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 주의: 글이 길고 두서가 없습니다. 글을 잘 쓸 줄 몰라서 읽기 힘드실수도 ㅜㅜ )</div> <div> </div> <div>...</div> <div> </div> <div>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div> <div> </div> <div>이걸 사람들이 남녀 차별이라고 여깁니다.</div> <div> </div> <div>-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div> <div>- 남자는 높고, 여자는 낮다</div> <div> </div> <div>여기서 갑자기</div> <div> </div> <div>- 남자는 귀하고, 여자는 천하다</div> <div> </div> <div>우리나라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div> <div>우리나라 전통이 남녀 차별이라는 것입니다.</div> <div> </div> <div>전혀 아닙니다.</div> <div> </div> <div>-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 음양에 빗대어 비교한 것 뿐입니다. 말 그대로 하늘과 땅</div> <div>- 남자는 높고, 여자는 낮다 : 위치만 말한 겁니다. 자연적으로 봤을 때, 높고 낮음. 비유의 연장입니다.</div> <div> </div> <div>그런데</div> <div>- 남자는 귀하고, 여자는 천하다 : 웬 착각? 웬 귀신씨나락 까먹는 소리??</div> <div>전통사회는 신분사회였던 맞습니다. 귀천이 있었죠. </div> <div>하지만 그것은 신분의 귀천이지 남녀의 귀천이 아닙니다.</div> <div> </div> <div>빛과 빗물과 바람,공기를 주는 하늘도 있어야 하고 </div> <div>발 디디고 곡식을 주고 생명을 잉태하는 땅도 있어야 합니다.</div> <div> </div> <div>어찌 귀천이 있을 수 있나요??</div> <div> </div> <div>이는 후대인들이 남녀에 대한 철학적 비유를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div> <div> </div> <div>"여자가 어디 바깥 일에 끼어드나" </div> <div>이것은 차별이 아니라 남녀 특성을 고려하여 분업을 한 것입니다. </div> <div> </div> <div>여자 안일 채집과 양육 - 남자 바깥일 사냥, </div> <div>여자 안일 재산관리와 양육 - 남자 바깥일 중노동 또는 정치,학문</div> <div> </div> <div>옛날에는 바깥일 못지 않게 안일이 많았습니다.</div> <div>안일을 맡은 여자가 바깥일까지 하면 그것은 업무과중이었죠.</div> <div>남자가 안일에 끼어드는 것 또한 역할의 침범이었구요.</div> <div>과거에는 합리적인 분업에서 출발한 것이었습니다.</div> <div> </div> <div>하지만, 현대에는 일에 남녀 구분할 필요가 없습니다.</div> <div>바깥일 안일 나눌 필요가 없죠. </div> <div>육체노동의 량도 줄어들었고, 문명의 이기로 남녀 상관없이 서로 대체할 수 있으니까요.</div> <div> </div> <div>"남자가 귀하다", </div> <div>과거에는 군역과 노역이 있었습니다. </div> <div>생애에 걸친 부담이었죠. 또한, 전쟁이 나면 남성들은 전쟁에 나가서 많이 죽었습니다.</div> <div>단지, 남자의 인구수가 대체로 모자랐던 시기입니다. </div> <div>그래서 희소성이 있다는 말이지, </div> <div>그것을 귀천으로 여겨서 인간존업 자체에 잣대를 들이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div> <div> </div> <div>현대는 (비록 지구촌 어느곳들은 아직 전쟁 중인 곳도 있지만) 2차세계대전과 냉전 이후</div> <div>유래없는 평화시기입니다. </div> <div>우리나라 역사만 봐도 조선시대 전성기 안정기를 제외하고는</div> <div>해를 걸러(두서너해에 한번꼴로) 전쟁이 발생했었습니다.</div> <div>고대로 갈 수록 외부의 위협은 공동체 운명과 구성원의 삶에 큰 부분을 차지했죠.</div> <div> </div> <div>발해와 고려시대의 여성 위상에 대해서는 익히 아실 겁니다.</div> <div>조선 전기만 해도 여성의 위상은 좋았습니다.</div> <div>그런데 양란(왜란과 호란)으로 나라가 거덜난 상황에서</div> <div>(인구도 동강나고, 식량 생산할 전답도 1/3로 줄어들고...)</div> <div>조선은 국가 체제 유지를 위해 유교라는 이데올로기를 강화했죠.</div> <div>권위를 잃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랄까,</div> <div>열녀문? </div> <div>나라에서 장려하니까 마을마다 없는 열녀도 꾸며내거나 작위적으로 만들어서</div> <div>열녀를 배출하고 열녀문 세우고 포상(?)을 받는 겁니다. (현재의 전시행정과 닮았죠?)</div> <div> </div> <div>재산배분? </div> <div>고려시대에는 남녀 차별없이 배분했고, 조선전기에는 장자 차자 삼자 간의 배분 차이가 거의 없었습니다.</div> <div>하지만 유교가 강화되면서 원리원칙, 경전의 문구 하나에 집착하게 되면서 </div> <div>장남에게 많은 의무들이 생깁니다. </div> <div>제사비용, 문중의 많은 손님들 대접, 그것을 수행하기 위한 재산을 물려주는 것이죠.</div> <div>(이전시대만 하더라도 딸들도 제사를 주관하기도 하고 했는데 말이죠.)</div> <div> </div> <div>또한, 신분 문제도 붉어졌습니다. 양반들이 경제적으로 몰락하는 것이죠.,</div> <div>족보를 매매하기도 하고... </div> <div>평민들이 양반족보를 사들이거나 양반들이 돈이 없어 족보를 팔고 평민이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div> <div>당시는 신분제 사회.. 돈으로 사고 팔 수 있게 된 신분을 지키기 위해 장남에게 몰빵합니다.</div> <div>종가가 가난해져서 족보를 팔아버리면 안되고, </div> <div>종가가 가난해져서 손님대접도 못 하고 제사도 시원찮게 치르면 집안의 전체 신분에 흠집이 생기니까</div> <div>장남들에게 지분이 더 많이 가는 거죠...</div> <div>남의 집 제사, 즉, 시집의 제사를 받드는 며느리가 될 딸들은 점차 배제되어 갑니다.</div> <div>(며느리 어원이 제사밥인 멧밥을 나르는.. 메나리죠.. 즉, 제사의 큰 역할을 하는 중요한 위치) </div> <div> </div> <div>신분고하는 철폐되었습니다.</div> <div>남녀의 귀천은 원래 없던 것이었는데,</div> <div> </div> <div>양란이후에 조선사회가 경직되면서 개개인에게 제약을 많이 걸었고, </div> <div> </div> <div>근대에 들어서면서 겪은 </div> <div>일제시대, 군사독재시대의 폭압적이고 억압적인 사회분위기 속에 </div> <div> </div> <div>일제가 식민지 위에 군림했듯이</div> <div>국가가 국민 위에 군림했듯이 </div> <div>남성들이 가정에서 군림한 것입니다. </div> <div> </div> <div>변화한 시대를 받아들이지 못한 이들은</div> <div>전통이란 것을 곧 잘 왜곡하여 아전인수격으로 변명거리로 사용합니다.</div> <div>과거와 현대는 상황이 바뀌었습니다.</div> <div> </div> <div>유교는 원래 그렇지 않으니 유교를 들먹이지 말고 (서양에서는 기독교가 그렇겠죠)</div> <div>개뿔 사람 차별하고 군림하려고 하는 것에 전통 들먹이지 말라, 이말이 하고팠습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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