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예전에 저 스스로 철게에 불교관련 댓글을 달 지언정 <br>새로운 불교주제의 글 쓰지 않겠다고 말씀드렸던 약속을 어겨서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br><br>하지만 요새 본래성불의 논지를 오용하여 <br>불교 토론을 너무 소모적인 물타기로 흐리는 사례가 빈번하기에 좀 정리할 필요를 느꼈습니다.<br><br>불교에서 가장 큰 죄로 꼽는것이 살생,도둑질,거짓말,음란한성생활 입니다.<br><br>그리고 그 거짓말 중에서 가장 큰 거짓말이 <br>깨달음을 얻지 않았는데 깨달음을 얻어 성자가 되었다는 거짓말로 <br>이 큰 거짓말을 하면 아무리 참회를 해도 그 악업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br><br>본인이 깨달음을 얻지 못했으면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스스로 자기만족을 해서 <br>깨달음을 얻는데 방해를 하는것이 일차적인 잘못이겠지만<br>잘못된 가르침을 중생들에게 전해서 다른 중생들의 해탈마저 가로막는 죄를 범하기 때문이죠...<br><br>그렇다면 그 깨달음을 얻었는지 얻지 못했는지의 기준은 뭔지 참 아리송합니다.<br><br>해탈고시(?) 같은 시험이 있는것도 아니고 말이죠...<br><br>돈오돈수와 돈오점수에 대한 논의는 한국 불교계의 가장 큰 논쟁거리 중 하나였습니다.<br><br>성철스님을 필두로 한 돈오돈수파와 법정스님을 필두로 한 돈오점수파...<br>돈오점수는 고려의 스님 지눌의 사상 그대로 <br>돈오(순간적인 깨달음)를 한 후에도 점수(꾸준한 수행)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이고<br>돈오돈수는 점수가 필요하면 돈오하지 못한것이고 돈오했으면 그냥 돈수로 끝난것이라는 이야기이죠...<br><br>뭐 저런 말장난으로 그리 큰 논쟁을 벌이나 싶을수도 있지만<br>사실 이게 어쩌면 불교 수행의 근간과 다름없기에 그냥 허투루 넘어갈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br><br>부처는 중생들의 근기에 맞게 최대한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쉽게 법을 설하였으면서도<br>그에게 도전해오는 외도들의 공격에는 칼같은 논리적 반박으로 응수하기도 했던 달변가였습니다.<br><br>하지만 부처가 존경받은 이유는 단지 그의 교리적 완성도때문이 아니라 <br>깨달음 이후 그가 보여주었던 45년간의 삶 때문이었습니다.<br><br>부처는 죽을때까지 탁발에 참여하였고 <br>계율을 정함에 그의 독단이 아닌 대중의 뜻을 물어 결정하였고<br>결정된 계율은 부처 본인도 절대 어기지 않고 가장 철저히 실천하였습니다.<br>나와 남의 분별심이 없어서 전쟁, 기아, 역병 등의 재난에 허덕이는 <br>중생들을 구제하는데에도 앞장서서 달려갔었죠...<br>매순간 알아차리는 생활로 다른 이들에게 설법이 아닌 행동거지만으로도 감동을 주는 삶을 살았구요...<br><br>과연 부처는 그 모든 순간을 수행이라고 생각했을까요?<br><br>공자가 이런 말을 했다죠...'내 나이 일흔이 되니 마음가는대로 해도 (하늘의 뜻에) 거슬림이 없더라...'<br>부처도 그저 그랬을 겁니다.<br><br>돈오를 한 이후에도 개망나니 같은 삶을 산다면 그것은 돈오하지 못한것이겠죠...<br>하지만 돈오를 한 이후에도 억지로 참고 수행한다는 생각이 남아있다면 그것 역시 돈오하지 못한것이겠죠...<br><br>부처는 수행을 현악기에 비유했습니다.<br>줄을 너무 팽팽하게 당기면 끊어지고 너무 느슨하게 조이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말하며 중도를 이야기했죠...<br><br>수행은 집착을 버리기 위한 것이니 수행 자체를 집착해서는 안되는거니까요...<br><br>중생을 구제한다는 서원은 그저 언어의 표현을 빌렸기에 중생구제이지<br>사실 나와 남이 다르지 않기에 나온 자연스러운 행동이었을 뿐입니다.<br><br>중생을 구제하려는것도 집착이고 아직 구제하지 못한 중생이 많다는것도 집착이죠...<br><br><a target="_blank" href="http://todayhumor.com/?freeboard_1044163" target="_blank">http://todayhumor.com/?freeboard_1044163</a><br>예전에 썼던 글인데 다시 좀 재탕해 보겠습니다.<br><br>이미 입적하셨지만 생전에 세계4대생불로 유명하셨던 숭산스님은 <br>참선 수행의 결과 알아야 하는건 '오직 모를 뿐'이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br><br>불교 수행은 순간 순간의 알아차림이 연속되는것입니다.<br><br>그런데 내가 뭔가를 '안다'라고 생각하면 그 알아차림에 대한 걸림돌이 됩니다.<br><br>부처는 이 세상에 상주불멸하는 존재는 없어서 <br>모든 것은 무상하다는 제행무상의 가르침을 폈습니다.<br><br>나는 내 가족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어제 본 어머니와 오늘 본 어머니는 다릅니다.<br>나는 매일 먹는 밥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아침에 먹은 밥과 점심때 먹은 밥은 다릅니다.<br>나는 내 발걸음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첫번째 한걸음과 두번째 한걸음은 다릅니다.<br><br>그 모든 순간순간을 알아차리는 것이 불교의 수행입니다.<br><br>하지만 '안다.'라는 생각이 그걸 가로막습니다.<br><br>불교 참선 수행은 '오직 모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시작입니다.<br><br>그저 그렇게 순간순간을 알아차리며 사는것입니다. <br><br><a target="_blank" href="http://todayhumor.com/?freeboard_1033905" target="_blank">http://todayhumor.com/?freeboard_1033905</a><br>위 주소의 글을 좀 읽고 와 주셨으면 합니다.<br><br>부처는 모든것이 무상하다는 제행무상의 가르침에 <br>분명하게 본인과 본인의 가르침에도 포함시켰습니다.<br><br>조금 더 정확하게는 부처가 없다기 보다는 <br>부처라고 할만한 고정된 형태는 없다는 표현이 조금은 더 가까운 말이겠지만 <br>결국 '부처'라는 것은 사실 존재하지 않습니다.<br><br>불교에는 여실지견이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br>모든 것을 진실 그대로 봐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br><br>그리고 무위법이라는 가르침도 있습니다.<br>내가 만든 것이 아닌 원래 있는 것... 유위를 멈추면 곧 무위...<br><br>여실지견과 무위법은 결국 같은 내용을 말합니다.<br><br><a target="_blank" href="http://todayhumor.com/?movie_47442" target="_blank">http://todayhumor.com/?movie_47442</a><br>예전에 무아에 대해서 쓴 글인데 위 주소의 글을 읽고 와 주셨으면 합니다.<br><br>부처를 부처라고 칭하는 순간 부처의 본질에서 멀어져 버립니다.<br>무상함을 무상하다고 말하는 순간 무상하다는 본질에서 멀어져 버립니다.<br><br>결국 부처는 부처라고 딱히 칭할만한것이 없는것이고 <br>그저 모든 중생 만물이 부처일수도 있고 부처가 아닐수도 있습니다.<br><br>모래 알겡이 한 알을 모래라고 칭하는 언어<span class="tit"><span class="inner_tit2"><span class="phonetic">言語</span></span></span><strong class="tit"><span class="inner_tit2"><span class="bracket"></span></span></strong>이전 수준의 본질<br>개 한마리를 개라고 칭하는 언어이전 수준의 본질<br>그것이 부처입니다.<br><br>하지만 그것들을 다시 부처라고 칭하는 순간 그것은 부처가 아니게 됩니다.<br><br>그래서 결국 부처라고 할만한 것은 없다고 말할수밖에 없습니다.<br><br>법정스님의 무소유에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br>'죽음이 나를 부를때 툭하고 털고 일어날수 있으면 된다.'<br><br>불교 최초 경전인 숫따니빠따에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br>'태어남은 부서지고, 청정한 삶은 성취되었고, 해야 할 일을 다 마치고, <br>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고 알았다.'<br><br>그저 순간 순간을 알아차리고 청정하고 충실히 살아서 <br>죽음이 찾아왔을때 아쉬운 마음이 들지 않으면 되는 겁니다.<br><br>결국 깨달았다 아니다 라는건 <br>말 몇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게 아니라 본인의 삶으로 증명해 내어야 하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