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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lovestory_91347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4
    조회수 : 352
    IP : 175.213.***.189
    댓글 : 1개
    등록시간 : 2021/02/15 17:59:08
    http://todayhumor.com/?lovestory_91347 모바일
    [BGM] 고요한 것들은 변하지 않는다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배용제, 몰락은 아름다운가




    더운 입술로 땅 위를 핥던 하루가 나무 숲 너머로 걸어간다

    종일 환호성 지르던 풀잎들은 그 쪽으로 머리를 조아리며 엎드리고

    노래를 마친 새들도 둥지 속으로 머리를 파묻는다

    이 평온한 한때를 위하여

    숨구멍을 통과하는 공기는 싸늘한 침묵을 삼킨다

    강렬했던 빛이 내력을 상실하고

    꽃 이파리에 날카로운 이슬이 꽂히기 시작할 때

    나무숲에서 자란 어둠이 뚝뚝 땅으로 떨어져 내린다

    땅 위를 걸어 다니던 발자국들이 지워진다, 그렇다면

    이제 어떤 새의 목숨이 끊어져도 상관없단 말인가

    찬란했던 꽃 이파리가 떨어져

    영영 사라진다 해도 아주 상관없단 말인가, 그렇다면

    나는 어둠의 늪에 발목을 묻고

    먼저 죽어간 영혼들의 속삭임에 귀 기울여야 한다

    여지껏 고백을 꺼려했던 공포들도 쉽사리 드러난다

    이미 편안한 터전을 가꾼 저 오래된 영혼들

    자유로움이 부럽다, 도피가 끝난 것들 속에서

    나는 잠깐씩 반항의 불꽃을 피워보지만

    고요한 것들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초라한 껍질을 감추기 위해 서둘러 소등한다

    은밀한 그들의 날개 한 쪽 깃에 매달려 더욱더 깊숙하게

    그 휴식의 비밀을 익혀야 한다

    나는 이미 어둠의 늪에 발목을 묻어두었으므로

     

     

     

     

     

     

    2.jpg

     

    김용택, 맨발




    가을비 그친 강물이 곱다

    잎이 다 진 강가 나무 아래로 다희가 책가방 메고 혼자 집에 가는데

    그 많은 서울 사람들을 다 지우고 문재는, 양말을 벗어 옆에다 두고

    인수봉을 바라보며 혼자 술 먹는단다


    이 가을 저물 무렵

    다희도, 나도, 나무도, 문재도, 고요한 혼자다

     

     

     

     

     

     

    3.jpg

     

    윤동주, 코스모스




    청초한 코스모스는

    오직 하나인 나의 아가씨


    달빛이 싸늘히 추운 밤이면

    옛 소녀가 못 견디게 그리워

    코스모스 핀 정원으로 찾아간다


    코스모스는

    귀또리 울음에도 수줍어지고

    코스모스 앞에 선 나는

    어렸을 적처럼 부끄러워지나니


    내 마음은 코스모스의 마음이요

    코스모스의 마음은 내 마음이다

     

     

     

     

     

     

    4.jpg

     

    정공채, 간이역




    피어나는 꽃은 아무래도 간이역

    지나치고 나면 아아

    그 도정(道程)에 꽃이 피어 있었던가


    잠깐 멈추어서

    그 때 펼 것을, 설계(設計)

    찬란한 그 햇빛을


    오랫동안을 걸어온 뒤에

    돌아다보면

    비뚤어진 포도(鋪道)에

    아득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제 그 꽃은 지고

    지금 그 꽃에 미련은 오래 머물지만

    져버린 꽃은 다시 피지 않는 걸

    여숙(旅宿)에서

    서로 즐긴 사랑의 수표처럼

    기억의 언덕 위에 잠깐 섰다가

    흘러가 버린 바람이었는 걸


    지나치고 나면 아아, 그 도정에 작은

    간이역 하나가 있었던가

    간이역 하나가

    꽃과 같이 있었던가

     

     

     

     

     

     

    5.jpg

     

    박재삼, 서릿길을 밟으며




    하얗게 내린 서릿길을 밟으며

    ‘참 세월이 빠르군’

    엊그제 흘러가 버린

    여름을 아까워 하네

    그러나 그것은 이미

    되돌아오지 못하는 것을

    허전하지만 어쩌겠어요


    계절이야 자꾸

    바뀌어 나타나지만

    이런 좋은 철도

    실상 몇 번을 맞아야

    나는 땅 밑으로 가나


    아, 그것이 무한정인 듯 하지만

    많이는 잊고 사는 사람들아

    섭섭하지만

    그저 경건하게 땅위에 차린

    하늘의 뜻에 새삼

    고개를 숙일 수밖에

    딴 도리라고는 없네

     

     

     

     

     

     

    통통볼의 꼬릿말입니다
    kYOH2dJ.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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