 웃음소리들)<br>하하하, 네, 저 플로어디렉터 맞습니다. <br>앞으로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br>제가 여러분을 안내할 거예요. <br>그러니까 제 말을 잘 들으셔야 돼요?<br>(건성으로 네 하는 응답 소리들)</div> <div align="center"><br>그래요! 자아..<br>여러분 이 좋은 날씨에, 이 컴컴한 곳까지 <br>무슨 볼일이 있다고 찾아오신 건가요?<br>(또한번 관객석을 둘러본다)<br>(지목을 피하려는 듯한 켁켁대는 웃음소리들)<br>그래요 네네.. 이해합니다 케케켁. 역시 자유분방한 21세기에요 그죠..?<br>네? 아.. 여기 온 이유가 있다구요?<br>그래요. 이야기를 들려드리죠. <br>아! 아녜요. 물론 제 얘기는 아닙니다. <br>이제부터 가면을 벗은 세 인물들의 이야기가 펼쳐질 겁니다. <br>언제나 그렇듯 주어진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는 <br>네 그 뭐 그런...<br>어쨌든 여러분들은 박수만 잘 치시면 됩니다!<br>지금이요 지금! 이렇게 타이밍 못 맞춰서 연애들 하겠어?<br>(박수소리)<br>그래요. 좋습니다. 앞으로도 제 지시를 잘 믿고 따라오셔야 돼요?<br>절 믿으세요.<br>자, 그럼 이제 시작합니다!</div> <div align="center">(빛이라곤 없이 껌껌해진 무대)</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font size="2">1막</font></div> <div align="center"><font size="2"></font><br>공장<br>팡틴. 감독관. pc노동자들. 윤전기노동자들. </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br>(쿵 쾅 하는 기계소리. <br>그에 뒤이어 어떤 남성의 고함치는 소리. 채찍소리. 남성들의 씩씩대는 소리가 들려온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감독관</strong><br>찍어! 더 찍어! 더 빠르게!<br>(쿵 쾅)<br>퍼 담아서, 날라라!!</div> <div align="center">(묵직한 기계음들, 남성들의 씩씩대는 소리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남성노동자들</strong><br>고개 숙여! 고개 숙여! 절대 그를 쳐다보지 마라!</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감독관</strong><br>저쪽에서 한 연예인이 애인과 찍은 사진을 올려놨다! <br>(쿵 쾅)<br>퍼 담아서, 날라라!</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남성노동자들</strong><br>고개 숙여! 고개 숙여! 절대 그를 쳐다보지 마라!</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감독관</strong><br>찍어! 더 찍어! 더 빠르게!<br>(쿵 쾅)</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윤전기노동자1</strong><br>감독관님! 감독관님!</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감독관</strong><br>왜 그러나? </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윤전기노동자1</strong><br>오후에 반차를 써야겠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br>전 이십년동안 하루도 쉬지 않았습니다!<br>딸아이 병원에 데려다 줄 사람이 오늘은 저밖엔 없어요!</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감독관</strong><br>그래? 좋다. <br>..오후부터 계속 쉬어라! 돌아오지 마! 이곳은 잊어버려! 나도 잊어라!<br>찍어! 더 찍어! 더 빠르게!<br>우리는 24시간 쉬지 않는다! </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윤전기노동자1</strong><br>그럴 리가요! 이래선 안 되는 거 아닙니까?<br>이건 원래 제 얘기...</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감독관</strong><br>시끄럽다! 난 네같이 머리 긴 놈 얘기 따윈 궁금하지 않아!<br>(쿵 쾅)<br>팡틴을 대령해라!</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윤전기노동자1</strong><br>(군화들의 발자국소리)<br>안돼 이거 놔! 이건 아니야~ <br>(고함소리 점점 멀어진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남성노동자들</strong><br>고개 숙여! 고개 숙여! 절대 그를 쳐다보지 마라!</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앞쪽부터 조금씩 밝아지는 무대)</div> <div align="center">(십수명의 넝마들이 관객석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서 있다. 침통한 표정들.<br>무대 뒤쪽에 간헐적으로 큰 소리를 내며 쉼없이 돌아가는 커다란 윤전기와 <br>그 주변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 <br>그 앞쪽으로 pc모니터와 마우스가 줄줄이 달린 긴 작업대와 <br>그 앞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희미하게 보인다.<br>무대 오른쪽 위로는 가운데가 꺾인 긴 계단이 딸린 작은 사무실이 무대편의상 <br>높다란 이동식 카트 형태로 설치되어 있고, 누군가 거기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 </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관현악곡이 울려퍼진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합창</strong><br>이 하루가 끝나면 또 하루씩 늙어가겠지<br>가난한 우리들이 아는 건 이것뿐<br>이 지긋지긋한 전쟁이여 누구도 이기지 못해</div> <div align="center">이 마감이 끝나면 또 하루씩 추워져<br>이 안에 있다고 피할 순 없어<br>우리도 언제 먹잇감이 될 지 몰라<br>죽음의 추위가 사방으로 퍼져가네<br>우리들의 차례는 언제일까</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완전히 밝아진 무대. 세 줄의 pc작업대 맨 뒷줄 가운데에, <br>혼자서 파란색 드레스를 입은 채 작업하고 있는 한 늘씬한 여성이 보인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합창</strong></div> <div align="center">이 하루가 끝나고 집에 가도 소셜네트워크는 따라오네<br>출근해서 보면 폭탄은 다 터진 뒤야<br>그들은 게걸스럽게 시체들을 먹어치우지<br>이 배고픔은 끝나지 않아<br>우리들도 언젠가 아귀지옥에 가겠지, 이 마감이 끝나면<br> </div> <div align="center"><strong>감독관</strong><br>이 마감이 끝나도 대박내지 못하면 돈은 없다!<br>지옥을 걱정하기보다 인턴에서 벗어날 궁리를 해야지!?</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사무실에서 그들에게 고함치는 감독관에게로 핀 조명 떨어진다. <br>툭 튀어나온 배 위로 해군의 외출복을 연상케 하는 짙은 파란색 정장을 <br>간신히 껴입은 그가 천천히 계단을 걸어내려오면서 핀조명 꺼진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넝마들은 합창을 끝내고 자신들의 작업위치로 돌아간다.<br>일사불란하게 키보드를 누르고 마우스를 클릭하는 pc노동자들. <br>수다도 쉬지 않는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윤전기의 쿵 쾅 하는 소리)</div> <div align="center"><br><strong>pc노동자1</strong><br>저 도도한 자태를 보라지. 불뚝 나온 배만큼 거기도 튀어나왔을까? 누구 확인해 볼 사람?<br>(큭큭대는 노동자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pc노동자2</strong><br>소문 못 들었어? 저번에 승진한 고년 말야. <br>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친구가 물었더니 글쎄,<br>너도 감독관이 오피스텔에 같이 가자고 하면 <br>무조건 따라가서 시키는 대로 다 하라 그러더래~</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pc노동자들</strong><br>어머나 어머나 세상에 세상에~</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pc노동자3</strong><br>내가 더 정확한 얘길 알고 있지. <br>혹시 로또맞아서 거기 가게 되면, 모두들 잘 들어.<br>일단 시장에 가서, 알지? 방울 두 개 달린 속옷상표 그거. <br>그거랑 비슷한 짝퉁팬티를 파란색으로 10장씩 묶음으로 사. 꼭 짝퉁이어야만 해! <br>그걸 갖고 거기 가서, 그 파아~란색 짝퉁 팬티를 입은 <br>그의 엉덩이를 10대씩 때려주기만 하면 된다는 거야! </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pc노동자들</strong><br>끄아악~! 그건 또 무슨 취향이래!<br>너무 더럽다 얘 짜증나~<br>야 뭐 어때. 나라면 하겠다. 인턴생활 지겹지도 않아?<br>사장이 같이 올 때도 있대!<br>에엑~? 사장님이?<br>2대1인가?</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팡틴</strong><br>(작업하다 말고 고개를 홱 들며)<br>지금 뭐라고 한 거야? 나의 사장님은 그렇지 않아!</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pc노동자들</strong><br>...팡틴? 어머어머 얘 봐 왜 이래 갑자기. 너 혹시 사장님 낙하산이뉘~?<br>얘 오늘 퍼런색 옷 입고 온 거 봐. 끼부리는 거니? 헐 대박~<br>이제 보니 너 엉덩이 잘 때리게 생겼다 얘~</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팡틴</strong><br>뭐어~? 이것들이 정말!!</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감독관</strong><br>왜 이리 시끄러워? </div> <div align="center"><br>(마침내 작업대 앞까지 다다른 감독관.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일순간 조용해진 무대. pc노동자들은 아예 양 옆으로 갈라져 <br>맨 뒷 줄 가운데에 선 팡틴과 감독관이 마주보게 만든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감독관</strong><br>팡틴 인턴, 지금 당장 사무실로 올라오도록!<br>헉 헉...</div> <div align="center"><br>(감독관은 땀을 닦은 후 튀어나온 배를 어루만지며 다시 둔중한 발걸음을 옮긴다) </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모든 노동자들의 시선이 팡틴에게로 향한다. <br>곧 모든 조명 꺼지고 팡틴에게만 핀조명 비춰진다)</div> <div align="center"><br>(팡틴은 천천히 무대 앞으로 나선다.<br>뽀얀 피부의 미모가 그제서야 또렷이 드러난다)</div> <div align="center"> </div><strong></strong> <div align="center"><strong> 팡틴</strong><br>(무대 중앙으로 다가서며)<br>도대체 무슨 일일까. 일은 안 하고 시끄럽게 했다고 꾸짖는 걸까.<br>꾸지람 듣는 걸로만 끝나면 좋겠는데. <br>인턴 합격했다고 산 이 옷들, 아직 할부 남았단 말야.<br>월세도 내야 하고.<br>난 지금까지 열심히 일해 왔잖아. 괜찮을 거야.<br>...설마, 같이 어디 가자고 부르는 걸까?<br>아까 그 소문이 사실인 건가? </div> <div align="center"><br>(무대 중앙에 서서 어처구니없다는 듯 두 팔꿈치를 허리에 갖다대며)<br>소문을 퍼나르는 사람이 소문을 두려워하다니.<br>진짠지는 알 수 없는 거잖아. 신경쓰지 말자. </div> <div align="center">(팡틴, 계단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간다)</div> <div align="center"><br>(이제 겨우 계단의 반쯤 올라왔던 뚱보 감독관의 모습이 <br>팡틴을 따라오던 핀라이트조명 언저리에 비친다.<br>그가 그것을 눈치채고 뒤뚱대며 황급히 사무실로 올라가는 동안<br>아름다운 배경음악이 들리기 시작한다) </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팡틴, 계단의 꺾인 중간 부분까지 올라간 후<br>관객석을 본다. 음악이 계속 울려퍼진다)<br> <br><strong>팡틴</strong><br>난 꿈을 꾸었네.<br>세상의 모든 정의가 온전해지는 꿈을.<br>그 꿈 안에선 언제나 영웅이 악당을 무찔렀지.<br>붉은 망토를 등에 달고 골목을 뛰는 멍청한 남자애들을 봐.<br>그의 옷깃에 달린 뱃지 하나면 악당들이 <br>호랑이를 본 원숭이들마냥 고개를 떨구는걸.</div> <div align="center"><br>의심따윈 없었던 소녀는 봄처럼 건강하게 자라나<br>마침내 그를 만나게 되었고,</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합창</strong><br>힘차게 ‘좋아요’를 클릭했지.</div> <div align="center"><br><strong>팡틴</strong></div> <div align="center">그에게서 정의의 뱃지를 받아들었던 날을 기억해.<br>삶이여 제발 이대로 멈추기를.<br>하지만 호랑이는 그 이후로 만날 수 없었네.<br>영원을 약속하는 악수를 끝으로 그는 시련만 남겨두고 떠났어.<br>무슨 일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이 공장과 저 감독관을 봐.<br>여기선 뱃지도 못 달게 해. 나의 봄은 끝난 것일까? </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합창</strong><br>끝나기 전까진 끝난 게 아니지</div> <div align="center"><br><strong>팡틴</strong> </div> <div align="center">그가, 사장님이 날 시험하고 있어.<br>난 이 시련을 이겨낼 거야.<br>정의만이 가득한 봄을 함께 맞이할 거야.</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 <strong>합창</strong><br>파란 짝퉁팬티를 사다 줄 거야</div> <div align="center"><br><strong>팡틴</strong><br>(무대를 내려다보며 발끈한다)<br>아니야! 에러에러!<br>난 그에게 가서 말하겠어. 내가 꿈꾸던 건 이런 게 아니었다고.<br>우린 망토 매고 뛰어댕기는 애들이 아닌 어른이니까!<br>진짜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미션을 달라고 할 거야!<br>(팡틴, 관객석 너머를 보며 허공을 향해 <br>45도 각도로 주먹을 불끈 쥐어보인 후<br>결연한 표정을 지은 채 사무실로 향한다)</div> <div align="center"><br>(그리고 암전)</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끼이익 하고 문 열리는 소리, 그 후 쾅 하고 닫히는 소리)</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쿵 쾅)</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br><strong>FD</strong><br>박수, 박수우우우~! </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font size="2">2막</font></div> <div align="center"><br>편의점<br>병태. 어버이. 커플 한 쌍. 경찰관. 교대자</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끼이익 쿵 하고 문 닫는 소리)</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교대자</strong><br>(젊은 여성 목소리)<br>병태야 나 간다. 수고해~!</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병태</strong><br>네 잘 가요~!<br>..아참! 혹시 오늘 사장님 봤어요?</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교대자</strong><br>아니. 왜 뭐 할 말 있어?</div> <div align="center"> </div><strong></strong> <div align="center"><strong>병태</strong><br>아, 아녜요. 전화로 하면 되죠 뭐.</div> <div align="center"> </div><strong></strong> <div align="center"><strong>교대자 </strong><br>그래~</div> <div align="center"> </div><strong></strong> <div align="center"><strong>병태</strong><br>네에~</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딸랑딸랑, 가게 문에 흔히 걸린 종소리가 난다)  </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무대 조금씩 밝아진다)<br>(한가운데에 긴 탁자로 된 덧문을 중심으로 편의점 카운터가 설치되어 있다. <br>위에 놓인 책과 스마트폰. 뒤로는 담배 모형들, 천장에는 cctv카메라. <br>카운터 계산기 앞에 병태라 불린 한 남자가 서 있다. <br>FD만큼 왜소한 체격에 구부정하기까지 한 몸에 <br>유니폼조끼, 무릎 나온 청바지에 실밥 터진 운동화를 신은 병태, <br>흘러내리는 뿔테안경을 고쳐쓰면서 물품들을 이리저리 정리하고 있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병태</strong><br>어디 보자 이건 여기 저건 저기... 요건 일단 저쪽으로 던져놓고.<br>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br>큰 것들은 크게 작은 것들은 작게, 그러나 서로 마주볼 수 있도록.<br>이런 잡일을 하면서 이렇게 멋진 말들을 곁들이다니,<br>나라는 사람은 정말이지 하아~<br>ㅋㅋㅋㅋㅋ 아~이고오~, 배야!?<br>(정적)</div> <div align="center">흠흠.. 이제 웬만큼 정리된 것 같으니 책이나 좀 읽어볼까.<br>(카운터 한켠에 놓여있던, 책갈피가 꽃힌 제법 두꺼운 책을 꺼내드는 병태.<br>선 채로 책을 낭독한다. 청아한 목소리다)</div> <div align="center"><br>오늘도 저는 긴 산책을 했고 책을 펼쳐보지 않았습니다. <br>그리고 당신에게선 여전히 답장이 오지 않았습니다.<br>(뜸 들인 후) 높은 곳에서 새벽의 M시를 내려다본다면, 형광등의 창백한 빛으로 둘러싸인 <br>편의점은 네모난 모양의 부표처럼 보일 거라고 그녀는 생각하곤 했다.<br>(책을 뒤적거리며) 느낌 좋은걸? 어디보자 제목이..산책자의 행복? 조해진? </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순간 딸랑딸랑 하는 소리가 들린다. <br>병태는 재빨리 책을 카운터 밑으로 던져놓는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병태</strong><br>어서오세요! </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팔짱을 낀 정장차림의 선남선녀 커플 한 쌍이 무대에 등장해 한쪽 끝으로 걸어가다 <br>병태 쪽을 바라보며 자신들끼리 속삭인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커플녀</strong><br>(속삭이듯 다 들리게) <br>어머 저 사람 봐 디게 웃기게 생겼다~</div> <div align="center">(아무것도 못 들은 척 관객석을 바라보는 병태)</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커플남</strong><br>(속삭이듯 다 들리게) <br>조용히 해 다 들려. 여기 야간직원은 맨날 바뀐단 말야. <br>저 사람이 그나마 오래 하는 거라고. 난 여기 단골이잖아. 상처주지 마.</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커플녀</strong><br>에이 알았어, 난 들리는 줄 몰랐지.   </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커플이 텅 빈 무대 한 쪽 끝으로 다가가 이것저것 뭔가를 고르다 <br>이내 카운터 쪽으로 향한다.<br>병태는 무심하게 카운터에 스캐너를 댄다. 삑삑 소리가 난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커플남</strong><br>충격면하고 경악면 1+1 맞죠?</div> <div align="center"> </div><strong></strong> <div align="center"><strong>병태</strong><br>아.. 죄송한데 그 행사는 저번 주에 끝났는데요.</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커플남</strong><br>어? 그래요? </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커플녀</strong><br>에이 오빠 또 에러에러. 딴 데 가자.</div> <div align="center"> </div><strong></strong> <div align="center"><strong>커플남</strong><br>아냐 잠깐만.. 아죠씨 제 얼굴 아시죠? 여기 진짜 자주 왔었는데..<br>글고 이거 저번에도 계속 그렇게 사 갔던 건데, 어떻게 안 돼요?</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병태</strong><br>(가볍게 웃으며) 편의점은 원래 그런 게 안 돼요. </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커플남</strong><br>그래요? 아이 그래도 그러지 말고 좀...<br>오늘 여친이랑 충악면 끼리묵어야 한단 말예요.</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병태</strong><br>(애써 무표정으로) 안녕히 가세요.</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커플녀</strong><br>(남자를 잡아끌며) 오빠 그냥 가자~</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커플남</strong><br>알았어 알았어. (끌려나가며) 아이 자식 생긴 거처럼 센스없네 c8</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딸랑딸랑)</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병태</strong><br>(물건들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시늉을 하며)<br>휘유... 또 사건의 진상 하나가 사라지는구나.<br>그래, 아까 그놈 말이 맞아. 여기 야간직원들 자주 바뀌었대드라.<br>(돌아나오며 매대를 정리하는 시늉 후 카운터로 돌아온다)<br>사건의 진상을 파악해보니, 그 원인엔 남녀노소 구분이 없더라고. 후우아~<br></div> <div align="center">(한숨쉬며 던져놓았던 책을 다시 집으려다 관두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br>한동안 화면을 만지작거리다 이내 스마트폰도 내려놓는다)</div> <div align="center">없네, 없어. 답장이, 없어.<br>(텅 빈 눈으로 무대를 둘러본다)<br>여기 이렇게 많은 물건들이 있는데 나한텐 답장 하나가 없구나.<br>저길 보라지. 그래 너거들이 좋아하는 충격, 경악. 알고보니..평범? ㅎㅎ.<br>꿀벅지. 하의실종. 그래 이건 좀 관심이 가네. <br>(카운터 덧문을 열고 나가려다 스마트폰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br>...관두자. 그 건너편엔<br>뇌섹남, 요섹남.. 뭐야 이건? 아우, 저쪽은 더 가관이네. 죄다 <br>종북종북 핵핵핵핵.. 저쪽은 일년내내 1+1이야. 자전거를 준 적도 있었다지?</div> <div align="center"><br>(다시 여기저길 둘러보던 병태, <br>관객석으로 눈길을 돌리더니 <br>시선이 딱 멈춰선다)<br>아.. 안녕하시렵니까? 아냐 이건 아까 안 먹혔잖아! <br>반갑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디서 오신 기사들이신가요. 나이트를 밝히는 나이트들이라.. <br>네? 맞춰보라구요? 어디 보자.. 이거 다들 자유분방하셔서 키워드를 뽑아낼 수 없겠는데요?<br>(속삭이듯 다 들리게) 연체동물 두족류 오징엇과가 많은 걸 보니 방울 두 개 달린 <br>그곳..에서 왔냐고 하고 싶지만 그럴 수야 없지. <br>네? 아.. 아녜요. 아무 얘기도 안 했습니다. 하하! 방가방가.  </div> <div align="center"><br>제 소개를 해야겠군요.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에 그러니까 그것이.. 네, 병태입니다.<br>아마 당신들께선 오늘도 절 본 적이 있었을 겁니다. 거스름돈 쥐어주던 그 사람, <br>바빠 죽겠는데 카운터 너머로 외쳐봐도 보이지 않던 그 사람, <br>생수 한 병 사는데 적립카드 어쩌구 하는 질문만 세 개씩 해 대던 그 사람, 네, 접니다. <br>당신 지폐에까지 높임말 붙여주던 친절한 그 사람이었냐구요? <br>아뇨, 전 그렇게까진 안 하십니다. 전 그래도 국어를 배운 사람이라구요.<br>그렇게 배우신 분이 왜 이 늦은 밤에 여기서 이러고 있냐구요? <br>(꼬아보며) ..그 질문이 겁나 무례한 질문이란 거 알고 하신 거죠? <br>(몸을 풀며) ..다들 궁금했지만 참았던 질문인가 보군요. 음.. 왜일까요.<br>고상한 햇빛 속 낮에 가려졌던 인간존재의 비열함을 체험하기 위해서..라고 해 둘까요?<br>..마음에 안 드나 보군요. 좋습니다. 상관없어요.</div> <div align="center"><br>어차피 이 밤은 저의 것이니까요. <br>새벽시간에 이렇게 깨어있으면 잠들어있던 환각들도 같이 깨어납니다. <br>그 모든 게 다 제 것이죠.<br>십수년 전에 있었던 사소했던 어떤 기억들이 생생하게 제 앞에 펼쳐집니다.<br>나는 그들과 함께 이 가게를 지키는 겁니다.<br>물론 저는 당신들도 환각일 수 있다는 걸 압니다. <br>상관없어요! 이렇게 제 얘기 들어줄 분들이 있으니 심심하진 않겠군요.<br>장사가 그렇게 안 되냐구요? 천만에! 유흥가 바로 앞이라 좀 전까지도 엄~청 바빴다구요.<br>다들 아시잖아요. </div> <div align="center">(소주잔 꺾는 시늉 후 가상의 매대들을 가리키며) </div> <div align="center">술, 그 옆에 술, 그 옆에 또 술, 술안주, <br>취한 놈들이 꼭 찾는 아이스크림, 술 깨는 약...<br>취했으니 잠 깬다고 찾는 캔커피...</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아 저기 보세요 저거. 요즘에 나온 건데 저게 잠 깨는 데 그렇게 좋아요. <br>저도 알람이 울리자마자 이불을 걷어차면서 저걸 한 병씩 마십니다.<br>발칵! 멘붕.. 트모그룹의 샤샤샤S양, 아이돌 으르렁K군과 이럴수가...?<br>으아니 이것들이!!<br>(무대에서 군인목소리 몇이 ‘감히 우리의 샤샤샤를 모욕하다니!' 하고 외치는 소리 들려온다)</div> <div align="center"><br>(병태, 눈을 크게 뜨며)</div> <div align="center">아아! 아침이로구나!!<br>수탉은 꼬끼오대고 햇빛은 살랑거리는 아침,<br>우리들은 연예인 기사를 마시며 똥을 싼다!<br>쾌변의 아침이어라!!<br>(기마자세 후 곧추어서며)<br>자 이제 힘차게 일터로 향하자. 오늘은 누가 누굴 괴롭히게 될까. <br>멱살잡는 일이 없으면 제대로 된 하루가 아니지.<br>오늘도 세상은 평화롭구나!<br>물론 전 밤에 일하니까 해가 질 때 쯤에야 깹니다만, <br>그런 디테일쯤은 무시합시다! 우리는 기사님들의 박력을 본받아야 돼요!</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그렇게 일한 지 이제 석 달째가 되어가네요. <br>장사가 잘 되는 곳이라 월급이 밀린 적은 없었습니다.<br>지난 달엔 박력있게 좋아하는 책 몇 권도 주문했거든요.<br>(잠시 침묵. 아까 그 두꺼운 책을 매만지며 <br>관객들을 바라본다)</div> <div align="center"><br>물론 저도 알고 있습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분에 <br>이 가게는 자영업이라는 전쟁터에서 살아남았습니다. <br>며칠전 새벽이었습니다. <br>전 집게발과 비닐봉지를 들고 가게 앞으로 나갔습니다.<br>청소를 하려고요.<br>근데 어떤 사람이 길 건너편에 고꾸라져 있는 겁니다.<br>또 술취한 사람이겠거니, 하고<br>저는 말없이 가게 앞에 널브러진 쓰레기들을 줍기 시작했습니다.<br>그러고 있는데 갑자기 그가 멀쩡한 목소리로 외쳐대는 얘기들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br>(핏발 선 목소리로) '언론자유 수호! 복직 때까지 투쟁!'<br>(본래 목소리로) 저는 계속 쓰레기들을 주워담았습니다.<br>(핏발 선 목소리로) ‘저 불빛 환하게 밝힌 놈들이 내 인생을 이렇게 망쳐놨어.<br>언론자유, 수호! 복직 때까지, 투쟁!'</div> <div align="center"><br>(본래 목소리로) 저는 말없이 비닐봉지를 손에 들고 <br>불빛이 환하게 켜져있는 이 가게로 돌아왔습니다.<br>그가 말한 곳은 요 옆 건물 10층의 변호사 사무실일 겁니다. <br>설마 여기겠어요...?<br>(뒷목을 긁으며)<br>하지만 원래.. 모든 일이 그렇지 않던가요?</div> <div align="center"><br>...왜 여기서 일하는 거냐구요?<br>아까도 얘기드렸잖아요.<br>(두 팔을 벌리고 고개를 뒤로 젖힌 후 눈을 반쯤 감은 채 코를 킁킁대며)<br>밤에 피는 인간존재의 비열함이란 꽃향기를 맡기 위해서라고나 할까요. 킁킁.<br>(속삭이듯이) 책을 너무 많이 긁어서 가불해야 될 판이란 말야...<br>(다시 곧추서며) 아.. 아닙니다! 하하. <br>제가, 일을 꽤 잘 하는 편이랍니다. <br>사장님도 어찌나 절 믿는지 밤에는 본 적이 없어요.<br>...못 믿겠다구요? 진짜라니깐요? </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어버이</strong><br>(무대 한쪽에서 어느 술취한 늙은 남자의 노래소리 들려온다)<br>아름다운 이 강산을~ 지키는 우리~ <br>사~나이 기백으로~ 오늘을 산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병태</strong><br>저~기 한 명 오는군요. 제 솜씨를 보여드리죠.<br>여러분들은 걱정 마시고 구경이나 잘 하시면 돼요~</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어버이</strong><br>포탄의 불바다를 무릅쓰면서 <br>고향땅 부모형제 평화를 위해</div> <div align="center"><br>(출입문 종소리 난다. 딸랑딸랑.)</div> <div align="center"><br>(군복을 입고 원통형 가방을 등에 맨 노년의 남성, 비틀거리며 무대에 등장한다.<br>병태보다 살짝 더 큰 체구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어버이</strong></div> <div align="center">전우여 내 나라는~<br>(병태와 눈 마주친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병태</strong><br>어서오세용~</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어버이</strong><br>(비틀거리며 멈춰선 채 트름을 거나하게 한 번 내뱉은 후,<br>멜빵주머니에서 긴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문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병태</strong><br>(당황한 목소리로) 여기서 담배 피시면 안 돼요!</div> <div align="center"> </div><strong></strong> <div align="center"><strong>어버이</strong><br>(흥 하고는 라이터까지 꺼낸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병태</strong><br>쓰읍!</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어버이</strong><br>(병태를 빤히 보며 라이터에 불을 붙여 담배에 가까이 가져간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병태</strong><br>(오른팔을 흔들며 반동자세로, 긴박한 목소리)</div> <div align="center">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br>멸~공의 횃불 아래 목숨으을 건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어버이</strong><br>(잠시 쳐다보다 라이터를 집어넣는다)<br>그래 아라쓰.. 오케이...</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병태, 카운터에 기대 몸을 숙이며 한숨을 내뱉는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어버이</strong><br>어이! 여 종핵드링크 어딨능교?<br>(병태, 몸 숙인 채 손가락으로 무대 오른쪽을 가리킨다.<br>어버이가 그 모습을 보며 입맛을 다시자 <br>눈치챈 병태 몸을 곧추세우고<br>주차안내원처럼 한쪽을 가리킨다. <br>어버이는 입에 물었던 담배를 바닥에 뱉고는 <br>비틀거리며 그쪽으로 향한다)<br>어이! 와 이거밖에 없노? <br>아이 이거 오늘 가서 다 노나줘야 된단 마시~</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병태</strong><br>(피곤해진 목소리로) 얼마나 필요하신데요?</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어버이</strong><br>박스 있는데로 다 갖고 와 봐라!<br>마 어뜨케 그 중한 것을 요만큼바끼 안 갖다놨노?<br>종북핵핵 이거 하나씩 마셔줘야 된다 말야~</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병태</strong><br>(병태 귀찮음을 애써 숨기며 카운터를 나와 <br>왼쪽 끝에서 박스 몇 개를 양손에 담아오는 시늉을 한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어버이</strong><br>저 저거 일하는 꼬라지 좀 보소 저거<br>(병태 쪽으로 다가가 무언갈 낚아채려 한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병태</strong><br>계산 먼저 하시구요.</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어버이</strong><br>뭬~야?<br> 니가 그러니까 알바나 하고 있지 c8 못난 새끼!<br>으른이 왔으면 유도리 있게, 어? <br>요즘 군대는 그런 것도 안 가르쳐주드나?</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병태</strong><br>(째려본다)</div> <div align="center"> </div><strong></strong> <div align="center"><strong>어버이</strong><br>뭐, 뭠 마? 한 대 치고 싶냐? 쳐 봐!<br>새애끼 치지도 못할 거면서.<br>나는! 어! 마! 국가에서 나한테 돈을 줘 임마!<br>비밀공무수행중이라고! 쳐 봠 마!</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병태</strong><br>(헛웃음이 터져나온다. 뭔갈 하나 빼서 <br>공손하게 두 손으로 주는 척 한다)<br>여깄습니다 으르신~</div> <div align="center"><br>(한숨을 쉬며 카운터로 가 물건을 찍는 시늉을 한다. 삑삑소리)<br>그거 술깨는 게 아니고 술에 타 먹는 건데 ㅎ.<br>아, 아녜요 드세요 드세요.</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어버이</strong><br>(무대 한 켠으로 가 시식대에 뭔갈 놓는 시늉을 하며)<br>뭐? 뭐라는겨. 네깐놈이 뭘 안다고 지껄여 마!<br>넌 내가 딱 보니까 그 자리에서 평생 그 짓만 하며 살 놈이다 너는.<br>에휴~</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병태</strong><br>(목을 좌우로 꺾으며 한숨을 턴다. <br>계산기 화면을 누르는 시늉을 한다. 삑삑소리)</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어버이</strong><br>너 여자친구는 있냐? ...너같은 놈이 있겄냐~?<br>야 이쓰면 차라리 날 줘라 야 너보단 내가 낫겄다<br>연락처 하나 넘기봐!<br>(삑 소리 멈춘다. 병태 고개 숙인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병태</strong><br>(고개 들며)..너무 센 사람이 걸렸네. <br>여기서부턴 기억하지 마세요.</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어버이</strong><br>(어버이, 드링크가 잘 안 따진다)<br>이건 또 왜 이래 이거.<br>(카운터 쪽으로 향한다)<br>야, 까 봐.</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병태</strong><br>...좆까!!</div> <div align="center"> </div><strong></strong> <div align="center"><strong>어버이</strong><br>뭐? 너 방금 뭐라고 했...야이 ㅆㅂㄱ시ㅏ???ㅇㄹ</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조명 깜빡이는 사이키델릭으로 바뀐다)<br>(어버이, 카운터 덧문을 열고 병태의 머리채를 잡아흔든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어버이, 병태</strong><br>야 이 ㅁㄴ이라???리ㅏ?ㄴㅇ</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사이키델릭조명에 경광등 색깔 섞인다. 사이렌 소리도 들린다. 삐뽀삐뽀) </div> <div align="center"> </div><strong></strong> <div align="center"><strong>어버이, 병태, 경찰</strong><br>어이 거 으르신 ㅊㅁㅇ림낭러???ㄴ아러</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조명과 음향 모두 꺼진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조명 켜진다.<br>병태, 흐트러진 옷차림과 머리매무새로 고개숙인 채 카운터에 서 있다. <br>경찰과 어버이, 무대 한쪽 끝에 함께 서 있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경찰</strong><br>(병태를 향해) 마지막이에요. 정말 합의 안 하실 거에요?<br>음.. 그럼 사건접수 할 테니까요, 담당 배정되면 늦지 않게 연락드릴게요. <br>아우, 젊은 분이 아주 욕보셨..<br>(어버이 눈치보며) 험험 수고하세요<br>(어버이 향해) 거 얼른 나오세요 거.</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어버이</strong><br>아이 알았어 알았어. 우리 쫌 이따 거기서도 볼 텐데 왜 그래 허허.<br>(가방에서 뭔갈 꺼내며) 이거 드링크 한 잔 할라우?</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경찰</strong><br>(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빨리 나오기나 하세요!<br>(무대 바깥으로 퇴장한다)  </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어버이</strong><br>(병태를 보며)<br>  합의.. <br>아냐! 퉤! 너깐 놈하고 내가 에잇..<br>너 마 합의 해 주건 안 하건 앞으로 여기서 일 못 할 줄 알아!<br>(핸드폰을 꺼내들며) 여기 사장이 내 후배야 마! 어!<br>앞으로 니가 이 근처 어디서 일하든 그 가게 앞에선<br>가스통폭발 대 축제가 일어날 거다!</div> <div align="center">(경찰 무대밖 목소리:안 나오시고 뭐 해요! 아 진짜)<br>커험 험</div> <div align="center">(퇴장)</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병태</strong><br>(고개를 든다.<br>상기된 표정으로 멍하니 앞을 바라본다.<br>머리를 만져본다. 많이 빠지진 않은 모습이다.<br>고개를 젖혀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한숨을 내뱉고는,<br>cctv카메라를 바라보며 뇌까린다)<br>뒤져쓰...</div> <div align="center"><br>(몸을 풀며 스마트폰을 꺼내들어 무언가를 확인한다.<br>순간 스마트폰 벨소리 울린다. <br>'답장을 못해줘서 미안해. 친구를 만나느라 샤샤샤'<br>반갑게 웃으며 화면을 보던 병태, 순식간에 표정 일그러지며 황급히 전화 받는다)<br>네 사장님!<br>예 아까 전화했었냐구요? 예 그게..사장님 저 제가 이번에 가..<br>예? 아까 전화한 게 그 문제 때매 그런 거 아니냐구요?<br>어떤... 네? 아.. 아.. 연락받으셨구나.. 네... 아.. 네...네?<br>cctv..네.. <br>사람.. 바로 구할 수 있으세요? 네.. 네.. <br>네 근데 저기요 사장님 이번 일은요..네?<br>왜 건드렸냐구요? </div> <div align="center"><br>(무미건조해진 목소리로)<br>네, 알겠습니다. 네. <br>이번 달 일한 만큼은 <br>(수화기에서 큰 소리 들리는 듯 귀에서 황급히 뗐다 다시 댄다)<br>네.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br>(다시 뗐다 댄다) <br>네. 전화 끊겠습니다.</div> <div align="center"><br>(병태, 스마트폰을 카운터에 내려꽃으려다 스윙을 천천히 줄이며 던져놓는다. 덜컥. <br>카운터 의자에 처음으로 털썩 주저앉는다.<br>카운터에 내려놓은 스마트폰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밑에 던져진 책을 바라본다.<br>그러다 관객들과 시선 마주친다)</div> <div align="center"><br>...뭘 봐요? <br>뭘 봐! 뭘 봐 시발!<br>시발 보지 말라고!<br>(주저앉아 얼굴을 싸맨 채 고함지른다)<br>아아악! 아아악!</div> <div align="center"><br>(아침새소리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오며 암전)</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br><strong>FD</strong><br>박수, 박수우우우~! </div> <div align="center"><br> </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br><font size="2">3막</font></div> <div align="center"><font size="2"></font><br>곱창집<br>정과장. 유부장. 정대리. 하사원. 팡틴. 병태.</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정과장</strong><br>아아앗!</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무대 밝아진다)<br>(전형적인 깡통 원형 테이블 6개가 2줄로 놓인 곱창집. 메뉴판들, 장식물들.<br>앞줄 가운뎃자리 4인셋팅된 테이블에 앉은 정과장, 유부장. 소주셋팅과 반찬접시들. <br>똑단발의 정과장은 큰 체구에도 헐거운 정장을 입고 있다.<br>깔끔한 머리에 검은 뿔테안경을 쓴 유부장은 몸에 딱 맞는 정장을 입었다.  <br>그 양 옆 자리에 혼자 앉아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국밥과 소주를 마시는 팡틴, 병태.<br>팡틴은 유명브랜드의 트레이닝복을 입었고 병태는 추레하게 바랜 외출복 차림이다.<br>뒷줄엔 삼삼오오 모여앉은 손님들.<br>정과장네 테이블 불판에 곱창 굽는 철판이 올라와 있다. 기우뚱하다. </div> <div align="center">맨손으로 철판을 만지던 정과장이 아얏 소릴 내며 움찔거린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유부장</strong><br>(못마땅한 표정으로) </div> <div align="center">아이 거참 그.. 비키봐!<br>(물수건으로 놋쇠손잡이를 잡아 바르게 놓는다)<br>아 이런 데서 밥 안 먹어봤어? 거 사람 참..</div> <div align="center"> </div><strong></strong> <div align="center"><strong>정과장</strong><br>(겸연쩍어하며) 헤 제가 성격이 급해서.. 헤헤헤 ..<br>(젓가락으로 철판 위를 젓는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유부장</strong><br>집게 써 집게! 자네 입 댄 걸로..<br>(답답해하는 제스처)</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정과장 황급히 집게를 쥔 후 앞접시에 곱창을 조금 떠 유부장 앞으로 놓는다.<br>소주도 한 잔 따라준다. 그냥 마시려던 유부장, 빈 잔을 앞에 두고 겸연쩍어해하는 <br>정과장을 보고 소주를 따라준다. 한 잔씩 마시는 두 사람)</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정과장</strong><br>근데 곱창 다 익었는데.. 그 친구들 안 온답니까? </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유부장</strong><br>거의 다 왔대. </div> <div align="center"> </div><strong></strong> <div align="center"><strong>정과장</strong><br>오늘 뭐 취재하러 갔댔죠 걔네들이?</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유부장</strong><br>아 그 왜 있잖아 이번에 피습당한 미국대사. 그 사람 쾌유 빈다고 <br>어떤 단체에서 부채춤 공연도 하고 음식도 나눠주고 그랬대요. <br>거기 갔다 오는 거야 지금. 요즘 좋은 뉴스들이 별로 없잖어.<br>우리 무난방송에 딱 맞는 아이템이라고. 내 아주 기대하고 있어요.</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정과장</strong><br>아 예..<br>(자신의 앞접시에 반찬을 퍼다 먹는다)<br>저 부장님 근데 아까 얘기드린 제 아이템..</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유부장 </strong><br>아, 그거 내 생각해 봤는데, 그냥 킬합시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정과장</strong></div> <div align="center">저 부장님 근데.. 이게 몇년씩이나 묻혀있던 문제거든요. </div> <div align="center">나중에라도 크게 터지면 늦으니까 저희가 먼저 터뜨리는게..</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유부장</strong><br>(뻔히 노려본다)<br>거 사람 증말.. 자네 우리 무난방송의 본질이 뭐라고 생각하나?<br>우린 사회의 안정을 위해서 무난하게 가는 거야.<br>사람들 요즘 사는 거 봐봐 얼마나 힘들어.<br>저, 저 봐봐.<br>(양 옆의 외톨이들을 슬쩍 가리킨다<br>외톨이들 국밥이 목에 걸리는지 켁켁댄다)<br>저런 사람들이 집에 가서 뉴스 틀었는데 가습기가 어쩌고 하는 얘기 나와 봐.<br>소화가 되겠느냐고. </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정과장</strong><br>아.. 아 예.. 제가 생각이 좀 짧은 것 같네요.<br>새로 오신 사장님 철학을 생각해야 했는데..<br>사장님 오시기 전엔 장난 아니었다면서요?</div> <div align="center"> </div><strong></strong> <div align="center"><strong>유부장</strong><br>사장님 오시고 나서 좋아진 거야. 그 전에는 말도 마.<br>보도국으로 깡패들 와서 다 뒤집어 엎고 기자들 법원 들락거리고..<br> 지금 편하게 일하는 걸 다행으로 알라고.</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정과장</strong><br>예 정말 그렇죠 헤헤.. <br>근데 그때 법원 갔던 선배는 참 오래 일하셨던 분인데 요즘 안 보이시네..<br>(유부장, 정과장을 다시 뻔히 노려본다)<br>아, 아뇨 별다른 뜻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고 그냥 제가<br>어렸을 때부터 tv에서 봤던 분이라 궁금해서.. 헤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유부장</strong><br>자네.. 지금 딸이 몇살이랬지?</div> <div align="center"> </div><strong></strong> <div align="center"><strong>정과장</strong><br>아 예 이제 두 돌 막 지났습니다 예. 헤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유부장</strong><br>자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무언가 말하려는데 캐주얼정장에 가방을 멘 일행 둘이 무대로 들어온다.<br>한명은 통통하고 한 명은 홀쭉하지만 둘 다 움직임은 날렵하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정대리, 하사원</strong><br>아이고 좀 늦었습니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유부장</strong><br>어 어서와 앉어앉어. 고생들 많았지?<br><strong> <br>정대리, 하사원</strong><br>아이 아닙니다~<br>(자리에 앉는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정과장</strong><br>아이구 어서와라 야. 고생했다. 어여 먹어 이거 다 탄다 지금.<br>(소주병 집는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유부장</strong><br>아냐 내가 따라줄게.<br>(정, 하 두 사람에게 소주 따라준다)<br>배고프지?</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정대리</strong><br>아, 예. 근데 거기 가니깐 개고기도 노나주고 그러더라고요.</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유부장</strong><br>그래~? 허 거 참 통 큰 사람들이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하사원</strong><br>예 정말 은혜로웠어요.</div> <div align="center"> </div><strong></strong> <div align="center"><strong>유부장</strong><br>(두 사람 보며)<br>어때 그림 좀 나올 것 같던가?</div> <div align="center"> </div><strong></strong> <div align="center"><strong>정과장</strong><br>예 방금 테잎 넘겨주고 오는 길인데 벌써부터 반응이 뭐...<br>(엄지손가락을 척 내민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유부장</strong><br>꺄하하하!<br>자 우리 한 잔씩들 하자고!<br>(소주잔을 내밀며)<br>우리의 무난함을 위하여! </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정과장, 정대리, 하사원</strong><br>(소주잔을 내밀며 부딪힌다) 위하여!</div> <div align="center"><br>(네 명, 소주를 한 입씩 털어넣는다. 아윽 끄윽 하는 소리들.<br>안주도 한 입씩 먹기 시작하는 그들. 쩝쩝 소리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정대리</strong><br>부장님 이번에 이거 잘 되고 그러면 다음달 인사발령때 <br>부장님 승진소식도 들리고 상도 좀 받고 그래야 되는 거 아닙니까?</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유부장</strong><br>에이 뭐.. 난 그저 회사를 위해서 열심히 하는 것 뿐인데요.<br>팀원들이 날 알아주면 고마운 거죠 뭐.<br>아하하하.</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하사원</strong><br>알아주다니요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br>저한테 부장님은 제 아버지세요.<br>제가 미리 상 하나 드려야겠네요.<br>(쌈을 하나 싼다)<br>부장님 이거 받으세요. 이 시대의 아버지상 하나 드리고 싶어요.</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유부장</strong><br>아이 뭐 이런 걸 다..아우, 고마워요<br>(쩝쩝거리며 먹는다)</div> <div align="center"> </div><strong></strong> <div align="center"><strong>정과장</strong><br>(급하게 젓가락질을 하며)<br>  과장님 여기 여기도.. 우리들의 우상 받으셔야죠.</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유부장</strong><br>하하 이거 참 다들.. (우걱우걱)</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정과장</strong></div> <div align="center">헤헤.. (쌈을 하나 싼다) <br>부장님 <br>전 사건의 진상 드립니다~<br>(갑자기 네 명 모두 얼어버린다)<br>(유부장 볼 빵빵한 채로 표정 일그러진다)<br>(소주잔을 꺾던 양 옆의 외톨이들 풉 하고 내뱉는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정대리, 하사원</strong><br>(못마땅한 표정으로)<br>아~이 참 과장님...<br>아 분위기 좋았는데~</div> <div align="center">(유부장, 말없이 혼자 소주잔을 꺾는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정대리</strong><br>과장님 이번에 승진 안 하실 거예요?<br>이번에도 안 되시면 솔직히 저까지 힘들어져요 아시잖아요.<br>근데 왜 이러세요.</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정과장</strong><br>아이 난 그냥.. 죄송합니다 부장님..</div> <div align="center">(유부장 말없이 소주잔을 또 꺾는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하사원</strong><br>자자 우리 이러지 말고, 2차 갑시다 2차!<br>요 앞에 독일제 생맥주 하는 데 새로 생겼대요! 맥주 한 잔씩들 하죠!</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유부장</strong><br>저기 먼저들 가요. 난 집에 들어가봐야 될 것 같어.</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정과장, 하사원</strong><br>아이 왜 이러세요. (눈으로 신호하며) 정과장님이 올해 총무시잖아요. 우리 회식비 아직 남았죠?<br> 부장님이 우리의 연예인이신데 빠지시면 안 되죠~<br>자~ 갑시다~<br><strong> <br>유부장</strong><br>아.. 그.. 그래? 그럼.. 독일제 생맥주 한 번 맛 좀 봐 볼 까?</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유부장, 정대리, 하사원</strong><br>까르르 까르르 갑시다~ </div> <div align="center"><br>(세 명, 옷과 가방 챙기며 일어난다.<br>정과장 미적거린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정대리</strong><br>과장님 빨리 계산하고 요 앞으로 오세요! 카드 챙겨오셨죠?</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정과장</strong><br>어 어.. 어 그래..<br>(테이블에 놓인 계산서를 집어들고 물끄러미 바라본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모든 조명 꺼지고 정과장에게 핀라이트조명 비춘다)</div> <div align="center"><br> (정과장의 스마트폰 울린다.<br>천천히 품에서 꺼내 받는다)<br>어 그래..어 일단 편집하고 있어봐. 아직 끝난 거 아니니까. <br>어? 아냐 난 회식 늦게 끝날 것 같아. 내일 보자고.<br>(스마트폰을 천천히 주머니품에 넣는다.<br>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계산서 위에 던진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관현악곡 시작된다.<br>정과장, 관객석 쪽을 향해 몸을 돌리고 노래 시작한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2차로<br>회식은 끝이 없는 가시밭<br>법인카들 준 부장님은 포기란 걸 모른다<br>2차로</div> <div align="center"><br>(핀라이트 조명이 하나 더 켜지며 팡틴을 비춘다.<br>관객석 쪽을 향해 서 있는 팡틴, 노래 시작한다)</div> <div align="center"><br><strong>팡틴</strong><br>이렇게 헤어진다면<br>할부는 어찌 다 갚을까</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핀라이트 조명이 하나 더 켜지며 병태를 비춘다.<br>관객석 쪽을 향해 서 있는 병태, 노래 시작한다)</div> <div align="center"><br><strong>병태</strong><br>일자리 없어진다면 내 밤들은 어디로 가나</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전체조명 켜진다. <br>팡틴, 정과장, 병태 앞으로 나와있고 <br>그 뒤로 얼굴 벌게진 채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머리에 묶은 유부장, 정대리, 하사원. <br>그 뒤로 식당손님 합창단)</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팡틴</strong><br>내일 거기로 오래. </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합창단</strong><br>부름을 받으셨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병태</strong><br>내 전화는 계속 안 받아</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합창단</strong><br>2차는 갈 사람들만~</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팡틴</strong><br>눈에 띄는 빨간 망토가 부러워</div> <div align="center"> </div><strong></strong> <div align="center"><strong>합창</strong><br>이 땅의 수퍼히어로~<br>(단원들, 두 손을 내밀어 자판을 치는 시늉을 한다)</div> <div align="center"> </div><strong></strong> <div align="center"><strong>병태</strong><br>cctv기록 없다니 이게 무슨 소리야~</div> <div align="center"> </div><strong></strong> <div align="center"><strong>합창단</strong><br>때가 왔다 모두 다 잊을 그때가~</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정과장</strong><br>2차로!</div> <div align="center"> </div><strong></strong> <div align="center"><strong>유부장</strong><br>한 잔씩만 더 마시자. 나도 한 땐 운동권.<br>전설을 들려줄게. 그리고 나서 다 잊어.</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정과장</strong><br>2차로!</div> <div align="center"> </div><strong></strong> <div align="center"><strong>정대리, 하사원</strong><br>너 한잔 홀짝. 나 한잔 홀짝.<br>세상은 그저 알딸딸한 것.<br>(주변을 둘러보며)<br>부어주고~ 마셔주고~<br>모텔에서 미담을 만들어봐요~</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합창단</strong><br>2차로 가는 세상</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팡틴</strong></div> <div align="center">구토야 오지 마라</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병태</strong></div> <div align="center">위장아 버텨다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유부장, 정대리, 하사원</strong></div> <div align="center">우릴 위해 힘냅시다</div> <div align="center"> </div><strong></strong> <div align="center"><strong>정과장</strong><br>1차가 어디였더라</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합창단</strong><br>벌써 다 잊어버렸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정과장</strong></div> <div align="center">아니야! 아니야! 기억할거야!<br>난 이걸 내보내고 말 꺼야!</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합창단</strong></div> <div align="center">2차로!</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팡틴</strong><br>더 높은 사람에게 연락해서 따지겠어!</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 <div align="center"><strong>합창단</strong></div> <div align="center">2차로!</div></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병태</strong><br>날 도와줄 사람들이 있을 거야!<br>난 잘못하지 않았어!</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 <div align="center"><strong>합창단</strong></div> <div align="center">2차로!</div> <div align="center"> </div></div> <div align="center"><strong>전원제창</strong><br>(술잔을 집어들며)<br>2차로 가면 주님 뜻을 알게 되리라<br>2차로<br>우리는<br>2~차~로!</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관현악곡 마무리.<br>암전)</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br><strong>FD</strong><br>박수, 박수우우우~! </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br>(쿵 쾅)</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font size="2">무대</font><br>3막 출연진 전원. FD</div> <div align="center"><br>(페이딩 없이 바로 전체조명 켜진다.<br>무대장치를 옮기던 출연진들, 깜짝 놀라 당황해한다.<br>곧 모두의 핸드폰이 울린다. 모두 짐들을 내려놓고 각자 전화를 받는다. 웅성웅성.<br>통화를 끝낸 다음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관객석을 바라본다)</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팡틴</strong><br>그가 오고 있어!</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병태</strong><br>고도는 오지 않았었는데?</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정과장</strong><br>버스도 오지 않았었는데?</div> <div align="center"> </div><strong></strong> <div align="center"><strong>유부장</strong><br>우리 사장님이잖아! 부지런하시다구!<br>해외를 며칠씩 돌며 일하시다가도 <br>이렇게 두 손에 짐 잔뜩 지고 돌아오시는 분!<br>쿵 쾅!</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출연진 전원</strong><br>하.. 하.. 하하하..<br>하하하!<br>호호호!</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팡틴</strong><br>내일 그곳에 가서 내 의지로 열심히 일하는 거야!<br>운명이 문을 두드려도 절대 열어주지 말아야지!<br>아~ 정말 아름다운 세상이야.<br>덤블링!<br>(덤블링)</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병태</strong><br>아버지뻘 되는 분한테 내가 잘못한 거야.<br>아들이 가서 용서를 빌어야지!<br>아~정말 아름다운 세상이야.<br>팔굽혀펴기!<br>(팔굽혀펴기)</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정과장</strong><br>나도 이제 중년이니 중용의 미덕을 배워야지! <br>무난하게 일하자!</div> <div align="center">내일은 곱창의 효능에 관해 취재할 테야!<br>쪼그려뜀뛰기 10회 실~시!<br>(쪼그려뜀뛰기)</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출연진 전원</strong><br>하하하<br>호호호<br>하하하<br>호호호</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모두들 관객석을 바라보며 미친듯이 웃는다. <br>박수를 치며 휘파람을 불기까지 한다.<br>커튼 내려온다.<br>암전)</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strong>FD</strong><br>박수, 박수우우우~!</div> <div align="center">(잠시 침묵)<br>...왜요? 네? 이딴 해피엔딩이 어디 있냐구요? 어이 거기.. 물병 던지시면 안 돼요! <br>저도 언제 잘릴 지 모르는 몸이란 말예요. 전 힘이 없어요 이러시면 안 됩니다.<br>이 악의로만 가득찬 이야기에서 배울 게 뭐가 있냐구요?<br>...국정원 댓글사건을 보면서는 뭘 배우셨는데요?<br>그걸 보고도 가만히 있었던 나라예요.<br>이 단단한 무대 위에서,<br>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요.<br>저쪽에 가서 일당이나 받고 돌아가시구려. </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 </div> <div align="center"> </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