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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88805
    작성자 : 어떤것
    추천 : 15
    조회수 : 1141
    IP : 221.159.***.5
    댓글 : 5개
    등록시간 : 2016/06/27 11:35:40
    http://todayhumor.com/?panic_88805 모바일
    (중편, 선택지형)그와 좀비와 당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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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사십명의 바바리맨을 보게되는 사태는 피하고 싶다. 아무래도 집 밖에서 한끼 먹어야 할 것 같군. 시간이 나는 김에 근처 마트에 있는 대형 등산용품점에 들려야겠다. 요즘 쓰던 초크백이 헐어서 터지기 직전이니.(2표)


    그래, 괴한 핑계로 외식이나 해보자.
    요즘들어 뻑뻑해진 핸들을 억지로 돌려가며 나는 자기합리화를 했다. 일을 그만두고 클라이밍을 시작하면서 집에서 받는 용돈과 간혹 이렇게 들어오는 아마추어 강습정도를 제외하면 별다른 수입이 없다. 아르바이트라도 하면 모르지만 불규칙적인 운동 스케줄 상 그런 것도 힘들다. 아니 이것도 자기합리화 겠지.

    교외즈음까지 나가자 서서히 건물과 인파가 줄어들고 좀더 오가닉한 풍경이 자리를 잡는다. 이쪽으로 와본적은 처음이지만 분위기 자체는 마음에 드는군. 조그마한 비 메이커 커피숍 옆에 제법 신축티가 나는 경양식 집으로 들어갔다. 그 옆에 파스타 체인점이 보였지만, 아무래도 운동을 시작하고 부터는 면요리에 손이 가질 않는다. 몸은 무거워지고 힘은 안된다. 옛말에 한국인은 밥심이라더니. 결국 요즘은 오버행을 갈때도 팔자에 없던 도시락을 싸다닌다. 드라이 로프에 매달려서 꾹꾹 눌러둔 밥을 먹고있다보면 기분이 묘해진다.

    리조토 하나와 사이드로 콘샐러드, 자몽 에이드까지 시키고 나자 미니프레첼 몇개를 서비스로 내준다. 짭조롬한 맛에 입속에서 부서지는 느낌에 식욕이 불이 붙은듯 타오른다. 이 가게가 있는 상가는 큰 4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멀리까지 산과 평야가 뻗어있는 곳이었다. 창가에 앉은 것은 꽤 좋은 선택이었다. 혹시 저기에도 탈만한 벽이 있을까. 요즘은 다시 수직벽보단 비스듬한 곳이 좋던데. 산만보면 이러는 건 직업병이라고 해도 되겠지.

    문득, 어디선가 기분나쁜 시선을 느낀다. 한참이나 주위를 둘러보다가 길 건너편에 검은 봉지를 하나 들고있는 남자가 나를 보고있는 것을 발견했다. 너무 멀어서 표정도 보이지 않는데, 길 한복판에서 치고는 헤 벌리고 있는 입만은 눈에 확 띈다. 어째서 기분나쁜 시선이라고 생각했을까. 느끼자마자 등줄기가 저릿하게 오그라드는 느낌이었는데. 내가 그쪽을 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쪽은 이제 길을 건너고있다. 아직도 이쪽을 보고있다. 나는 시선을 돌리는 척 곁눈질로만 그를 본다.

    침착해보이는 발걸음, 어깨가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걸음걸이 라고 보면 어쩐지 귀여워보일 듯 하는 모양새지만, 나는 첫인상(물론 그만한 거리에서 인상을 받은게 맞다면)때문인지 뭔지모를 불쾌감을 받았다. 왠지 팬터마임같은 느낌이다. 사람 아닌 것이 사람을 흉내내고 있는 듯한.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기어코 세자루째 주걱을 휘어먹은 T를 몇번 걷어차주고 다시 집밖으로 나왔다. 다시는, 다시는 살찐 여자를 노리지 않겠어. 그저 기분전환쯤으로 고른 타겟이었는데 이만큼이나 일정에 차질을 줄줄은 몰랐다. 원래 이맘때쯤이면 다음 타겟을 골라 천천히 공을 들이고 있었을텐데. 오늘은 철물점 주인의 얼굴을 봐도 기분이 나아지질 않는다.

    너무 자주 공구를 사가면 오해를 받을 소지가 많다. 날붙이나 공구, 바이스 같은건 멀리 나가 사오는 편이지만 그래도 시선이 모이는건 피해야지. 이만큼 입지가 좋은곳은 한동안 찾기도 힘들텐데. 시내에서 적당히 거리가 멀고 한창 개발중이라 허허벌판이 많으며 가게는 몇군데 있지만 cctv는 거의 없다. 돈이야 제법 있지만 굳이 비싼 곳을 고르지 않는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다.

    산 아래쪽 공사현장 근처에 임시로 들어선 철물점에서 물건들을 구입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갑자기 이상하리만치 강렬한 배고픔이 느껴졌다. 숫제 허기라기보다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보내는 명령같았다. 전조도 기미도 없이 식욕이 턱밑까지 치밀어 올랐다.

     배를 움켜쥐고 걸음을 빨리 하면서도 묘한 기분이다. 살인마도 나름대로 자기관리가 필요한 편이다. 운동선수 수준으로 다듬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섬세하게 몸을 조율하는 작업쯤은 하고 있다. 매일매일 관리하던 첼로에서 갑자기 음이날이 나서보니 현이 퉁겨져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럼 집 근처에 있던 경양식당으로 가볼까. 사실 이 근처에 유일하게 cctv가 설치된 곳이라 일부러라도 근처에 걸음하지 않던 곳이지만, 이렇게 급작스러워서야 대책이 없다. 집에가서 차려먹으려면 한참은 더 치워야 할텐데, 지금도 몸의 배터리가 간당간당 하다. 기억을 더듬어 그곳 상가로 천천히 이동했다.

    횡단보도를 앞에두고 여기가 맞나 하고 살펴보는 그때였다. 한 여자가 눈에 확들어왔다. 바짝 올려묶은 머리때문에 멀리서보면 남자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니다.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그녀가 입은 연녹색 저지 상의와 잔머리 하나없이 뒤로 묶은 성실한 생김새가 눈에 띈다. 별다른 이유도, 정확한 정보도 없지만 나는 확신했다. 다음 타깃이다. 아마 저 여자는 동적이지만 격렬하진 않은 체조나 등반따위의 운동을 할 것이다. 어깨폭이 넓고 앉은 자세에 경직성이 느껴진다.

    목 뒷쪽이 찌릿찌릿하다. 이런게 사랑인가. 식욕에 더불어 찾아온 감정은 지금 이 순간을 초월적인 누군가가 안배해둔 운명이라고 생각하기에 충분했다. 머릿속에 여자의 몸이 본것처럼 떠오른다. 가슴은 크지않다. 낮은 체지방 때문에 전신에 남자라도 좀처럼 얻을수 없을 세밀한 근육의 모양이 보인다. 힘을주면 일제히 일어나 하나의 군대처럼 움직이고, 움직일때도 언뜻언뜻 결을 내보인다. 단단하게 담금질 된 여자다. 나는 벌써부터 아랫도리가 부풀어 오르는걸 느꼈다. 아직 집에 들일순 없겠지만 말이라도 붙여볼까...?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소지품 : 다용도의 넓적한 주걱 둘, 목공예용 중간크기 칼 하나, 담배 반갑, 라이터 하나.

    1. 근처에서 못보던 여자군. 지금 당장 가서 붙잡아야 한다. 이때를 놓치면 언제보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집에는 못들이지만 번호라도 따두자.

    2. 아무래도 나를 본듯한 느낌이 든다. 곧장 달려가서 말을 붙이면 경계할 것이다. 근처의 테이블에 앉아있다가 뒤를 밟는게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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