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 넌 기억의 천재니까 기억할 수도 있겠지.</div> <div> 네가 그때 왜 울었는지. 콧물을 책상 위에 뚝뚝 흘리며,</div> <div> 막 태어난 것처럼 너는 울잖아.</div> <div> 분노에 떨면서 겁에 질려서. 일을 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네가 일을 할 줄 안다는 것이.</div> <div> 이상하게 생각되는 날이면, 세상은 자주</div> <div> 이상하고 아름다운 사투리 같고. 그래서 우리는 자주 웃는데.</div> <div> 그날 너는 우는 것을 선택하였지. 네가 사귀던 애는</div> <div> 문밖으로 나가버리고. 나는 방 안을 서성거리며</div> <div> 내가 네 남편이었으면 하고 바랐지.</div> <div> 뒤에서 안아도 놀라지 않게,</div> <div> 내 두 팔이 너를 안심시키지 못할 것을 다 알면서도</div> <div> 벽에는 네가 그린 그림들이 붙어 있고</div> <div> 바구니엔 네가 만든 천가방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div> <div> 좁은 방 안에서,</div> <div> 네가 만든 노래들을 속으로 불러보면서.</div> <div><br></div> <div> 세상에 노래란 게 왜 있는 걸까?</div> <div> 너한테 불러줄 수도 없는데.</div> <div> 네가 그린 그림들은 하얀 벽에 달라붙어서</div> <div> 백지처럼 보이려고 애쓰고 있고.</div> <div> 단아한 가방들은 내다 팔기 위해 만든 것들, 우리 방을 공장으로, 너의 손목을 아프게 만들었던 것들.</div> <div> 그 가방들은 모두 팔렸을까? 나는 몰라,</div> <div> 네 뒤에 서서 얼쩡거리면</div> <div> 나는 너의 서러운,</div> <div> 서러운 뒤통수가 된 것 같았고.</div> <div> 그러니까 나는 몰라,</div> <div> 네가 깔깔대며 크게 웃을 때</div> <div> 나 역시 몸 전체를</div> <div> 세게 흔들 뿐</div> <div> 너랑 내가 웃고 있는</div> <div> 까닭은 몰라.</div> <div> 먹을 수 있는 걸 다 먹고 싶은 너.</div> <div> 플라타너스 잎사귀가 오리발 같아 도무지 신용이 안 가는 너는, 나무 위에 올라 큰 소리로 울었지.</div> <div> 네가 만약 신이라면</div> <div> 참지 않고 다 엎어버리겠다고</div> <div> 입술을 쑥 내밀고</div> <div> 노래 부르는</div> <div> 랑아,</div> <div><br></div> <div> 너와 나는 여섯 종류로</div> <div> 인간들을 분류했지</div> <div> 선한 사람, 악한 사람......</div> <div> 대단한 발견을 한 것 같아</div> <div> 막 박수 치면서, </div> <div> 네가 나를 선한 사람에 </div> <div> 끼워주기를 바랐지만.</div> <div> 막상 네가 나더러 선한 사람이라고 했을 때. 나는 다른 게 되고 싶었어. 이를테면</div> <div> 너를 자랑으로 생각하는 사람.</div> <div> 나로 인해서,</div> <div> 너는 누군가의 자랑이 되고</div> <div> 어느 날 네가 또 슬피 울 때, 네가 기억하기를</div> <div> 네가 나의 자랑이란걸</div> <div> 기억력이 좋은 네가 기억하기를,</div> <div> 바라면서 나는 얼쩡거렸지.</div>
출처 |
김승일 시집 [에듀케이션], 문학과 지성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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