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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lovestory_93837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5
    조회수 : 1318
    IP : 14.58.***.139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22/12/07 22:32:04
    http://todayhumor.com/?lovestory_93837 모바일
    [BGM] 어제보다 비밀이 많아졌다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권현형, 어제보다 비밀이 많아졌다




    오늘 구름은 뼈가 있다

    구름의 늑골 사이에서 달이 달그락거리고 나도

    주머니 속 당신의 운율감 넘치는 손가락뼈를 만져본다


    지나가다 만난 돌이 모자를 벗고 이마를 수그리고

    저를 낳은 저녁에게 예의를 다하고 있는 순간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긴 시간을 봉헌하고 있는 순간


    날개의 질료가 백 퍼센트 구름인지도 모를

    붕새 한 마리가 머리 위를 날아갔다

    하루에 구만 리를 날아서 그가 닿고 싶은 세계가 어딘지

    그 자신도 모르는 것 같아 불러 세워 질문하지 않았다


    아침과 저녁의 기분이 다른 숲은 좀 더 은밀해 보였고

    이윽고 많은 말들이 서로 혀를 조심하며 바스락거렸다


    숲속에서 자명종 소리가 났다 단순한 음악 같기도 했다

    몸 안에 금관을 갖고 있는 풀벌레의 생애가


    석양과 함께 짧게 빛나 보였다

    끝없이 깊어진 노년기 보르헤스의 눈을 닮았을

    저녁의 동공 때문인지 현기증이 났다 구름 대신


    먼지가 낀 아득한 처소의 창턱으로 되돌아와서도

    산책길에 본 저녁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구만 리를 걸어가서 어디에 닿고 싶은 거니

    나 자신에게도 질문하지 않았다


    어제보다 비밀이 많아졌다

     

     

     

     

     

     

    2.jpg

     

    박수빈, 피아노방울




    하늘은 얼마나 많은 피아노들을 품었을까


    흑백의 세상에 건반들이 떨어진다

    대지 속으로 스며드는 피아노의 얼룩들


    당신은 내가 허방에 빠질 때

    신발이 벗겨질 때

    들려 오는 달무리 소나타


    흰 팔의 들려오는 끓는 소리들

    당신이 나를 뒤로 할 때

    현기증은 내가 겪는 공중


    타버린 심지처럼 헐벗은 나무들이 휘휘거리고

    새어나오는 바람소리

    뼈를 부딪는 소리들


    급히 페달을 밟는다

    내 가슴에 젖은 물빛 출렁이다가

    스윽 반올림 반내림

    내 삶의 악상들


    살 빠진 빗으로 나는 머리카락을 빗어 넘긴다

     

     

     

     

     

     

    3.jpg

     

    심언주, 계단이 오면




    계단이 오면


    나는 무릎을 꺾으며 방아깨비처럼

    굽신거립니다


    물에 발을 담근 것처럼

    두 발이 짧아집니다


    공보다 빨리

    한꺼번에 몇 계단씩

    내려서고 싶은데


    계단이 굽신거리며 내 발을 받들어서

    밟아도 밟아도 계단이 끊어지지 않아서


    내려다보면


    발 아래서 누군가의 머리가

    머리 위에서 누군가의 발이

    차곡차곡 쌓여 꿈틀거립니다


    11월은 나 혼자 쌓은 것이 아니어서

    단풍을 따라 뛰어내릴 수 없습니다


    계단 혼자서 계단을 오르내립니다

     

     

     

     

     

     

    4.jpg

     

    이장욱, 서해의 개입




    내가 살아온 세계는 서해와는 먼 거리였다

    나의 집도 서해에는 없었고 친구도

    취한 채 건너던 횡단보도도

    서해에는 없었다


    서해는 나를 잊는 일에 가까웠고

    내가 죽은 후에 가까웠고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연인이었다. 실은

    서해에서 몇 날 며칠 숙박을 했는데도 실은

    해변에 나가서 혼자 오래 걸었는데도 실은

    여기서 일생을 보냈는데도


    서해가 먼 곳이었다. 서해에서 나는

    최소한의 노동과 부당한 통치자들과 또

    혼자 깨어난 새벽을 생각하였다.

    나는 생선을 좋아하고 수영을 잘하는데

    수평선이 발생하는 것과 심해가 자라는 것을 잘 이해하는데

    매일 이 가까운 곳에서


    사람이 사람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해변이 해변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서해를 떠나기 위해 수평선 쪽으로 수영을 했는데 문득

    붉은 등의 횡단보도를 거의 다 건너긴 건넜는데 문득

    거대한 파도가

    아주 물질적인 파도가

    바로 눈앞에

     

     

     

     

     

     

    5.jpg

     

    강성은, 포크송




    겨울엔 조니 미첼을 듣고

    여름엔 내가 불렀지 문득 때때로


    발전소 굴뚝엔 계절 없이 검은 연기가 솟고

    오토바이를 탄 아이들이 연기를 따라 달린다


    바람이 불어오면

    초록의 토끼풀들이 우수수


    염소를 안고 가는 늙은 여자

    닭장을 안고 가는 늙은 남자


    흐린 날 뒷모습은 왜 모두 유령 같은가

    노래는 끝나지 않고


    집 나간 아이들이 떠나온 집을 생각하는 저녁

    내 영혼이 창가에서 나를 물끄러미 보고 있는


    노래가 끝나지 않고

     

     

     

     

     

     

    통통볼의 꼬릿말입니다
    kYOH2dJ.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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