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이 작품의 배경은 '이규만'감독님의 '허기'라는 단편영화에서 따왔습니다. 혹시 문제가 된다면 알려주세요:D 빠른 자삭 하겠습니다!</div> <div><br></div> <div>--------------------------------------------------------------------------------</div> <div><br></div> <div><br></div> <div>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 배가 고파서 눈이 떠진 경험이 있는가?</div> <div><br></div> <div>당신이 만약 글을 읽는 지금 살아있다면 그 허기는 나의 허기의 눈꼽만큼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div> <div><br></div> <div>사자 우리 속에 사자와 단 둘이 남아 한쪽이 죽을 때까지 싸우는 느낌.</div> <div><br></div> <div>나의 무기는 끝이 갈려 뭉툭해진 바늘 뿐이다. 물론 길이는 더욱 짧다.</div> <div><br></div> <div>그 속에서 나는 굶주렸고 헐벗었으며 상처입었다.</div> <div><br></div> <div>그래. 나는 그런 기분으로 살아가고 있다. 아니지, 죽어가고 있다. 이것도 아니다.</div> <div><br></div> <div>그냥 죽은 건가?</div> <div><br></div> <div>나의 죽음에 대한 기억은 없다. 이미 오래 전 배고픔에 지쳐 먹어버렸기 때문이다.</div> <div><br></div> <div>언제부터 이 벌-벌이라고 해야하는지도 모르겠다-이 내게 닥쳤는지도 모르겠다.</div> <div><br></div> <div>그 기억 또한 먹어버렸기 때문이다.</div> <div><br></div> <div>이상하게도 여기에 오면서부터 생긴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div> <div><br></div> <div>음... 정확히 말하면 '먹을 수 없다.'</div> <div><br></div> <div>시도를 해봤지만 토악질이 나와 곧바로 그만두었다.</div> <div><br></div> <div>처음 이곳에 와서 '기억을 먹는 법'을 터득했을 땐 실로 놀라웠다.</div> <div><br></div> <div>그 맛에도 나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맛있다'는 단어로는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다.</div> <div><br></div> <div>저 세 글자로 그 맛을 표현한다는 것은 기억의 맛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내가 아는 단어로는 설명이 안된다고 하겠다.</div> <div><br></div> <div>앞에 수식어 수억개를 붙인다고 해도 모자르다고 볼 수 있다. 무슨 느낌인지 감이 오는가?</div> <div><br></div> <div>하지만 그렇게 맛있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따로 있다. 기억이 배를 채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다들 자기의 기억을 아끼려고 배고픔이 극에 달했을 때 먹고, 또다시 극에 달했을 때 먹기 때문이다.</div> <div><br></div> <div>4일동안 굶었는데 맛을 가릴 처지가 될까.</div> <div><br></div> <div>아무튼, 첫 허기에 나는 내 인생 최악의 기억부터 먹었다. 이제는 무슨 일인지 기억조차 안 나지만.</div> <div><br></div> <div>그 뒤로 배가 고플 때마다 내가 가진 나쁜 기억을 차례대로 먹어나갔다.</div> <div><br></div> <div>다음으로 먹은 것은 평범한 기억이었다. 몇날 몇시 어디에서 무엇을 먹었다는 그런 내용의.</div> <div><br></div> <div>역시나 그것들도 무슨 내용인지 기억할 수 없다. 이미 그들은 나의 입에서 씹히고, 식도를 타고 넘어가 위에서 녹고 내장에서 흡수되었을 것이다.</div> <div><br></div> <div>그 다음으로 먹은 건 나의 생애에 대한 기억이다. 언제 태어나서 언제 무슨일이 있었고 언제 죽은... 나는 내 탄생의 기억을 먹으며 새삼스레 내 뇌의 해마가 가진 능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div> <div><br></div> <div>그리고 그 황홀한 맛에, 내 탄생이 나의 죽음에게 잡아먹히는 사실에, 나는 몹시 슬퍼졌다.</div> <div><br></div> <div>그러나 눈물이 고여 흘러내리기 직전 '눈물을 흘리기엔 에너지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울지 않았다.</div> <div><br></div> <div>그렇게 기억을 먹고 먹어가 나에게는 점차 행복한 기억들만 남게 되었다.</div> <div><br></div> <div>위에 적은 것들로 봐서 대충 알겠지만 나는 이미 거의 모든 기억을 먹었다.</div> <div><br></div> <div>0.01초의 작은 파편조차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나는 내 기억들을 게걸스레 먹어치웠다.</div> <div><br></div> <div>뜨겁게 달궈진 코에서 나오는 콧물과 기억이 사라지는 슬픔의 눈물이 흐르고 몸에서는 땀까지 났지만 그런 것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div> <div><br></div> <div>누구라도 일주일 동안 굶은 후 수박을 딱 한 조각만 먹는다면 껍질에 붙은 하얀 부분, 아니 아마 껍질까지 다 먹었을 것이다.</div> <div><br></div> <div>아무튼 이제 내게 남은 기억은 단 하나 뿐이다. 한 남자에 대한 기억.</div> <div><br></div> <div>사실 이 글도 그 남자때문에 쓰게 시작했다 하더라도 과언은 아니다.</div> <div><br></div> <div>나는 그 남자를 잊어버리고 싶지 않다.</div> <div><br></div> <div>웃을 때 뽀얀 초승달처럼 접히는 눈과 수줍게 입을 벌리는 왼쪽 볼의 보조개, 나보다 족히 10cm는 클 것 같은 키와 불에 그을리기라도 한 듯 새까만 머리카락과 눈동자, 그와 대비되는 새하얀 피부... 이게 전부다.</div> <div><br></div> <div>나는 그와 단 한번도 대화한 적이 없다. 눈을 마주친적은 있었을까.</div> <div><br></div> <div>그는 내 대학 동기였고 나는 흔히 말하는 '아싸' 였던 것 같다. 음. 내 생에 대한 기억들을 먹었더니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를 쳐다볼 때 마다 내 주위엔 사람이 없었다.</div> <div><br></div> <div>기억 속에서 그를 볼 땐 항상 10발자국은 떨어져서 본 시점이다.</div> <div><br></div> <div>그래서 그의 이름도 모르고 사는 곳은 어딘지, 무슨 음식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등등... 아무것도 모른다.</div> <div><br></div> <div>이름이라도 알았으면 좋으련만, 망할 학교는 왜 같이 듣는 수업마다 전자출결을 한 건지.</div> <div><br></div> <div>수업시간에도 기억나는건 오로지 그의 뒷모습이다. 그가 앞문으로 들어와 어디에 앉을까 고심하며 한 줄씩 뒤로 갈때마다 쿵. 쿵. 심장이 떨어졌다.</div> <div><br></div> <div>그가 맨 뒷줄에 앉은 날이면 하루종일 기분이 우울해지면서 어떻게 해야 쳐다보는걸 들키지 않을까 하는 마음뿐이었다.</div> <div><br></div> <div>내게 남은 마지막 기억이 고작 짝사랑 상대인걸 보면 내 인생에 행복이 어지간히 없었나보다. 아니면 다 먹어버렸든가. 먹었는지 안먹었는지조차 이제는 가물가물하다.</div> <div><br></div> <div>지금까지 뭐라 말이 많았지만 정리하자면 나는 죽었고, 어딘가 다른 곳으로 왔고, 이 세계에선 기억을 먹으며 살아간다.</div> <div><br></div> <div>그리고 나는 대부분의 기억을 먹었고 남은 유일한 기억은 이름도 모르는 짝사랑 대학 동기.</div> <div><br></div> <div>아주 중요한 사실인데, 나는 지금 배가 엄청나게 고프다. '엄청나게'라는 단어의 의미로는 채워지지 않을 만큼 배가 고픈 상태다.</div> <div><br></div> <div>거의 일주일은 넘게 굶은 것 같은데, 무슨 기억을 먹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사실 기억을 먹고싶지 않다.</div> <div><br></div> <div>그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는건 싫다. 하지만 살아가기위해 무슨 기억이든 먹어야한다.</div> <div><br></div> <div>죽었지만 그 죽음에서 잠시마나 멀어질 수 있는 길은 오직 기억을 씹어 삼키는 일이기 때문이다.</div> <div><br></div> <div>'이미 죽었는데 무슨 상관이야?'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막상 다들 겪으면 단 1초라도 허기를 달래기 위해 자기의 기억을 먹을 것에 난 감히 '그와의 첫 만남'기억을 걸고 말할 수 있다.</div> <div><br></div> <div>일주일동안 물 한방울 마시지 못해 목소리가 나올 턱이 없다. 숨도 겨우 쉬고 있는 수준이다.</div> <div><br></div> <div>이럴 줄 알았으면 무언가 더 볼걸, 더 들을걸, 더 느낄걸... 그런다면 와서 먹을 기억이 좀 더 늘었을 텐데.</div> <div><br></div> <div>이렇게 글을 쓰는 와중에도 계속 그에 대한 기억이 생각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사실 그를 보고 싶어 기억을 떠올리면 말라비틀어진 입안인데도 불구하고 군침이 돈다. 종소리를 듣고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라도 된 것처럼.</div> <div><br></div> <div>내게 남은 기억은 오직 그와 관련된 것들 투성이인데, 그와 관련된 기억 중에서 덜 소중한 게 있을까?</div> <div><br></div> <div>(고민한 듯이 볼펜이 마구 그어진 모양)</div> <div><br></div> <div>있을 리가 없다. 아무리 뇌의 주름 한구석 한구석까지 뒤져봤자 나오는건 없다.</div> <div><br></div> <div>(꽤나 긴 공백)</div> <div><br></div> <div>아. 발견했다.</div> <div><br></div> <div>(다음 장. 볼펜으로 마구 그어진 알 수 없는 낙서)</div> <div><br></div> <div>(공백)</div> <div><br></div> <div>(아무거나 휘갈긴 듯한 자국, 손톱자국, 가운데가 갈라진 종이)</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머리카락 부분이 검은 펜으로 색칠되어 있는 남자로 추정되는 그림)</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