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희철은 결국에는 해내고야 마는 아이였다. </div> <div>밤 바람에 내려앉은 단풍들이 바닥에서 파도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새삼 실감했다. </div> <div> </div> <div>사람들은 희철이 녀석을 순딩이라고 했다. </div> <div>그 까칠하던 분식집 김씨까지도 그렇게 불렀다. 모두가 좋아하는 아이. 그게 그 놈이었다.</div> <div> </div> <div>하염없이 길 바닥만 뚫어져라 보는데, 까만 구두가 불쑥 들어왔다. </div> <div> </div> <div>"언제오셨어요? 선생님. 안들어가세요?" </div> <div>반장 지영이였다. </div> <div> </div> <div>"어, 전화를 할 곳이 있어서. 좀 있다가 들어갈거야." </div> <div>거짓말이었다. 지영이만 만나지 않았다면 결국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전화 한통이면 끝인거다. 뒷말은 있겠지만. </div> <div>네, 죄송합니다. 제가 갑자기 집안에 일이 생겨서 못갔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네. 네. 그리고 네. 죄송합니다. 끝.</div> <div> </div> <div>한숨을 쉬며 문을 밀었다. 유리가 생각보다 묵직했다.</div> <div>안은 따뜻하고 조용했다. 로비를 지나, 이미 알고 있지만 게시판을 봤다. 201호. </div> <div>엘리베이터는 꺼려진다. 고개를 틀었다. 창백한 상아빛의 계단이 또아리를 틀고 나를 맞았다.</div> <div> </div> <div>-------</div> <div> </div> <div>그런 아이들이 있다. </div> <div>평소에는 조용하고 착실하지만, 사실 머리에, 그 마음에 뭐가 들어 있는 것인지 모를 그런 아이들.</div> <div>골머리 아픈 일이었다. 친구들하고 웃고 떠들다가, 갑자기 연필로 짝꿍의 얼굴을 내려찍는. 뭐 그런 것들. 돌발, 돌발, 돌발.</div> <div> </div> <div>드물지만 그런 아이들을 가끔 만났고, 간신히 1년씩을 버티며 잘 밀어냈다. 그게 내 바닥이었고, 한계였다.</div> <div>사람들은 몰랐지만, 희철이는 그런 부류였다. 나는 그걸 알았다. 그리고 끝까지 모른 척했다.</div> <div> </div> <div>내가 뭘 할 수 있었겠는가?</div> <div> </div> <div>언젠가 희철이의 물건이 없어진 적이 있었다. 스마트폰이었고, 물론 찾지 못했다. </div> <div>그리고 다음 날 또 물건들이 사라졌다. 지갑, 스마트폰 등등.</div> <div>그 물건들은 각 반에서 가장 손버릇이 나쁜 아이들의 것이었다. </div> <div>지갑은 찢긴 채로 소각장에서, 스마트 폰은 산산조각나서 소화전에서 발견되었다.</div> <div> </div> <div>언젠가 우리 반이 사육장 청소를 한학기 동안 도맡은 적이 있었다.</div> <div>토끼와 닭, 꿩이었는데,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었다. 그 냄새도, 털도.</div> <div>첫 주가 지나고, 동물들이 집단으로 폐사하는 일이 벌어졌고, 사육장 청소는 사라졌다.</div> <div> </div> <div>언젠가 새로 온 체육선생이 과도하게 축구에 집착했던 적이 있었다.</div> <div>자기도 애들 틈바구니에 껴서 강제적으로 격렬한 축구를 시키는, 뭐 그런 모질이 짓거리였다.</div> <div>체육 다음 시간이면, 애들은 지쳐서 졸거나 흙투성이 체육복으로 땀냄새를 풀풀 풍기곤 했었다.</div> <div>그리고 희철이의 발목 인대가 나간 후에 체육 선생의 수업은 거의 자습으로 바뀌었다.</div> <div> </div> <div>당연한 일이었다.</div> <div>그 정도는 방관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도 되는 것이었다. 사실 나도 싫었던 것들이었거든.</div> <div> </div> <div>-------</div> <div> </div> <div>"선생님..." </div> <div>희철이 어머님이 내 손을 꽉 붙들었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이 말을 삼켰다.</div> <div>그 높던 콧대는 촉촉하게 젖었고, 당당하던 그 입술은 메마른 고목마냥 갈라졌다.</div> <div>그녀가 가장 사랑하던 것들은 이제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div> <div>자랑도, 명예도, 아들도, 명문대도. 그 어떤 것도. </div> <div> </div> <div>"네... 어머님..."</div> <div>무슨 말을 하겠는가. 이제 와서. 의미가 없다. 절규도 원망도 다 꿀꺽 삼켜버렸다.</div> <div> </div> <div>-------</div> <div> </div> <div>"선생님, 저는 자유롭고 싶단 생각을 많이 해요."</div> <div>진학상담이 끝난 후 희철이가 불쑥 내뱉은 말이었다. </div> <div> </div> <div>"응?"</div> <div>순간 심장이 오그라들었다.</div> <div>무의식적인 내 반문에 더 이상 대답은 없었다. </div> <div>희철이는 언제 그런 말을 했냐는 듯, 싱글싱글 웃으며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나갔다.</div> <div> </div> <div>-------</div> <div> </div> <div>"선생님, 이게...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div> <div>희철이 아버님도 말을 잇지 못했다. </div> <div>단 한번도 평정과 위엄을 잃지 않던 그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구나.</div> <div>나는 정면에 놓여진 내 제자의 사진을 보며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div> <div>떨리는 주먹, 파고드는 손톱. 나오지 않는 목소리. </div> <div> </div> <div>간신히 고개를 숙이고, 영원과 같은 시간을 흘러보내고, 나는 돌아섰다.</div> <div> </div> <div>--------</div> <div> </div> <div>세상에는 그런 것들이 있다.</div> <div>아무리 내가 애를 써도 가질 수 없는 것. 벗어날 수 없는 것. 숙명이니, 운명이니 하는 그런 것들. </div> <div> </div> <div>그 아이는 내 앞에서 자유를 말했다. 그걸 원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걸 얻었다. 자신을 둘러싼 성에서 벗어났다.</div> <div> </div> <div>희철은 결국에는 해내고야 마는 아이였다.</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