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이번 이야기는 단편입니다. </div> <div>[奇談 - 기이한 이야기]는 제가 타 사이트에서 연재중인 글로, 현재 여덟번째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div> <div>비축분이 떨어질 때까지 당분간(한 달 이상?)은 월화수목금 매일 올리겠습니다. </div> <div>감사합니다. </div> <div> </div> <div>------------------------------------------------------------------</div> <div> </div> <div>나는 그녀와 이야기한다. <br />그녀가 어디 있는지는 모른다. <br />모니터와 인터넷 랜 선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마주앉아 있다. <br />내 이야기에 그녀는 웃는다.<br />물론 그녀의 웃음소리가 들리지는 않는다.<br />하지만 모니터에 나타난 간단한 이모티콘을 보면 <br />여자아이다운 맑은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br />그녀가 웃으니 나도 웃는다. <br />기분 좋은 밤이다. <br /><br />그녀를 만난 건 이주일쯤 전이었다. <br />채팅의 시대는 이미 끝난 지 오래라지만 채팅 사이트에는 수백 수천 명이 접속해 있다. <br />물론 그중 대다수가 남녀가 서로 섹스할 상대를 찾는, 그런 저속한 채팅이라는 건 안다.<br />하지만 나는 그런 저속한 무리가 아니다.<br />문학을 사랑하는 분을 찾습니다. <br />그런 제목의 채팅창을 열어 놓고 기다린다. <br />간혹 누군가가 들어와 저질스러운 광고글을 남기고 사라진다. <br />나는 끝없이 인내하며 기다린다. <br />그리고 어느 순간 누군가가 조심스레 접속한다.<br />그렇게 나는 그녀와 만났다. <br /><br />안녕하세요. <br />그녀의 인사말을 보고 나는 감동받는다. <br />요즘 어린 여자들은 복잡한 이모티콘과 알 수 없는 축약어를 쓴다. <br />그런 여자들과 채팅을 하면 늘 불쾌해진다.<br />그러나 그녀는 또박또박 안녕하세요라는 다섯 글자를 타이핑힌다.<br />그 뒤에 웃음 이모티콘이 애교처럼 붙는다. <br />오랜만에 기분이 상쾌해진다. <br /><br />그녀는 고등학생이다. <br />어느 학교인지 이야기해주지는 않는다.<br />그러나 추측건대 몸가짐 조신한 여학생들이 다니는 우수한 고등학교가 틀림없다. <br />김동인과 김동리의 차이를 알고, 소월의 본명이 정식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br />요즘 세상에 이런 걸 아는 어린 여자들은 흔치 않다. <br />나는 그녀의 지식과 겸손한 태도를 칭찬한다. <br /><br />서른한 살. 증권회사 직원. 키는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딱 백팔십.<br />내 소개를 들은 그녀의 반응은 무덤덤하다. <br />평균 이상의 스펙에도 무관심한 그녀의 반응이 더욱 마음에 든다. <br />내친 김에 최근 주식 동향에 대해 이야기하려다, 그녀가 고등학생이라는 사실을 상기한다.<br />대신 나는 다시 문학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br />1920년대 단편소설 작가들 중 나는 김동인이 최고라고 말한다. <br />그녀는 현진건을 꼽는다. <br />문학만으로도 우리는 매일 두 시간씩 이야기꽃을 피운다. <br /><br />오늘 채팅창을 끄기 전, 나는 그녀와 만나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br />그녀는 고민하더니 내일 답을 주겠다고 대답한다. <br />나는 너무 부담 갖지 말라고 상냥하게 답변한다.<br />채팅창을 닫고 나서 나는 가슴을 지그시 누른다. <br />심장이 두근거리며 뛴다. <br />살짝 흥분되는 느낌에 스스로를 제어하려 노력한다. <br /><br />그녀는 만나기 곤란하다고 대답한다.<br />나는 매우 실망한다. <br />분노가 차오른다. <br />나는 주먹으로 키보드를 내려친다. <br />마우스를 집어던지고 쓰레기통을 걷어찬다. <br />담배꽁초가 가득한 재떨이가 하늘을 난다.<br />맥주 깡통이 벽에 부딪히며 큼지막한 황갈색 얼룩을 남긴다. <br />나는 포효한다. <br />잠시 후 나는 다시 키보드를 두드린다. <br />우와 충격. 나 차였네. <br />미안해요. 사정이 있어서^^<br />그녀는 언제나 그렇듯 말 끝에 이모티콘을 붙인다. <br />그 이모티콘이 꼴보기 싫다. <br />나는 어른에게 건방지게 군 벌을 내리기로 결정한다.<br /> <br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한참 동안 평소처럼 이야기를 이끌어 가다 채팅을 끈다.<br />그리고 지금까지 대화에서 조금씩 모아 왔던 그녀의 정보들을 검색하기 시작한다. <br />그녀의 생일. 그녀의 출생년도. 그녀의 고향. 그녀의 학교.<br />그리고 이미 알고 있는 그녀의 아이디. <br />몇 번이나 해 보았던 일이라 오래 걸리지 않는다. <br />곧 손쉽게 그녀의 SNS를 찾아낸다.<br />최근 이삼 년간 업데이트가 없는 것이 아마 얼마간 돌보다가 방치한 모양이다. <br />그러나 정보는 그대로 남아 있다.<br />나는 곧 내가 원하는 정보를 얻는다. <br />그녀의 주소다. <br /><br />나는 어두운 밤을 택한다. <br />CCTV를 피하기 위해 나는 항상 어두운 밤에 움직인다. <br />모자를 눌러쓰고 옷깃을 세워 얼굴을 가린다. <br />움직이기 편한 점퍼 안주머니에 칼을 집어넣는다. <br />안주머니 너머로 칼의 모양이 느껴질 때 가슴이 두근거린다. <br />칼날이 그녀의 보드랍고 하얀 배를 가르고 나아갈 때의 감촉을 떠올리며 나는 흥분한다. <br />잔뜩 부풀어 오른 아랫도리를 부여잡고 나는 부르르 떤다. <br /><br />그녀의 집은 다소 외딴 곳에 있는 주택이다. <br />경비실이 있는 아파트보다는 주택이 훨씬 작업하기 편하다. <br />더군다나 그녀의 집은 다른 집과 꽤 떨어져 있다. <br />작업하면서 다소 시끄러운 소리가 나더라도 별 일 없겠다고 나는 결론을 내린다. <br />아저씨가 곧 갈게.<br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br />중얼거리며 나는 킬킬댄다. <br /><br />의심을 피하기 위해 인근의 아파트 단지까지 택시를 탄다.<br />그리고 인적이 없는 길을 걸어 집에 도착한다. <br />이미 열두 시에 가깝다. <br />같이 살고 있는 부모의 목을 손쉽게 베어내고 나면<br />그 뒤에는 그 괘씸한 년에게 예의범절을 천천히 공들여 가르쳐줄 수 있다.<br />버릇없이 어른의 제의를 함부로 거절하면 안 된다는 걸 차근차근 알려주리라. <br />벌써 흥분하는 바람에 심장이 미칠 듯이 뛰고 숨이 가빠진다.<br />나는 다시 한 번 주머니 속의 칼을 확인한다. <br />그리고 신중하게 집으로 접근한다. <br /><br />놀랍게도 대문은 잠겨 있지 않다. <br />열린 대문 사이로 보이는 집 안은 어두컴컴하다. <br />마지막으로 주변을 살핀 후 나는 대문 안으로 한 걸음을 내딛는다. <br />그리고 천천히 현관으로 다가간다. <br />장갑을 낀 손으로 현관문 손잡이를 천천히 잡는다.<br />그 순간 나는 현관 옆에 검은 그림자가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br />그림자가 고개를 들자<br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br />아무것도 없이 <br />텅 빈 동공만이 있는<br />끔찍한 <br />얼굴이<br /><br /><br /><br /> “으아아아악!”</div> <div><br /> 단말마에 가까운 비명소리가 터지더니 곧 조용해졌다. 어두운 방 안에서 촛불만을 켜놓고 명상에 잠겨 있던 집 주인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광등을 켜자 하얀 빛이 일순간에 방 안의 물건들을 환히 비추었다. 색색가지 천과, 금박이 입혀진 불상과, 누런 바탕에 붉은 글씨가 새겨진 부적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가운데 집 주인은 문을 열고 나가 거실을 거쳐 현관문을 열었다. 마당에는 검은 색 점퍼를 입은 땅딸막한 중년 남자가 두 눈을 까뒤집은 채 기절해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검은 그림자가 가만히 서 있었다. 집 주인은 신발 신은 신으로 남자를 툭툭 걷어찼으나 반응이 없었다. </div> <div><br /> “어젯밤 꿈자리가 안 좋아 성주신을 좀 센 분으로 모셔 놓았더니...... 이상한 놈이 걸렸구만.”<br /></div> <div> </div> <div> 집 주인은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빼 들고는 번호를 눌렀다. 곧 전화가 연결되자 그녀는 인사말도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br /></div> <div> </div> <div> “자네 우리 집에 잠시 와 줬으면 좋겠는데.”<br /></div> <div> </div> <div> “지금 말씀입니까?”<br /></div> <div> </div> <div>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는 잠에 절반쯤 취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냉정하게 말했다. <br /></div> <div> </div> <div> “처리할 일이 생겨서 말이야. 그리고 바리도 데려오게. 아무래도 걔가 뭘 어떻게 했지 싶어.”<br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br /><br /> “바리야.”<br /></div> <div> </div> <div> 해원은 한숨을 쉬듯 그녀를 불렀다.<br /></div> <div> </div> <div> “그러니까 내가 채팅 같은 거 해서 좋을 거 하나도 없다고 했잖니.”<br /></div> <div> </div> <div> 그녀는 겸연쩍게 발끝을 내려다보며 우물거리듯 대답했다.<br /></div> <div> </div> <div> “그래도...... 재미있어서......”<br /></div> <div> </div> <div> “이런 징그러운 남자가 칼 들고 찾아오는 게 재미있냐?”<br /></div> <div> </div> <div> 해원이 기가 차다는 듯 말하자 바리는 반항하듯 반박했다.<br /></div> <div> </div> <div> “그치만 자기는 키 큰 증권사 직원이라고 했단 말이에요. 문학 이야기도 많이 했고요.”<br /></div> <div> </div> <div> “인터넷에서야 무슨 말을 못하겠어.”<br /></div> <div> </div> <div> “그래도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게 잘 해서 한 번 보고 싶었는데...... 우앙. 완전히 속았어.”<br /></div> <div> </div> <div> 그녀는 해원에게 울상을 지어보였다. 그 모습을 본 해원은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br /></div> <div> </div> <div> “그래. 그 자칭 키 큰 문학청년께서 지금 경찰서에 끌려갔는데, 그럼 만나러 거기로 가 볼까?”<br /></div> <div> </div> <div> 바리는 부루퉁하니 입을 내밀고는 말없이 옅어져 갔다. 바리의 모습이 사라지자 해원은 고개를 저었다. 부족한 잠이 파도처럼 몰려왔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끝)</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