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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차단 상태
    최강창민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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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panic_41034
    작성자 : yoonjae23
    추천 : 41
    조회수 : 2926
    IP : 119.198.***.200
    댓글 : 6개
    등록시간 : 2013/01/15 07:58:08
    http://todayhumor.com/?panic_41034 모바일
    [펌]안개
    <P><BR> <BR>안개<BR> <BR> <BR> <BR> <BR> <BR>"쾅!!!!"<BR> <BR>뭔가에 부딪혔다. 아니 내가 뭔가를 들이받았다.<BR> </P> <P>운전대에 얼굴을 묻은 자세를 유지한 채 나는 길게 몇 번의 심호흡을 했다.<BR>내 술냄새를 내가 맡을 수 있을 정도로 과음을 했다.<BR> <BR> <BR> <BR>"아....신발..."<BR>이마에 따끈따끈한? 액체가 흘러내린다.<BR>아마도 머리에 상처를 입은 것 같았다.</P> <P>에어백이 터졌음에도 밸트를 매지 않아 창에 머리를 받은 모양이었다.<BR>조수석을 돌아보니 오늘 나이트클럽에서 꼬셨던 여자애가 없었다.<BR> <BR> <BR> <BR>"신발년....날 두고 도망쳐?"<BR>나는 천천히 차문을 열고 나왔다.</P> <P>주변에 안개가 엷게 끼어있음을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BR>그리고 차의 보닛(bonnet)부분에서 불이 난 것처럼 증기가 올라오는 것도 볼 수 있었다.<BR>가로등을 끼고 있는 가드레일을 들이받은 것이다.</P> <P>어른거리는 와중에서 시계를 들여다보니 새벽 3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BR>서 있을 힘도 없었다.</P> <P>나는 가드레일을 등지고 자리에 앉아 몸을 쉬었다.<BR> <BR> <BR> <BR> <BR> <BR> </P> <P>음주로 경찰에 걸리고 안 걸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지금은 쉬고 싶었다.<BR>사고 후 3분도 안되는 시간이었던 것 같은데 어디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 왔다.<BR>거슴츠레 뜬 눈으로 그 소리의 정체를 확인하였다.</P> <P>멀리서 경광등을 반짝이며 달려오는 차량이 보였다.<BR> <BR> <BR> <BR> <BR>"짭새 새끼들...졸라 빨리오네...."<BR>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그들이 나를 데려가기만을 바랬다.</P> <P>내 옆에 차량이 멈춰서고, 차문을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BR>그리고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BR> <BR> <BR> <BR> <BR> <BR>"아저씨 괜찮아요?"<BR>"....."<BR>나의 불규칙한 숨소리와 냄새를 느꼈는지 그는 말을 이었다.<BR> <BR> <BR>"아저씨 술마셨구만?"<BR>나의 대답이 없자 그는 나의 어깨를 툭툭치며, 뭔가를 내 밀었다.<BR> <BR> <BR> <BR>"아저씨 내 명함이니까, 아침에 차 찾아가쇼..."<BR>"뭐여?"<BR>나는 그의 뜬금없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P> <P>경광등을 밝힌 그 정체는 견인차였다. 경찰이 아니었다.<BR>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쪼그려 앉아 나를 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BR> <BR> <BR> <BR> <BR>"아저씨...이마 찢어졌네...병원에 빨리 가보슈. 그리고 곧 경찰 올텐데 빨리 이 명함 챙기쇼...."<BR>그는 내 오른쪽 상의 호주머니에 명함을 끼워넣더니 내 차량을 견인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P> <P>차가 견인되는 그 순간까지도 나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견인차가 멀어지는 소리로서 그가 이곳을 떠났음을 알 수 있었다.<BR> <BR> <BR> <BR> <BR>"푸우....신발놈들..돈이 되면 사람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거군."<BR>나는 몸이 휘청거리는 상태에서도 정신은 제대로 박혀있었는지 그 남자의 무성의함에 넋두리을 했다.<BR> </P> <P>늦은 가을이라 그런지 반코트를 입고 있음에도 무지 쌀쌀했다.<BR>나는 반코트를 꽉 움켜쥐고 품 속으로 더 밀어넣으며, 체온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BR>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낯선 여자의 음성이 들렸다.<BR> <BR> <BR> <BR> <BR> <BR> <BR> <BR>"아저씨....추워요...."<BR>"나도 추워...."<BR>나는 아무 생각없이 대답했다.<BR> <BR> <BR> <BR>"아저씨....추워요...."<BR>나는 갑자기 확 짜증이 밀려왔다.<BR>나는 고개를 치켜들고 그 여자를 향해 소리쳤다.<BR> <BR> <BR> <BR>"아 신발!! 나도 춥다니까!!"<BR>엷은 안개속에서 가드레일을 따라 10여미터 앞에 웬 낯선 여자가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다.<BR>그 여자의 모습은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P> <P>가까이 다가올 수록 그 모습은 나를 더욱 스름끼치는 전율로 빠져들게 만들었다.<BR>원피스를 입은 온 몸이 물에 젖어있고 청백색의 피부에 소름끼칠 정도로 <BR>검은 눈과 긴 생머리.... 짙은 눈썹</P> <P>두 팔로 몸을 감싼 채? 그 여자가 나를 향해 두 발을 질질 끌듯이 걸어오고 있었다.<BR> <BR> <BR> <BR> <BR> <BR> <BR>"아저씨....추워요...."<BR>"헉!!!!! 신발 당신 뭐야?"<BR>나는 갑자기 순식간에 체내의 알코올 모두 분해된 것처럼 정신이 확 깼다.<BR> <BR> <BR> <BR>"아저씨....여기...너무...추워요...."<BR>점점 더 다가올 때마다 선명해지는 그녀의 모습은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BR> <BR> </P> <P>피부가 심하게 뜯겨있었고, 피부밖으로 노출된 뼈가 여기저기 보였다.<BR>특히 왼쪽 뺨은 피부가 거의 다 벗겨져, 속의 어금니까지 보였다.</P> <P>심장이 터질 듯이 쿵쾅거렸고, 등골이 송두리 채 얼어붙는 느낌이었다.<BR>나는 등 뒤의 가드레일을 지지대로 삼아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BR> <BR> <BR> <BR>"뭐야..신발!!!? 가..가까이 오지마...."<BR>나의 요구에도 그녀는 두발을 질질 끌며 천천히 내 앞 2미터까지 다가왔다.<BR> <BR> <BR> <BR>"따다닥...따다닥...따다닥"<BR>오한을 느까는지 그녀의 이빨 부딪치는 소리가 터진 왼쪽 뺨 사이로 새어 나왔다.<BR> <BR> <BR>"아~악!!!!!! 이...신발 오지마!!!"<BR>나는 내 몸을 제대로 주체할 수 없는 와중에서도 춤을 추 듯 그녀를 향해 발길질을 하였다.<BR> <BR> <BR> <BR> <BR>바로 그 때,<BR> <BR>"이봐요, 아저씨!!!!!!!"<BR>낯선 남자의 부름에 나는 고개를 획 돌렸다.<BR> <BR> </P> <P>택시였다. 택시기사가 창을 열고 나를 부르고 있었다.<BR>나는 대답도 없이 미친듯이 택시의 뒷자석에 올라탔다.<BR>나는 타자마자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그에게 부탁했다.<BR> <BR> <BR> <BR> <BR> <BR>"아저씨!! 아무 병원이나 가요. 빨리요!!"<BR>"알았소이다."<BR>택시는 기다렸다는 듯이 미터기를 누르고 잽싸게 출발했다.</P> <P>나는 천천히 고개를 뒷창을 통해 그녀를 확인했다.<BR>멀어지는 시야속에서 우두커니 나를 지켜보는 그녀가 보였다.<BR> <BR> <BR> <BR> <BR>"헉...신발!!"<BR>나는 재빨리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BR> <BR> <BR>"뭘 그렇게 놀라슈?"<BR>50대로 보이는 택시기사는 나의 안절부절하는 행동이 기이한 듯 물었다.<BR> <BR> <BR> <BR>"아저씨, 그 여자 봤어요? 무섭게 생긴 여자.."<BR>"무슨 여자요?"<BR>"방금 전 내 앞에 있던 여자 말예요!!"<BR>"아이고...냄새야....오늘 과음하셨구나. 이마도 다치시고..."<BR>기사는 내 말에 대답할 생각은 하지 않고 룸미러를 통해 내 상태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BR> <BR> <BR> <BR>"아저씨!!!!!!! 그 여자 봤냐구요?"<BR>"못 봤는데요."<BR>택시기사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의 유난스런 행동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P> <P>나는 몸을 일으켜 앞 좌석 사이로 고개를 내밀어 다시 소리쳤다.<BR> <BR> <BR> <BR>"바로 내 앞에 있었는데 왜 못봐요!!!!"<BR>"아이고 깜짝이야!!! 못 봤다니까요...이 양반 많이 취하셨네...시트에 피묻히지 말고 앉아 있어요!!<BR>거 참 젊은 양반이 이 새벽에 뭔 짓이래?"<BR> <BR>택시기사의 꾸지람에 나는 앞 좌석 사이에 들이 밀었던 머리를 뒷좌석에 던지듯이 눕혔다.<BR>나는 길게 몇 번의 심호흡을 한 후 조금 전의 기억이 어떤 것이었는지 정리하기 시작했다.<BR> <BR> <BR> <BR> <BR> <BR>"이봐!!? 젊은 양반!! 일어나!!"<BR>얼마되지 않은 사이에 나는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BR> <BR> </P> <P>기사의 부름에 나는 천근만근같은 눈꺼풀을 들어올렸다.<BR>거슴츠레 뜬 두 눈에 응급실과 병원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BR>그런데 그 병원은 사고지점에서 한 참 떨어진 곳이었다.<BR> <BR> <BR> <BR>"뭐야? 누가 여기까지 데려 오래?"<BR>순간 미터기에 찍힌 27,000이란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BR> <BR> <BR>"이런 신발...사기꾼같으니라고..."<BR>나는 얼른 택시 밖으로 기어나왔다.<BR> </P> <P>따뜻한 곳에 있었기 때문인지 다시 견딜 수 없는 취기가 몰려왔다.<BR>나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비틀거렸다.<BR>운전석에서 내린 택시기사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말을 건넸다.<BR> <BR> <BR> <BR>"아무 병원이나 가자며?"<BR>치미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나는 비틀거리며 그의 멱살을 잡기 위해 달려 들었다.<BR> <BR> <BR> <BR>"이..신발....누굴 등처먹으려고.."<BR>기사는 내 두 손을 움켜쥔 채 어이없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BR> <BR> <BR> <BR>"야 임마!! 내 택시안에 니 피 묻힌 값은 내놓아야지..."<BR>"이...신발놈..."<BR> <BR>그 순간 택시기사는 들것을 밀고 병원 직원이 나오는 것을 보자 나를 밀치고 운전석으로 돌아갔다.<BR> <BR> <BR> <BR>"야 임마!! 이따가 정신차리면 돈 받으러 올테니까 치료나 잘 받고 있어."<BR>열린 창문 틈으로 이렇게 한 마디 내뱉더니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짓더니 차를 몰고 달아났다.<BR>내게 다가 온? 직원이 내 얼굴을 유심히 살피더니 물었다.<BR> <BR> <BR> <BR> <BR>"싸워서 다친겁니까?"<BR>직원의 친절한 물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의 말은 여전히 거칠었다.<BR> <BR> <BR>"몰라..신발 새끼들아!!!"<BR>이 말을 들은 직원들은 나를 제압하고 들것 위에 눕혔다.<BR>나는 누워서 실려가는 와중에도 욕설을 멈추지 않았다.<BR> <BR> <BR> <BR> <BR>"그 기사 신발놈...죽여버리겠어....강아지...."<BR>응급실 내로 들어서자 그제서야 나는 내 두 손과 두 발이 골절환자의 부목처럼 들것에 묶여있다는 것을 알았다.<BR> <BR> <BR> <BR> <BR>"야...신발 니들 뭐하는거야?"<BR>직원들은 나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없이 수술실로 나를 이동시켰다.<BR> <BR> <BR> <BR>"야... 신발놈들아!! 나를 왜 묶어? 내가 정신병자야?"<BR>나의 괴성에 그제서야 들것을 밀던 직원 한 명이 내려다보며 답을 했다.<BR> <BR> <BR> <BR>"이봐요, 수술하다가 움직이면 당신 얼굴 찢어지는 수가 있어."<BR>수술실로 들어서자 코를 찌르는 소독약 냄새가 났다.<BR> </P> <P>담당 의사에게 나를 맡긴건지 그들은 모두 수술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BR> <BR> <BR> <BR>"야!! 이것 좀 풀어줘!!!"<BR>나는 소리를 지르며, 바동거렸지만 도저히 내 힘으로는 벨트의 장력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BR> <BR> <BR>"야!! 이 신발 놈들아!!"<BR>나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었다.</P> <P>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안개가 낀 것처럼 세상이 뿌옇게 변했다.<BR> <BR> <BR> <BR>'안개...뭐야?? 병원에 웬 안개?'<BR> <BR>잠시 후, 내가 잠시 잠잠해지자? 한 사람이 조용히 들어와 내 옆에 서서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BR>그 사람 배경에 비치는 조명등 때문에 얼굴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실루엣으로 보아 여자 간호사임이 분명했다.<BR> <BR> <BR> <BR>"뭘 쳐다봐?"<BR>나는 아직도 분노를 잠재울 수가 없었다.<BR> <BR> <BR>"뭘 그렇게 빤히 쳐다보나구?"<BR>내 말에 그 검은 실루엣은 아무 말없이 주사기에 약을 채워 바늘을 통해 공기를 뿜어내고 있었다.<BR> <BR> <BR>"헤이....이 봐...지금 뭐하는거야?"<BR>그녀는 아무런 응답도 없이 주사기 안의 공기를 다 밀어내었는지 조용히 머리를 숙여 나에게 다가왔다.</P> <P>그 검은 실루엣의 얼굴이 나에게 충분히 가까워지자 나는 비로소 그 실루엣 속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BR> <BR> <BR> <BR> <BR> <BR> <BR> </P> <P>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BR>만일 놀라서 죽는다면 이렇게 죽을 것이다.</P> <P>그녀의 머리에서 흘러내린 시뻘건 피가 새하얀 얼굴에 수많은 세로선을 긋고 있었다.<BR>귀밑까지 찢어진 입속으로 하얀 치아가 드러나 보였고, 그 하얀 치아 틈 사이로 흘러내린 핏물이 채워지고 있었다.<BR> <BR> <BR> <BR> <BR>"후..신발..."<BR>숨소리같은 나의 작은 신음소리와 함께 내 몸을 이루고 있는 모든 근육세포들이 멈춰버렸다.<BR>그리고 난 의식을 잃었다.<BR> </P> <P><BR>"이 놈아..정신 차렸냐?"<BR>흐려진 초점이 윤곽을 잡아가자 나는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아버지임을 알아보았다.<BR> <BR> <BR>"개놈의 자식..나이 처먹고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네."<BR>아버지의 푸념에는 이제 이골이 났다.<BR> <BR> <BR>"변변한 직업도 없는 놈이 술처먹고 쌈질이나 하고 다니니.. 이거 원."<BR>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P> <P>순간 오른쪽 이마가 욱신거려 손을 가져다 대었다.<BR>두툼한 반창고가 만져지는 것으로 보아, 어제 다쳐서 꿰맨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BR> <BR> <BR> <BR> <BR>"싸움 한거 아니거든요.."<BR>"이런 미친 놈. 그럼 어디 전봇대라도 들이받았냐?"<BR>"에이..좀 그만하세요."<BR> <BR>그 때 침대 커튼을 열어 젖히고 누군가 얼굴을 들이밀었다.<BR>간호사였다.<BR> <BR> <BR> <BR>"으헉!!!"<BR>나의 비명소리에 간호사가 물었다.<BR> <BR> <BR>"괜찮으세요?"<BR>나는 잠시 긴 한숨을 몰아쉬고 고개를 끄덕였다.<BR> <BR> <BR>"보호자분 나가실 때 싸인하시고, 원무과에 치료비 납부하시면 됩니다."<BR>간호사는 사무적인 말투로 아버지에게 말을 건넨 후 뒤돌아 걸었다.<BR> <BR> <BR>"아버지...나가기 전에 여기에 만날 사람이 있어요."<BR>"뭐? 누구?"<BR>"간호사요. 꼭 봐야 될 간호사가 있어요."<BR> <BR>내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아버지는 잠시 나를 응시했다.<BR>그리고는 내가 어느 정도 예측한 대답을 날리셨다.<BR> <BR> <BR> <BR> <BR>"이런 미친 놈. 너같은 양아치 새끼가 간호사를 어떻게 알어? 어디 또 하나 후려서 어떻게 해보려고?"<BR>"아버지 그게 아니고.."<BR>"그만 닥치고 나갈 준비나 해."<BR>난 아버지에게 저항할 수가 없다.</P> <P>잘 생긴 외모와 부잣집 아들이라는 이유로 나에겐 여자들이 많이 따랐다.<BR>많이 따른만큼 내 생활은 난잡해져 갔다.<BR>여자를 건드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고, 임신 중절만도 몇 번은 되는 것 같았다.</P> <P>상습 음주운전으로 몇 개월 실형을 살아본 적도 있고, 조폭 여자를 건드려 살해 위협을 받아본 적도 있다.</P> <P>아직까지 내가 살아있는 이유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버지가 엄청난 돈을 썼기 때문이다.</P> <P>내가 알고 있는 금액만도 1억 5천이 넘었다.<BR>그런 엄청난 빽이 되어 준 아버지에게 저항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P> <P>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나는 어쩌면 지금 철창 속 어두운 골방에 처박혀 있을지도 모른다.<BR>나는 외투를 걸치고 아버지를 뒤따라 나섰다.<BR>그런데 그 때 우리 앞에 경찰 복장을 한 두 사람이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BR> <BR> <BR> <BR> <BR> <BR> <BR>"김성태씨?"<BR>"네?"<BR> <BR>경찰의 물음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BR>역시나 옆에 있던 아버지의 호통이 시작되었다.<BR> <BR> <BR> <BR> <BR>"이런 미친 놈..너 또 사고쳤냐?"<BR>나이가 있어 보이는 한 명이 나에게 자신을 소개했다.<BR> <BR> <BR> <BR>"ㅇㅇ경찰서 교통계 최정수 경장입니다. 어제 새벽 ㅇㅇ동, ㅇㅇ대로에서 차로 가로등을 들이받고 도주를 하셨더군요."<BR>"뭐요? 제가요? 전 차를 몰지 않았는데요"<BR> <BR>이럴 수가....분명히 견인차가 내 차를 끌고 갔는데....이런 혹시 그 견인차 운전자가 불어버린 건가? 아니면 어제 나이트에서 꼬셨던 그 년이 불어버린 것인가?<BR> <BR> <BR> <BR> <BR> <BR> <BR>"그럼 이마에 난 그 상처는 뭡니까?"<BR>"이..이거요? 술 먹다가 옆 테이블 애들하고 싸움이 붙어서..."<BR>"조사하면 나올테니까 일단 서로 같이 갑시다."<BR>"아니..내가 운전을 안 했다는데 무슨 증거로 가자는 겁니까?"<BR> <BR>내 말에 그 경장은 허탈한 웃음을 한 번 짓더니 말을 이었다.<BR> <BR> <BR> <BR> <BR> <BR>"지금 장난하는거요? 당신 차의 앞유리하고 에어백에 난 핏자국 당신 거 아니면 뭐요? 국과수에 넘겨 볼까요?"<BR>"에이...신발.."<BR> <BR>나는 머리를 털 듯이 긁적이며 욕설을 내뱉았다.</P> <P>옆에 서 있던 아버지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나를 노려보더니 이내 한 마디를 내뱉고 병실을 나섰다.<BR> <BR> <BR> <BR> <BR> <BR> <BR>"난 싸인하고 간다."<BR>경찰차에 실려서 경찰서로 향하는 동안 나는 시무룩한 표정을 유지한 채 아무 말없이 앉아 있었다.<BR> <BR> <BR> <BR>"서른도 안된 젊은 양반이 경력이 화려하대."<BR>뒷자석의 금속봉에 채워진 수갑이 어제 나를 묶었던 들것의 밸트보다 더 단단히 나를 잡고 있는 듯 보였다.</P> <P>그 때 나는 궁금한 게 하나 떠올랐다.<BR> <BR> <BR>"아저씨..뭐 하나 물어봅시다."<BR>"뭐요?"<BR>"내가 사고난 것 누가 불었소?"<BR>"누가 불다니?"<BR>"아니... 견인된 차 어디서 찾았냐구요?"<BR>"뭔 소리야? 당신 차.. 사고 현장에 그대로 있었구만."<BR>"뭐요?"<BR> <BR>나는 순간 머릿속이 잘 정리되지가 않았다.<BR> <BR> <BR> <BR> <BR> <BR> <BR> <BR> <BR>"아이...신발...뭐가 어떻게 된거야?"<BR>그 때 문득 나는 머리 깊은 곳에 묻혀져 있는 작은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BR> <BR> <BR>'그래..명함!!"<BR>견인차 운전사가 주고 간 명함.....<BR>나는 이곳 저곳 내 호주머니를 뒤졌다.</P> <P>이윽고 오른쪽 상의 주머니에서 명함 대신 작은 쪽지가? 손에 걸렸다.<BR>-사일런트 엔젤 010-9453-xxxx -<BR> <BR> <BR> <BR> <BR> <BR> <BR> <BR>"뭐야 이거...."<BR>쪽지에 적힌 엉뚱한 메세지는 그 내용만으로 나를 놀라게 만든 것이 아니었다.<BR>거기에 적힌 글씨체는 내 것이었다.</P> <P>나는 멍하니 고개를 쳐들고 푸념섞인 말을 내뱉았다.<BR> <BR> <BR>"헐..신발...미치겠네."<BR>이 말에 앞 좌석의 두 경찰이 의아한 듯이 물었다.<BR> <BR> <BR> <BR> <BR>"이봐 친구, 왜 그래?"</P> <P>교통계 조사를 받는 내내 나는 무슨 말을 해야 경찰들이 내 말을 믿어줄 것인가만 생각했다.<BR> <BR> <BR> <BR>"야...그러니까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레커차가 니 차를 끌고 간 다음 너는 병원으로 택시를 타고 갔고, 그리고 치료받고 아침에 일어났단 말이지?"<BR>"그렇다니까요!!"<BR>"그런데 갑자기 경찰이 나타나서 왜 차 두고 도망쳤냐고 하더라 이거야?"<BR>"아이씨..진짜 미치겠네..."<BR>"너, 술 어지간히도 취했나 보다."<BR> <BR>이대로 가다가는 나는 가중처벌을 받을 게 뻔했다.<BR>상습 운전으로 실형을 살았는데 이번엔 좀 세게 맞을 수도 있다.<BR> <BR> <BR> <BR> <BR> <BR>"야 임마...대한민국에서 가장 효과만빵의 정상참작이 뭔지 알아?"<BR>"...."<BR>"초범이라는거야. 대한민국 그 어느 판사도 초범에 대해서는 관대해.<BR>그런데 너 같은 놈은 일말의 정상참작의 여지도 없어."<BR> <BR>나는 교통계 경찰을 응시한 채로 조용히 눈을 감고, 입술을 깨물었다.<BR>여전히 나는 그의 불친절함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P> <P>잠시 후 나는 억지로 평안한 표정을 지은 채 조용히 입을 열었다.<BR> <BR> <BR> <BR> <BR>"아저씨...한 번만 봐 줘요..제가 누굴 친 것도 아니잖아요. 제가 운전을 했다는 증거도 없잖아요.<BR>피 묻은 것도 다른 사람이 운전해서 다친 거라고 하면 되잖아요. 저 이번에 들어가면 인생 종칠지도 몰라요."<BR>그러자 경찰은 몸을 뒤로 눕혀 의자에 기댄 채 팔짱을 끼며 답을 했다.<BR> <BR> <BR> <BR>"거참.....내가 할 말이 없다."<BR>눈을 뜨고 애원하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는 동안, 나는 순간 그와 겹쳐서 뒷배경에 보이는 무언가를 발견했다.<BR> <BR> <BR> <BR> <BR>"아저씨...."<BR>"뭐?"<BR>"아저씨...머리 좀 치워봐요.."<BR>"뭐 새꺄?"<BR>"빨리 머리 좀 치워봐요!!!"<BR>내 눈동자의 초점이 자신의 등 뒤로 향해 있음을 안 그는 몸을 돌려 나와 같은 방향으로 시선을 맞추었다.<BR> <BR> <BR> </P> <P>얼굴만 확대되어 덩그렇게 붙어있는 벽보.<BR> <BR> <BR> <BR> <BR>-사람을 찾습니다-<BR>이름 : xxx<BR>나이 :....<BR>벽보 속의 여자.<BR> <BR> <BR> <BR> </P> <P>어디선가 본 낯익은 얼굴...긴 생머리...짙은 눈썹...<BR> <BR> <BR> <BR> <BR> <BR> <BR> <BR> <BR> <BR> <BR>"으아~~~~~악!!"<BR>나는 비명을 지르며 작은 철제 의자와 함께 튕기 듯 뒤로 나동그라졌다.<BR> <BR> <BR> <BR>"야 임먀!! 왜 그래?"<BR>바닥에 주저앉은 자세로 나는 손가락으로 벽보를 가리키며 말했다.<BR> <BR> <BR> <BR>"저...저..여자 어제..봐..봤어요!!!"<BR>"뭐?"<BR> <BR>내 말 한마디에 나는 교통계에서 형사계로 넘어갔다.<BR>형사계로 넘어가자 조금 전의 교통계 조사가 얼마나 친절한 대우였는지를 바로 알게 되었다.<BR>강력계 형사들은 눈빛부터가 달랐다.<BR> <BR> <BR> <BR> <BR>"너, 이 여자 본 곳 어디야?"<BR>중저음의 목소리를 가진 한 형사가 벽보에 붙어있던 같은 전단지를 내 앞에 밀어 보이며 물었다.<BR>무섭게 치켜 뜬 눈과 까칠하게 돋아난 수염이 그를 더욱 경계하게 만들었다.<BR> <BR> <BR>"어제....제가 사고 난데서요..."<BR>내 목소리는 이미 주눅이 들어 있었다.<BR> <BR> <BR> <BR>"지금 거기로 안내해."<BR>말 한마디에 생각보다 일이 커지는 듯 싶었다.<BR>20여명의 의경들과 강력계 형사팀이 사고현장으로 이동을 시작했다.<BR>형사들과 같이 차를 탄 나는 몸둘 바를 몰랐다.<BR> <BR> <BR> <BR> <BR>"너, 그 여자 어떻게 봤어?"<BR>앞좌석에 탄 중저음의 그 형사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나에게 물었다.<BR> <BR> <BR> <BR>"그게..저...."<BR>"확실히 그 여자 맞지?"<BR>"예. 맞아요. 그런데 살아있는 사람 같지가 않았어요."<BR>"뭐가?"<BR>"물에 빠져 한 참 뒤에 발견된 사람처럼 창백한 얼굴에 여기저기 살이 뜯겨 있구요..."<BR> <BR>설명을 하는 와중에도 나는 그 여자가 머리에 떠오르자 소름이 밀려왔다.<BR>나의 머뭇거림에 형사가 말을 재촉했다.<BR> <BR> <BR> <BR> <BR>"계속 말해봐."<BR>"물에 젖은 원피스 차림으로 저한테 춥다면서 발을 질질 끌며 다가오는거예요."<BR>"그래서?"<BR>"그래서라뇨? 전 너무 무서워서 택시타고 도망쳤죠."<BR> <BR>내 말이 끝나자 그 형사는 한 숨을 길게 내쉬더니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BR>그 때 운전을 하고 있던 다른 형사가 그에게 물었다.<BR> <BR> <BR> <BR> <BR> <BR>"마두, 그 자식이 한 말과 똑같네요."<BR>'마두?'<BR>생소한 이름에 나는 귀가 쫑긋해졌다.<BR> <BR> <BR> <BR> <BR>"너 귀신 볼 줄 알아?"<BR>중저음의 그 형사가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을 내게 던졌다.<BR> <BR> <BR> <BR> <BR>"예?"<BR>"사람같지가 않았다면서?"<BR>"그렇긴 한데..."<BR> <BR>그러고 보니 어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내 부족한 아이큐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것들이었다.<BR> <BR> <BR> <BR> </P> <P>물에 불은 시체같은 여자. 병원에서 봤던 등골이 얼어붙는 듯한 끔찍한 형상의 그 간호사.<BR>생각만 해도 온 몸에 소름이 쫘악 돋았다.</P> <P>그리고 내 차가 왜 거기 그대로 있는거지?<BR>이 모든 것이 꿈이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그냥 가위에 눌린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되나?</P> <P>그런데 꿈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도 생생했고, 현실적이었다.</P> <P> <BR> <BR>그들이 다 죽은 여자라면......그렇다면 내가 정말로?<BR>그리고 앞 좌석에 앉아 있는 형사들은 뭔 가?</P> <P>나의 허무맹랑한 꿈같은 얘기에 뭔 개소리냐며 호통 한 번 치지 않는가?<BR>그리고 귀신 볼 줄 아냐는 질문은 또 뭔가?</P> <P>거대한 음모가 서려있는 무서운 사건에 떠밀려지는 듯한 이 기분은 또 뭔가?<BR>당분간 술을 끊어야겠다.<BR> <BR>사고현장에 도착한 형사들과 의경들은 주변을 이 잡듯이 뒤졌다.<BR>특히 도로와 인접한 개천의 풀숲은 경찰들의 주 수색 대상이었다.<BR> <BR> <BR> <BR> <BR> </P> <P>10여 분의 시간이 흘렀을까?<BR> <BR> <BR> <BR> <BR> <BR>"여깁니다!!!!!"<BR>한 의경의 외침에 모두들 먹이를 발견한 승냥이 떼처럼 풀숲 사이에 긴 선을 그으며 한 곳으로 몰려들었다.</P> <P>가드레일에서 지켜보던 나도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풀숲으로 뛰어들었다.<BR>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하천 정화조가 눈에 들어왔다.</P> <P>그것을 발견한 의경이 시뻘겋게 녹슨 정화조의 뚜껑을 열어놓은 채 코를 움켜쥐고 있었다.<BR>나를 포함한 거기에 있는 모든 이가 본 것은 부패되어 썩어가는 한 여자의 시체였다.</P> <P>더욱 나를 경악케 만든 것은 지금 내 눈앞의 썩어가는 이 시체가 어제 나에게 살아서 걸어왔던 그 여자라는 것이다.</P> <P>갑자기 입에서 토사물이 쏟아졌다.<BR>시각적인 자극은 견딜 수 있었지만, 후각적인 자극이 내 위장을 파도치게 만들었다.<BR> <BR> <BR> <BR> </P> <P>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BR>거기에 있는 의경 다섯 명 정도가 고개를 돌리고 연신 구역질을 해댔다.<BR> </P> <P><BR>경찰서로 돌아오는 동안 나는 넋나간 사람처럼 눈의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BR>사건현장에서 쏟아낸 토사물 때문인지 시큼하고 역겨운 냄새가 아직 코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BR> <BR> <BR> <BR> <BR> <BR> <BR> <BR>"너 음주운전한 거 없던 걸로 할테니까, 집에 돌아가면 항상 핸드폰 켜 놓고 기다리고 있어."<BR>그 중저음의 형사가 나에게 제안을 했다.<BR> <BR> <BR> <BR>"저 보내주시는 건가요?"<BR>"그래. 그런데 필요하면 다시 부를거야."<BR> <BR>그제서야 나는 정신이 번뜩 들었다.<BR> <BR> <BR> </P> <P>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BR>안도감이 밀려오면서 동시에 몇 가지 궁금증이 떠올랐다.<BR> <BR> <BR> <BR> <BR>"그런데 아저씨. 그 시체 뭐예요? 살해당한 거예요?"<BR>"아직 몰라. 김나연이라는 여자인데 실종 신고 후 3개월 만에 찾은거야."<BR>"딱 봐도 이건 살인사건이잖아요."<BR>"국과수 조사가 끝나봐야 돼."<BR> <BR>갑자기 소름끼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BR> <BR> <BR> <BR> <BR> <BR>"아..아저씨... 그럼 제가 귀신을 본 거예요?"<BR>".........."<BR>"아저씨 말 좀 해봐요."<BR>"귀신이든 아니든 이번 사건 해결에 니가 도움이 된 건 사실이야. 그건 고맙게 생각한다."<BR> <BR>형사의 대답에서 그가 뭔가를 감추는 듯한 뉘앙스가 느껴졌지만 나는 더 이상 알고 싶지가 않았고,<BR>물어본다 하여도 그가 대답해 줄 것 같지 않았다.</P> <P>다시 한동안 나는 침묵 속에 빠져 들었다.<BR>한 동안 이어지던 어색한 침묵을 깬 것은 나의 궁금증이었다.<BR> <BR> <BR> <BR> <BR> <BR> <BR>"아저씨 그런 시체 많이 봐요?"<BR>뒷좌석에 앉아있는 나의 질문에 형사가 고개를 잠시 돌려 피식 웃음을 보였다.<BR> <BR> <BR> <BR>"그런 걸 왜 물어?"<BR>"그냥 궁금해서요. 아까같은 시체보면 꿈에 안 나타나요?"<BR>"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지. 그런데 그건 그나마 양호한거야."<BR> <BR>형사는 시선을 다시 앞으로 돌려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BR> <BR> <BR> <BR> <BR> <BR> <BR>"목 매달아서 목이 1.5배나 늘어난 상태로 혓바닥을 턱 까지 길게 내밀고 나를 쳐다보는 시체 한 번 봐봐. 그건 진짜 꿈에 나타난다."<BR>"에이...겨우 그 정도예요?"<BR> <BR>나의 비아냥거림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말을 이었다.<BR> <BR> <BR> <BR> <BR> <BR> <BR>"아직도 잊을 수 없는 사건이 하나 있는데 순경 시절에 집에 누가 침입했다는 여자의 신고전화를 받고 출동한 적이 있었지.<BR>조그만 벽돌식 단독주택이었는데....현장에 갔더니 불은 꺼져 있고, 문이 잠겨 있는거야.<BR>원래 수색영장없이 함부로 들어가면 안되는데 그 날은 느낌이 안 좋더라구.<BR>나는 방범창을 부수고 조심스럽게 창문을 통해 들어가려고 시도했어.<BR>그런데 큰 장롱 하나가 창문을 반 쯤 막고 있는거야.<BR>난 그것을 간신히 밀어내고? 창문 안으로 발을 간신히 내딛었는데, 순간 윤활유같은 무언가에 미끄러져 방안으로 굴러떨어지듯 넘어졌지.<BR>나동그라져서 뒤로 누운 상태가 된 나는 옆에 무엇인가를 감지하고 고개를 돌렸는데 난 그 때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BR>처참하게 살해되어 누워있는 피범벅이 된 여자 시체와 눈이 마주친거야."<BR> <BR>얘기를 듣고 있던 나는 마치 그 때 그 형사가 된 기분처럼 소름이 끼쳤다.<BR> <BR> <BR> <BR> <BR> <BR> <BR> <BR> <BR> <BR>"눈을 동그랗게 부릅뜨고 죽었는데, 마지막 숨이 새어나오는건지 입에서 피거품이 부글거리는 소리가 나더라구."<BR>형사는 잠시 입을 굳게 닫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BR> <BR> <BR>"1년 가까이 꿈 속에 그 여자가 그 얼굴, 그 모습으로 나타나 나를 괴롭혔지."<BR>나는 으스스한 기운에 입을 열지 못했다.<BR> <BR> <BR>"너 좀비 영화 봤냐?"<BR>"네..."<BR>"고통이 극도로 심해지거나 죽음에 임박하게 되면 엄청난 양의 엔돌핀이 뇌에서 분비되지.<BR>엔돌핀 때문에 고통을 못느끼는거야.<BR>전쟁 영화보면 폭탄 맞아서 자기 팔이 떨어져 나간 줄도 모르고 남은 한 손으로 총 들고 진격하고 있잖아.<BR>교통사고도 마찬가지야.<BR>트럭에 치어서 하반신이 짓이겨져서 떨어져 나갔는데도, 그것도 모른 채? 숨이 멎을 때까지 도로 위를 두 팔로 기어다니는 사람도 있어.<BR>좀비처럼 말야."<BR> <BR>나는 잠시 할 말을 잊고 침을 한 번 꼴깍 삼켰다.<BR> <BR> <BR> <BR> <BR> <BR> <BR>"워, 워, 워...형사도 할 짓 못 되네요."<BR>나의 장난끼 어린 말투가 내 스스로를 진정시키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것을 알아챘음에도, 그는 더 잔인하게 나를 압박했다.<BR> <BR> <BR> <BR>"그나마 형사는 좀 낫지. 현장 정리가 어느 정도 된 다음에 출동하니까.<BR>신고 받고 처음으로 출동하는 순경들은 뭘 보겠냐?<BR>투신해서 머리가 으깨진 시체, 불에 타서 검게 그을린 피부가 벗겨져 나가 속살을 드러낸 시체....<BR>나도 그런 끔찍한 광경은 대부분 순경 시절에 본거지."<BR> <BR>몇 마디의 대화가 끝나자 경찰서에 가까워지는 듯 했다.<BR>경찰서에 정문에 도착하자 그 형사는 나에게 조금 전의 약속을 재확인한 후 나에게 항상 대기하고 있기를 부탁했다.</P> <P>나는 안부인사를 한 후 차문을 열고 내렸다.<BR>문을 닫으려는 순간 나는 중요한 질문거리가 하나 떠올랐다.<BR> <BR> <BR> <BR> <BR> <BR> <BR>"아저씨. 제 차 어디서 찾아가야 되요? 그거 비싼건데.."<BR>"기다려 임마. 조사가 끝나면 교통계에서 연락이 갈거야. 다음에 다시 보자."<BR> <BR>경찰 지프차가 멀어지는 것을 보자, 나는 상의 주머니에 집어넣은 오른손의 중지를 치켜올렸다.<BR> <BR> <BR> <BR> <BR>"조까 신발..내가 다시 오나 보자."<BR>나는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BR> <BR> <BR>"그런데 진짜로 내 차 어디 있는거야?"<BR>내 차량의 소재가 궁금하긴 했지만, 이 순간 나를 더 궁금하게 만드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BR>지금 웃옷 주머니 속에서 매만져지는 작은 쪽지의 내용이었다.<BR> <BR> <BR>-사일런트 엔젤 010-9453-xxxx -<BR> <BR> <BR> <BR> <BR> <BR> <BR> <BR> <BR>"그런데 신발, 도대체 이게 뭐지?"<BR>몇 초동안의 망설임이 있었지만, 호기심을 참지 못한 나는 이내 휴대폰을 꺼내 쪽지에 적인 숫자대로 버튼을 눌렀다.<BR> <BR> <BR>'뚜루루루....뚜루루루루....뚜루루루루.....'<BR>발신음이 반복되면서 왠지 모를 긴장감이 감돌았다.<BR> <BR> <BR> <BR>"여보세요."<BR>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BR> <BR> <BR>"저...거기가 어디죠?"<BR>나는 조심스레 그에게 물었다.<BR> <BR> <BR>"너 누구야?"<BR>"그냥 사일런트 엔젤을 찾고 있어요."<BR>갑자기 내 고막을 찢는 듯한 그의 폭언이 들려왔다.<BR> <BR> <BR> <BR>"너 누구야!! 강아지야!!!"<BR>"헐..."<BR>나는 얼른 휴대폰의 폴더를 닫아버렸다.<BR> <BR> <BR> <BR>"헐..신발 놈. 졸라 까칠하네."<BR>그런데 나의 독백이 끝나기가 무섭게 휴대폰이 요란한 벨소리를 울려댔다.<BR>조금 전 그 번호였다.<BR> </P> <P>받아야 되나 말아야 되나....그런데 왠지 모르게 받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맴돌기 시작했다.<BR> <BR> <BR> <BR> <BR> <BR>"여...여보세요?"<BR>"너 이 번호 누구한테 얻은거야?"<BR>그 까칠한 남자였다.<BR> <BR> <BR>"아니 그냥 제 호주머니에 매모 쪽지가 있어서...뭔가하고 연락한건데요?"<BR>"사일런트 엔젤은 어떻게 알아?"<BR>"그냥 누가 알려주고 간 거예요. 저도 잘 몰라요."<BR>".........."<BR> <BR>휴대폰 송화기를 손으로 막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지, 아니면 그냥 말을 하지 않는건지 그는 잠시 동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BR> <BR> <BR> <BR>"여..여보세요?"<BR>나는 그를 불렀다.</P> <P>그제서야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BR> <BR> <BR> <BR>"오늘 저녁 6시에 ㅇㅇ역 3번 출구로 나와 있어."<BR>"제가 거길 왜 가요?"<BR>"죽고 싶지 않으면 나와 있어."<BR>"뭐..뭐라구요?"<BR> <BR>내 대답을 무시한 채 통화는 종료되어 버렸다.<BR> <BR> <BR> <BR> <BR>"여보세요!! 여보세요!!!"<BR>나는 잔잔한 연못에 조금만 파문이 일 듯 소리없이 두려움이 몰려왔다.</P> <P>작은 실밥을 잡아당겼더니 걷잡을 수 없이 옷감이 풀어 헤쳐지는 듯한 기분이었다.<BR>휴대폰을 들고 한 동안 멍하니 자리를 지키던 나는 굳은 결심을 하고는 발걸음을 집으로 향했다.<BR> <BR> <BR> <BR>"미쳤어? 내가 거길 왜 가? 신발 놈들....내가 겁 먹을 줄 알고?"<BR>내 스스로를 이렇게 다독거리며 나는 집으로 향했다.</P> <P>택시 요금이 없어서 나는 버스를 타고 갔다.<BR>얼마만에 타는 버스인지 모른다.</P> <P>고등학교 졸업 후 아버지를 졸라 자가용을 샀다.<BR>여자를 유혹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차가 필요했기 때문이다.</P> <P>그 이후로 버스를 탄 기억이 없다.<BR>사실 학창시절에도 버스를 탄 기억이 거의 없다.</P> <P>아버지가 늘 학교까지 자신의 차로 바래다 주었기 때문이다.<BR>그런 것에 너무 익숙해진 나는 커다란 운송수단에 몸을 맡긴 채, 여러 사람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각자의 목표지점으로 향하는 광경이 너무나도 어색하게 느껴졌다.<BR> <BR>오른쪽 이마에 두툼한 반창고를 붙인 채 서 있는 내 모습을 주변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BR> <BR> <BR> <BR> <BR>"띵동! 문자가 도착했습니다."<BR>버스 소리에 섞여 휴대폰 문자 알림음이 울렸다.<BR> <BR> <BR> <BR>-오빠^^; 경찰서 가면 나 아빠한테 죽거든. 도망쳐서 미안^^ 연락줘 ^^-<BR> <BR> <BR> <BR> <BR> <BR> <BR> <BR> <BR> <BR> <BR> <BR>"신발년....."<BR>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욕설에 주변 사람들이 긴장하는 눈치였다.<BR> <BR>집 근처에 도착한 나는 절친한 친구인 준호를 실내 포장마차로 불러냈다.<BR>그 놈도 나처럼 변변한 직업없이 집에 돈이 많다는 이유로 놀고 먹는 녀석이었다.<BR> <BR> <BR> <BR>"야! 왠일로 포장마차냐? 돈 떨어졌냐?"<BR>준호는 인사 대신 나를 비야냥거리며 원형의 간의의자에 앉았다.<BR> <BR> <BR> <BR> <BR>"이마는 왜 그래?"<BR>"헐..신발 말도 마라. 새벽부터 지금까지 온갖 쇼를 다하고 다녔다."<BR>"뭔 일이야?"<BR>"우선 술 좀 시키고 진정 좀 하자."<BR>"아니 다친 놈이 뭔 술이야?"<BR>"아이..신발 닥치고 그냥 조금만 하자. 맨 정신에 있을 수가 없어."<BR> <BR>몇 시간전의 술을 끊어야겠다는 다짐은 온데간데 없었다.<BR>나는 준호와 함께 소주를 들이키며 무용담처럼 내 얘기를 늘어놓았다.</P> <P>준호는 기이한 미스테리라도 듣는 것처럼 어린 아이처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내 말을 듣고 있었다.<BR>얼마가 지난 후 약간의 취기가 올라오자 나는 시계를 들여다 봤다.<BR> <BR> <BR> <BR> <BR> </P> <P>7시가 조금 넘었다.<BR>갑자기 술이 깨는 듯 했다.<BR> <BR> <BR>"헐...7시가 넘었네."<BR>"너 신발...아까 니가 말한 새끼가 약속한 시간이 6시 아니었어?"<BR> <BR>나는 애써 평온함을 유지하려 했으나 밀려오는 두려움을 막을 수가 없었다.<BR>게다가 집으로 가는 길은 길고 어두운 좁은 도로변 길이었다.<BR> <BR> <BR> <BR>"준호야. 우리 집까지 차 좀 태워주라."<BR>"신발 놈. 이젠 나까지 음주운전시키네. 알았어 임마."<BR> <BR>나와 준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실내 포장마차 밖으로 나섰다.<BR>그러나 나는 우리를 따르는 몇 개의 검은 그림자를 미처 살피지 못했다.<BR> </P> <P>우리의 차량이 어두운 도로변 길에 진입하자 갑자가 낯선 차량 한대가 우리 앞을 가로 막았다.<BR>미처 그들이 누구인지 확인하기도 전에 서너명의 건장한 놈들이 준호의 차로 달려들었다.</P> <P>갑자기 앞유리의 파열음이 들렸고, 파편처럼 유리조각이 내 얼굴을 향해 쏟아졌다.<BR>차 문을 열고 뛰쳐나가려 하자 눈 앞에 솥뚜껑만한 손이 순식간에 다가와 내 얼굴을 강타했다.<BR> <BR> <BR> <BR> <BR> <BR> </P> <P>"쿨럭...쿨럭"<BR>간신히 기도를? 열어젖히는 힘겨운 기침 소리와 함께 나는? 의식이 돌아왔다.</P> <P>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지금이 몇 시인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었다.<BR>눈의 초점이 서서히 맞추어지자 주변의 광경이 눈 앞에 들어왔다.</P> <P>화사한 테라스처럼 고급스럽게 꾸며진 약간 어두운 실내 공간이었다.<BR>누군가가 내 정면의 의자에 앉아 있었고, 주변에 건장한 서너명이 무게를 잡고 서 있었다.</P> <P>나 또한 의자에 앉아 있었지만 두 팔이 위자 뒤로 포박당한 채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BR>내 주변만 할로겐등처럼 강렬하게 아래로 내리비치는 빛 때문에 의자에 앉아있는 그의 얼굴은 정확히 볼 수가 없었다.</P> <P>확실한 건 두목으로 보이는 그가 담배 하나를 물고 있고,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꼰 채 최대한 거만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BR> <BR> <BR> <BR> <BR> <BR> <BR> <BR> <BR>"너 누구야?"<BR>전화 속의 그 놈 목소리였다.<BR> <BR> <BR> <BR>"쿨럭...준..준호...제 친구는요?"<BR>"죽지 않았으니까 걱정마."<BR>"준호 어딨어요...쿨럭"<BR>"핸드폰에 내 번호 남긴 놈이 너 밖에 더 있어?"?<BR>"그...그럼 저만 이리로 끌고 온 거예요? 도대체 저 한테 왜 이러시는거예요?"<BR> <BR>간신히 입을 열 때마다 상처난 오른쪽 이마와 손으로 가격당한 왼쪽 광대뼈가 아려왔다.<BR> <BR> <BR> <BR> <BR> <BR> <BR> <BR> <BR>"난 니가 내 번호와 사일런트 엔젤을 어떻게 아는지 궁금할 뿐이다."<BR>"전 정말 몰라요..쿨럭.... 누가 알려준 거예요."<BR>"그게 누구야?"<BR>"몰라요...메모 쪽지가 그냥 제 호주머니에 있었어요..."<BR>"좋은 말로 할 때 말해.. 그 놈이 누구야?"<BR> <BR>말이 통하지 않는 그와의 대화가 계속되자 순간 나도 모르게 분노 섞인 짜증이 밀려왔다.<BR> <BR> <BR> <BR> <BR> <BR>"몰라!! 신발!! 모른다는데 왜 자꾸 지랄이야!!!!"<BR>나의 괴성에 주변에 잠시 적막이 감돌았다.</P> <P>그리고 잠시 후 그 남자의 손짓이 있자 건장한 청년 한 명이 나에게 서서히 다가왔다.<BR>막장에 다다랐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두려움보다는 오기가 생겼다.<BR> <BR> <BR> <BR> <BR> <BR>"쿨럭..쿨럭...차라리 죽여라..신발 놈들아..."<BR>그 건장한 청년은 나에게 주먹질 대신에 내 팔뚝에 주사기를 꽂아 알 수없는 주사액을 밀어넣었다.<BR> <BR> <BR> <BR>"뭐...뭐하는 짓이야?"<BR>나의 물음에 두목으로 보이는 그가 입을 열었다.<BR> <BR> <BR> <BR>"넌 잠시 후 진실만을 말할 것이다."<BR>"조까고 있네...십새끼들...."<BR>무슨 이유 때문인지 모르지만 나의 말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었다.<BR> <BR> <BR> </P> <P>조명등 너머의 그 남자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주사약의 효과를 기다리는 듯 했다.<BR>잠시 후 주사액 때문인지 눈 앞의 초점이 다시 흐려지기 시작했다.<BR>몸이 나른해지면서 편안함이 몰려왔다.</P> <P>나도 모르게 히죽거리는 웃음이 입에서 새어나왔다.<BR>기분이 좋아지고,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P> <P>동굴 속의 울림처럼 그 두목같은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BR> <BR> <BR> <BR> <BR> <BR> <BR> <BR> <BR>"너 누구야?"<BR>"히히히...김..성..태..."<BR>"너 뭐하는 놈이야?"<BR>"놀고 먹는 백수지 뭐야...히히히.."<BR>"너 사일런트 엔젤을 어떻게 알아?"<BR>"음...뭐더라....."<BR>"........?"<BR>"그..그 놈이 주고 갔어.....내 차 가져 간 놈...."<BR>"누..누구?"<BR> <BR>갑자기 주변에 엷은 안개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BR> <BR> <BR> <BR> <BR>'히히히....안개다...안개...안개가 낀다.'<BR> <BR> <BR> <BR> <BR> <BR> <BR> <BR> <BR> <BR> <BR> <BR>기분이 들뜨고,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도 나는 삭신이 오그라드는 듯한 공포가 밀려옴을 느낄 수 있었다.</P> <P>내 뇌의 99%가 약물에 정복당했음에도, 나머지 1%의 정상적인 부분이 나를 일깨우려 애쓰는 것 같았다.</P> <P>머리를 똑바로 들어올리려 했지만 목의 근육이 다 풀려버린 것처럼 내 머리는 이리저리 내팽개쳐졌다.</P> <P>우스꽝스럽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나는 지금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BR> <BR> <BR> <BR> <BR> <BR>"말 해....그 놈이 누구야?"<BR>그의 질문에 나는 오직 진실만을 말했다.<BR>지금 이 순간 내 눈앞에 보이는 그대로 말이다.<BR> <BR> <BR> <BR>"누구긴 누구야.....바로 니 앞에 서 있는 놈이지......"</P> <P><BR>"뭔 개소리야?"<BR> <BR>그 두목같은 녀석은 내 말을 부정했지만 나는 확신할 수 있다.<BR> <BR> <BR> </P> <P>내 앞에 그 놈이 나를 등지고 서 있다.<BR>뒷 모습만 봐도 분명히 그 놈이 맞다. 내 차를 견인해 간 놈.</P> <P>그 놈은 나를 등진 채 두목 녀석을 노려보고 있는 듯 했다.<BR>그런데 이상하게도 희뿌연 연막처럼 그가 반투명하게 보였다.</P> <P>그 놈이 나의 시야를 방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목 녀석의 형상이 투시되어 보였다.<BR>사람이 아님을 직감할 수 있었다.</P> <P>그런데 왜 이렇게 기분이 묘하지?</P> <P>무섭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그냥 이 안개가 아늑하게 느껴지기도 하고....<BR>이런 게 뽕맞은 기분인가?<BR> <BR> <BR> <BR> <BR> <BR> <BR> <BR> <BR>"우히히히히히......"<BR>나도 모르게 요사스러운 웃음이 쏟아져 나왔다.</P> <P>그리고는 그 놈을 몰아 붙였다.<BR> <BR> <BR> <BR> <BR> <BR> <BR> <BR>"니가 경찰에 신고했지? 신발 놈....내 차 니가 찾아와... 신발 놈아....죽일 놈...히히히"<BR>나의 횡설수설에 그 두목 녀석이 입을 열었다.<BR> <BR> <BR> <BR>"저 새끼 진짜 왜 저래? 약을 너무 탄 것 아냐?<BR>완전히 미친 새끼군.<BR> <BR> <BR> </P> <P>야!! 더 이상 볼 것 없어. 처리 해!!"<BR>그는 불호령을 내리며 들고 있던 담배를 너무나도 깔끔해 보이는 바닥에 그냥 집어 던져버렸다.<BR>그 와중에도 나는 거친 욕설과 간교한 웃음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BR> <BR> <BR> <BR> <BR>"야~~~ 신발놈아!!? 내 차 내놔...강아지야!! .....히히히...."<BR>나를 등지고 있는 그 놈을 인지하지 못한 채, 조금 전에 나에게 약을 주사했던 건장한 청년이 옆의 탁자에서 뭔가를 집어들더니 발걸음을 나에게로 옮겼다.<BR> <BR> <BR> <BR> </P> <P>끈 이었다.<BR>빳빳한 가죽 끈 같은 것을 몇 번 양쪽으로 소리내어 잡아채더니, 이내 그것을 내 목에 가까이 가져다 대었다.</P> <P>그러나 그 동작 후에 정작 그가 힘을 주어 조른 것의 자신의 목이었다.<BR> <BR> <BR> <BR> <BR> <BR> <BR>"우에엑!! 켁!! 켁!!"<BR>그 놈은 자신의 목을 조른 채 눈깔을 뒤집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P> <P>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녀석은 자신의 목을 조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목을 조르는 가죽끈을 풀려고 하는 것 같았다.</P> <P>내 차를 견인해 간 그 자식이 청년의 뒤에서 힘을 주어 목을 비틀고 있었기 때문이다.<BR> <BR> <BR> <BR> <BR> <BR> <BR>"뭐야? 저 자식!! 혼자 뭐하는거야!!!"<BR>주변의 사내들이 새파랗게 얼굴이 질려 죽어가는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P> <P>그런데 연신 몇 번을 켁켁대던 그가 갑자기 가죽끈을 목에서 풀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고개를 몇 번 좌우로 꺽었다.</P> <P>달려들던 사내들도 걸음을 멈추고, 그의 기이한 행동을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BR>뒤이어 수차례 목을 꺽던 청년이 갑자기 검은 양복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P> <P>조명등에 눈이 부시도록 반짝이는 그것은 족히 30센티는 돼 보이는 시퍼렇게 날이 선 회칼이었다.<BR>그리고 곧 피의 축제가 벌어졌다.</P> <P>망나니의 칼춤처럼 몸을 이리저리 흔들더니 그는 자신에게 바라보던 건장한 사내들의 몸에 연신 칼질을 해대기 시작했다.</P> <P>소름끼치는 비명소리와 고성이 난무하면서 사방에 핏물이 뿌려지기 시작했다.<BR>칼침을 수 차례나 맞은 듯한 한 놈이 내 무릎 위에 떨어졌다.</P> <P>그의 마지막으로 남은 몇 번의 심장 박동에 맞추어, 빨갛게 그어진 멱살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BR> </P> <P>물총에서 뿜어져 나온 물줄기처럼 따끈한 핏줄기가 내 얼굴에 쏟아졌다.<BR>그리고 나는 그것을 즐겼다.<BR> <BR> <BR> <BR> <BR> <BR> <BR> <BR>"오 예!!!....히히히히.....푸우!!"<BR>그것이 입으로 들어가면 나는 분무기처럼 그것을 공중에 뿌려댔다.</P> <P>몇 명의 사내들이 뒤엉킨 채 피의 제전은 계속 되었다.<BR>여기 저기서 날아드는 여러 개의 회칼이 마치 무당들의 칼춤처럼 화려함을 더 했다.</P> <P>두목 녀석의 정수리에 회칼이 꽂히는 것을 마지막으로 피의 제전이 끝났다.<BR>광기어린 축제가 끝났음에도 회칼을 든 사내는 한 동안 피바다 속에서 홀로 망나니 춤을 계속 이어갔다.</P> <P>그 붉은 바다에 물을 채우 듯 그의 몸 서너군데에서 물줄기가 용솟음쳤다.<BR>그리고 또 한 놈이 망나니 춤을 추고 있었다.</P> <P>칼을 든 사내와 겹쳐진 형상으로 똑같이 춤을 추고 있는 놈은 내 차를 견인해 간 그 신발놈이었다.<BR>한참동안 망나니 춤을 선보이던 그 신발놈이 갑자기 춤을 멈췄다.<BR> </P> <P>그와 동시에 칼을 든 사내는 무너지듯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BR>옆 모습을 나에게 보인 채 잠시 서 있던 그 녀석이 나를 한 번 힐끔 쳐다보더니 연기처럼 사라졌다.</P> <P> <BR> <BR> <BR> <BR>그리고 안개도 사라졌다.......<BR>서서히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적막감이 밀려왔다.</P> <P>오로지 들리는 것이라고는 누구의 몸에서 떨어지는 지 모르는 액체 방울의 낙하소리였다.<BR>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그 액체 방울의 낙하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P> <P> <BR> <BR>이젠 즐겁지가 않다.<BR>약기운이 조금씩 사라지면서 즐거움도 같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BR>그제서야 처참한 도륙의 현장이 눈에 들어왔다.<BR> <BR> <BR> <BR> <BR> <BR> <BR> <BR> <BR>"아~~~~~~~~~~악!!"<BR>나는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BR>미친 듯이 몸부림을 쳤다. 미친 듯이 발버둥을 쳤다.<BR> <BR> <BR> <BR> <BR> <BR>"쿵!!!"<BR>둔탁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뿌려진 미지근하고 끈적한 액체의 촉감이 내 뺨에 느껴졌다.<BR>그리고 그 형사의 경험담처럼 바닥에 엎어져 죽어있는 한 사내의 부릅 뜬 눈과 마주쳤다..<BR>그 형사도 이런 기분이었겠구나.....신발.<BR> <BR> <BR> <BR> <BR> <BR>"후........"<BR>긴 한숨과 함께 조금 전에 미처 뿜어내지 못한 끈적한 액체가 입 속에서 새어 나왔다.</P> <P> <BR> <BR> <BR>아...졸립다.<BR>오늘은 너무나도 피곤한 하루다. 집에 가고 싶다.<BR>나는 실신하 듯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BR> <BR> <BR> <BR> <BR> <BR> <BR> <BR> </P> <P>"성태야...성태야....."<BR>어떤 익숙한 목소리의 부름에 나는 눈을 떴다.<BR>아버지였다.<BR> <BR> <BR>"이제 정신이 드냐?"<BR>아버지가 왠 일로 이렇게 친절하시지?<BR> <BR> <BR>"김성태...괜찮아?"<BR>사건현장에 동행했던 그 형사가 아버지 뒤에 서 있었다.<BR> <BR> <BR>"여...여기가 어디죠?"<BR>"병원이다. 이 놈아..아예 여기서 살림 차릴래?"<BR> <BR>늘 같은 아버지의 비아냥거림 속에 전에는 느끼지 못한 울먹임이 느껴졌다.<BR> <BR> <BR> <BR> <BR>"아버님.. 잠깐 나가 계시죠."<BR>형사의 부탁에 아버지는 걱정스런 눈빛을 지우지 못한 채 병실을 나섰다.<BR>아버지가 병실을 빠져나간 것이 확인되자 형사는 말을 이었다.<BR> <BR> <BR> <BR> <BR> <BR>"그러고 보니 우리 통성명도 못한 것 같네. 나 ㅇㅇ경찰서 강력계 1팀장 박정우 경사다."<BR>나는 그의 시선을 뿌리치고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BR> <BR> <BR> <BR> <BR> <BR> <BR>"너 어떻게 거길 간거냐?"<BR>"......."<BR>"니 의지로 간거냐? 아니면 납치 된거냐?"<BR> <BR>갑자기 두려움과 서러움이 동시에 밀려왔다.<BR> <BR> <BR> <BR> <BR> <BR>"흑......"<BR>갑자기 뜨거운 눈물이 콧등을 넘어 침대속으로 젖어들었다.<BR> <BR> <BR> <BR> <BR> <BR>"김성태..."<BR>나의 흐느낌에 박형사는 더 이상 질문을 던지지 않고, 나지막히 내 이름을 불렀다.<BR> <BR> <BR> <BR> <BR> <BR>"무서워...신발...이제 그만 내버려둬.....흑흑"<BR>쥐어짜듯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나는 뜨거운 눈물을 연신 쏟아냈다.</P> <P>나의 흐느낌이 멈출 때까지 박형사는 조용히 기다려 주었다.<BR>10여분이 지났을 쯤, 내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자 박형사는 입을 열었다.<BR> <BR> <BR> <BR> <BR> <BR>"듣기 싫어도 들어라. 너 거기 니가 알고 간 것 아니지?"<BR>"....."<BR>"이 거 누가 적어준거지?"<BR> <BR>박형사는 그 쪽지를 나에게 들어보였다.<BR> <BR> <BR> <BR> <BR>"누가 적어준 게 아니지? 이 거 니 글씨지?"<BR>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BR> <BR> <BR> <BR>"사일런트 엔젤이 뭐야?"<BR>"몰라요..."<BR>나의 성의없는 대답에 박형사는 무언가를 고백하듯 긴 얘기를 꺼냈다.<BR> <BR> <BR> <BR> <BR> <BR> <BR>"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너만 알고 있는 걸로 해.<BR>몇 개월 전에 우리 수사팀은 대규모의 신종 마약이 유통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에 착수했어.<BR>그 때 수사망에 포착된 조직이 하나 있었는데, 어제 너와 같이 있었던 놈들이야.<BR>그 조직은 몇 개의 나이트클럽과 고급 스탠드바를 운영하고 있었어.<BR>그런데 그 조직들이 주요 근거지로 삼는 스탠드바가 하나 있었는데, 주로 돈 좀 있는 사람들이 출입을 하는 곳이었지.<BR>철저한 회원제와 신분 보장으로 누가 드나드는지 알아내기가 쉽지 않았어.<BR>거기엔 얼굴 마담격의 여자가 있었는데, 미모가 얼마나 출중하고 요염했는지 그 여자 때문에 매상이 장난이 아니었다고 하더군.<BR>그 여자가 바로 니가 찾아 낸 김나연이라는 여자야."<BR> <BR> <BR> <BR> <BR> <BR> <BR> <BR>박형사의 놀라운 말에 나는 시선을 돌려 그를 쳐다 보았다.<BR> <BR> <BR> <BR> <BR> <BR> <BR> <BR>"그런데 어느 날 우리가 수사에 착수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조직의 중간보스급으로 보이는 한 놈으로부터 전화가 온 거야. 누구냐고 물으니까 자신을 '마두'라고 소개하더군.<BR>물론 그 쪽 세계에서 사용하는 명칭은 아니었겠지.<BR>그 녀석은 자신과 김나연의 신변을 보호해주는 조건으로 우리에게 정보를 주겠다고 했어.<BR>무슨 장부를 하나 넘기겠다고 했는데 약속시간을 잡기가 쉽지 않았지.<BR>장부를 손에 넣기가 힘들었는지, 아니면 조직의 철저한 내부 단속 때문이었지 모르지만 아무런 진전도 없이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어.<BR>그런데 보름 만에 마두한테 전화가 온 거야.<BR>피곤함이 역력한 목소리였는데 뜻 밖의 얘기를 하더라구.<BR>김나연이 보이지 않는다고.<BR>아무래도 죽은 것 같다는거야.</P> <P>그런데...."<BR> <BR> <BR> <BR> <BR> <BR> <BR> <BR> <BR>박형사는 잠시 입을 굳게 다물더니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BR> <BR> <BR> <BR> <BR> <BR> <BR>"그런데요?"<BR>나는 이미 박형사의 얘기에 빠져들고 있었다.<BR> <BR> <BR> <BR> <BR>"그런데 마두가 횡설수설을 하는거야.<BR>나연이가 매일 밤 자신을 찾아 온대.<BR>물에 빠져 죽은 사람처럼 온 몸이 흠뻑 젖은 상태로 창백한 얼굴을 하고 매일 밤마다 자신의 집을 찾아온다는 거야.<BR>수면 중에 인기척에 놀라 깨어보면 어둠 속에서 그 여자가 자신의 옆에 누운 상태로 노려보며 있기도 하고, 어느 날 밤은 깨어보면 나연이가 그 소름끼치는 차림으로 화장대 거울 앞에서 머리를 빗고 있다는 거야.<BR>깨어보면 꿈이고, 깨어보면 꿈이고...매일 밤마다 악몽같은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거야.<BR>그럴 때마다 실내에서도 사방이 안개로 뒤덮인다고 하더군."<BR> <BR> <BR> <BR>나는 갑자기 심장이 멎는 듯 했다.<BR>나도 모르게 다시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P> <P>간신히 내 스스로를 진정시킨 후 시선을 맞추지 않은 채 나는 박형사에게 물었다.<BR> <BR> <BR> <BR> <BR> <BR> <BR>"마두라는 사람 어떻게 되었어요?"<BR>"........."<BR> <BR>나의 물음에 박형사가 답을 거부했다.<BR>분위기를 눈치 챈 나는 간략하게 다시 물었다.<BR> <BR> <BR> <BR> <BR> <BR> <BR> <BR>"주...죽었죠?"<BR>"그래"<BR>또다시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P> <P><BR> <BR> <BR> <BR> </P> <P>간신히 눈물을 멈추고 나는 박형사에게 물었다.<BR> <BR> <BR> <BR> <BR>"어떻게 죽었어요?"<BR> <BR> <BR>"새벽에 살고 있던 아파트 15층에서 투신했어.<BR>그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두의 얼굴을 본 거야.<BR>초면치고는 너무 처참하게 만난거지.<BR>현장에 가니까 머리가 깨져 뇌수가 흘러나오고 있고, 팔다리는 모두 부러져 제멋대로 꺾인 기이한 자세를 만들고 있는 시체가 있더라구.<BR>처음엔 그 얼굴의 주인공이 마두인지조차 몰랐지.<BR>전에 본 적이 없으니 말야.<BR>사건을 조사하면서 우리 서와 내 번호가 찍힌 그 놈의 휴대폰 통화 내역을 보고 알게 된거지.<BR>휴대폰 통화내역은 정말 중요한 정보였어.<BR>수없이 많은 번호들을 우리는 일일이 다 조회를 했지.<BR>그런데 몇 개의 떨거지 놈들의 번호를 빼 놓고는 모두 엉뚱한 주인을 가진 대포폰이었어.<BR>마두의 것도 마찬가지였고...<BR>아무리 불법을 일삼는 조폭이래도 거의 모두가 대포폰으로 활동한다는 것은 드문 일이야.<BR>뭔가 철저히 지켜야 할 비밀이 있는거지.<BR>어찌 되었든 우리에게 정보를 넘기겠다는 사람이 죽었으니 우리는 앞뒤 가릴 것 없이 철저히 수사를 했지.<BR>족적, 지문, 머리카락, 아파트 출입구와 엘리베이터의 CCTV...<BR>우리는 가능한 모든 것들을 분석하고 조사했지.<BR>마두의 죽음으로 우리는 뭔가를 캐낼 수 있을 것 같았어.<BR>그 사건을 계기로 수사팀은 그 조직의 근거지를 얼마 동안 출입할 수 있었거든.<BR>모두들 입을 열기를 꺼려하고, 많은 부분에서 제한되긴 했지만 어느 정도 정보를 얻어낼 수 있었지.<BR>그런데 우리의 바램과는 달리 조직과의 연관성은 커녕 타살의 흔적조차 전혀 보이지 않았어.<BR>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CCTV는 그 어떤 침입의 흔적도 보여주지 못했어.<BR>족적이나 지문은 모두 마두의 것이었고....<BR>타살 흔적 하나 잡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들었고, 결국 자살로 종결되었지."<BR> <BR> <BR>박형사는 긴 한숨을 한 번 내 쉬더니 말을 이었다.<BR> <BR> <BR> <BR> <BR> <BR> <BR> <BR> <BR> <BR> <BR> <BR> <BR>"그러나 형사의 직감이라는게 있어.<BR>물증은 없었지만 타살이라는 심증을 버릴 수가 없었지.<BR>죽기 전 마지막으로 통화한 날에 마두가 한 말이 있었어.<BR>그 자식이 나를 죽일거라는 거야.<BR>무엇을 감추는지 '그 자식' 의 정체를 말하지 않는거야.<BR>게다가 처음 새벽에 그를 발견한 경비원 목격담도 우리의 심증을 뒷받침 해줬지."<BR> <BR>나는 박형사를 등지고 옆으로 누운 채 소리없이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훔쳤다.<BR> <BR> <BR> <BR> <BR>"새벽 순찰 중에 싸우는 듯한 고함 소리가 들려 그 쪽으로 달려갔는데, 한 남자의 비명 소리가 들리면서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는거야.<BR>자살을 결심한 사람은 비명을 안 질러. 마두는 분명히 누군가에게 떠밀린거야.<BR>싸우는 듯한 고함소리는 또 뭐야? 분명히 뭔 가가 있다고 확신이 섰어.<BR>그런데 이상한 건 목소리의 종류는 한 가지 뿐이었다고 경비원이 말한 부분이야.<BR>뭐 귀신 놀이도 아니고, 미친 것도 아니.."<BR> <BR>"누가 죽였는지 알아요."<BR> <BR>갑작스런 나의 나즈막한 목소리에 박형사가 하던 말을 멈추었다.</P> <P>그리고 다시 조용히 입을 열었다.<BR> <BR> <BR> <BR> <BR> <BR> <BR> <BR> <BR>"너 지금 뭐라 그랬냐?"<BR>"마두라는 사람 누가 죽였는지 알고 있다구요."<BR>박형사는 나의 팔뚝을 잡아당겨 돌아 누운 나를 바로잡았다.<BR> <BR> <BR> <BR> <BR>"너 지금 그 말 사실이야?"<BR>흥분한 듯한 박형사의 눈빛이 느껴졌다.<BR> <BR> <BR> <BR>"누구야?"<BR>"어제 그 놈들을 죽인 놈이예요."<BR>"그럼 어제 그 놈들이 지들끼리 치고 받은 게 아니었어? 외부 침입 흔적이 전혀 없던데...<BR>족적이나 지문도 그 놈들 것 밖에 없었고..."<BR>"누군지 모르는데, 사람이 아니었어요."<BR>"뭐?"<BR> <BR>나는 길게 심호흡을 한 뒤 긴 얘기를 꺼냈다.<BR> <BR> <BR> <BR> <BR>"어제 형사님과 헤어져 집으로 향하던 중 그 쪽지의 번호로 전화를 했어요...."<BR>나는 어제 오후부터 지금 이 병원에서 눈을 뜰 때까지 기억하고 있던 일을 박형사에게 낱낱이 얘기했다.</P> <P>내가 말을 하고 있는 동안 박형사는 한 번도 나의 말을 끊지 않았다.<BR>아니 끊을 수가 없었다.</P> <P>말하는 나도 황당무계한 소리로 들리는데 박형사는 오죽하겠는가?<BR>멍하니 넋을 놓고 들을 뿐이었다.<BR> <BR> <BR> <BR> <BR> <BR>"...그 쪽지에 적인 글씨체가 제 것이잖아요.<BR>저는 글씨를 쓴 기억도 없고, 그 내용이 뭔지도 몰라요.<BR>어떻게 보면 저도 그 놈한테 당한거죠.<BR>귀신에 홀린 거예요."<BR> <BR>내 얘기가 끝났음에도 박형사는 한 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BR>나 또한 박형사의 대답을 기다리느라 입을 다물고 있었다.<BR> <BR> <BR> <BR> <BR> <BR>"너...진짜로 귀신 볼 줄 아나보다....."<BR>한 동안 침묵을 유지하던 박형사가 생각만 해도 소름끼치는 말을 내뱉았다.<BR> <BR>"제 예감이 틀리길 바라지만, 왠지 이 걸로 끝날 것 같지가 않아요."<BR>박형사는 무거운 표정을 짓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BR> <BR>"오늘은 일단 여기까지 얘기하자.<BR>조금 전에 의사가 너 다친 게 아니라 잠이 든거라고 하더라.<BR>퇴원해도 된다는 얘기지. 원하면 집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줄게."<BR> <BR>"괜찮아요. 그냥 버스타고 갈게요. 사람 많은 게 좋아요.<BR>요즘은 사람하고 같이 있다는게 얼마나 행복한 건지 새삼 깨닫고 있어요."<BR>"그래. 알았다. 나중에 보자."<BR> <BR>박형사가 나간 뒤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BR>많은 사람들이 있기를 바랬지만 버스 안에는 빈자리가 여러 군데 보였다.</P> <P>창가 자리에 앉은 나는 오후의 나른한 햇살을 즐겼다.<BR>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데, 그 생각의 종류가 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머리가 텅빈 느낌이었다.</P> <P>왜 내가 지금 이곳에 있는지, 어쩌다가 이런 이유 모를 사건에 휘말리게 되었는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P> <P>지금 단 한가지 나의 바램은 이 악몽같은 사건의 고리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것이다.<BR>낮은 고도로 떠 있는 태양 빛이 내 두 눈을 비추고 있었다.</P> <P>노란빛 광원 속에 붉은빛이 간간히 섞여 아른거렸다.<BR>서서히 졸음이 쏟아지는 것처럼 몸이 나른해졌다.</P> <P>졸음 때문인지, 너무나 밝은 눈부심 때문인지 주변 사물이 흐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BR>마치 안개가 긴 것처럼...<BR> <BR> </P> <P>주변이 뿌옇게 흐려졌다.<BR>그 때 누군가가 내 옆자리에 앉았다.</P> <P>손자를 데리고 탄 허름한 차림의 할아버지였다.<BR>5살 정도로 보이는 하얀 빵모자를 쓴 그 꼬마는 너무나도 귀엽고 천진난만해 보였다.</P> <P>다소곳이 손을 모으고 앉아 있는 노인의 앞에 서서, 꼬마는 연신 그의 손등을 두드리며 장난질을 해댔다.</P> <P>손자의 귀여운 장난에도 할아버지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다른 곳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P> <P>내가 쳐다보고 있는 것을 느꼈는지 꼬마가 나를 보며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BR>그리고 나 또한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BR> <BR> <BR> <BR> <BR> <BR>"정말 귀여운 손주였네요."<BR>나의 과거형이 섞인 말에 노인이 고개를 돌려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BR> <BR> <BR> <BR>"할아버지와 놀았던게 가장 재미있었대요."<BR>계속 나를 응시하던 노인의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졌다.<BR>그리고는 이내 그의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BR> <BR> <BR> <BR>"항상 할아버지와 같이 다닐거래요.<BR>놀이터도 가고, 공원도 가고, 버스도 타고, 지하철도 타고......."<BR> <BR>나는 아이의 말을 그 노인에게 계속 전달해 주었다.<BR>아이는 입을 열지 않고 눈 빛으로 나에게 말하고 있었지만 나는 모든 것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BR> <BR> <BR> <BR> <BR>"만득? 만득이? 응..그래 만득이 아저씨네 가게 가서 물고기 구경하는 게 젤 재밌대요. 거기 가자는데요?"<BR> <BR>나의 말에 갑자기 노인은 두 손을 꾹 움켜쥐고 닭똥같은 눈물을 떨구었다.<BR>할아버지의 울먹임에 손주 또한 표정이 어두워졌다.<BR> <BR> <BR>"할아버지...손주가 울지 말래요..."<BR>나의 말에도 불구하고 노인은 쥐어짜 듯 연신 눈물을 쏟아냈다.<BR>이젠 그냥 봐도 사람과 혼령을 알아 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BR> <BR> </P> <P>하얀 빵모자 밑으로 드러나 보이는 민머리는 꼬마가 어떤 이유로 죽었는지 말해주고 있었다.<BR>노인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BR> <BR> <BR> <BR> <BR>"고맙네...젊은이...."<BR>연신 눈물을 훔치던 노인은 조용히 웃옷 주머니에서 상표가 떨어져 나간 갈색 드링크제 병을 꺼내 들었다.</P> <P>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BR> <BR> <BR> <BR> <BR>"느즈막하게 결혼 한 아들 놈 부부가 그 핏덩이를 남기고 사고로 죽었다오....<BR>혈육이라고는 그 핏덩이 하나 남았었는데...몇 년 뒤 그 놈마저 몹쓸 병에 걸려 치료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죽었다오.<BR>그 어린 것이 무슨 죄가 있다고...큭큭큭..자식 새끼 다 보내고 이 늙은이가 살아서 뭐하겠소?<BR>..큭큭"<BR> <BR>"할아버지...그래서 죽으려고 하신 거예요?"<BR> <BR>나의 물음에 노인은 말을 잇지 못했다.<BR> <BR> <BR> <BR> <BR> <BR>"이렇게 귀여운 손주가 할아버지 곁을 떠나지 못하고 지켜주고 있는데....할아버지 그러시면 안되요. 할아버지...이 손 잡으세요. 이게 할아버지 손주의 손이예요."<BR> <BR>나는 꼬마의 손을 집어들어 할아버지의 손바닥에 다소곳이 올려 놓았다.</P> <P>노인은 내 손을 몇 번 어루만지더고 무엇인가 느껴지는지 한 손에 빈 공간을 만들어 손가락을 오무렸다.</P> <P>그리고는 입에 힘을 주어 굳게 다문 채, 또 다시 진한 눈물을 몇 번 쏟아냈다.<BR>몇 번에 걸친 나의 위로에 노인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작별인사를 했다.<BR> <BR> <BR> <BR> <BR>"고맙네. 젊은이..누군지 모르지만 정말 고맙네. 다시 집으로 돌아가겠네..."<BR>다른 이가 보면 우스꽝스러워 보일지 모르지만, 노인은 손주가 서 있을 자리를 내려다보며 무슨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P> <P>노인의 손을 잡고 있던 꼬마가 나를 뒤돌아 보고는, 또 한 번의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P> <P>나도 가볍게 손을 들어 인사를 하고는 버스에서 내려 멀어져가는 그들을 계속 지켜보았다.<BR> <BR> <BR> <BR> <BR> <BR>"잘 지내렴.."<BR>귀신도 종류가 있구나.</P> <P>저런 귀신만 만나면 좋으련만...<BR>이젠 나의 이런 능력을 내 스스로 받아들이는 듯 했다.<BR>그 때 내 휴대폰의 요란한 진동음이 느껴졌다.<BR> <BR> <BR> <BR> <BR> <BR> <BR>"여보세요?"<BR>"나 박형사야."<BR>"예...왜요?"<BR>"너 나하고 이번 사건조사 한 번 할래?"<BR>갑작스런 그의 제안에 잠시 머뭇거렸지만 나도 이 사건의 내막을 모두 알고 싶었다.<BR>그리고 경찰하고 같이 있는 것이 좀 더 안전한 것이 아닌가?<BR> <BR> <BR> <BR>"제가 꼭 필요한가요?"<BR>"사실은 니가 필요한 게 아니라 니 능력이 필요해"<BR>"좋아요!! 하겠어요!!"</P> <P> </P> <P>"오늘은 집에 가서 쉬어라. 그리고 내가 내일 오전에 데리러 가겠다."<BR>"알았어요."<BR> <BR>나는 왠지 설레기도 하면서 두렵기도 한 묘한 기분을 안고 집으로 향했다.<BR>오피스텔에 도착하자 무거운 피로감이 몰려왔다.</P> <P>며칠 동안 비워 둔 집이라 낯선 냄새까지 나는 듯 했다.<BR>나는 취직을 핑계로 부모와 떨어져 산다.</P> <P>취직이라고 해봤자 배운게 없고 얼굴로 먹고 살다보니 직업이 다 거기서 거기였다.<BR>술집 써빙, 나이트 클럽 웨이터, 호스트빠....<BR> </P> <P>그나마 내세울만한 직업은 역시 바텐더였다.<BR>그러나 그것도 잠시.......<BR> </P> <P>일을 할 만하면 여자들이 달라붙어 제대로 한 우물을 팔 수가 없었다.<BR>모든 용돈이나 경비를 여자들이 대주니, 힘들게 일을 할 이유가 없었다.</P> <P>그런 것들은 자꾸 나를 나태하게 만들었고, 술과 여자에 찌들게 만들었다.<BR>나를 잡으려고 일부러 임신한 여자들도 있었다.</P> <P>그 때마다 나는 계속 만나준다는 조건으로 중절수술을 권했고, 그 수술이 끝나면 가혹하게 차 버렸다.</P> <P>사람들은 나를 쓰레기라고 부를 것이다.</P> <P>그렇다. 나는 쓰레기에 가깝다.</P> <P>그런데 아직도 여자들은 겉모습이 멋진 상자에 담긴 나 같은 쓰레기를 좋아한다.<BR> <BR> </P> <P>어떤 이는 멋진 상자의 모습에 반해 다가와서는 그 속을 열어보고 쓰레기라는 것을 알면 도망하고,<BR>어떤 이는 담겨 있는 것이 쓰레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멋진 상자에 반해 그 안의 쓰레기까지 좋아한다.</P> <P>내 주위에 모인 여자들이 예쁜 나비떼인지, 아니면 더러운 파리떼인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 모든 것들이 귀찮고 힘들게 느껴진다.</P> <P>내가 사고 난 것도 알고보면 나이트에서 꼬신 년이 내 음주운전을 막지 않았기 때문이다.<BR>생각이 있는 년이라면 그럴 수가 없다.<BR> <BR>우라질 년.....<BR> <BR> <BR> <BR> <BR> <BR> <BR> <BR>집이 너무 조용했다.<BR>나는 리모콘을 들어 TV를 켰다.</P> <P>늘 보는 스포츠 채널에서 야구 중계를 하고 있었다.<BR>나는 입고 있는 옷을 모두 벗어버리고, 욕실로 들어갔다.</P> <P>샤워기를 틀고, 샤워기 옆에 있는 세면대 위의 거울을 바라보며 물이 뜨거워지기를 기다렸다.<BR> <BR> </P> <P>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가관이었다.</P> <P>그러고보니 3일 만에 처음으로 보는 내 얼굴 같았다.<BR>오른쪽 이마의 반창고는 간신히 꿰맨 자국을 감추고 있었고, 왼쪽 광대뼈는 아직도 큼지막한 멍자국으로 덮여 있었다.</P> <P>아랫입술도 살짝 찢어져 핏기가 보였고, 눈 밑의 검 푸른 다크써클은 오랜 시간동안 내가 영양분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했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BR> <BR>나는 조심스럽게 이마의 반창고를 떼어냈다.<BR>샤워를 해야 되기 때문이다.<BR> <BR> </P> <P>그런데 젠장....<BR>그 만신창이가 된 얼굴에 꿰맨 자국까지 드러나자, 내 얼굴은 거의 프랑켄슈타인처럼 보였다.<BR> <BR> <BR> <BR> <BR> <BR> <BR>"헐...신발. 당분간 여자 만나기는 글렀군."<BR> <BR>나는 세면대에 차가운 물을 채웠다.<BR>정신을 차리고 싶었다.</P> <P>물이 어느 정도 차자 나는 그 곳에 얼굴을 담갔다.<BR>숨을 참으면서 온갖 잡념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었다.</P> <P>꿰맨 상처 속으로 물이 침투하는지 가끔씩 따끔거렸다.<BR>30여초가 지났을까?<BR> <BR> <BR> <BR> <BR> <BR> <BR> <BR>"푸우~~"<BR>나는 고개를 들어 폐 속에 쌓인 고농도의 이산화탄소를 내뱉았다.</P> <P>어느 새 샤워기에서 나오는 증기가 세면대 위의 거울에 안착했다.<BR>뿌옇게 흐려진 저 거울 건너 편에 못난 내 얼굴이 있다.</P> <P>차라리 이런 내 얼굴은 안 보는게 나을지도 모른다.<BR>나는 잠시 허탈한 쓴 웃음을 짓고는 왼손을 들어 거울을 한 번 문질렀다.</P> <P>닦이지 않는다.</P> <P>다시 문질렀다.</P> <P>그래도 닦이지 않는다.<BR> <BR>갑자기 심장이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BR>팔다리가 후들거렸다.<BR>나는 미친 듯이 두 손으로 거울을 문질렀다.<BR>그제서야 거울이 왜 닦이지 않는지 알 수 있었다.<BR> <BR> <BR> </P> <P>이건 안개다.</P> <P>그런데 샤워기의 증기가 만든 안개가 아니다.<BR>공기 중의 그 물방울은 소름끼치도록 차가웠다.<BR> <BR>그리고 조금씩 거울 속의 뿌연 안개가 엷어지더니, 그 속에서 연쇄살인마 같은 그 녀석이 모습을 드러냈다.</P> <P>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P> <P>나는 거울을 문지르던 두 손을 거울로부터 서서히 떼어냈다.<BR>10개의 모든 손가락이 경기를 일으키며 떨리는 것이 눈에 보였다.</P> <P>손가락 사이로 거울 속의 섬뜩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 녀석이 보였다.<BR>그리고 나에게 공포감을 심어주려는지 자신의 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였다.<BR> <BR> <BR> <BR> <BR> <BR>"강아지......"<BR>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욕설과 함께 나는 허공에 떠 있는 내 두 손을 불끈 쥐었다.<BR>그리고 그 놈을 향해 괴성을 지르며, 오른 주먹을 날렸다.<BR> <BR> <BR> <BR>"강아지야!!!!!!!!!!"<BR>강력한 파열음과 함께 거울은 자신의 몸을 수 십조각으로 나누었다.<BR> <BR> <BR> <BR>"죽여버리겠어!! 이 강아지!!"<BR>나는 잘게 쪼개진 거울 위로 연속적으로 주먹을 날렸다.<BR> <BR> <BR> <BR>"신발 놈!!! 널 꼭 찾아내서 죽여버리겠어!! 내 무서워할 줄 알아? 이 강아지야!!!"<BR>나는 울부짖음에 가까운 욕설을 날리며, 주먹질을 멈추지 않았다.<BR> <BR> </P> <P>어느새 거울의 중앙부에 모인 핏물들이 주욱 흘러내리며, 세면대 속의 물에 빨간 색을 입히기 시작했다.<BR> <BR> <BR> <BR>"이 강아지...신발 놈..."<BR>주먹질을 멈추자 손이 아려왔다.<BR> <BR> <BR> </P> <P>나는 분쇄된 거울에 머리를 박고 거친 숨을 내쉬었다.<BR>그와 동시에 콧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작은 방울이 핏물 위로 떨어졌다.</P> <P>세면대 속의 작은 거울 파편들이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붉은색의 광택을 내뿜고 있었다.<BR> <BR> <BR> <BR> <BR> <BR> <BR>"니 놈이 어떤 놈인지 반드시 찾아내겠어....."<BR>나의 속삭이는 듯한 굳은 다짐의 말은 거실의 TV소리보다 작게 들렸다.</P> <P>"너 손 왜 그래?"<BR>붕대를 감고 있는 내 오른손을 본 박형사가 물었다.<BR> <BR> <BR> <BR>"어제 그 자식이 나타나서 신나게 두들겨 패 줬어요."<BR>"이젠 귀신하고 싸울 정도군. 내공이 장난 아니네...허허.."<BR>"웃지 마세요."<BR> <BR>나의 진지한 부탁에 박형사는 재빨리 입을 닫았다.<BR>박형사는 뒷좌석에 앉아 있는 나에게 운전하고 있는 형사 한 명을 소개했다.<BR> <BR> <BR> <BR>"아참, 김나연이 사체 찾으러 오갈 때 봤지? 강형사라고 우리 강력팀 최고 몸짱이지."<BR>운전을 하고 있는 그는 전방을 주시한 채 잠시 오른손을 들어 나에게 인사를 했다.<BR> <BR> <BR> <BR>"그런데 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BR>"..........."<BR>박형사는 잠시 말을 아꼈다.<BR> <BR> <BR> <BR>"지금 어디 가냐니까요?"<BR>"내가 아는 무당에게 가는거야."<BR>"뭐요?"<BR>"니가 힘들겠지만 귀신을 불러낼거야."<BR>나는 순간 허탈감이 밀려왔다.<BR> <BR> <BR> <BR> <BR>"젠장....필요하다는 게 이거였어요? 귀신 좇아다니면서 수사하는게 아니고?"<BR>"니 주변에서 죽은 사람이 몇 명인 줄 알아? 좋든 싫든 넌 지금 사건의 중심에 있어.<BR>힘들더라도 협조해야 돼.<BR>게다가 넌 우리가 조사하는 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귀신을 둘이나 봤어.<BR>그것들을 불러내서 정보를 알아낼거야. 만일 안되면 몸으로 뛰어야지."<BR> <BR>"후......알았어요."<BR>"그리고 김나연이....국과수에서 연락왔는데 살해되었대..."<BR>"맞잖아요. 내가 살인이라고....."<BR>"직접적인 사인은 교살이야. 그런데 혈액에서 염산페치딘이 극소량 검출되었어."<BR>"염산페치딘? 그게 뭐예요?"<BR>"주로 말기 암환자에게 투여하는 강력한 진통제야.<BR>그런데 중독성이 필로폰보다 서너배나 강해서 병원에서도 관리를 철저히 하는 약품이지.<BR>그런데 어떻게 그게 김나연 몸에서 발견되었느냐가 문제야.<BR>아마 김나연도 우리가 조사하는 마약조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거야."<BR> <BR>이 순간 나는 더 궁금한 것이 있었다.<BR> <BR> <BR> <BR> <BR> <BR> <BR> <BR>"그런데 지금 만나러가는 무당은 누구예요?"<BR>"옛날에 우리에게 크나큰 상처를 주고, 사건을 하나 해결해준 무당이야."<BR>"그 사건이 뭔데요?"<BR> <BR>박형사는 잠시 전방을 주시한 채 뭔가 생각을 정리하는 듯 말을 아꼈다.</P> <P>그리고 잠시 후 긴 얘기를 꺼냈다.<BR> <BR> <BR> <BR> <BR> <BR> <BR> <BR>"3년 전에 반지하 방에서 화재가 발생했어.<BR>그리고 2구의 어린이 시체가 발견되었지.<BR>처음엔 단순 실화로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어.<BR>소방관 얘기로는 처음에 출동했을 때 문이 밖에서 잠겨 있었다고 했어.<BR>잠근 사람은 두 아이의 엄마였어.<BR>그 여자는 남편과 사별하고 식당일을 나가면서 5살과 7살 난 두 아이와 함께 어렵게 살고 있었지.<BR>우리는 사고사가 아닌 타살로 가닥을 잡고 유력한 용의자로 엄마를 지목했지.<BR>아이의 엄마는 거의 반실성한 상태였어. 물론 범행도 급구 부인했고...<BR>아이들이 죽은 슬픔도 감당하기 힘든데 자신을 범인으로 몰다니 너무나도 원통하고 억울하다는거야.<BR>왜 문을 걸어 잠궜냐는 질문에... 평소 집 앞의 도로에 아이들이 뛰쳐나와 놀기 때문에 자리를 비울 때는 잠깐씩 잠그고 간다고 하더군.<BR>요리조리 우리의 심문을 피해가는 것 같았는데 결정적인 증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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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1/15 08:30:25  112.158.***.116  뒤자이넘  243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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