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대... 많은 시간을 필리핀에서 보냈습니다.
한해를 정리하며 앨범을 뒤적거리다가 몇몇 가지 그곳에서의 일들이 떠올라 글을 올립니다.
(국내가 아니니 별 문제가 될 것 같지 않기에 실명을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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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필리핀의 세부라는 도시에 처음 발을 딛은 것은 정확히 11년 전입니다.
지금이야 많이들 다녀 오기에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겟지만 그 때만 하더라도
몇몇에게만 알려진 정도의 관광지였기에 관광객도 그다지 많지 않았고,
거주하는 교민이나 가이드, 유학생 또한 많지 않았습니다.
현지인들이 사는 초가집 같은 빈민가나 으리으리한 부촌을 제외하면
한국인들이 살만한 수준의 집들은 뻔했기에 저 역시 "오아시스"라는 빌리지에 입주하게 되었습니다.
말이 좋아 빌리지지 4층짜리 건물에 우리 나라의 원룸 오피스텔 같은 구조로 한층에 16집 가량씩
12동 정도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가구 수로만 따지면 700가구 정도나 되지만 한 층에 한 집도 입주가 되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고
한동에 사람이 사는 집은 10가구가 되지 않았습니다.
지인도 연고도 없던 터라 조언을 구하기도 마땅치 않았던 터라
입구에서부터 3번째 동, 3층, 7번째 집을 계약을 했습니다.
1층에 두 가구,2층에 한 가구, 3층 저희 집,4층엔 아예 입주자가 없어서 좀 무섭기도 했지만
사람이 산다고 해도 왕래를 하며 친하게 지낼 것 같진 않았기에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전력 사정이 좋지 않은 데다가 비까지 자주 내리니 밤이고 낮이고 비만 오면 단전이 되고
아는 사람도 없으니 나가 놀지도 못 하고... 수감자와 같은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저희 동 2층 저희집 바로 아래에 제 또래의 가이드A가 산다는 것을 알게 되고
부쩍 가까워졌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이 한번 오면 자기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고
가끔 밤이면 찾아와 저희 거실 소파에서 자고 가기도 하고...
딱히 하소연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눈치로 보아 저희집에 오지 않는 날은
친구네로 가서 자는 것 같더군요...
A의 친구들과도 안면이 생겨 갖게 된 술자리...
곤죽이 되도록 술을 마시고도 한사코 집에 가지 않으려는 A에게 들은 섬찟한 이야기...
실없는 사람으로 보일 것 같아 여태 말 못했지만
자신의 집에서 귀신이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자다가 섬뜩한 느낌이 들어 깨면 침실 구석에 검은 옷을 입은
현지인 여자가 멀뚱히 쳐다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2개월 선불+ 4개월 보증금을 조건으로 1년 계약을 했던 A는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면
반년치 집세를 몽땅 떼이게 생겼으니 이사를 하지도 못하고 밤이면 남의 집을 전전하며
생활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친구들이 쏟아놓은 비방 중 초와 동전을 올린 쌀그릇을 집안 구석구석 놓아 두는 방법이
통했는지 A는 한동안 한밤중에 저희 집이나 친구네까지 맨발로 뛰어 오는 일은 없었습니다.
일주일 정도가 지난 날이었습니다.
기절할 듯한 얼굴로 뛰어와서 새벽까지만 있다가 날 밝으면 짐챙겨서 나간다는 A...
그날 새벽 짐을 챙긴 A는 그 길로 보증금과 선불로 걸었던 돈을 모두 포기하고 그 집을 나갔습니다.
며칠 후 만난 A의 이야기...
께름측하긴 하지만 일단 눈에 보이지 않으니 집에 꼬박꼬박 들어가 잠을 잤던 모양입니다.
잠이 어슴푸레 들 무렵 침대가 요동을 치기에 잠결에...
"지진인가?"
뱉어 놓고 나니 정신이 들면서 그의 집은 2층이고 지진이라고 해도 침대가 흔들릴 정도로
강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흔들리는 침대 다리...
검은 옷을 입고 열심히 침대 다리를 흔들던 그녀는
"지진 아니야!"
"한국말로 그래? 지진 아니라고?"라는 저의 질문에
A는 "그 생각을 못 했네.그 여자가 말을 할 때마다 마음으로 소리가 들렸던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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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가 이사한 후 보름 후 쯤인가 한국인 신혼 부부가 들어와서 딱 닷새 살고 이사하고
한달 새 두세번의 주인이 바뀐 뒤
다시 한달 후 쯤 중국인 챙씨가 건물 입구에서부터 별의별 부적과 장식물들을
붙이고는 들어와 집앞에 매일 향을 피우며 살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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