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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lovestory_89219
    작성자 : 통통볼 (가입일자:2012-11-15 방문횟수:1558)
    추천 : 4
    조회수 : 170
    IP : 211.63.***.200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20/01/20 10:37:45
    http://todayhumor.com/?lovestory_89219 모바일
    [BGM] 고독은 그늘을 통해 말한다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HKBIfjlF4E






    1.jpg

    엄원태싸락눈

     

     

     

    고독은 그늘을 통해 말한다

     

    어쩌면 그늘에만 겨우 존재하는 것이 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늘로 인해 생은 깊어갈 것이다

    고통과 결핍이 그늘의 지층이며 습곡이다

     

    밤새 눈이 왔다

    말없이 말할 줄 아는싸락눈이었다







    2.jpg

    장이엽생략법(省略法)

     

     

     

    생략법(省略法)을 좋아하는 이들을 보았다

    그들은 쉽게 생략했고 생략된 것들에 대해 가볍게 받아넘겼다

     

    그들의 대화는 생략에서 생략으로 이어졌다

    대부분 의견의 전반을 생략으로 표현하는데도

    그들끼리의 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다

     

    생략에 익숙한 이들은 뭐든지 짧게 끝냈다

    그들은 언제 꼬리를 자르고 사라져야 하는지를

    항상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았다

     

    생략이 서툰 이들은

    난처함을 감추지 못한 채 쩔쩔매는 표정이 역력했다

    자리를 뜨기 전 이야기를 끝내려는 것인지

    들어주는 이가 없을까 봐서인지

    주위를 돌아보거나 수시로 시간을 확인하면서

    숨 쉴 겨를 없이 빠른 속도로 많은 말을 했다

     

    몇몇은 나에게도 생략법을 써서 접근해왔다

    하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단계를 말하는 이는 없었다

    실수로 빠트린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일부러 뺀 것인지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의 간극에 숨어있는 생략들 사이에서

    회전하고 있었다

     

    불명의 정체를 생략해야만 생략으로 이해될 수 있는 생략들 앞에서

    소리 없는 소리로 말하고 발 없는 발로 뛰어다니다가

    제멋대로 팽창하고 재구성된 생략법에 잠식당한 우리는

    아니 나는지금 위태롭다







    3.jpg

    송용호관찰법

     

     

     

    저탄장으로 귀가하는

    화물열차의 기적소리로 수업은 시작되었다

    밤새 바람은 나비처럼 석탄가루를 날라

    마당 가득

    꿈만큼이나 어지럽게 피어난 철쭉꽃잎 사이 사이에 뿌리고

    나는 사분의 사박자 행진곡에

    발맞춰야 할 내 춤의 한 귀퉁이를 비우기 위해

    애써 거짓일기를 쓰곤 했다

    아무리 해도 잘 풀리지 않던

    우리나라의 산수과목 문제와 함께

    자라는 것은 왜 이리 어려운 것일까

    자주 나의 장래를 의심하곤 했다

    잦은 어머니의 등교로 우수수 우수수 낙엽되어 쌓이던 나의 성적표

    때때로 그곳에 산불이라도 나기를 바라며

    무궁화꽃이 자꾸만 피고 져도 찾아내지 못하던

    이 다음에 내가 해야 할 숙제를 미리 걱정하곤 했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새 이름표를 달듯 쉽게 바뀌곤 하던 내

    희망의 간이역에서

    종종 발견되곤 하던 절망의 상처에

    어머니는 빨간약을 발라 주셨지만

    유년의 계획표는 가뭄처럼 갈라지고

    국민학교 6학년을 마감하는 생활기록부에는

    불안한 졸업이

    버즘처럼 피어 있었다







    4.jpg

    홍정순철물점 여자

     

     

     

    예외 없다 사람 손 가야 비로소 제값 하는

    무수한 연장들 틈새에서 시 쓰는 여자가 있다

    새벽 여섯 시부터 밤 여덟 시까지

    못 팔아야 살지만 못 팔아도 사는 여자

    십 년 전 마음에 심은 작심(作心)이라는 볼트 하나

    너트로 한 바퀴 더 조여야 하는

    사월은 성수기

    작업 현장에 연장이 필요하듯

    여자에겐 시간이 절실하다

    시를 쓰겠다고 한 시간 일찍 나와

    어둠 속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여자를

    고요 속 새벽이 빨아들인다

    뒤란에서 들려오는 새 소리

    흙집을 개조한 철물점 기와지붕엔

    아직도 이끼가 끼어 있어

    늘 기역자로 만나야 하는 새 소리는

    어긋나 포개진 기왓장 틈새에 알 낳고 품었을 그 시간들

    지난 십 년을 생각나게 하는데

    용마루 위 일가 이룬 새들의 울음소리에

    자꾸만 착해지는 여자

    지명 따라 지은 이름 '대강 철물점'

    간판 너머엔

    적당히 보리밭 흔드는 바람이 불고

    멋대로 떨어지는 감꽃도 싱싱하지만

    개줄 하나 팔고 앉으면 받침 하나 빠지고

    물통 하나 팔고 앉으면 단어 하나 달아난다

    오늘도

    철물처럼 무거운 시

    플라스틱 약수통처럼 가볍고 싶은 시







    5.jpg

    이화은양귀비

     

     

     

    개복숭아보다 슬픈 개양귀비

    개살구보다 슬픈 개양귀비

    개를 끌고 가는 예쁜 여자보다 슬픈 개양귀비

    양귀비보다 개보다 더 슬픈 개양귀비

    한 방울의 독이 없어

    이름이 되지 못한 당신이여 나여

    흔해 빠진 연애여

    꽃이 피었던 자리에 비석을 세우진 말자

    꽃의 심장에 아무것도 기록하지 말자

    다만

    개양귀비보다 더 어여쁜

    이름이 되지 못한 이름 하나가

    잠시 다녀간 계절이 있었다고

    독이 없이

    지독히 슬픈 개양귀비







    통통볼의 꼬릿말입니다
    kYOH2dJ.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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