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span style="font-size:9pt;">*이하 존칭 생략</span></div> <div><br></div> <div>때는 바야흐로 05년 초여름인지 초가을인지.</div> <div>내가 적을 두고 있는 부대는 반기마다 근처에 주둔한 미군과 연합 훈련을 했다.</div> <div><br></div> <div>기본적인 부대 이동과 숙영지 편성, 한 두 차례의 대항전.</div> <div><br></div> <div>야산에서 이루어지는 마일즈 훈련은 사실 훈련이라고 보기에는 애매했다.</div> <div>개인 당 10발을 들고 탄피 사라질까 안절부절하는 우리 부대와</div> <div>무겁다는 이유로 탄창에서 공포탄을 빼 야산에 투기하고, M249를 풀 오토로 갈기는 형씨들하고 상대가 될 리 없었다.</div> <div><br></div> <div>그러나 바디 랭귀지로 담배를 바꿔 피우고 서로의 전투식량을 나눠먹는 경험은 상당히 즐거운 축에 속했다.(밥에다 새알 비빈 친구 미안... 미리 말해줬어야 했는데...)</div> <div>그렇기에 (가)족같은 선임들하고만 함께 굴러야 하는 다른 훈련들보다 이 훈련은 더 즐거웠다.</div> <div><br></div> <div>이 훈련의 백미는 모든 일정이 끝나고 벌어지는 뒷풀이였다.</div> <div>반기마다 한 번이니, 한 번은 우리 부대에서, 한 번은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공군 부대에서 뒷풀이를 했다.</div> <div>이 뒷풀이는 살짝 체육대회의 성격을 띠었는데, 나는 미국인이 족구하는 모습을 그때 처음 보았다.</div> <div><br></div> <div>전반기 훈련은 우리 부대에서의 두루치기 파티로 마무리되었다.</div> <div>거대한 트럭에 실려온 미군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아내가 한국인이라는 개리슨 상사의 ‘먹고 죽자!’ 건배사 한 방에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div> <div>행보관님이 가져온 말통은 화수분처럼 막걸리를 쏟아내었고, 취사병은 연신 밥판으로 찐 두부와 두루치기를 만들어야 했다.</div> <div>(그리고 나는 술에 떡이 되어 간부 화장실에 처박힌 뒤, 나를 발견한 인사장교에게 ‘아 형, 쫌만 기달려봐.’라고 말했다. 라고 하더라. 뒷일은 상상에 맡김)</div> <div><br></div> <div><span style="font-size:9pt;">문제는 후반기 뒷풀이에서 발생했다.</span></div> <div>우리는 튜브에서 갓 짜낸 초록물감으로 물들인 것 같은 활동복을 입고 미군부대를 찾았다.</div> <div>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건물에 들어간 선임은 ‘와 시X 자판기에서 스키틀즈를 파네??’라고 외치며 우리 군이 왜 미군을 따라갈 수 없는지 단박에 이해했다.</div> <div><br></div> <div>체육 경기가 끝나고, 우리는 미군이 준비한 식사를 하기 위해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전역한 선임들로부터 ‘야, 그거 피자 존내 큰 거 주니까 꼭 가라.’라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우리는 그 순간만큼은 우리의 주적을 북한군이나 간부가 아니라 피자로 설정했다.</div> <div><br></div> <div><span style="font-size:9pt;">미군의 피자를 보았을 때, 우리는 서양제 시청각 자료를 볼 때와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span></div> <div>그러나 혈기왕성한 20대 초반의 청년들에게, 피자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개인 당 두 쪽이라는 할당량은 가혹하기 그지없었다.</div> <div><br></div> <div>모두가 2% 부족한 양에 아쉬움을 삼키고 있을 때, 피자를 나눠 주던 카투사 한 명이 ‘피자 남았으니까 더 가져가세요!’라고 외쳤다.</div> <div>이미 우리는 ‘니가 갈래, 내가 갈까?’의 위계질서를 체득한 군인이었기에, 나다 싶은 후임들은 일제히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갔다.</div> <div><br></div> <div>그 결과, 피자를 쌓아뒀던 테이블 앞은 마치 좀비 영화를 방불케 하는 아수라장이 되었다.</div> <div>몇 해가 지난 뒤 월드워Z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거기서는 좀비의 발생지가 평택으로 나온다.</div> <div>아마 여남은 피자를 쟁탈하기 위해 달려드는 우리 군인들에서 모티브를 얻은 건 아니었을까.</div> <div><br></div> <div>어쨌든 장비는 딸려도 군기는 최고라며 어깨를 으쓱하던 작전 장교는 순식간에 좀비로 화한 부대원들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div> <div>평소 다른 장교들에 비해 성격이 유순한 편이었던 그는 불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둠가이로 변했고, 우리는 손에 쥔 피자를 채 다 먹지도 못한 채 육공에 올라야만 했다.</div> <div><br></div> <div>화가 나서 벌개진 건지, 아니면 창피해서 벌개진 건지, 하여튼 작전장교는 미군 관계자에게 황급히 인사를 하고 선탑 자리에 올랐다.</div> <div><br></div> <div>우리는 그 일로 군장을 돌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 이후로 미군들이 우리 부대에 오는 일은 있어도 우리가 미군 기지에 가는 일은 없었다.</div>
장르소설가
'이력서의 경력란에 마왕이라고 적을 수 있게 되었다.' 연재 중.
북큐브 : <a href="http://www.bookcube.com/storycube/premium/serial_split_list.asp?serial_num=se1914">http://www.bookcube.com/storycube/premium/serial_split_list.asp?serial_num=se1914</a>
문피아 : <a href="http://novel.munpia.com/53480">http://novel.munpia.com/53480</a>
조아라 : <a href="http://www.joara.com/literature/view/book_intro.html?book_code=1082663">http://www.joara.com/literature/view/book_intro.html?book_code=1082663</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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