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갑작스레 여행을 가게 된 것은 내 탓이 아니었다. </div> <div>숨막히게 살아가면서 나는 주변을 돌아볼 자신이 전혀 없었다. </div> <div>아이들의 엄마이자 한 회사의 과장. 그리고 아내라는 위치 속에서 나는 도저히 휴식이라는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 </div> <div>하루하루 겨우 숨을 붙이고 살아오고 있었다.  </div> <div>무슨 힘으로 난 그것들을 다 이겨내고 있었단 말인가?</div> <div> </div> <div> </div> <div>**</div> <div> </div> <div> </div> <div>"가족 여행을 가는건 어때? 애들 데리고 발리에 다같이 가는거...."</div> <div> </div> <div> </div> <div>남편의 제안에도 섣불리 예스라고 대답하지 못했다. </div> <div>위약금때문에 강제로 여행을 갔다고 해야 맞는 걸까...... </div> <div>그렇지만 막상 가보니 무척 신났었다. </div> <div>새로산 인형을 들고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면서 오늘은 생애 제일 행복한 날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div> <div> </div> <div>모든 일을 잊고 핸드폰도 호텔방에 던져둔 채 이렇게 자유로웠던 적이 언제인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div> <div> </div> <div> </div> <div>**</div> <div> </div> <div> </div> <div>얕은 수영장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과 남편을 뒤로한 채 나는 해변으로 갔다. </div> <div>남편이 산 액션캠을 손에 꽉 쥔 채로... </div> <div>이게 뭐라고, 바다속에서 동영상을 찍고 싶으니 이걸 꼭 사겠다고 조르던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다.</div> <div> </div> <div>나는 소나기가 오는 바다에서 몇번이고 자맥질을 하며 동영상을 찍어댔다. </div> <div>그리고 발이 바닥에 닫지 않았다. 빨간 부표가 보였다.</div> <div> </div> <div>"help me!!" </div> <div>사람들은 너무 멀었다.</div> <div>눈을 질끈 감고 마구 해안 쪽으로 헤엄쳤다... 나는 해안가에 안착해서 그대로 뻗어버렸다.</div> <div>'아 쪽팔려... '  액션캠은 계속 돌아갔으니 내가 허우적대는 장면을 찍었으리라. 마지막 동영상을 지워버렸다.</div> <div> </div> <div> </div> <div>**</div> <div> </div> <div> </div> <div>"엄마가 예쁜 물고기 많이 찍어왔으니깐 한번 보자~"</div> <div>아이들은 엄마가 찍어온 동영상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언제나 아이들의 자는 얼굴을 보며 출근하고, 퇴근했었지. </div> <div>아이들의 반응이 당연하다고 느껴졌다. 아이들은 늘씬한 바비인형을 안고서 노래만 불러댈 뿐이었다.</div> <div> </div> <div> </div> <div>**</div> <div> </div> <div> </div> <div>비행기가 한차례 출렁거리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도착이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한숨이 나왔다.</div> <div>눈을 감고 천천히 여행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떠올려보았다.</div> <div>면세품 인도장까지 뛰어가 그놈의 액션캠인지 수분크림인지 하는 봉투들을 찾느라 비행기를 놓칠뻔 했었다.</div> <div>'시짜들 구매대행까지 해줘야되나...'  짜증이 확 났다.</div> <div> </div> <div> </div> <div>**</div> <div> </div> <div> </div> <div>착륙한 비행기의 웅웅 소리가 잦아들 무렵 갑자기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div> <div>10년이 넘게 죽었는지 살았는지 누구와도 연락이 안되는 고등학교 동창 경희였다.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div> <div>"뭐야 너 그동안 뭐하고 살았어?"</div> <div>우연의 일치일까? 경희도 인천공항 근처에 있다고 했다. 나를 맞이하기 위해 기꺼이 인천공항으로 오겠다고 했다.</div> <div> </div> <div> </div> <div>**</div> <div> </div> <div> </div> <div>남편에게 오랜 친구에 대해 쫑알댔지만 액션캠만 쳐다보며 대답을 하질 않는다.</div> <div>액션캠을 들여다보았더니 물고기 대신 긴 머리카락만이 찰랑이고 있다.</div> <div> </div> <div>'까똑'</div> <div> </div> <div>남편의 핸드폰으로 카톡이 왔다. </div> <div>'내 화장품 언제 줄꺼야? 다음에 만날때?'</div> <div>그 위로 주루룩 그간의 카톡 내용이 펼쳐졌다. 친하다는 직장 여자 동료였다.</div> <div> </div> <div> </div> <div>아... 그랬었지.</div> <div> </div> <div> </div> <div>난 다시 슬퍼졌다.  </div> <div>호텔방에서 저 카톡소리를 들었었지. </div> <div>그리고 액션캠을 쥐고 바다로 나갔던 기억이 뚜렷히 떠올랐다. </div> <div>바다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고, 나는 천천히 바다로 걸어들어가며 우는 내 얼굴을 촬영하고 있었다.</div> <div> </div> <div>**</div> <div> </div> <div> </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