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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military_30284
    작성자 : aeio
    추천 : 77
    조회수 : 8958
    IP : 121.173.***.75
    댓글 : 40개
    등록시간 : 2013/09/13 14:26:26
    http://todayhumor.com/?military_30284 모바일
    부대에서 화투치다 패가망신한 선임.
     
    어쩌면 시작은 사소한 일이었다. 부식선탑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가끔씩 나가는 선탑은 귀찮은 일이었지만 돌아오는 길에
    슈퍼에 들려 군것질을 하고 올수 있다는 소소한 즐거움이 있었다. 그날도 항상 들르는 슈퍼에 내려 먹을것을 고르던 도중
    내 눈에 띄는 물건이 있었다. 그건 바로 화투였다. 군생활의 지루함 때문이었을까. 난 아무생각 없이 화투를 집어 들었고
    이 작은 화투장하나가 어떤 후폭풍을 몰고 올지 그땐 미처 몰랐다.
     
    처음엔 다들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은 그들조차 모르게 점점 도박의 늪으로 한발 한발을
    내딪고 있었다. 처음엔 단순한 손목맞기나 딱밤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샌가부터 담배,화장지,부식 등 보급품을 걸고
    화투를 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나의 승률은 80프로에 육박했다. 사실 군 입대전 야식내기 화투에 미쳐 친구들과 수많은
    밤을 새며 화투를 쳤던 나이기에 순진한 군인들 등쳐먹기란 앰비션 cs먹기보다 쉬운 일이었다.
     
    소대에 더이상 상대가 없자 나는 원정게임을 다니기 시작했다. 다른 소대를 돌아다니며 화투를 치다보니 어느새
    내관물대는 더이상 공간이 없을 정도로 보급품들로 가득 차 있었고 주변인들이 나를 부르는 호칭은 3소대 아귀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팔도를 유랑하듯 다른 소대 내무실을 돌아다니다 어느날 휴지가 없어 화장실에 못가는 후임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내 관물대에는 샤워하고 몸을 닦아도 남을만큼 휴지가 넘쳐나는데 그깟 똥 닦을 휴지가 없어
    쩔쩔대는 후임의 모습을 보며 나는 이제 손을 뗄 데가 되었구나라고 느꼈다. 하지만 이미 발을 빼기엔 너무 깊숙히
    들어가 버린 후였다. 모든 소대를 거의 제패한 후 나에게 도전하는 이가 있었다. 나와는 몇달 차이 안나는 옆소대 고참이었는데
    어느정도 친다는 자신감에 나에게 도전해 왔지만 결국은 나에게 도륙난 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혼자서 다른소대를 돌아다니며 무사수행을 한 후 나에게 재도전 해왔지만 이미 난 손을 씻은 후였다.
     
    그는 끈질긴 집념의 소유자였다. 시도때도 없이 나를 찾아다녔고 도망도 다녀보고 역정도 내보았지만 쉽사리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 그의 모습은 테이큰의 리암니슨을 보는 듯 했다. 복수심에 번들거리는 그의 눈빛은 니가 한판만 더 한다면 널 찾지 않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아일 파인 쥬. 앤 오링 유. 라고 말하는 듯 했다. 하지만 다시 화투에 손을 대면 쉽사리 끊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나역시 거절에 거절을 계속했고 어느순간부터 그는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포기한 듯 보였지만 그는 포기를 모르는
    독사같은 인간이었다. 내가 그렇게 요지부동이자 그는 내가 아닌 내 주변인들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우리 분대 후임들을 털어먹기
    시작한 것이다. 독이 오를대로 오른 그에게 후임들이 하나 둘 씩털리기 시작했고 결국은 나도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결국 그렇게 염원하던 나와의 한판이 결정되었고 복수의 칼을 갈던 그는 제법 파격적인 제안을 해왔다. 다음 달 연초 보급날에
    보급연초 전부 다 걸고 한판으로 끝내자는 담대한 제안이었다. 나 역시 자신이 있었기에 그 제안을 받아 들였고 우리들은
    보급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보급날이 되기 전 내무실에서 화투를 치다 보급관님에게 적발되어 화투를 압수당했고
    이 세기의 대결은 이렇게 흐지부지 되는듯 했다.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보급이 나오는 날이 됐지만 이미 나는 대결에 대해서 모두 잊은 뒤였다. 그런데 그 고참이 나를 찾아왔다. 그는 조용한 곳으로
    가자며 나를 불러냈다. 그가 날 데리고 향한곳은 보급창고였다. 어떻게 보급계원을 구워삶았는지 안에는 이미 보급계원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는 약속대로 한판 치자는 말을 꺼냈다. 나는 화투도 없는데 무슨수로 치냐고 물었고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그가 꺼내든 것은 무려 손으로 그린 화투였다. 직접 한땀한땀 그림까지 그려넣은 그 종이장들을 보며 내가 든 생각은 그냥 선탑가서
    하나 사오면 될 것을 역시 무식하면 손발이 고생이구나... 였다. 그리고 보급계원이 미리 챙겨온 물건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담배3보루. 최상품이었다. 뭔가 어두운 창고에 앉아 담배를 쌓아놓고 종이로 그린 화투를 치고 있으니 프리즌브레이크의 한장면이
    떠올랐다. 하지만 직접 화투를 제작까지 한 그의 집념에 쉽지 않은 한판이 될거란 걱정이 들기도 했다.
     
    마침내 게임은 시작되었고 나는 그 달에 하루에 담배를 한갑 씩 피울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소각장에선 한 남자의 괴성과
    찢어진 화투장들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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