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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이수익, 봄밤
봄밤
꽃나무 아래서는 술이 붉다
꽃향기 자욱한 술잔이 붉다
따라 주는 이 없이 홀로 잔을 채워도
외롭지 않다, 절로 흥이 넘치는 밤
김기택, 바람 부는 날의 시
바람이 분다
바람에 감전된 나뭇잎들이 온몸을 떨자
나무 가득 쏴아 쏴아아
파도 흐르는 소리가 난다
바람이 부는 곳으로 가보자고
바람의 무늬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 보자고
작고 여린 이파리들이
굵고 튼튼한 나뭇가지를 잡아당긴다
실처럼 가는 나뭇잎 줄기에 끌려
아름드리 나무 거대한 기둥이
공손하게 허리를 굽힌다
구재기, 작은 짐승
도시로 가는
버스에서 내려 둑길을 걷는다
아침까치처럼 세상은 환하고
이슬 받은 풀잎처럼 햇살이 빛난다
닥친 말썽거리 이리저리 피하던 이야기와
턱없이 허튼 소리를 지껄이던 이야기
비로소 눈물처럼 살아왔음을 깨닫는다
비대발괄하여 겨우 차지한 목숨이
둑길을 걸을 때마다 부끄럽다
이제사 한 마리의 작은 짐승으로
풀을 뜯다 쓰러질 곳을 찾은 것 같다
살아서 말할 수 있는 소리 띄엄띄엄
남의 일에 헤살 놓아 지르던 소리 꿈질꿈질
바야흐로 둑길에는 서러운 꽃이 지고
꽃술을 스치던 바람마다 힘줄이 서고
다시 허리를 구부리지 아니하고
쭉 바르게 살아가리라 다짐하면서
입술을 깨무는 노래와 함께
두 다리로 당당하게 둑길을 걷는다
김규동, 무등산
한 몸이 되기도 전에
두 팔 벌려 어깨를 꼈다
흩어졌는가 하면
다시 모이고
모였다간 다시 흩어진다
높지도 얕지도 않게
그러나 모두는 평등하게
이 하늘 아래 뿌리박고 서서
아, 이것을 지키기 위해
그처럼 오랜 세월 견디었구나
하종오, 슬픈 사색
몇날며칠 물끄러미 보았다
흙을 떠나 수반에 앉은 꽃가지는
살아서 돌아가지 못하고
저 혼자 활짝 꽃봉오리를 피웠다가 시들어
죽어서야 땅으로 돌아갔다
그 앞을 스쳐갈 때는 누구나
무심하여도 아름다워졌으므로
뿌리 없이 떠나는 것도 뿌리 없이 돌아가는 것도
자기 뜻이 아닌 채로 꽃가지는 잠시 어여뻤다
창 밖에는 햇볕이 따뜻했다
물끄럼물끄럼 보던 나는 부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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