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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e3_kfX8WONI
이정란, 주사위
너는 허공을 입방체로 뭉쳐 높이 던진다
나는 숨겨뒀던 사다리의 날개를 펼친다
너와 난 공중에서 부딪혀 12각형의 별이 된다
우린 그 별을 복사해 만든 게임으로
서로에게 도박을 걸지도 모른다
어둠과 햇살을 가장 단순하게 만든 네 안에
규칙은 없다
6의 발바닥에서 해를 보는 1
1이라고 말하고 싶은 2
날개가 곤충의 불행인 것을 믿는 3
3의 노래로 타래를 만들어 동굴을 파는 4
매일 눈동자를 갈아 끼우며 남의 서가에서 책을 즐겨 읽는 5
알고 있는 것들의 영혼을 다붓다붓 의인화시키는 6
6이 모르고 지나간 영혼은
온 몸을 걸게 칠하고
어긋난 모서리들 속으로 스며든다
그럴수록 너는 더욱 부드럽게 팽창한다
육면체 속 알 수 없는 뭉클거림을
허공으로 높이 던지는 순간
내 몸은 투명해진다 애당초
나는 너를 본 적이 없다
정수경, 서랍이 있는 풍경
눈이불 뒤집어쓰고
재개발지역 지키는 책상이 하품을 한다
반쯤 열린 입 속에
동짓달 청동하늘 그리려다
부러진 크레파스
운전사만 태운 버스가
정거장을 빠르게 지나치고
깨진 유리조각에 목이 걸린 시계는
바람의 울음을 빌린다
서랍의 내력이 궁금한
관절 꺾인 담벼락 너머
석양이 야트막한 능선으로 녹물처럼 흘러내린다
뼈대만 남은 창문은
달 없는 밤을 처마 밑으로 불러들이고
혼수트럭에 실어 보냈던 내 젊은 날은
저 서랍 속에 있다
시간의 태엽을 되감는다
뒤늦은 근황이 발뒤꿈치로 키를 늘이며
낡은 사진첩에서 걸어 나온다
침침한 가로등이 찍어낸 추억들
한장 한장 인화되고
오랜 침묵이 흔들린다
가파른 절벽 쪽으로 기울었던 시간이
평형을 회복하자
실밥처럼 풀려나오는
해묵은 일상이 오히려 따뜻하다
세발자전거 탄 아이의 경적 소리에
후미진 곳이 화들짝 환해진다
임영석, 별
너도 혼자 거꾸로 물구나무서서
억만 년을 살아 봐라
눈에 불을 켜지 않고는
단 하루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재개발지역에서 밀려나고
정리해고로 쫓겨나고
비정규직으로 살다 보면
온몸이 캄캄한 하늘이 될 것이다
저 수 많은 별, 그 사람들 눈빛이다
권정우, 저수지
자기 안에 발 담그는 것들을
물에 젖게 하는 법이 없다
모난 돌멩이라고
모난 파문으로 대답하지 않는다
검은 돌멩이라고
검은 파문으로 대답하지 않는다
산이고 구름이고
물가에 늘어선 나무며 나는 새까지
겹쳐서 들어가도
어느 것 하나 상처입지 않는다
바람은
쉴 새 없이 넘어가는
수면 위의 줄글을 다 읽기는 하는 건지
하늘이 들어와도 넘치지 않는다
바닥이 깊고도
높다
이은봉, 매화원에서
나는 없네, 나를 털어 바친
매화원, 꽃송이들만 앞 다투어 피고 있네
보게나 꽃송이들로
피어나는 나일세
꿀벌들, 윙윙대는 날갯짓도
때로는 나인 적 있네
그렇네 꽃향기로
번져 가는 나도 있네
매화꽃, 꽃진 자리
오물오물 알져 오르는 저 열매들
열매들 뽀얗게 자라
푸르른 하늘, 흰 구름
제 속에 가득 담기도 하네
나는 없네 나를 털어 바친
바람으로 물결로 떠 흐를 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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