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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김화순, 시인의 밭에 가서
비 오다 활짝 갠 날
김포 대곶리 시인의 텃밭에 가서 나는 보았네
엉덩이 까고 펑퍼짐하게 나앉은 비닐 모판 위 배추들
하나같이 큰 손바닥만한 잎들에 구멍 숭숭 뚫려 있었네
제 둥근 몸 안에 벌레를 키우고 꼿꼿이 서서
가을을 당당히 걸어가는 속이 꽉 들어찬 아낙들
그렇지, 사는 일은 빈틈없는 생활에 구멍 숭숭 내는 일이 아닌가 몰라
벌레가 먹을 수 있어야 무공해 풋것이듯이
생활도 벌레를 허용할 수 있어야 자연산 인간일 수 있다는 생각
그렇지, 사는 일이란 시인의 밭에 자라고 있는 배추처럼
자신의 몸이 기꺼이 누군가의 밥이 되는 일 아닌가 하는
그 푸른 기특한 생각
들판 가득 향기처럼 번지고 있었네
문정희, 성에꽃
추위가 칼날처럼 다가든 새벽
무심히 커튼을 젖히다 보면
유리창에 피어난, 아니 이런 황홀한 꿈을 보았나
세상과 나 사이에 밤새 누가
이런 투명한 꽃을 피워 놓으셨을까
들녘의 꽃들조차 제 빛깔을 감추고
씨앗 속에 깊이 숨죽이고 있을 때
이내 스러지는 니르바나의 꽃을
저 얇고 날카로운 유리창에 누가 새겨 놓았을까
허긴 사람도 그렇지
가장 가혹한 고통의 밤이 끝난 자리에
가장 눈부시고 부드러운 꿈이 일어서지
새하얀 신부 앞에 붉고 푸른 색깔들 입 다물듯이
들녘의 꽃들 모두 제 향기를
씨앗 속에 깊이 감추고 있을 때
어둠이 스며드는 차가운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누가 저토록 슬픈 향기를 새기셨을까
한 방울 물로 스러지는
불가해한 비애의 꽃송이들을
박정대, 그대의 발명
느티나무 잎사귀 속으로 노오랗게 가을이 밀려와
우리 집 마당은 옆구리가 화안합니다
그 환함 속으로 밀려왔다 또 밀려 나가는 이 가을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한 장의 음악입니다
누가 고독을 발명했습니까
지금 보이는 것들이 다 음악입니다
나는 지금 느티나무 잎사귀가 되어
고독처럼 알뜰한 음악을 연주합니다
누가 저녁을 발명했습니까
누가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사다리 삼아서
저 밤하늘에 있는 초저녁 별들을 발명했습니까
그대를 꿈꾸어도 그대에게 가닿을 수 없는 마음이
여러 곡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저녁입니다
음악이 있어 그대는 행복합니까
세상의 아주 사소한 움직임도 음악이 되는 저녁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누워서 그대를 발명합니다
김동명, 수선화
그대는 차디찬 의지의 날개로
끝없는 고독의 위를 날으는
애달픈 마음
또한 그리고 그리다가 죽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
또다시 죽는 가여운 넋은
가여운 넋은 아닐까
붙일 곳 없는 정열을
가슴에 깊이 감추이고
찬바람에 쓸쓸히 웃는
적막한 얼굴이여
그대는 신의 창작집 속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불멸의 소곡
또한 나의 작은 애인이니
아아 내 사랑 수선화야
나도 그대를 따라 저 눈길을 걸으리
김영랑, 눈물에 실려 가면
눈물에 실려 가면 산길로 칠십 리
돌아보니 찬바람 무덤에 몰리네
서울이 천 리로다 멀기도 하련만
눈물에 실려 가면 한 걸음 한 걸음
뱃장 위에 부은 발 쉬일까 보다
달빛으로 눈물을 말릴까 보다
고요한 바다 위로 노래가 떠간다
설움도 부끄러 노래가 노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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