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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menbung_22118
    작성자 : 남군입니다
    추천 : 12
    조회수 : 612
    IP : 125.178.***.14
    댓글 : 50개
    등록시간 : 2015/08/11 03:48:49
    http://todayhumor.com/?menbung_22118 모바일
    아버지, 아들, 나, 2시 30분
    옵션
    • 창작글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공부를 딱히 잘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특출나게 운동을 잘 하는 녀석도 아닙니다.

    다만 자랑할 거라고는 성격이 참 착하고 친구들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편이라 두루두루 친구들을 잘 사귀는 점이지요.


    어느날은 이녀석이 친구네 집에서 놀다 오겠다고 하길래 그러라고 했지요.

    그런데 갑자기 제 노트북을 가지고 가겠다는 겁니다. 친구와 같이 가지고 놀겠다고요. 

    이 때부터 조금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아들녀석 주변 친구들 집에는 기본적으로 어지간한 게임기나 컴퓨터 따위가 없는 집은 없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뭐 제가 휴대용 게임기를 사 준적이 없으니(집에 있는 Wii아래 위위 아래가 아들 게임기의 전부) 들고 가라고 했고

    묘한 기분 때문에 아들녀석에게 물어 친구 집의 위치를 알아 두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돌아올 시간이 된 것 같은데 이녀석이 컴백홈을 안하네요.

    연락용으로 사준 핸드폰은 집에 놓고 간 것 같고 하는 수 없이 알려준 그 집으로 아들을 찾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알려준 집이라는 곳이 좀 이상하더군요.

    우리 동네에 이런 데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낡고 허름한 단독주택의 반지하 방이었는데

    작은 철문은 낡아 군데 군데 페인트가 벗겨져 있고 벗겨진 페인트 사이로 드러난 곳은 모두 녹이 슬어 있더군요.

    철문을 밀고 반지하방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내려서는데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많이 났습니다. 

    계단을 내려서자 유리에 금이 간 현관문 너머로 아들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톤이 높은 유쾌한 목소리인지라 대번에 아들녀석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엿들어보니 다행히 별 일은 없는 듯 했고 친구랑 킬킬거리면서 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째 안에 어른들 기척도 없고 해서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잠겨 있지도 않더군요.

    어른들이 아무도 없는 것 같아서 신발 벗는 곳에서 아들을 불렀습니다. 

    "범아~ 범아~ 집에 가야지!"

    제 목소리를 듣고 아들이 친구와 함께 방에서 뛰어 나옵니다.

    그런데 깜짝 놀란게 아들 친구의 외모가 참 왜소하더라구요. 

    키는 제 아들보다 한 뼘은 작아 보이고 살집이 하나도 없이 비쩍 말랐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영양부족 같았습니다.

    집에 어른이 안계시냐고 물었는데 아들 친구가 방 한쪽을 가리키더군요. 안으로 들어서서 아이가 가리킨 쪽을 보니

    치매에 걸린 할머니 한 분이 벽에 기대 멍하니 있었습니다.

    인사를 드렸지만 눈에는 초점이 없는 상태였고 대소변 냄새가 좀 나고 있었죠.

    아이 할머니가 침을 흘리가 그 아이는 금새 수건을 가지고 와서 할머니 침을 닦아줍니다.

    할머니 수발까지 그 아이가 하는 듯 싶었습니다. 


    뭔가 기분이 계속 안 좋아서 그 집안을 좀 둘러보았습니다. 

    낡은 냉장고를 열어보니 쉬어터진 김치 냄새가 진동을 하고 먹을 만한 음식이 없네요. 

    있는거라고는 단팥빵이 몇 개 있더군요.

    주방 같지도 않은 주방이었지만 그래도 밥솥 비슷한게 있어서 혹시나 하고 밥솥을 열어 봤습니다만 

    역시나입니다. 말라 비틀어진 밥풀떼기가 밥솥에 두어개 붙어있을 뿐 텅 비어있네요.

    뭔가 집안 사정이 있겠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화가 좀 나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아들 친구를 찬찬히 훑어 봤는데 영양실조가 확실합니다. 얼마나 영양이 부족한지 머리털이 푸석거리고 숱도 별로 없습니다.

    안되겠다 싶어서 뭘 좀 먹이려고 아들과 그 아이를 데리고 나가려고 하는 찰나였습니다.


    현관문 너머로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술취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순간 그 아이의 눈동자가 떨리는게 보이고 몸이 굳어가는게 보입니다. 

    느낌이 매우 안 좋습니다.


    '콰당' 

    낡은 철문이 열리고 술 냄새를 풍기는 아이 아버지인 듯한 주정뱅이가 비틀비틀 계단을 내려오는 모습이 보입니다. 

    아들을 제 뒤로 숨기고 그 사람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그 사람은 인사를 하는 나를 위 아래로 슥 훑어보고는 대답도 없이 자기 아이를 부르더군요.

    "이 새끼야 아부지가 왔으면 인사를 해야지!"

    아이가 쭈뼛쭈뼛 그 인간 곁으로 다가서자 그 인간이 아이의 머리통을 갑자기 후려칩니다.

    얼마나 세게 쳤는지 그나마 없는 아이의 머리카락이 뭉텅 뽑힙고 그 아이는 내동댕이 쳐집니다.


    순간 제 머리속에서 뭐가 끊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립니다. 이성이 끊어졌나 봅니다.

    저도 모르게 주먹질을 시작했고 개패듯이 그 인간을 팹니다. 

    입에서는 온갖 욕설이 튀어나갑니다. 

    이런 인간은 애를 키울 자격이 없습니다. 

    이걸 내가 이 자리에서 패 죽이고 저 불쌍한 애 내가 키우고 맙니다. 씨발.


    한참을 주먹질을 하고 있는데 마구 눈물이 나네요.


    눈은 아직 감고 있는데 마구 마구 눈물이 납니다. 

    입은 계속 욕을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눈감고 주먹질을 하는 저를 흔듭니다. 


    입은 계속 욕을 하고 있는데 울던 눈이 뜨이네요.

    아내가 보입니다.


    눈물을 닦고 아들녀석 방으로 가봤습니다. 잘 자고 있네요.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담배를 한 대 물고 생각해보니

    그 반지하방, 제가 지금 제 아들 나이 때에 살던 그 집이네요.
    출처 AM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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