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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lovestory_89510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4
    조회수 : 288
    IP : 211.63.***.200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20/02/29 22:19:42
    http://todayhumor.com/?lovestory_89510 모바일
    [BGM] 다 가져가 버렸구나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WvT8rUtQkyk






    1.jpg

    박선경장마

     

     

     

    비는 그렇게 서서

    나를 흘려보냅니다

    이것은 모두 비의 환상입니다

     

    빗줄기에 매달린 창문들이 인사를 합니다

    그는 남은 옷가지와 가방이 정리되지 않은 채

    또 하나의 죽음으로 잊혀지고

    나는 내일 아침 세면대 앞에서

    울고 있을 여자와

    곧 냉장고 정리와 묵은 빨래를 마저 하지 못한 채

    떠날 그녀를 알고 있습니다

     

    날마다 방안의 온기를 유지하고

    세월에 일그러지는 가구의 아귀를 맞추며

    비밀번호를 간직한 방의 일부가 되어가는 일

    빛바랜 사진 속그들의 품에서 풍선을 놓치고 울고 있는

    어린 여자아이는 이제 없습니다

     

    오래된 흠집처럼 비는 서 있습니다

    그와 함께 있었던 나는

    지금 내리고 있는 창 밖

    비의 환상입니다







    2.jpg

    최정아뒤뜰

     

     

     

    뒷문밖엔 이마 서늘한 그늘이 산다

    저 늙고 병든 짐승

    윙윙 댓잎 같이 날선 바람을

    사철 등에 업고 산다

    한나절도 못되어 슬금슬금 뒷걸음쳐

    구석까지 밀려나 바싹 엎드린다

    어둑발 들이치기 무섭게 몸져누워버린

    발톱은 늘 축축하다

    마흔 해도 더

    싸리꽃잎처럼 붉은 송아지 울음을

    자욱이 깔리는 저녁연기를사랑하면서도

    한 발짝도 나서지 못해 괴괴한

    열사흘 달빛에 곤두서는 털가죽

    앞마당 가득 출렁이는 햇살은

    뒤뜰에 엎드린 짐승의 뜨거운 입김이다







    3.jpg

    전동균마흔을 넘는다는 것은

     

     

     

    가장 추운 겨울날

    식구들 몰래

    풍경 하나 매다는 일

    밀물이 들듯

    밀물에 배가 떠올라 앞으로 나아가듯

    울리는 풍경소리에

    멀리 있는 산이 환하게 떠오르면

    그 산 속배고픈 짐승의

    흩어진 발자국 같은 것도 찾아보는 일

    마흔을 넘는다는 것은

    찬바람 속에 풍경 하나 매달고

    온종일 그 소리를

    혼자 듣는 일

    풍경 속에 잠든 수많은 소리를 모셔와

    그 중 외롭고 서러운 것에게는

    술도 한잔 건네는 일

    더러는 숨을 멈추며

    싸락눈처럼 젖어드는 고요에

    아프게아프게 금이 가는 가슴 한쪽을

    오랫동안 쓸어주는 일

    그 끝에 반짝이는

    검은 우물을 들여다보는 일







    4.jpg

    이재무건들건들

     

     

     

    꽃한테 농이나 걸며 살면 어떤가

    움켜쥔 것 놓아야 새 것 잡을 수 있지

    빈손이라야 건들건들 놀 수 있지

    암팡지고 꾀바르게 사느라

    웃음 배웅한 뒤 그늘 깊어진 얼굴들아

    경전 따위 율법 따위 침이나 뱉어주고

    가볍고 시원하게 간들간들 근들근들

    영혼 곳간에 쟁인 시간의 낱알

    한 톨 두 톨 빼먹으며 살면 어떤가

    해종일 가지나 희롱하는 바람같이







    5.jpg

    하정임찻물 끓이기

     

     

     

    가끔 누군가 미워져서

    마음이 외로워지는 날엔

    찻물을 끓이자

    그 소리 방울방울 몸을 일으켜

    솨솨 솔바람 소리

    후두둑후두둑 빗방울 소리

    자그락자그락 자갈길 걷는 소리

    가만!

    내 마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

    주전자 속 맑은 소리들이

    내 마음 속 미움을

    다 가져가 버렸구나

    하얀 김을 내뿜으며

    용서만 남겨놓고







    통통볼의 꼬릿말입니다
    kYOH2dJ.jpg

    이 게시물을 추천한 분들의 목록입니다.
    [1] 2020/02/29 22:38:39  1.233.***.149  회색늑대  550943
    [2] 2020/02/29 23:49:21  182.208.***.83  봄이엄마  309168
    [3] 2020/03/01 07:44:05  59.2.***.51  사과나무길  563040
    [4] 2020/03/01 22:05:21  183.103.***.68  갓작남  259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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