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 </div> <div>군복엔 알수없는 마력이 있는듯 하다. 밖에선 멀쩡한 직장인도 군복과 개구리 전투모를 착용하는 순간 질풍노도의 시기로 <br />돌아가는가 하면 밖에선 그렇게 깔끔을 떨며 공원 벤치에도 잘 앉지않던 사람이 흙바닥에 벌러덩 뒤집어져 자연과 하나가 <br />되기도 한다. 이렇게 사회에선 멀쩡하고 순하디 순한 사람들도 순식간에 한마리 야수로 변하게 하는 마력이 존재한다. <br />아마도 군생활 동안 겪었던 고난들과 고통들이 녹아들어있고 혈기왕성한 시절을 보냈던 추억이 묻어있던 터라 <br />군복을 입는순간 그동안 사회라는 울타리에 억압되어 있던 야성과 본능이 살아 꿈틀대는걸 느껴서 그런건 아닌가 싶다. <br /><br />물론 적당한 해방감과 옛 추억에 젖는건 즐거운 일이 될수도 있겠지만 가끔 그런 혈기왕성함을 주체하지 못해 회춘하다 못해 <br />유아기로 퇴행하는 사람들이 간혹 생기곤 한다. 그리고 이런사람들 대게가 그런 퇴행현상의 증상을 예비군훈련장에서 나타내고는한다. <br />조교에게 어린아이처럼 칭얼댄다던지 똥오줌 못가리는 아이처럼 떼를 쓴다던지 하는 눈꼴시려운 장면을 연출하곤 한다. <br />다년간 예비군훈련을 받으면서 내가 겪어본 바로는 보통 예비군 1~2년차 예비군들은 조용히 있다가거나 조금 시끄럽긴 하지만 <br />웃고 넘길수 있는 정도의 수준에서 끝나곤 하는데 3년차를 넘어가면서 이런현상들이 빈번히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br /><br />난 그런 그들을 미운 3년차라 불렀다. 그 중엔 내가 아는사람들도 있었고 처음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의 공통점이 <br />있다면 세상에 진상도 그런 진상이 없다는 점이었다. 눕혀놓고 볼기짝이라도 때려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히 들게하는 그들의 모습을 <br />보며 난 적어도 나만은 저렇게 되지 말아야 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br /><br />어느덧 예비군 2년차가 지나고 나에게도 마의 3년차가 다가왔다. 찌는듯한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이었다. <br />옷장 속 깊숙이 들어가 있던 군복을 꺼내입는 순간부터 열기가 느껴졌고 전날과음한탓에 몰려온 숙취와 열기가 뒤섞여 </div> <div>불쾌지수가 마구 상승하기 시작했다. <br />나는 교양있는 문화시민이라는 말을 되뇌이며 스스로를 억눌렀지만 내 안의 진상본능이 조금씩 꿈틀대기 시작했다. <br />어린시절 시장에서 울며 드러눕던 추했던 유년시절의 기억이 떠오르고 그때 느꼇던 감정들이 조금씩 되살아 나기 시작할 때 <br />나는 이런 내 자신을 억누르고 또 억눌렀다. <br /><br />훈련장에 들어가 장구류를 받고 나올때였다. 느슨해진 수통주머니에서 수통이 떨어졌고 난 땅에 떨어진 수통을 바라보았다. <br />6.25때나 썻을법한 은빛 수통이 갑자기 너무나 무거울거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눈치채지 <br />못한듯 했고 이대로 걸어나간다면 오늘 훈련내내 내 허리를 콕콕 찌를것만 같은 수통과도 작별을 고할수 있을것 같았다. <br />그렇게 난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걸어나갔다. 하지만 그 광경을 목격한 조교는 손수 수통을 집어다 나에게 건내주었다. <br />더위때문이었을까? 첫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갑자기 우와아아앙 내꺼아냐! 라고 외치며 수통을 집어던지고 싶은 욕망이 끓어오르기 <br />시작했고 나는 이를 악물고 이 욕구를 찹아내야만 했다. 그렇게 억지미소와 마음에도 없는 감사의 말을 조교에게 전하고 나서야 <br />들끓었던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br /><br />그러던 중 유독 눈에띄는 한명의 예비군을 발견했다. 얼굴엔 난 지금 매우화가나있어. 라는 듯한 표정과 살짝이라도 건드리면 <br />바로 폭발할거 같은 표정을 담고있는 그의얼굴과는 달리 보자마자 1년차구나... 라는걸 알 수가 있었다. </div> <div>행여 손이라도 닿으면 피가 철철 솟구칠것같이 예리한 줄이 살아있는 전투복과 보는사람의 안구건강은 전혀 고려치 않은듯이</div> <div>불광장인이 죽기 전 마지막 역작으로 내놓은 듯한 전투화는 내 눈을 멀게할듯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br />어디서 그런 못된것만 배웠는지 상당히 도전적인 말투와 처음 보는 조교에게 찍찍 뱉는 반말은 나로하여금 예비군 조기교육의 필요성을 통감하게 함과 동시에 내안에서 스물스물 피어오르는 진상본능을 잠재우는데 큰 도움이되었다. 난 그를 주시했고 그의 모습을 거울삼아 그와 똑같은 과오를 저지르지 않기위해 노력하기로 했다.<br /><br />그를 유심히 살펴보자 과연 내 눈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수있었다. 그는 특급진상으로 발돋움할수 있는 역량이 엿보이는 진상꿈나무였다. </div> <div>전혀 협조할 마음이 없어보였고 장교와 동대장의 말에도 사사건건 말대꾸하며 주변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div> <div>인자해보이던 동대장의 얼굴에도 슬슬 짜증의표정이 역력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보며 내 자신을 다잡아 아무 사고없이 </div> <div>무사히 훈련을 끝마치는듯 싶었으나 나 역시 마의 3년차를 벗어날 수 없었다. </div> <div> </div> <div>훈련 중 쉬는시간 이었다. 더이상 더위와 숙취를 견디지 못하고 나는 풀숲에 벌렁 드러눕고 말았다. 그리고는 금새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div> <div>나는 잠버릇이 심한 편이다. 군대에서 어느정도 고쳐지긴 했지만 제대 후에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잠시 후 날깨우는 </div> <div>친구의 손길에 눈을 떳을 때 모든 사람들이 날 쳐다보고 있었고 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심지어는 같이 온 친구조차도 </div> <div>그동안 볼수없던 경멸의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친구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 나는 깊은 탄식을 내쉬었다. </div> <div> </div> <div>친구의 말에 의하면 내가 풀밭에 눕자마자 잠이들었고 휴식시간이 끝난고 날 깨우기 위해 다가온 친구는 내가 죽은 줄 알았다고 한다. </div> <div>이미 얼굴과 몸에 온갖 벌레들이 들러붙어 있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친구가 아무리 날 깨워도 </div> <div>난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이윽고 조교까지 합세해 날 깨우려 했지만 난 잠깐만.. 잠깐만.. 을 중얼거리며 그렇게 자연과 </div> <div>하나가 되어있었다고 한다. 더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날 잡고 흔드는 조교의 손길에 살짝 눈을 뜬 나는 그 조교를 바라보곤 </div> <div>갑자기 몸을 일으켜 역정을 냈다고 한다.. 문제는 단순한 잠투정이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조교의 얼굴을 확인한 후 반쯤 풀린 눈을 한 </div> <div>내가 너 이 개XX!!! 너 아까 내 수통 줏어준 그XX지!!! 너때문에 시X 허리가 배겨서 잘수가 없어! 에라이X 이런 망XX 시XXX ! 너때매 </div> <div>되는게 없다고! 몰라! 불꺼! 이 개XX! 라고 외치며 수통을 집어던지곤 다시 자리에 드러누웠다는 것이었다. 부끄러움에 쥐구멍이라도 </div> <div>찾아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조교를 찾아가 담배를 청하며 내가 저지른 만행에 대해 사과했고 그 조교는 웃으며 괜찮다고 했지만 </div> <div>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렇게 나 역시 미운 3년차가 되고 말았다. 뒤늦게 후회해봤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이었다.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이 </div> <div>모두 날 보며 수근대는 것 같았다. 고등학교 시절 버스 맨 뒷자리에서 졸다 날아가 안전봉에 부딪혀 앞구르기를 한 이후에 느끼는 </div> <div>최고로 부끄럽고 자괴감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 나는 교육이 끝날때 까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div> <div>하지만 나는 양반이었다. 오늘 훈련의 하일라이트는 아까 본 그 1년차였다.</div> <div> </div> <div>훈련이 막바지에 다다를 때 쯤이었다. 사격을 마치고 털레털레 교장을 내려오던 중 그 예비군을 다시 발견했다. 그 예비군은 한 장교와 </div> <div>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삼촌뻘은 되보이는 장교와 말싸움을 벌이던 그의 오만방자함은 이제 극에 달해 있었다. 한참을 얘기하던 장교는 </div> <div>대화를 포기한 듯 그에게 그냥 내려가 라고 말했고 그 예비군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그 장교에게 당신이 뭔데 반말이냐며 </div> <div>일침을 가했고 모두들 그 정도가 위험수위에 달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장교는 좋게 말하며 그를 달래려 했지만 오히려 역효과였다. </div> <div>기세가 등등해진 예비군은 더 큰 목소리로 언제봤다고 반말이냐며 언성을 높였다. 그리고 결국 그 장교는 폭발하고 말았다. 인내의 끈을 </div> <div>놓아버린 그 장교는 이 어린놈의 새X가 어디서 그딴건 배워왔냐며 속사포 같이 그를 쏘아붙혔고 예상외에 반응에 당황한 그 예비군은 </div> <div>처음의 그 기세등등함은 어디로 갔는지 어버버거리며 말을 잊지 못했다. 한마디로 말해 그는 그렇게... 쫄아버렸다. 그는 주변에 도움을 </div> <div>청하는 눈빛을 발사했지만 당연히 우리들은 그의 그런 눈빛을 철저히 외면했고 그는 그렇게 군중들 사이에 혼자가 되었다. 한참을 울분을 </div> <div>토해내던 그 장교는 곧 조교를 불러 저거 당장 퇴소조치 시키라고 예기했고 그 예비군은 당황했는지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존대말로. </div> <div>사실 그시점에서 퇴소조치를 받아도 나중에 몇시간 훈련만 더 받으면 되는 거겠지만 그는 그런 규정은 잘 모르는 듯 했다. 아마 어디 잡혀가거나</div> <div>벌금이라도 내야 하는 줄 아는 것 같았다. 순식간에 상황은 역전되어 그 상황을 어떻게든 무마해보려 노력했지만 그도 나와 마찬가지로 </div> <div>이미 엎지러진 물이었다. 그렇게 쓸쓸히 교정을 벗어나 산을 내려가는 그의 뒷모습에 이미 평정을 되찾은 그 장교는 마지막 한마디를 잊지 </div> <div>않았다. </div> <div> </div> <div>나중에 다시 봅시다. '예비군님' </div> <div> </div> <div>그렇게 모두에게 상처만 남긴 3년차 예비군 훈련이 끝나가고 있었다.</div> <div> <br /><br /><br /></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