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span style="font-size:9pt;">1.</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두 사람이 있다.</span></div> <div><br></div> <div>A는 너무나 입맛이 까다로워서 그 입맛을 충족시키려면 상당한 수준의 요리가 아니면 안된다.</div> <div>그는 어떤 요리에서도 티끌만한 오점이라도 분별해 낼 수 있기에 절대적인 미각을 가지고 있다고 불린다.</div> <div><br></div> <div>B는 딱히 입맛이랄게 없다할 정도로 잘 먹는다.</div> <div>떡볶이든 라면이든, 밥에 간장과 참기름만 뿌려도 진수성찬이라도 먹는 듯 맛있게 먹는다.</div> <div><br></div> <div>두사람 중 누가 미식가일까?</div> <div>일반적으로 미식가라하면 A 같은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div> <div>가장 까다로운 기준을 가진 A가 추천하는 음식이라면, 그 누구의 까다로운 입맛도 만족시킬 수 있다.</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반면 '미식'이라는 행위, 즉 맛을 즐긴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A는 별로 행복하진 않다.</span></div> <div>오히려, 무엇이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B야 말로 미식을 하고 있는 것이다.</div> <div>그러나 B가 정말로 무엇이든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 <span style="font-size:9pt;">그가 추천한 음식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span></div> <div>만약 B가 다른 모든 사람이 혐오하는 것조차 맛있게 먹는다면,</div> <div>그것은 미식이 아니라 괴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div> <div><br></div> <div>2.</div> <div>A와 B의 비교는 사실 지나치게 단순화된 도식이다.</div> <div>입맛이라는 것은 어떤 단일화된 정점을 향해 수직으로 나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div> <div>100점 만점에 99점인 음식이 80점인 음식에 비해 절대적이고 확고하게 맛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div> <div><span style="font-size:9pt;">A가 맛있다고 말한 음식이, A를 만족시키지 못한 음식보다 반드시 더 낫다고 말할 수 없다.</span></div> <div>정말로 까다로운 입맛을 가진 A가 만족한 음식에, 별로 까다롭지 않은 B가 만족하지 못할 수도 있다.</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만약 맛이라는 것을 절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있다면,</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그래서 100점 만점에 100점이라는 정점이 존재하여 그것을 추구하는 것만으로 미식을 구분지을 수 있다면,</span></div> <div>과학적으로 규명된 100점짜리 맛을 조미료로 만들어 모든 음식에 집어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div> <div><br></div> <div>라면 스프는 실제로도 대단히 많은 사람들의 입맛을 만족시키는, 강력한 조미료다.</div> <div>그러나 아주 까다로운 입맛을 가진 누군가 모든 음식에 라면스프를 뿌려 먹는다면(실제로 이런 사람이 종종 있다)</div> <div>그 사람은 미식가가 아니라 괴식가라고 불릴 것이며, 맛이라는 걸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비웃음을 살 것이다.</div> <div><br></div> <div>3.</div> <div>미식이라는 것은 맛의 우열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span style="font-size:9pt;">폭넓은 맛의 경험을 쌓는 것이다.</span></div> <div>이것은 단순히 무엇이든 잘 먹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div> <div>똥인지 된장인지 구분하지도 못하고 그냥 배불리 먹을 수 있다면, 그건 미식이 아니라 미각이 마비된 것이다.</div> <div><br></div> <div>다양한 맛을 분별하고 이해함으로서 풍요로운 맛의 경험을 쌓는 것이 미식이다.</div> <div>스테이크에 흐르는 육즙의 무거운 맛과 홍어 삼합의 코를 찌르는 강렬한 맛,</div> <div><span style="font-size:9pt;">크림 파스타의 고소함과 된장찌개의 구수함,</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서로 다른 문화와 맥락을 가진, 서로 다른 종류의 맛, 다른 자극을 즐길 수 있게 되는 것.</span></div> <div><br></div> <div>물론 꼭 세상의 모든 맛을 즐길수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div> <div>매일 먹던 편안한 맛에 안주하는 것도 각자의 삶의 방식이니, 그것을 잘못이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div> <div>그러나 할수만 있다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다양성을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div> <div><br></div> <div>4.</div> <div><span style="font-size:9pt;">아이러니하게도, </span><span style="font-size:9pt;">감각이 예리해질 수록 자극은 무뎌진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미식의 경험이 쌓이고 미각이 예민해 질수록,</span></div> <div>사람은 자극에 둔감해지고 호불호가 희미해진다.</div> <div><br></div> <div>더욱 자극적인 맛, 또는 더욱 완벽하게 균형잡힌 맛, 완전히 새로운 맛이 아니면 <span style="font-size:9pt;">미식가를 만족시킬 수 없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이전에 즐기던 평범한 맛은 싫지는 않지만 그렇게 좋지도 않은, 다르게 말해 식상한 맛이 되어 버린다.</span></div> <div>A와 같은 미식가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이 생기는 것도 아마 이런 탓이라고 생각한다.</div> <div><br></div> <div>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은 어느 방송에서, 자신이 그 일을 하게 되면서 맛을 진심으로 즐길 수 없게 되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div> <div>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수없이 다양한 음식을 맛보며 분석하고 평가하는 작업은</div> <div>미각을 더욱 예리하게 만들면서도 맛에 대한 호불호를 불분명하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div> <div><br></div> <div>황교익이 떡볶이를 맛 없는 음식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떡볶이 광고를 찍고,</div> <div><span style="font-size:9pt;">집밥백선생의 야메 레시피를 비판하면서도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내가 라면 싫어할 것 같아요? 좋아해요. 냄새만 맡아도 ㅎㅎㅎ' 같은 인스턴트 음식 광고를 찍는</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일견 모순된 모습은 단순히 자본에 굴복한 것이 아니라(물론 그런 이유도 없진 않겠지만)</span></div> <div>미식가의 단련된 미각과 이론적인 평가는 A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만,</div> <div>그럴수록 어떤 음식이든 크게 싫어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B의 모습도 동시에 갖게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든다.</div> <div>'맛있다고 생각하니까 맛있는 것'이라는 황교익의 주장은</div> <div>호불호란 상대적이고 주관적이며 <span style="font-size:9pt;">인위적으로 만들어 질 수 있는 것이라는 뜻이며,</span></div> <div>어떠한 맛이 좋은 맛이라는 경험과 지식이 희미해진 호불호와 만났기에 나올수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div> <div><br></div> <div>5.</div> <div>미식이 어쩌고 저쩌고 해도, 나는 미식가가 아니다.</div> <div>이 글은 미식에 대한 글이 아니라, 미학에 관한 글이다.</div> <div>미학과 미술에 대해서, 단순히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div> <div>그리고 아름다움에 대해서 어떤 절대적인 궁극의 아름다움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div> <div><br></div> <div>그러나 그렇지 않다. 아름다움이란 대게 익숙한 것이다.</div> <div>나이가 많은 사람이 외국 음식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span style="font-size:9pt;">입맛이 어려서부터 길들여지는 것이기 때문이며,</span></div> <div>이와 마찬가지로 <span style="font-size:9pt;">아름다움에 대한 인식 또한 길들여지는 것이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 <div><span style="font-size:9pt;">미학은 아름다움에 관한 고상하고 품격있는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다.</span></div></div> <div>아름다움에 관한 익숙한 관념을 무너뜨리고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는 것이다.</div> <div>어떤 사람들은 현대미술에 대해 전통 예술과 달리 이해하지 못할 난해한 것,</div> <div>쓰레기와 구분되지 않은 추악한 것이라 생각하기도 하지만,</div> <div>과거로 부터 예술은 동시대에는 천박하고 난잡한 것으로 이해되기 일쑤였다.</div> <div>아름다운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오가며, 다름에 대해서 서서히 길들여온 것이다.</div> <div><br></div> <div><span style="font-size:9pt;">미학은 유일하고 궁극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사람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과 추하다고 생각하는 것의 경계를 허물고</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모든 것으로부터 아름다움을 찾을수 있게 하는 것이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그렇게 함으로서, 낯설고 서로다른 존재들이 공존할수 있게 하는 것이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6.</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이를테면, </span><span style="font-size:9pt;">사람들은 성형수술을 한 누군가를 성괴라 욕한다.</span></div> <div>기괴함이 느껴질 정도로 획일화된 얼굴은 철두 철미하게 계산되고 설계된 미적 기준에도 불구하고</div> <div>라면 스프를 들이부은 요리처럼 욕을 먹는다.</div> <div><br></div> <div>그러나 그들에게 욕할 자격이 있는지는 의문이다.</div> <div>타인의 외모를 평가하고 아름다움의 순위를 매기는 이들이</div> <div>사람들을 극단적인 성형에 빠져들게 만드는 가해자들이며,</div> <div>이들을 성괴라 비난하는 이들과 동일한 사람들이다.</div> <div>이들에겐 다름과 다양함을 받아들일 수 있는 무딤이 없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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